공교롭게도 최저생계비 체험은 1년간 다닌 직장을 그만두는 날 시작되었습니다. 오전에 회사에 가서 작별 인사를 하고, 사택의 짐을 챙겨서 장수마을로 들어왔지요. 연이은 송별회에 술병이 났는지 머리가 아프고 몸은 펄펄 끓었습니다. 늦은 밤 아픈 몸을 이끌고 방에 들어왔더니 텅 빈 방안에는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가득했습니다. ‘아, 돌아가고 싶다’ 때늦은 후회였습니다. 저에겐 돌아갈 집도 회사도 없었으니까요. 가상과 현실의 혼돈 속에서 최저생계비 한달 체험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1인가구 최저생계비로 받은 504,340원, 그중에 주거비가 87,000원이었습니다. 첫날부터 거금을 떼이고 말았습니다. 현실에서는 최저생계비 50만원중 최대 지원받을 수 있는 금액이 42만원 정도입니다. 실제 월세는 최소 20만원 정도 하니, 남은 20만원으로 식비, 교통비, 공과금 다 내면 파산은 불 보듯 뻔합니다. 목표를 세웠습니다. “최저생계비의 비목별 구성대로 살아보자.” 현실을 반영하여 ‘건강하고 문화적인 삶’의 지표를 만들었다고 하니, 역으로 그것을 현실에서 구현해 보면 그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요.
한 끼 식사비용은 2,100원입니다. 일단 외식은 금지입니다. 밖에서 5,6천원짜리 밥한번 먹고 나면 하루 식비가 고스란히 날아가는 것입니다.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쌀을 사고, 김치, 김, 계란 등의 기본찬을 사고 나면 끼당 단가는 1000원대로 떨어지고 말지요.
문제가 생겼습니다. 가구집기/가사용품비가 예산을 초과하기 시작했습니다. 방이 습해서 제습제를 사고,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 집이라 버너용 부탄가스를 사야했습니다. 열악한 주거환경은 또 다른 지출을 불렀고, 그것은 아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비목별 금액을 넘어가면 더이상 지출하지 않겠다던 막연한 생각이 얼마나 무지한 것이었는지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되면 식비 단가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달랑 19000원 책정되어 있는 피복신발비도, 9000원의 교양오락비도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남은 금액은 몽땅 식비로 써야 하게 되었습니다.
습한 방안 공기는 결국 몸에도 빨간불이 들어오게 합니다. 피부병이 나서 병원을 찾았습니다. 의료비 2만원을 식비에 긴급투입하려 했던 계획도 무너졌습니다. 남의 속도 모르고 며칠 후 다시 오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이 야속하기만 했습니다.
비목대로 살아보려는 계획은 채 일주일이 안 되어 무너졌습니다. 현실을 반영했다고 하는 비목별 구성은 어찌된 영문인지 현실에 도저히 반영할 수 없었습니다.
참 다양한 사람들이 체험단에 참여했습니다만 최저생계비 안에서의 삶은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초반에는 나름대로 ‘건강하고 문화적인 삶’을 살아보겠다고 영화도 보고, 책도 사보고 하더니, 날이 갈수록 하루 세끼를 해결하기도 버겁게 되었습니다. 최저생계비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삶의 패턴을 정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생활은 단조로워졌고, 사람들을 만나거나 외출을 하는 것을 기피하게 되더군요. 모든 지출이 생존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발생가능한 모든 활동을 접게 만듭니다. 갈수록 우울해지고, 세상과 단절되어 가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어쩌면 체험기간 중에 방문한 사람들과 언론들 덕분에 이것이 현실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달랠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가상의 현실이었지만 최저생계비가 만들어낸 삶의 여건은 무섭게 제 자신을 옭아맸습니다.
“최저생계비의 한 달 임상실험 결과는 실패입니다. 현실에 도입하기에 많은 문제점이 있으므로 재고바랍니다.” 최저생계비를 계측하고 시행하기 전에 우리들의 체험과 같은 테스트가 있었다면 아마도 이런 결론이 나왔을 것입니다. 한 사람의 삶에 총체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최저생계비는 얼마만큼 고민하고 얼마나 신중을 기해 정해지고 있는 것일까요.
“그냥 아프지만 않고 있다가 조용히 죽었으면 좋겠어” 소망이 무어냐는 질문에 수급자 할아버지가 말씀하셨습니다. 할아버지가 수급자가 된 사연은 참으로 기구합니다. 부인의 병을 고치려 퇴직금에 빚까지 냈지만 결국 사별을 하고 자식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일용직을 하시다가 손가락도 잘리고, 다리도 다쳤습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것도, 남보다 노력을 하지 않은 것도, 경쟁에서 탈락한 것도 아닌 ‘부인이 병이 났다’라는 할아버지의 가난은 최저생계비의 문제가 빈곤이 아닌 나와 우리의 문제임을 확실히 인식시켜 주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받는 수급비는 42만원입니다. 창문하나 없는 지하 쪽방 월세가 20만원, 한 달 20만원으로 모든 생활을 해결하셔야 하지요. 근처 교회에서 지원받던 쌀도 끊겼습니다. 몸이 아파 병원에 갔더니 검사비 명목으로 6만원이 넘게 나왔습니다. 기억이 자꾸 가물거려 병원가기도 무섭다는 할아버지를 모시고 검사결과를 들으러 갔습니다. 추가 검사비가 2만원이 나오니 할아버지는 그만 되었다며 예약을 취소하시고 돌아섭니다. 이제 10만원 남짓으로 꼬박 한 달을 나셔야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매번 적자가 나고 맙니다. 근처 슈퍼에 밀린 외상값도 갚아야 합니다.
할아버지가 그동안 내신 세금은 쪽방촌을 둘러싼 고층빌딩, 올림픽의 금메달들, 세계 1,2위를 다투는 국내 기업들을 만들어 내었겠지요. 할아버지가 낸 세금이 할아버지에게 다시 돌아오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요. 한정된 예산의 우선순위에 밀린 할아버지의 삶의 순위는 어디쯤일까요.
몇 년 전 배낭여행을 하다가 핀란드에서 온 친구를 만나 서로의 나라에 대해 얘기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은 무료이고, 병원도 공짜입니다. 노후는 연금제도가 있어 걱정할 필요가 없답니다. 큰 병이 날까 꼬박 꼬박 보험료 내고, 자식 대학등록금 때문에 몇 십 년 적금을 붓고, 그리고 나면 노후대비를 위해 연금보험 붓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인 우리네 삶은 무엇일까요. 국가란 우리에게 무엇일까요.
한 달 체험이 끝났습니다. 청년실업이다 88만원 세대다 안 그래도 불안한 세대인데 최저생계비 체험을 하고 나니 더욱 겁이 납니다. 눈 감아버리고 싶은 진실을 알게 되어 내내 마음이 불편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사는 것을 다른 나라 친구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체험이 최저생계비의 결정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내일이 좀 더 나아지기를 기대합니다.
월간 <복지동향> 2010년 08월호(제1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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