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복지국가에서 살 수 있을까?
이태수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교수,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 lts1115@empal.com
선진복지국가의 탄생과정
19세기가 자본주의의 세기였다면, 20세기는 복지국가의 세기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빈곤한 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구제제도만이 존재하였던 19세기, 그 말엽에 창안된 의료보험, 산재보험 등 사회보험제도는 20세기가 되면서 서구유럽사회에서 더욱 풍성한 복지제도를 낳게 된다. 실업보험, 아동수당 또는 가족수당, 노인·장애인·아동을 위한 각종 복지서비스, 나아가 주택정책, 고용정책, 보건의료정책, 고용정책 등 수많은 사회정책들까지도 득세하게 되었다.
이는 사회주의와의 갈등 속에 자본주의의 체제로서의 우월성을 선보여야 하는 이념적 경쟁구도 속에서 이루어진 성과라고도 하지만, 자본주의의 어두운 이면인 무한개인책임주의가 가져오는 무산대중들의 빈곤과 실업, 양극화 등 방치했을 때는 극심한 삶의 나락을 경험케 하는 현실의 고통과 모순이 엄연히 존재했던 것에 근본적으로 연유하고 있다. 결국 해법의 핵심은 이러한 삶의 질 악화요인을 해소하기 위해 자본주의의 근본원리에 수정을 가하는 것이었다. 즉 시장에서의 ‘보이지 않는 손’을 믿고 모든 것을 자유방임에 맡기기보다는 대중의 삶의 질을 확보하기 위해 꼭 필요한 기본 욕구에 대해서는 정부의 ‘보이는 손’에 의해 철저히 보장하는 원리를 구현하게 되었다.
이를 위해 사용하는 정부지출 및 사회적인 강제지출의 비용 규모가 1930년 정도에 이미 국민총생산의 15% 내외를 차지하게 되었고, 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도는 즈음에 파시스트의 전쟁을 통한 국가발전의 음모를 드러내는 것을 전쟁국가(warfare state)라고 명명한다면 이에 반해 국민의 복지를 책임지는 선량한 국가상을 복지국가(welfare state)로 부르기 시작한다. 따라서 복지국가는 국가의 책임하에 국민의 기본 욕구가 확고히 보장되는 체제라고 정의될 수 있으며 대다수의 선진국가들을 복지국가라고 부르는 데에 주저할 이가 별로 없다.
특히 복지국가는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커다란 획을 긋는 변화를 겪는데, 이전까지는 복지제도상의 얼개만이 갖추어져 있었다면, 비로소 이후 황금경제성장기를 맞아 제도의 내실화를 기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국민의 최저생활 보장, 완전고용 추구, 국민 누구나에게 복지서비스 제공 등이 성취되면서 삶의 안전성이 확보되고 국민 경제의 성장이 국가 구성원인 국민들 하나하나에게 안정된 삶의 질을 보장하는 것으로 연결되기에 이르렀다. 이를 위해 국가는 국민총생산의 반 정도를 세금으로 거두어들이고, 다시 그 중에 반 이상을 복지국가의 소명을 다하는 데에 사용하는 체제를 구축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20세기 말엽, 이념적으로는 보수주의가 주목되고 서구국가의 성장동력이 부분적으로 훼손되면서 복지국가의 조정과정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복지국가의 해체를 실제로 구현하거나 이를 받아들이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 가운데 바야흐로 21세기에도 여전히 복지국가는 건재하다고 판단해야 한다.
한국에서의 복지국가 현주소
반면, 우리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우리는 근대화과정 자체가 30년 이상의 일제강점기로 인해 뒤틀어지면서 정상적인 자본주의의 발흥도 겪지 못했지만, 정상적인 복지국가 체제도 구현하지 못했다. 가난을 극복하는 길이 오로지 경제성장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관제 논리’에 물들어 20세기 후반 50년을 성장, 또 성장에만 매진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경제만 성장한다면 악마에게 영혼을 팔 수 있다는 기세로 위정자부터 민초에 이르기까지 돌진해왔던 것이다.
그 결과는 한편으론 양적인 생활수준의 향상, 다른 한편으로론 극심한 삶의 불안정성이란 부조화스런 두 개의 현상으로 압축된다. 한국의 외형적 경제성장의 목록을 예서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한때 도시국가들을 제외하고는 연평균경제성장율이 가장 높았고 현재도 국민총생산이나 무역규모 면에서 세계 10위권에 가까워지고 있다. 일인당 국민총생산도 연간 2천만 원 정도에 이르고 있고 중산층이라면 한 대정도의 차는 부릴 수 있으며 많은 국가들이 부러워하는 돈 씀씀이와 행색을 갖추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생활의 내면이다. 우리 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가장 결정적인 본질은 ‘불안’이라 명할 수 있다. 우린 아직도 실업과 질병, 교육, 육아, 주택, 노후 등의 불안으로부터 해방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수준까지는 보호받을 수 있는 경지에 결코 다다르지 못한 상태이다. 이러한 생활상의 기본 요소들이 오로지 자신의 능력으로, 그리고 가족의 도움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매우 ‘천박한’ 복지수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서구에서는 자본주의의 최대 모순인 시장의 실패 현상을 일찍부터 복지제도로 보완하는 복지국가의 상을 구현해왔지만 우리에겐 이런 사회적 각성이 존재하지 못한 채 일방적인 성장우선주의, 성장지상주의에 매달렸던 당연한 귀결이다.
서구 복지국가의 국민이 의료보장시스템에 의해 의료비의 80% 수준을 공적으로 지지받고 있는 데 비해, 우리는 60% 남짓한 상태로서 질병에 의해 가계파탄이 이루어질 개연성이 누구에게나 상존한다. 복지국가 국민들에게 노후의 소득은 연금소득이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는 연금혜택을 통해 안정된 소득이 보장되는 국민이 현재시점에서는 전체 노인의 20% 정도에 불과하며 올해부터 연금수혜자가 본격적으로 등장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600만 명의 가입대상자는 연금제도 밖에서 서성이고 있다. 육아에 대한 부담은 상한선이 존재하지 않고 있으며, GDP의 8%까지도 추계되는 사교육비를 쏟아부으면서도 국민들은 2세의 교육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고 영유아기에 보육서비스를 받는 아동들은 4명에 1명꼴에 그치고 있을 정도이며 중산층에게 그 부담은 거의 대부분 자신의 몫이 되고 만다. 아동을 키우자면 육아비와 교육비도 문제지만 직장에서의 정상적인 생존도 포기해야 한다. 그 결과가 ‘출산파업’에 의한 세계 최저의 출산율이요, 서구에 비해 20% 포인트나 낮은 여성의 경제활동참여율이다.
따라서 국민들은 아무리 국민경제의 수치가 호조를 보이고 자신의 소득수준이 나아진다 해도 교육, 육아, 의료, 주거, 노후준비 등을 위해 쏟아붓는 지출비가 동반 상승하면서 실질적인 생활의 여유가 동시에 비례적으로 상승하지 않는다. 오히려 소득이 중단되거나 감퇴되었을 때 기초적인 생활수준이 유지될 수 없다는 ‘불안감’이 언제나 엄습해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잠재된 불안의식은 ‘우리에게 복지를!’이란 구호로 연결되지 못하고 아직도 넘어지지 않으려면 계속 속도를 내야만 되는 자전거페달의 원리처럼 또다시 ‘우리에게 경제성장을!’이란 구호를 외치게 하고 있다. 현재 이명박 정부가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국민들이 성장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구세주 아닌 구세주를 기다렸다는 것을 들 수 있지만, 실제 본질은 ‘복지에 대한 갈증’에 다름 아니다.
후진적 복지의 원인
그럼 왜 우리는 이렇듯 복지의 빈곤상태에 놓여 있을 수밖에 없었나? 서구 선진 국가들이 1940년대 이전에나 기록했을 사회지출비의 국내총생산 비중 8%대의 초라한 수치를 아직도 지니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OECD 국가들의 평균수준이 23% 정도인 데 비하여 엄청난 격차를 보이고 있는 우리의 후진적 복지는 왜 지속되고 있는 것인가?
일반적으로 서구 복지국가의 발전경로를 보면 가장 정상적인 동력이 노동자 정당의 존재이다. 무산대중의 또 다른 표현인 노동자계층을 자본가의 착취대상에서부터 보호함으로써 건강한 사회체계를 수립하고 이들의 복리가 국민의 복리라는 인식 속에 자본주의의 과감한 수정을 요구해온 노동자정당의 출현이야말로 대부분 복지국가의 오늘날을 가능하게 했던 요인이라 할 것이다. 오늘날 반드시 노동자계급의 이익에만 기반을 둔다고 볼 수 없으므로 폭넓게 ‘좌파적’ 정강을 내세우고 있는 진보정당이라 확대한다면, 이들 진보정당의 직접적인 집권과 견제의 반복적 흐름이 복지국가의 성립을 앞당길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과거를 돌이켜보면 독재자에 의한 시혜적, 표피적 복지가 일방적으로 국민들에게 ‘던져’졌고 한동안 민주화 쟁취에 몰두했던 개혁세력들조차 복지의 담론에 대해서는 정확한 인식을 지니지 못함으로써, 개혁이란 정치적 민주화의 성취라는 편협한 사고의 한계를 벗지 못했다. 따라서 지난 10년 민주화세력, 개혁세력이 집권했다하지만 실제 복지국가의 기반을 다지는 일에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던 것이다. 여기에 진보정당, 노동자정당은 국민에게 뿌리내리지 못한 채 표류하는 양태를 보임으로써 정치적 공간에서 복지국가가 구축될 가능성은 애초에 높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직도 복지국가가 정당정치의 핵심이 되지 못하고 국민 인식에 중추로서 자리잡고 있지 못해도 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서구 선진국가가 지난 세기에 완비한 복지국가의 틀이 자리잡지 않는 한 우리에게 진정한 성장은 없으며, 역시 국민복지는 생각할 수 없다. 아직도 자본주의체제를 활용하여 성장과 분배의 주된 원리로 삼는다면 그 폐단의 시정은 복지체제의 완성으로 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21세기 생산기술과 사회체제의 변모가 각 구성원에게 새로운 위험들을 던져주는 마당에 아직도 20세기형 복지국가수준도 따라잡지 못한 점은 한국사회의 미래에 암운을 던져주기에 충분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복지국가를 위해 어떻게 나아가야 하나? 물론 서구의 복지국가도 하나의 양태만은 아니다. 저들 국가의 경제사회정치적 조건과 역사적 발전 경험이 모두 독특한 복지국가의 위상과 내부 구성을 보이고 있다. 고(高)부담 – 고(高)복지를 실현하는 북구형과 중(中)부담 – 중(中)복지 상태에 머무르는 유럽대륙형, 저(低)부담 – 저(低)복지에 그치는 영·미형 등 세 가지가 전형적인 유형이다. 또는 시장에서의 욕구충족 결과를 놓고 사후적으로 그 실패자들에게만 선별적인 지지책을 제공하는 ‘잔여주의적’ 형태와 그렇지 않고 시장의 영역 대신 애초에 정부의 영역으로 조달해야 하는 범주를 명백히 하고 소득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사전적 예방의 의미로 필요한 지지기능을 발동하는 ‘보편주의적’ 형태로도 역시 나뉜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이 가진 통념과는 배치되게도 북구형의 고복지체제 및 보편주의적 형태가 경제성장의 성과면이나 소득분배의 형평성 면에서 나머지 국가들을 따돌리고 있다는 점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지점이 어디인지를 가리켜주는 명백한 근거가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북구형 사민주의적 복지국가로 가는 길은 어떻게 가능한가? 네 가지 요건을 해결하면서 가야한다. 첫째는 복지담론의 지배이다. 특히 복지와 성장간의 관계에 대한 왜곡된 인식의 교정 작업이 필요하다. 복지는 성장잠재력을 잠식한다거나, 복지국가론은 이미 폐기되었다는 일방적인 성장담론에서 벗어나야 한다. 복지와 성장은 동반적이고 호혜적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이론적, 실증적 근거를 활발히 유통시키고 복지의 권리 의식은 물론이고 인간자본에 대한 투자적 성격을 인식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둘째는 복지재정의 확보이다. 우리나라가 복지선진국가가 행하는 규모의 복지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조달해야 하는 최소 국민총생산 10% 내외의 공적 재정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요구된다. 이를 위해 복지세, 사회보장세와 같은 목적세가 심각히 거론되어야 하고, 저출산 및 노령화를 대비하는 특별회계 설치 등 파격적이고 전격적인 방법들이 구상되어야 한다. 신뢰받는 정부의 존재를 전제로 개개인이 일일이 해결할 수 없는 복지, 의료, 주택, 교육, 보육, 고용 등의 분야에 대한 정부의 책임이 성실히 준행되도록 그 재원의 갹출에도 동의해야 한다.
셋째는 효율적인 복지정책패키지의 수립이다. 현대사회가 직면하는 각종 사회적 위험요소들에 대해 좀 더 입체적이고 유연하며 통합적으로 대비하기 위해 적어도 고용-학습-복지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가운데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확고한 지지망이 수립되도록 하는 정책패키지를 생산하고 구현하는 것이 요망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마지막으로 복지친화세력을 확보하는 길이다. 북구의 경우 70%를 웃도는 노동조합, 그리고 그에 정치적 기반을 두고 있는 정당들이 반세기 이상의 활동 성과를 토대로 수립한 복지담론의 지지기반이 있듯, 우리에겐 우리의 역사적 경험을 토대로 나름대로의 복지담론의 지지기반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노동조합과 진보정당의 성장은 필수적이며, 한국의 현대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민주화세력이 복지세력으로 변환되는 것도 핵심이다. 여기에 시민운동의 복지담론 진지로서의 역할이 합세된다면 광범위한 ‘복지동맹체제’가 형성되면서 한국사회도 복지국가로 가는 길에 보폭와 속도를 키울 수 있을 것이라 전망된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