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억 CB발행 에버랜드 이사회 결의는 무효

회의록 조작 가능성도… 배임행위 입증 증거



지난 1996년 10월말 삼성에버랜드가 정족수도 안되는 이사회 결의로 96억원 가량의 전환사채(CB) 발행을 결정했음이 검찰 수사로 드러났다.

신상규 서울지검 3차장은 12월3일 “당시 이사회 구성원 17명 중 9명이 회의에 참석해 자금조달의 필요성 등을 명분으로 CB발행안을 의결했다는 것이 삼성에버랜드의 기록이지만, 실제로는 8명만 참석하고 한명은 직접 참석하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실제로 참석하지 않았던 한명은 이사회 당일 아예 국내에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정족수 미달’은 96억원이라는 규모의 CB발행을 결의한 최종의사결정단위인 이사회가 기본적인 요건조차 갖추지 못했으며, 이로 인해 사실상 “결의 무효”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이후 수사진행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현행법은 위임을 통한 이사회 결의는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다.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에서의 언행은 특정 주체만이 행사할 수 있는 일신전속권(一身專屬權)적 성격을 가지는데 이는 위임을 통한 결정은 불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이에 대해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부소장인 김선웅 변호사는 “과반수 미달로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했으므로 해당일의 이사회 결의는 무효다. 그러나 이미 전환사채는 발행되어 주식전환이 이뤄졌고 이제는 이재용 씨 개인재산이 되어 있다. 현 시점에서는 무효화조치는 불가능할 것이다”라는 법적 견해를 밝혔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또한, “이사회 결의가 무효이므로 그에 따라 삼성에버랜드의 전환사채발행 자체가 무효라는 소송을 제기할 것”을 검토했으나, 현행법상 전환사채(또는 신주)발행 무효소송 제기 기간이 “발행일로부터 6개월”이기 때문에 소송은 불가능하다고 결론지었다.

이번 사건에 대해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박근용 팀장은 “아예 이사회가 없었을 수도 있다. CB발행 후 요식절차로 이사회가 있었던 것처럼 서류를 꾸몄을 가능성도 짙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박 팀장은 “기록상으로는 이사회에 참석한 이사가 같은 날 해외에 있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도저히 착각이라고는 볼 수 없는 정황이다. CB발행 후 나중에 이사회 결의 서류를 만들다가 실수로 포함된 것이 아니겠는가”라는 추측을 내놓았다.

어쨌든 이번 검찰수사과정에서 밝혀진 ‘정족수 미달 이사회 결의’ 사실은 당시 삼성에버랜드 이사들의 배임행위를 입증할 결정적 증거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선웅 변호사는 “이사회 성립 요건조차 무시했음이 드러난만큼 이들의 배임행위는 상당부분 입증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삼성에버랜드 측은 “CB발행은 정상적으로 의결한 사안”이라는 종전의 입장 외에 아직 공식적인 반응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이 사실상 이재용 씨에 대한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과정 중에 촉발되었다는 점에서 이미 그룹차원의 대응책이 강구되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많다.

검찰은 12월2일 허태학 전 에버랜드 사장 등 2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혐의로 불구속 기소한데 이어 관련자들을 추가로 소환할 방침이어서 이제부터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될 전망이다. 수사 초기에 터져나온 이번 사건이 이후 수사진행은 물론 ‘CB발행을 이용한 재벌의 부당내부거래 관행’에 어떤 여파를 미치게 될지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현주 사이버참여연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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