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의 의결권 행사 허용해야 한다

주주권 행사 금지된 채 주식투자 하는 것은 무기 없이 전쟁터에 나가는 꼴

기금관리기본법 제3조 제3항 (기금의 주식 및 부동산 투자 금지) 삭제와 관련하여 한나라당이 13일 ‘조건부 찬성’으로 입장을 바꾸는 대신,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를 금지하는 안을 내놓았다. 한나라당의 안은 주주총회의 안건이 수익률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의결권 행사를 원칙적으로 금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결권을 포함한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는 기본적으로 투자기업의 지배구조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예컨대 부당내부거래 등에 연루된 이사를 차기 주총에서 불신임하는 것은 연기금이 지배구조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하는 것인데, 이를 금지하는 것은 연기금의 위험방지 기능을 근원적으로 제한하는 것이다.

수익률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제한적으로 해석할 경우 의결권 행사를 과도하게 제한하게 되고 이는 오히려 장기적으로 연기금에 손실을 가져올 것이다. 즉, 자산 양수도, 합병 등 주가에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는 안건에 대해서만 의결권 행사를 허용하고, 이사선임의 건, 정관 개정, 이사보수 한도 등의 안건에 대해서는 의결권 행사가 금지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이들 안건이 지배구조와 직결되는 안건이고 간접적이고 점진적이기는 하지만 기업가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실증적으로 학계에서 입증된 사실이다.

또한, 수익률의 기준을 무엇으로 삼을 것인가의 문제도 모호하다. 예를 들어 수익률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주가가 하락한 경우로 제한한다면, 어떤 경우에 주가하락으로 볼 것인가가 모호해진다. 먼저, 주가가 상승했다고 해서 지배구조위험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이런 기업들의 경우 지배구조위험이 제거되면 주가는 더 상승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또, 해당 종목의 주가는 하락했지만 시장지표(종합주가지수)보다는 덜 하락한 경우, 반대로 해당종목의 주가는 상승했지만 시장지표(종합주가지수)보다는 덜 상승한 경우 어떻게 행사해야 하는지 모호하다.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는 것은 글로벌 스탠다드에도 맞지 않다. 미국에서도 주정부관련 공적연금(CalPERS 등)들이 주주권행사를 가장 적극적으로 광범위하게 하고 있으며, 이들 연기금은 주법 또는 Common Law에 따라 의결권 행사가 의무화되어 있다. 영국에서도 2002년 Myners Committee의 제안에 따라 연금자산을 운용하는 자산운용회사들에 대해 의결권 행사를 의무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연기금의 의결권행사를 금지하자는 발상은, 연기금들이 사실상 정부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상황에서, 주식보유에 따른 의결권 행사가 정부에 의한 부당한 간섭으로 변질될 것이라는 우려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의결권 행사에 따른 효과가 비용을 초과한다고 판단될 때(예컨대, 연기금 가입자들에게 순이익이 있다고 판단될 때. 이는 충실의무를 충족하기 위한 것이다)와, 정부 및 다른 이해관계로부터 독립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배구조가 갖춰졌을 때에는 의결권 행사 뿐만 아니라 다른 주주권 행사(주주제안, 대표소송, 집단소송, 장부열람 등)도 광범위하게 인정되어야 하며 오히려 의무화하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연기금의 위험방지 수단으로서 필수적인 의결권 행사를 금지할 것이 아니라, 연기금의 지배구조와 의결권 행사 절차를 독립적이고 투명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관치의 우려를 제거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연기금의 바람직한 지배구조와 독립적인 의결권 행사를 위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금운용위원회 중 민간위원이 과반수 이상일 것

둘째, 민간위원이 위원장일 것

셋째, 민간위원 추천위원회의 경우도 민간위원이 과반수 이상 되도록 할 것

넷째, 의결권(및 주주권) 행사에 관한 기준, 조직(관련 위원회, 담당자 등), 절차를 기금운용위원회에서 공식 채택하고 이를 공시할 것

다섯째, 의결권(및 주주권) 행사내역을 기업별로 사전에 공개하고 반대하는 경우 그 이유를 설명하도록 할 것

여섯째, 매년 의결권(및 주주권) 행사와 관련된 비용을 공개할 것

의결권 행사를 포함하여 주주권 행사가 금지된 상태에서 주식에 투자하는 것은 무기 없이 전쟁터에 나가는 것과 같다. 이는 지배구조 위험이 높은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 특히 그러하다. 의결권을 원칙적으로 인정하고 그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방안을 강구해야 하는 것이지 그 부작용 때문에 주식투자에 수반되는 본질적인 기능인 의결권 행사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한나라당은 근본적으로 연기금의 지배구조를 독립적이고 투명하게 개혁하는 방식을 통해 기금의 기본 원리와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기금운영 원칙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경제개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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