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 3색이 빚어내는
한 목소리, 한 색깔
10년 지기 회원
피학용(64세 남, 개인사업)
윤장숙(50세, 여, 주부)
손성태(32세, 남, 직장인)
이경휴 수필가, 참여사회 객원기자
오른쪽부터 윤장숙 님, 피학용 님, 손성태 님, 이경휴 님(필자)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는 말은 화석化石화 된 인용구이다. 십년 아니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정보와 변화의 흐름은 많은 사람들은 우왕좌왕, 안절부절, 갈팡질팡 불안하게 만든다. 허기야 불안이야말로 이 시대의 열쇠말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을 끊임없이 불안하게 만들어 무엇인가에 쫓기게 만드는 사회가 아닌가. 그런 상황에서 의연히 벗어나 한 길만을 걸어온 사람들이 모였다.
참여연대 제17차 정기총회를 맞아 한결 같은 마음으로 참여연대와 10년을 같이 해 온 사람들을 만났다. 세 사람이 함께 하는 ‘아주 특별한 만남’ 이다. 따사로운 햇살과 때 이른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대던 2월 25일 금요일 오후, 카페통인에서 얼굴을 마주했다.
약속 시간 보다 여유 있게 도착한 청바지 차림의 피학용(64세)회원과 뒤이어 들어서는 윤장숙(50세)회원, 역시 청바지 차림이지만 단아한 자태가 통인의 커피 향내와 어금버금했다. 마지막으로 들어선 감색 정장 차림의 손성태(32세)회원에게선 화이트칼라의 이미지가 단박에 떠올랐다. 그는 회원모임협의회 회장이다. 회원모임 ‘산사랑’의 부회장인 피학용 님과 둘은 반갑게 악수를 나눴고, 서로의 근황을 여쭈며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 윤장숙 님 또한 미소로 화답을 하며 자리에 어울렸다.
세 사람이 함께 하는 인터뷰라 먼저 주제를 서넛 제시하고, 그에 따른 좌담형식으로 편안하게 진행하기로 했다. 단연 그 중심에는 참여연대가 있고 그 그물망 속에서 개인의 삶을 반추 하며, 십년 후의 참여연대까지 상상하기로 했다.
“대학생에서 직장인, 지금은 아이아빠”…10년의 변화
피학용(이하 피) 개인 사업을 하고 있는데 IMF의 여파가 여태껏 있다고 봐요. 이제 중산층이 40%도 안 된다고 하니 살기가 팍팍하죠. 3년을 예정하고 일을 정리하는 중이예요.
윤장숙(이하 윤) 97년에 결혼을 했으니 그 시절이 오죽했어요? 시작부터 모든 걸 줄이는 수밖에 없었죠. 애들이 초·중학생인데 미술학원 하나만 보내고 있어요. 공부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를 나름대로 치유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해서 배우게 했어요.
손성태(이하 손) 많은 변화가 있었죠. 대학생에서 직장인으로, 결혼하고 태어난 지 50일 된 아기도 있어요. 바쁘게 달려왔는데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생각하면 아득해요. 전세값, 보육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죠. 지금은 다행히 집사람이 일 년간 휴직했기에 육아문제는 그럭저럭 해결되고 있는데…. 더 기가 막히는 일은 곧 전세 계약이 끝나는데 7000만 원을 더 올려달라고 하니 이거 나가라는 소리 아닌가요?
강북에, 그것도 20평 대 아파트에 7000만 원을 더 내라고 하니. 모두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는 놀라지 않았다. 보통 강남권은 일억이 기본이라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는 어느 정도 전세금 상승을 예상하고 붓던 적금마저도 저축은행 영업정지로 발이 묶였다고 하니, 그야말로 이 시대 민생의 지뢰밭에 서있는 셈이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공空약에 오장육부를 다 꺼내주었던 업보가 날이 갈수록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이 나이에 참여연대 회원인 게 자랑스럽죠”
회원 가입 동기와 회원으로서 자랑스럽거나 실망스러웠을 때는 언제였으며, 회원 탈퇴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고 여쭙자 마지막 질문에는 한 목소리로 ‘노’를 외쳤다. 내가 할 일을 대신해주는데 어찌탈퇴를 생각하겠느냐면서.
피 사회변화에 관심이 많았죠. 2000년 라디오에서 참여연대를 소개하는 방송을 듣고 당장 회원 가입을 했죠. 낙천낙선운동이 불을 댕긴 셈이죠. 지금도 친구들과 만나면 그 때 이야기를 하는데 친구들은 날이 갈수록 보수화되더라고요. 젊었을 때는 우리가 나이 들면 진보적인 세상이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친구 중에는 이재오 특임장관의 ‘광팬’이 있는데 그 앞에서는 논쟁도 마다않고 할 소리 다 합니다. 실망스러웠을 때? 글쎄, 없는 거 같은데. 산사랑 모임도 좋고, 이 나이에 참여연대 회원이라는 게 자랑스럽죠.
윤 낙천낙선운동의 열풍이 저를 불러들였죠.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다 결혼을 했으니 두 가지 일을 함께 못하겠더라고요. 이제 가사에서 조금 벗어나니 느티나무 아카데미 강좌도 듣고 싶고, 자원활동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겨요. 자랑스러울 때는 아무래도 방송에서 많이 보도될 때죠. 제가 적극 활동을 안 하는 탓인지 실망스러울 때가 없던 데요.
손 저는 대학생 때부터 활동했어요. 현 민생팀이 된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에서부터 시작한 자원활동이 전 부서로 옮겨갔죠. 회원모임 ‘참깨’(참여연대를 깨는 대학생 모임)도 만들었고, 청년마을에서도 활동했고. 한때는 활동가로 자리를 굳힐까 생각할 정도로 신명나고 자랑스러웠어요. 하지만 졸업 후 진로, 취업 등으로 고민하면서 다소 활동도 뜸했죠. 이제는 결혼하고 아기까지 있으니 활동에 제약을 많이 받아요.
실망스럽기보다 서운한 게 있어요. 예전엔 TV가 있다 하면 그 집에 마을 사람 모두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드라마나 스포츠를 함께 보던 분위기였잖아요. 그런 느낌이죠. 안국동 시절에는 비좁아도 모여 지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관심 가지게 되고 소통도 잘 되었다면, 새로 마련한 통인동 사무실은 층별로 구분되어 있어 그때보다는 분위기가 썰렁해요.
솔직한 고백에 마주 보고 웃었다. 일상의 소소한 재미를 그리워하는 건 아마 나이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의 바람이지 싶다.
“참여연대에서 받은 전화,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참여연대에서 문자나 전화 한 번 안 오던 데요. 전화번호가 바뀐 것도 아닌데….”
기억나는 활동을 질문하자 피학용, 윤장숙 두 회원은 즉답으로 2000년 낙천낙선운동을 꼽았다. 덧붙여 가장 자랑스러운 일이라며 그 때의 흥분이 되살아나는 듯 얼굴이 환해졌다.
손 저는 여럿이지만 그 중 몇 개만 들면, 상가임대차보호법, 휴대전화 요금인하운동, 1인 시위 등이 생각납니다. 제가 대학생일 때 간사들과 같이 이뤄냈던 성과물들이라 지금도 가슴이 벅차요. 특히 상가임대차보호법 피해사례 백서를 만들며 이리 뛰고 저리 뛸 적에는 졸업 후, 간사를 할 마음도 먹었죠. 휴대전화 요금인하운동은 개인적인 사안이라 시민들의 호응도 대단했고, 1인 시위는 또 얼마나 파격적이었어요. 당시 사람들은 참여연대하면 1인 시위를 제일 먼저 떠올렸죠. 우리가 1인 시위의 시원인 셈이죠. 지금은 대중화됐지만 당시엔 참으로 신선했어요.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그의 힘찬 달변에 두 회원은 추임새을 넣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 시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따로 소통의 장이 필요치 않는 난장이었다. 회원모임, 느티나무 강좌, 총회 등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오갔다. 그간 참여연대와 직접 소통한 횟수는 어느 정도일지 궁금했다.
피 전화나 문자 많이 오죠. 또 산사랑 모임에 나가면 여러 정보도 들어요. 그런데 직접 도움을 청하는 적은 없더라고요. 뭘 도와주고 싶어도 시켜야 하죠.
윤 저는 전혀 없었어요. 달마다 받는 참여사회 외에는. 이번 전화가 처음이었어요. 더구나 인터뷰라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했지만, 참여연대에 대한 내 느낌을 말하고자 이렇게 나왔죠. 행사나 일정, 느티나무 강좌 등 모든 걸 참여사회를 통해 보고 있어요. 직접 찾아 나서지 않는 소극적인 성격도 문제이지만, 문자나 전화 한 번 안 오던데요. 전화번호가 바뀐 것도 아닌데….
손 전화로 문자로 연락 많이 받고, 저는 또 제가 필요에 따라 하는 편입니다. 회원모임협의회다, 청년마을이다, 아무래도 일이 많으니까 서로 연락을 할 수밖에 없죠.
성골 회원들의 만남이다. 참여연대에서 직접 연락이 오든 안 오든, 서운한 감정이 있어도 묵묵히 10년을 변함없이 지키면서, 자신의 소극성을 일순위로 삼으니 어찌 참여연대의 뿌리가 튼실하지 않으랴.
“내가 만일 참여연대 대표라면?”
성골 회원들이라 참여연대의 방향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를 하겠지만, 그래도 ‘내가 만일 대표라면?’ 자유발언을 청했다.
피 민생 문제를 첫째로 하겠습니다. 지금 이 정부가 하는 일이라곤 없는 사람 쥐어짜는 것 밖에 더 있어요. 예산안 날치기 통과로 차상위계층에 대한 지원금이 다 끊어졌잖아요. 공부방, 방학 중 결식아동지원, 영유아 필수예방주사비, 대학등록금지원, 서민일자리지원 등 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죠. 더구나 공부방 지원금마저도 없앴으니.
윤 세금 감시를 잘 하겠어요. 요즘 지자체에서 벌이는 세금 낭비 사례는 분개할 수준이죠. 호화청사는 기본이고 사업의 타당성을 충분히 검토도 하지 않고 짓기부터 시작하는 박물관, 전시관, 테마 파크 등이 흉물로 버티고 있는 곳이 얼마나 많아요. 우리가 낸 세금이 바르게 사용되고 있는지 철저히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죠.
손 정치개혁을 최우선으로 하는 대표가 되겠어요. 의식을 바꾸는 건 어려우니까 선거구 제도를 개선하여 지역 편중을 막는 일을 해야죠.
참여연대와 같이 우리 사회 10년 역사의 장을 장식한 이들에게 물었다. 앞으로 10년 후를 상상한다면?
피 참여연대가 필요 없는 세상이 되어야 하는데. 그걸 상상할 뿐이죠.
윤 글쎄요…. 참여연대가 지금보다 더욱 탄탄한 조직이 되어 세금, 예산 감시를 잘 하는 전문적인 시민단체가 되어있지 않을까요?
손 시민단체의 이정표 역할을 잘 해 왔으니 계속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나가겠죠. 한국사회는 매일매일이 고민입니다. 이제 개천에서 용은 결코 날 수 없는 시스템이고, 용이 된 기득권층들이 포진하고 있으니 제도로 바로 잡아야합니다. 전세값, 보육문제, 지금 내 발등에 떨어진 불이지만 이게 나만의 문제겠어요? 10년 후에는 이런 고민하지 않는 사람들로 세상이 변해있지 않을까요. 참여연대가 건재하기에.
그야말로 민생의 소용돌이 속에 서있는 그의 절규가 모두의 멍에가 된 현실이다.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사노라면/많은 기쁨이 있다고.(김종삼 ‘어부’ 중에서)
이런 시 한 구절로 삶을 위무해 볼 수밖에 없는지.
경칩驚蟄이 눈앞에 왔건만 민생의 봄날은 아득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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