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5년 06월 2005-06-01   1007

6.25에서 6.15까지 얼어붙은 50년을 녹인 6.15 5년

본지에서는 6.15남북공동선언 5주년을 맞아 그 의미와 남·북사회의 변화와 이후 남북관계, 또한 팽팽한 대결구도를 유지하는 북한-미국관계의 해법을 전망해 본다. 편집자주

올해는 6·15 공동선언이 발표된 지 5년이 되는 해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은 성사 자체만으로도 역사적 상징성을 갖는다. 분단 이후 대결과 반목으로 점철됐던 역사를 되돌아본다면 두 정상이 활짝 웃으면서 포옹한 사실만으로도 남북화해 시대는 그 첫발을 디딘 것으로 평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역사상 처음으로 남북정상이 합의하고 서명한 ‘6·15 공동선언’의 내용은 남북 간의 상시적 긴장과 갈등 대신 평화를, 불신과 대결 대신 화해를, 소모적 경쟁 대신 협력을 이루기 위해 실행 가능한 구체적 원칙들을 합의한 것이었다. 남북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은 상호 체제인정과 이를 토대로 한 평화공존의 계기를 마련함으로써 적대와 대결의 남북관계 대신 화해와 공존의 남북관계가 개막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머뭇거림 속에서도 한 발 한 발 다가서는 남북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6·15 공동선언에 기반을 둔 남북관계는‘발전을 위한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 먼저, 과거 냉전시대에 비해 남북관계가 내용과 형식 면에서 질적 발전을 이루었다. 장관급회담이라는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직접 대화 채널을 중심으로 남북경추위 회담, 장성급 회담, 적십자 회담 및 각종 실무회담들이 체계적으로 진행되어 온 것은 과거의 간헐적이고 임시적인 회담들에 비해 형식에서 분명 진전이다. 내용에 있어서도 일회적인 사안들이나 다분히 선전전의 성격을 지닌 안건을 놓고 남북이 대결과 결렬을 반복했던 과거와 비교하면 지금의 당국간 대화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합의들을 내실 있게 이끌어내고 이행하고 있다.

다방면에 걸친 민간 교류협력 역시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획기적 진전을 이루고 있다. 남북경협의 활성화는 물론이고 남북 간 철도 도로 연결과 개성공단 사업이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한반도 경제공동체의 앞날을 밝게 하는 청신호임에 분명하다. 특히 지난해는 남북장성급회담 개최를 통해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의 첫 걸음을 떼면서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의 가능성을 마련했다. 이는 6·15 이후 남북관계가 평화와 번영의 두 수레바퀴로 굴러갈 수 있음을 뜻하는 중요한 사건이다.

정상회담 이후 진행된 남북 교류협력의 진전과 민족화해의 가속화는 남한 시민사회의 대북인식이 과거 적대적 대결관계에서 화해적 공존관계로 압도적으로 바뀌었음을 확신케 한다. 국민의 정부 당시 대북 인도적 지원을 놓고 ‘퍼주기’ 논란을 폈던 사회가 이제는 핵문제에도 불구하고 인도적 차원의 비료와 식량 지원에 대해 크게 반대하지 않는 분위기로 반전됐다. 6·15 의 힘이 이제 되돌이킬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았음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6·15 5주년을 맞는 지금 남북관계가 아무런 문제없이 희망적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화해협력이 진전되다가도 주변정세와 당면한 현안으로 인해 좌초되고 결렬되고 중단되기도 했다.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 속에서 전반적으로는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신뢰 부족과 냉전의 그림자가 화해 협력의 걸림돌

6·15 이후 지금까지 남북관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같은 진전과 답보의 우여곡절을 확인할 수 있다. 언뜻 보기엔 남북관계의 진전이 대세였지만 사실은 내적으로 적잖은 진통을 거듭했다. 2000년 겨울에도 북한은 남측의 주적 개념을 이유로 5차 장관급회담을 연기했고, 2001년 가을에 장관급회담이 재개되었지만 북한은 2002년 초 남측 외무장관의 발언을 빌미로 또다시 회담을 연기했다. 다행히 2002년 4월 임동원 특사의 방북으로 남북관계가 복원됐지만 이 역시 그 해 10월에 불거진 2차 북핵문제로 적잖은 장애를 겪었다. 그러다가 2004년 7월 김일성 주석 사망 10주년 조문불허 사건과 탈북자 468명의 대거 입국 사태로 인해 북한은 예정된 15차 장관급회담을 무기 연기시켰다. 그리고 10개월 간의 장기 소강국면을 거쳐 지난 5월 남북은 비료지원과 당국간 대화 재개를 위한 차관급 회담을 열어 관계복원에 나서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는 대화와 결렬의 쌍곡선을 반복했던 것이다.

이처럼 남북관계가 진전 속 답보 상태를 거의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남북 간 신뢰가 아직은 확고하게 제도화된 단계로 정착되지 못했던 데서 기인한다. 그동안 당국간 회담이 중단된 표면적 이유를 보면 대부분 서로에 대한 신뢰부족에서 비롯된 몇 가지 실수들이 북측에 의해 과대포장된 측면이 강하다. 서로 믿는 신뢰관계가 탄탄하게 조성되어 있다면 큰 오해 없이 넘어갈 수 있을 만한 것이었다.

남북관계를 제약하는 또 하나의 요인은 한반도 국제질서가 과거의 힘과 새로운 힘이 맞부딪치는 과도기에 여전히 놓여 있다는 점이다. 남북화해라는 탈냉전의 힘이 강화되기도 했지만 아직 북미간 적대관계라는 냉전적 구조가 온존하고 있다. 따라서 남북관계의 의미 있는 진전에도 불구하고 2차 북핵위기와 같은 첨예한 북미갈등이 터지면 남북관계는 상당한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금의 남북관계가 여전히 불안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노무현 정부가 북핵문제와 남북관계의 병행론을 내세워 북핵문제에도 불구하고 3대 경협사업 등 남북관계를 지속시킨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지금까지 상황은 북핵문제로 인해 남북관계가 진전되기 힘들었다.

남북의 평화과정 주도로 북핵위기 뛰어넘어야

6·15 이후 남북관계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큰 틀에서는 여전히 발전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고 또 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북핵위기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긴장을 막고 위기를 관리하는 데서 지금까지 남북관계는 적잖은 긍정적 기여를 했다. 때론 갈등이 있었지만 결국 남북은 당국간 대화 재개에 나섬으로써 관계복원을 이루어 내곤 했다. 이제 지금의 북핵위기가 남북관계를 제약하는 구조적 한계를 넘어 이번의 남북관계 복원을 계기로 남북이 주도하는 한반도 평화 과정을 진전시키고 이를 토대로 북핵 위기를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만 남북관계가 북핵문제를 압도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의미가 숫자로 표현되는 날짜에 녹아들어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5·16 이 상징하는 군사독재의 어두운 그림자가 5·18 로 대표되는 민주화의 진전으로 해소되기까지는 20년의 세월을 필요로 했다. 마찬가지로 6·25 가 상징하는 분단과 적대의 역사가 6·15 를 통해 화해와 통일의 방향으로 물꼬를 트는 데도 반세기가 필요했다. 6·15 5돌을 맞으면서 6·15 의 힘이 더 멀리 퍼져가기를 기대하는 것도 그것이 바로 역사적 대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남북관계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통과해야 한다.

김근식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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