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도 집을 지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집을 짓는다. 집없는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는 ‘사랑의 집짓기(해비타트) 운동’. 망치질 한번 안 해본 사람들이 이 일에 동참하기 위해 뛰어들었다. 과연 이것이 가능하기나 하단 말인가? 그러나 사람들은 이 자원봉사 운동을 두고 ‘강 건너의 기적’이라고 표현한다. 섬진강이 이 동네를 휘감아 흐르고 있다. 그 강을 사이에 두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8월 7일, 전남 광양시 다압면 신원리, 보이는 강 건너는 경남 하동이다.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전라도와 경상도가 나뉘어진다. 그 곳에 8개 동, 32채의 주택이 일주일 만에 건설되어 ‘평화를 여는 마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마을을 건설하기 위해 몰려든 자원봉사자의 수는, 무려 1200여 명이다. 이 많은 이들이 무언가를 옮기고, 합판을 자르고, 단열재를 벽 사이에 넣고…. 마치 개미떼처럼 느껴진다. 머리 위로 태양은 작열하고, 안전모와 마스크로 무장해 자신의 체온까지 합해져 비지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고령으로 등이 휘어진 채 무거운 합판을 나르는 한 할머니가 있다. 목에 두른 수건으로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닦으며 등을 한번 펴본다. 자기가 천복을 입은 사람이라며 어떻게 이 고마움에 답해야겠느냐며 만면에 웃음이 가득하다. 손순덕 할머니(65세). 집이 지어지면 들어와 살 입주자 중 한 사람이다. 그리고 이 마을 부녀회장이다.
“막내 아들이랑 나랑 살았어. 평생 남의 집 월세로 살아왔당께. 이렇게 좋을 수가…. 어느 날 아들이 집에 오다 보니께 전봇대에 뭣이 붙었더래. 그냥 지나쳤는데, 조금 가다보니 종이가 땅에 나뒹굴어 주워보니께 집 없는 사람에게 집을 지어준다는 내용이 실려 있더라네. 아들이 집에 와서 밥 먹으면서 그걸 내내 들여다보는 거야. 그래서 ‘뭘 그리 열심히 보냐, 밥이나 먹어라’ 했더니 아들이 ‘어머니, 우리 얘긴 거 같은데 신청 한번 해볼라요’ 그래. 그래서 ‘설마 우리 같은 사람이 되겠냐’ 하면서 신청했는데 혹시나 해서 마음이 영 쓰이더라구. 그런데 나중에 됐다고 연락이 오지 뭐야. 세상에, 이런 좋은 일이 있을 줄 누가 알았대?”
할머니는 말하면서도 눈물을 글썽였다. 돈 있는 사람들이야 집을 재산가치로만 따지겠지만 이들에게는 집이 수치상의 가치로 따질 수 없는 것이다. 어떻게든 마음 편히 몸 뉘일 내 집 하나 있었으면 하는 것이 평생 소원이었다.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겄소? 하여튼 좋아 죽겄어.”
죽을 때까지 집 없이 떠돌다 땅에 묻힐 줄 알았단다. 그 동안 이사만 해도 30여 번을 더 다녔다. 그리고 올해 들어서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죽게 되었구나, 생각하던 차에 내 집을 갖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픈 것도 잊어버렸다. 입주자는 500시간 이상 집짓는 일에 동참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이를 악물고 일했다.
할머니의 얼굴, 목은 형편없이 울긋불긋 했고,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벽 속에 단열재를 넣는 작업을 하다보면 희뿌연 가루가 날리는데, 그것이 피부에 닿으면 몹시 따끔거리고 빨갛게 부어오른다고 한다. 그래도 너무 좋아 힘든 줄 모르겠다는 말을 연신 되뇌인다.
“내가 복이 많아도 보통 많은 것이 아니여.”
집 없는 사람에게 집을 지어주는 것.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하늘에 감사한다고 말하는 손순덕 할머니를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
오전 11시. 참으로 수박이 나왔다. 수박 한 조각으로 자원봉사들은 더위를 식혔다. 이 공사는 설계에서 시공까지 모든 건축공정에 자원봉사자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휴가를 이용해 자원봉사하는 건축전문가들도 더러 눈에 띄었다. 전체 건축을 지휘하는 전문가들도 전부 자원봉사자들이었다. 그러나 대다수는 한번도 건축일을 경험하지 못한 자원봉사자들이라 안전사고에 대한 각별한 지침이 내려졌다. 아침식사 후 바로 작업이 시작되었는데, 걱정과는 달리 작업은 순조로웠다.
잠시의 휴식도 끝나고, 작업이 다시 시작되었다. 자원봉사자의 대부분이 대학생을 비롯한 20, 30대의 젊은이들이었다. 외국인 자원봉사자도 쉽게 눈에 띄었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뛰어다니는 어린 학생이 있었는데, 입주자 가족인가 하고 다가가서 물어보자, “친구들 셋과 형들 2명이랑 자원봉사 왔어요”라고 한다. 친구들과 자신의 나이를 물었더니 중학교 2학년이고, 형들은 중학교 3학년이란다. 김민세(15세) 학생은 “처음에는 오기 싫었는데, 와서 해보니 재미도 있어요”라고 한다. 그는 단열재를 크기에 맞게 잘라, 그것을 건물 안으로 옮기는 일을 하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이 현장에서 짓고있는 집은 방 2개, 거실, 주방을 포함한 15평 규모였다. 건물의 골조는 스틸(경량철골구조)하우스 구조이다. 이날 작업은 합판 붙이기, 아스팔트슁글 붙이기, 단열재 넣기 등이었다. 이들이 일주일 동안 할 작업은 내외부 마감공사. 기본 설계와 골조작업 등 사전 공사는 3개월 전부터 입주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시공해놓은 상태였다.
지붕 위에서 아스팔트슁글을 붙이고 있는 여수대학교 학생들을 만났다. 그들은 총학생회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자원봉사라는 취지에 공감해서 동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참가비에 대한 이의를 제기했는데, 이들 외에도 “자원봉사하러 왔는데, 돈까지 내야하냐”며 주최측에 항의하는 사례가 있었다. 여기에 대해서 한국 해비타트 지부 이순향 총무는 “이것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봉사입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또 다른 부담감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 때문입니다. 그래서 연장까지 가져와서 집을 지어주고 완성이 되면 떠나는 것”이라고 밝혔다.
자원봉사자들 중에 눈에 띄게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이가 있어 말을 건네보았다. E빌딩 건축을 지휘하고 있고, 하우스 리더 역할을 담당하는 최경희(대구 거주) 씨였다. 그는 다른 자원봉사자들과는 달리, 건축 현장 소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IMF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집 없는 서민의 아픔이 어떤 것인지 너무 잘 알죠. 이 기회를 통해 삶의 의미를 되찾고 싶다고 아내에게 말하고 왔습니다”고 했다. 자원봉사를 통해 나름의 삶의 의미를 찾는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주고받는 이것이 진정한 상생의 의미가 아닐까?
사랑의 집을 짓는 해비타트 운동
해비타트의 역사는 1976년 조지아주의 풀러 부부가 지역사회 내의 무주택자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는 작은 운동에서 시작됐다. 이러한 지역사회 운동이 전세계에 소개되면서 그 파장력이 급증해 현재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주택건축 자원봉사 행사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광양시 외에도 서울, 의정부, 대구, 태백 등 전국 7개 지역에 집짓기 운동을 계속할 계획이다. 32세대의 입주자들은 올해 3월부터 6월까지 신청을 받아 심사를 통해 선정된 사람들이다. 과양시 인근 지역인 하동, 구례, 순천, 여수 등 8군데 지역에서 신청을 받았고 100여 가구가 신청했다.
선정기준은 해비타트 운동의 몇 가지 원칙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 첫째로는 입주가정의 자립을 유도하는 생산적인 자조운동이라는 취지에 따라 입주가정의 가족구성원 전체가 입주에 찬성해야 한다. 또 입주가정은 주택건설원가를 15년동안 무이자 분할 상환해야 한다. 건설원가는 2000만원이며 매달 3~4만원 정도의 액수로 15년 동안 갚아야 한다. 이 상환은 다시 무주택자를 위한 주택사업에 사용된다.
이 운동이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는 사회공동체성 회복에 기여하는 광범위한 자원봉사운동이라는 점이다. 자원봉사자들은 일주일 동안 체류하면서 소요되는 경비와 교통비, 사용하는 연장이나 도구 등을 스스로 부담한다. 참가비로 학생은 17만원, 일반인은 19만원, 외국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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