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1 2011-08-13   1811

[동향3] 노동인권, 세상을 바꾸는 작은 한 걸음

안은정 | 다산인권센터 활동가

68, 215, 1329….


위 숫자가 의미하는 무엇일까요? 우리 주변에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입니다. 나의 이야기거나 내 가족의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뜻 연결하기 쉽지 않습니다. 내가 당사자가 되어보기 전까지는.

68이라는 숫자는 현대자동차 하청업체 금양물류에서 성희롱 사실을 문제제기 했다가 해고 된 노동자가 아스팔트 맨바닥에서 억울함을 성토하며 농성을 해온 시간입니다. 69일, 70일… 수많은 날들이 흘러간 이후에도 이 노동자는 문제의 해결을 위해 버텨나가겠지요.

215일. 소금꽃 나무 김진숙 지도위원이 85호 크레인 위에서 보낸 날들입니다. 정리해고에 맞선 노동자들의 눈물과 땀이 또 다른 소금꽃이 되고 있습니다. 3차례의 희망버스가 그곳을 다녀왔지만 한진중공업 사측은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1329일. 3년이 넘도록 계속 된 재능교육 노동자들의 투쟁시간입니다. 세계로 뻗어가는 종합교육문화기업을 표방한다는 재능교육은 사실은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전근대적인 장사치들입니다.

이들뿐만이 아닙니다.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의 노동자들이 긴 시간 싸워오고 있습니다. 싸움의 이유야 다양하겠지요. 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노동자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대부분 대단한 명분과 논리를 내걸고 있지 않습니다. 그저 인간적인 조건에서 살기 위한 기본적인 노동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노동자는 길거리에서, 크레인에서 목숨을 내놓고, 범법자 취급을 당합니다. 정작 문제를 해결해야할 자들은 ‘자본’을 무기삼아 버티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가를 회사로 착각하는 대통령이 들어선 2011년 대한민국은 주식회사가 되어 버렸고, 주식회사 대한민국은 노동자들을 밟고 일어선 자들만을 비호하며 운영되고 있습니다.

부자감세, 복지축소로 사회적 안전망이 전무한 주식회사 대한민국에서는 노동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젊었을 때는 주야 맞교대로 몸을 굴려야 먹고 살고, 은퇴 뒤에는 68세까지 일을 해야 살 수 있답니다. 정리해고 다 뭐다 일찍 길거리로 나 앉으면 앞날은 더욱 막막해 집니다. 더구나 그마저도 힘들어져 노동할 기회조차 없는 이들이 수두룩합니다. 오죽하면 3포 세대라는 말이 나올까요? 결혼, 연애, 출산을 포기한 세대.

노동은 하지만 계속 공허하고, 노동할 자격을 얻기 위해 스펙을 쌓느라 일찌감치 신용불량자가 되어버리는, 노동할 기회도 박탈당한 수많은 이들은 지금도 유령처럼 이 사회를 떠돌고 있습니다. 

나의 노동, 타인의 노동

노동하지만 소외되어 드러나지 않은, 존재하지만 그 존재조차 부정당하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노동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온갖 차별과 멸시당하고 있는 이주 노동자, 노동자로 인정조차 받지 못하는 청소년 노동자,  혐오와 자기 존재의 부정에 갇힌 성소수자 노동자, 동정과 시혜로만 바라보는 장애인 노동자, 노동 속에 노동으로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된 청소, 경비, 용역 노동자, 몸과 마음이 함께 병들어 가는 감정 노동자… 열거하기 힘들 정도의 노동 잔혹사들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두가 직종도, 연령도, 노동 강도도 다 다릅니다. 하지만 공통점은 존재합니다.  모든 이들이 동등한 노동을 하면서도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노동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더라도, 연봉 7천만원 받으면서 쟁의를 한다고 비판받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도 살펴봐야 합니다. 사회적 분배의 문제까지 고스란히 자기 몫으로 비난받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수백억의 지분을 배분받는 자본가들에게는 돌아가지 않는 비난의 화살이 주야 맞교대로 청춘의 시간을 소진한 노동자들에게 꽃힙니다. 노동귀족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들의 권리주장은 그가 정규직이던, 어떤 형태이던 무조건 비난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우리시대의 노동자는 노동자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노동3권의 소중함보다 그저 노동하는 것을 감사해야하는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자신의 ‘생존’만이 최우선 과제가 되어버렸지요. 주변을 돌아볼 틈도 없는 각박한 삶은 나 이외의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게 합니다. 노동 자체가 소외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노동자이면서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하고 서로의 노동이 맞닿아 있다는 생각, 내 노동만큼 타인의 노동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모든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떠 넘기는 야만적인 일상에서 연대감과 동질성을 만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일상에서 만나는 같은 노동자를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지 않고, 또 다른 소비자와 착취자의 입장에서 봅니다.

사랑합니다 고객님, 웃으며 말을 건네지. 당신 나 알어? 언제 보았다고 그딴 말을 해? 네, 고객님께 꼬옥 필요한 정보를 전해 드리려구요. 언제쯤 딸깍 끊어질까 우웅 소리가 들려올까, 어떡하면 욕 안 듣고 대화를 계속 할 수 있을까, 어떡하면 점잖게 거절 당할까 후 와 후 와.. 입 밖으로 나와 버렸네 습관이 돼서. 내 심장을 꺼내면 하도 오그라들어 몇 그램 안 나갈꺼야 언니 듣고 있지?

김해자 시 <텔레마케터와 독신자>

이 시에 나타난 상황처럼 우리의 일상에서도 이런 일들이 자주 일어납니다. 그럴 때마다 서로 노동자라는 연대감이 있다면 함부로 대할 수 없지 않을까요? 개별로 존재 했을 때는 고달픈 노동이지만 누군가 함께하고 머리를 맞댈 때 연대를 통해 더 희망적인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는 것처럼요.

노동인권교재 ‘노동자 이교대씨의 생존기’

이런 고민들 속에서 지난 7월 다산인권센터와 금속노동조합이 공동으로 노동인권교재를 펴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이교대씨와 그의 가족입니다. 이교대씨는 자동차 공장에 다니는 정규직 노동자입니다. 주야 맞교대, 잔업, 특근 열심히 일해서 결국 일을 해야만 자신을 찾을 수 있는 노동자입니다. 그의 가족들, 집 안 살림과 아이들 학원비에 보탬이 되고자 마트에서 일하는 김주부씨, 입시에 치이는 고등학생 아들 이조용군, 어느 것에나 분명한 자기입장을 갖고 있는 딸 이분명양. 밖에서 보면 소위 정상범주에 속하는 가족이지만 그들 각자가 겪는 가족과 사회 안에서의 문제, 그들이 관계 맺고 있는 다양한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노동인권교재’를 준비하면서 하면 ‘노동3권’이면 노동 3권이지 ‘노동인권은 뭐지?’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습니다. ‘노동인권교재’라는 말을 거창하지만 사실 책 내용을 들여다 보면 우리 일상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노동인권이라는 개념은 새로운 개념이 아닙니다. 그동안 우리가 써 온 노동권과 전혀 다른 개념도 아닙니다. 기존의 노동권은 노동법, 노동3권, 임금노동 등으로 일자리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만으로 노동자들의 삶과 노동 모두를 볼 수 없었습니다. 현장 안에서는 노동법의 보호조차 받을 수 없는 노동자들이 늘어갑니다. 현장 밖의 노동자들은 시민으로, 소비자로 다양하게 살아갑니다. 그래서 노동인권은 노동권을 넘는 다양한 인권과의 만남을 주선합니다.

노동자 이교대씨의 생존기 ‘왜 노동인권인가?’ 중

노동인권은 노동하는 우리 삶의 이야기입니다. 노동자로서의 나뿐만이 아닌 시민으로의 나, 소비자로서의 나, 수 많은 노동과 관계 맺고 있는 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나만의 노동이라는 껍질을 깨고 다양한 인권의 가치와 손잡을 것인지,  노동과 일상의 삶을 어떻게 대안적으로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노동인권, 머릿속의 생각과 상상은 자유롭지만 말과 글로 쓰기는 참 어려운 주제입니다. 설명하기에도 그러하고요. 노동인권을 주제로 ‘노동자 이교대씨의 생존기’ 라는 책을 만들었지만 아직은 시작 수준이라 다 담아내지 못해 흘러넘치는 이야기들이 더 많습니다. 그 흘러넘치는 이야기들은 더 많은 노동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의 이야기 속에서 함께 풀어나가려 합니다.

이교대씨의 삶을 정치인에게. 이교대씨의 노동을 자본가에게 맡기고 위험하고 불안하게 사는 것, 같은 사람끼리 서로 다른 딱지를 붙이고 나와 너는 서로 달라. 틀려 라고 내버려 두는 것. 더 많이 갖고 화려하게 사는 것이 아름다운 삶이라고 위안하는 것. 내 동료와 가족,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는 것. 그 모든 것이 나를 외롭게 한다면 그런 삶을 멈추고, 이제 침묵하지 않는 희망의 버스를 타야하지 않겠습니까?

노동자 이교대씨의 생존기 ‘이교대씨 행복하세요?’ 중

대한민국은 참 노동하기 힘든 나라입니다. 아니, ‘노동’은 할 수 있지만 ‘노동자로서 존재’하기 어려운 나라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지요. 이런 각박해지는 노동현실 속에서 ‘나’를 찾아가는 것, 내 ‘삶’을 찾아가는 것이 노동하기 힘든 사회를 바꾸는 중요한 첫 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거리에서 수 많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삶’을 찾아가기 위한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싸움을 ‘타인’의 싸움이 아닌 나와 닿아있는 나의 싸움으로 바라보는 것 그것이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한 가닥 희망이 아닐까 합니다.  이 책이 그러한 희망의 한 걸음에 작은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월간 <복지동향> 2011년 8월호(제1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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