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1 2011-05-27   2964

[심층분석3] 장애인가족 지원의 제도 구축을 위한 논의지점

김치훈│전국장애인부모연대 정책연구실장

장애 아들의 복지혜택을 위해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은 일용직 노동자 윤 모 씨의 장례식이 지난 8일 치러졌다. 윤 씨가 죽음을 염두에 둔 건 최근 아들 때문에 병원을 찾으면서다. 아들이 한쪽 팔을 잘 쓰지 못하고 가끔 발작을 일으키는데, 뇌에 이상이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받았다. 그는 아들을 장애인으로 등록하면 치료와 함께 월 10~20만 원의 장애아동양육수당이라도 받을 수 있을 듯해 신청서를 작성해 주민센터에 찾아갔다. 그러나 직원들로부터 “수당을 받으려면 부모가 국민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이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신청서도 내지 못한 채 돌아왔다. 자신이 죽으면 아들이 기초생활수급자나 장애아동 재활치료 대상자로 지정될 것으로 생각한 그는 결국 자살을 택했다. (경향신문, 2010년 10월 11일자.)

OECD 가입 국가 중 최고의 자살률을 ‘구가’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장애인부모 한 사람의 자살사건이특별히 주목받아야 할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행동 뒤에 그것을 단순히 한 장애아동 부모의 심리적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는 구조가 깔렸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 장애인가족이 처한 현실 고통의 단면과 장애인가족에 대한 사회안전망과 지원구조의 부실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굳이 국내외의 여러 연구결과와 통계 수치를 들지 않는다 해도 장애인가족이 겪는 고통과 그에 따른 가족지원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위의 사건에서 보듯 장애인가족은 가족이 일반적으로 겪을 수 있는 경제적ㆍ사회문화적ㆍ심리적 어려움에 장애라는 특수하고도 강력한 변수가 결합돼 그 어려움이 (종종 가정해체의 임계점까지) 증폭되는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경우 장애인가족에 대한 지원은 그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아직 지원체계의 구축 방향이 제대로 잡혀 있지 않다. 장애인가족 지원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으나 이 문제는 여전히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서 취급받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 글의 목적은 장애인가족이 처해 있는 현실을 드러내고 장애인가족 지원의 필요성을 재차 확인하려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초점은 장애인가족 지원의 조속한 제도 구축을 위해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합의해야 할 지점들이 무엇인지를 짚어보는 데 있다. 장애인가족 지원에 대한 그간의 논의지형과 쟁점을 살펴봄으로써 향후 제도 구축의 방향을 가늠해보고자 한다.

장애인가족의 개념 정립

장애인가족은 누구인가? 언뜻 단순해 보이는 이 질문이 실은 장애인가족 지원을 둘러싼 방향설정 문제의 밑바탕에 자리 잡고 있다. 장애인가족이라는 용어는 ‘장애인을 구성원으로 이뤄진 가족’이라는 일반적인 개념에도 불구하고 방점을 ‘장애인’에 두느냐 아니면 ‘가족’에 두느냐에 따라 의미하는 바가 전혀 달라질 수 있다. 만일 장애인가족에서 장애인에 강조점을 둔다면 이는 개념적으로 성인장애인이 결혼이나 입양 등의 절차를 통해 이룬 가족에 가까워진다. 반면 장애인가족에서 가족에 방점이 찍혀있다면 부모나 형제와 같은 장애인 이외의 가족구성원에 개념적으로 가까워진다.

이러한 양자 간의 개념적 차이는 장애인가족 지원제도를 구축하는 데 있어 그 대상, 내용, 방식의 방향설정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로 2010년 곽정숙 의원이 발의한 장애인복지법 일부 개정안에서 가족지원은 성인장애인이 이룬 가족에 대한 지원으로 개념화되어 있다. 이러한 방향 속에서 장애인가족 지원은 성인장애인의 가족 특히, 신체적 장애인이 성인이 돼 이룬 가족에 대한 지원을 중심으로 그 체계가 구축될 가능성이 크며, 지원 내용도 임신ㆍ출산ㆍ육아 및 장애인 부부상담과 교육 등을 위주로 구성될 것이다.

반면에 장애인부모단체를 중심으로 제기되는 장애인가족 지원의 상은 성인기의 장애인이 아니라 주로 아동기의 장애인과 관련되며, 신체적 장애보다는 지적ㆍ자폐성 장애 등의 발달장애아동을 양육하는 부모와 가족지원에 초점이 맞춰 있다. 이 방향의 가족지원은 자연스럽게 부모의 경제적ㆍ심리적 양육부담 경감과 비장애부모나 형제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과 상담이 지원의 주요 내용이 될 것이다.

따라서 향후 장애인가족 지원을 제도적으로 구축하기 위해서는 이 양쪽의 방향을 묶어서 하나의 제도적 울타리 아래에 둘 것인지, 아니면 각각의 중심축을 가진 별도의 지원체계를 만들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 장애인부모들은 장애아동에 대한 지원과 결합된 방식으로 별도의 가족지원체계를 구축하는 것으로 일단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

장애인 지원과 장애인가족 지원 간의 관계

장애인가족 지원의 두 번째 개념적 쟁점은 장애인 개인에 대한 지원과 가족에 대한 지원 사이의 경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다. 예를 들어 장애아동 돌봄서비스는 장애아동에 대한 지원으로도 혹은 장애아동의 가족지원으로도 개념화가 가능하며, 실제로 장애아동에 대한 대부분의 복지지원은 곧 부모의 양육부담경감이라는 가족지원의 요소를 지니고 있다. 성인장애인 경우에도 앞서 언급된 임신ㆍ출산ㆍ육아의 지원은 장애인, 보다 좁게는 여성장애인 개인에 대한 지원으로 볼 수도 있고, 이와 다르게 장애인가족 지원의 개념으로 접근할 수도 있다.

2~3년 전에 장애인가족 지원을 위한 별도의 법률을 제정하자는 움직임이 장애인부모단체를 중심으로 한 때 일어났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별도의 법제정 흐름은 이후 강한 탄력을 받지는 못했는데, 그 핵심적인 이유가 바로 장애인 특히, 장애아동 개인에 대한 지원을 장애인가족 지원체계 속에 담아내는 것이 과연 가능하고 바람직한 것인지 또한 어느 범위까지 담을 수 있을 것인지를 쉽게 결론짓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쟁점을 장애인가족 지원을 위한 별도의 법률 제정으로 장애인가족을 지원대상의 기초단위로 설정하여 그 틀 속에서 장애인 개인에 대한 지원을 포함시켜 확대해나가는 방향과 장애아동의 복지향상을 위한 별도의 법률 제정으로 장애아동 개인에 대한 지원체계를 개선하고 확대해나가는 가운데 그 지원을 가족중심적으로 풀어가는 방향으로 나눌 수 있다. 즉 가족중심의 장애인복지 실천 사이에서 차츰 전자에서 후자의 방향으로 장애인가족 지원 개념의 무게중심이 옮겨졌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장애인 개인에 대한 지원과 장애인가족에 대한 지원은 길항관계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장애인복지의 선진국이라 불리는 대다수의 외국의 경우 장애인에 대한 지원을 가족중심적으로 실천하는 방향으로 체계화되어 있는 반면 우리나라 경우에는 장애인 개인에 대한 지원 자체가 열악한 상황에서 가족지원을 통해 장애인 특히, 장애아동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려는 욕구가 장애인부모들을 중심으로 형성됐고 현재도 그러한 욕구는 상존한다.

따라서 향후 장애인 개인에 대한 지원을 확대한다면 장애인가족에 대한 지원은 상대적으로 그 범위와 내용이 축소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장애인가족 지원은 보다 폭넓게 규정되어 제도화의 압력을 받게될 것이다.

장애인가족 지원의 법적 토대

장애인가족 지원과 관련된 법적 근거들을 살펴보면 우리나라 장애인가족 지원의 낙후된 현실이 그대로 드러난다. 현재 국내법 가운데 보다 정확하게는 특수교육대상자의 가족지원을 직접적으로 명시하고 있는 법은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이 유일하다. 이 법 제28조 제1항에 “교육감은 특수교육대상자와 그 가족에 대하여 가족상담 등 가족지원을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시행령 제23조에 가족지원의 방법으로 가족상담, 양육상담, 보호자교육, 가족지원 프로그램 운영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상의 가족지원은 특수교육 관련서비스 하나로 자리매김 되어 근본적으로 교육상담의 테두리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그 외 일반법 가운데 건강가정기본법이나 한부모 가족지원법 그리고 가족친화 사회환경의 조성 촉진에 관한 법률 등에서 장애인가정 혹은 장애인가족에 대한 지원의 근거들이 일부 포함돼 있지만 대부분 선언적인 규정에 머물러 있거나 장애인가족의 다양한 복지적 욕구를 충족시킬 구체적인 지원의 근거로는 턱없이 미약한 상황이다.

장애인가족 지원의 토대를 세우는 데 있어 핵심 과제는 장애인복지체계 속에 명확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장애아동복지지원법의 제정 여부가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만일 이 법안이 6월에 국회에서 통과되어 법안이 담고 있는 내용처럼 장애아동과 가족에 대해 보다 보편적이고 확대된 복지지원체계가 갖춰진다면 장애아동과 그 가족에 대한 지원 욕구는 상당부분 해소될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성인장애인이 이룬 가족에 대한 지원 문제를 장애인복지법의 일부 개정을 통해 해결해나가는 전략을 취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만약 장애아동복지지원법의 제정 실패로 돌아간다면, 이후 장애인가족의 지원 흐름은 장애아동 가족을 중심으로 별도 지원 법률을 제정하자는 초기 방향으로 되돌아갈 공산이 크다.

장애인가족 지원의 전달체계

장애인가족 지원의 전달체계와 관련해 두 가지의 해결과제가 있다. 하나는 장애인가족 지원 전문기관의 활성화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장애인가족 지원 전문인력의 양성 문제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20여 개의 장애인가족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장애인가족 지원에 대한 지역의 강한 욕구에 힘입어 최근 들어 빠르게 확산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지만, 센터 설치의 법적 근거가 없어 대부분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사업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지원예산의 부족으로 2~3명의 전담인력으로 사업을 수행하는 ‘영세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장애인가족 지원을 담당하는 인력들이 대부분 장애와 장애인가족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사람들로 구성돼 있어 질 높은 가족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뚜렷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상태다.

따라서 무엇보다 장애인가족 지원 전문기관에 대한 설치근거가 법적으로 마련돼 지원이 실효성 있게 이뤄질 수 있는 사업토대를 세우는 일이 시급하며, 더불어 전문인력의 양성을 위한 자격기준과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을 함께 준비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장애인가족 지원의 제도 구축과 관련된 논의 흐름을 살펴보았다. 장애인가족 지원은 그 필요성과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성인장애인가족과 장애아동의 부모라는 이질적인 지원의 대상자가 존재하고, 가족에 대한 지원과 장애인 개인에 대한 지원 사이에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에 지원대상의 범위와 방식을 제도적으로 구체화하는 데 있어 섬세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또한 장애 유형과 정도 그리고 생애주기에 따라 장애인가족에게 필요한 지원 내용은 매우 다양할 수 있으므로 이를 담당할 전문인력의 양성과 전문기관의 양적ㆍ질적 확대는 빠르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장애인가족 지원의 제도 구축을 위해서는 법적인 근거를 확실히 마련할 필요가 있으며, 6월 국회에서 판가름 날 장애아동복지지원법의 제정을 통해서 혹은 장애인복지법의 개정이나 장애인가족지원을 위한 별도의 법률 제정을 통해서 장애인가족 지원체계가 세워질 수 있도록 장애인 당사자와 부모가 힘을 모아가야 할 것이다.

월간 <복지동향> 2011년 05월호(제1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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