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재벌이 헌법까지 고치려는 나라

                            *이 글은 2012년 7월 20일 <경향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얼마 전 공정거래위원회 공무원들이 회식비 200만원을 대형 로펌의 변호사에게 결제시켰다가 감사원에 적발됐다. 또 얼마 전 안철수 교수가 재벌과 하도급기업의 관계를 빗대어 ‘삼성동물원, LG동물원’이란 표현을 써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전자는 사실이고, 후자는 의견이지만 재벌에 포섭된 대한민국의 현실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풍경이다.

재벌은 1960년 이래 박정희 정권부터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과 지원을 받아 성장했다. 특히 이명박 정부는 이른바 ‘747’을 목표로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노골적인 친재벌정책을 통해 재벌에 대한 규제 완화와 지원을 강화했다. 그 결과 747은커녕 재벌·대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만 더욱 심화됐다.

4대 재벌의 매출액은 국내총생산의 50%를 넘고, 최근 4년간 재벌 계열사는 60% 넘게 늘어났다. 늘어난 재벌 계열사는 재벌 3·4세를 위한 편법적 증여의 수단이 됐으며, 중소기업과 중소상인들의 사업 분야인 비제조업과 서비스업으로 발을 뻗었다. 그 결과 중소기업과 중소상인은 더욱 궁핍해졌다. 노동자의 삶의 질은 더욱 악화됐고, 고용 또한 늘지 않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양극화는 대기업에 속하지 못한 노동자나 자영업자들의 소득에 영향을 미쳐 사회적 양극화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재벌의 지배구조는 지배하는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경제적인 이치에도 맞지 않는다. 재벌은 불과 1~2%에 불과한 지분을 가지고 계열사 순환출자 등의 방법을 통해 재벌에 속한 기업 모두의 경영을 100%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경영의 잘못으로 인해 해당 기업에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는 전혀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은 하도급 단가 인하 등 중소기업의 존립을 위협하고, 양극화를 초래함으로써 국민경제의 지속가능한 선순환 구조를 깨뜨리고 있다.

재벌 일가로 집중된 과도한 경제권력은 단순히 경제 분야만의 문제에 머물지 않고, 정치·사회·문화 등 전 영역에 걸친 영향력 행사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재벌이 투자 파업 위협, 막대한 자금과 인맥을 동원한 로비를 통해 정부 정책마저 좌우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심지어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검찰, 사법부까지 대규모 로펌이나 소속 임원들을 통한 로비, 퇴임 후 뒤봐주기 등을 통해 우호세력으로 포섭한 상태이다. 재벌들의 경우 횡령이나 배임의 액수가 천문학적임에도 집행유예로 풀려나오고, 기다렸다는 듯이 특별사면을 통해 경영 일선에 복귀하는 사례 등이 바로 법치주의 위기의 한 단면이다.

그러나 국민은 현명하다. 이명박 정부의 친재벌정책으로 중소기업과 중소상인, 노동자와 서민들이 더 살기 어려워졌다는 것을 몸으로 알고 있다. 최근엔 시민사회가 나서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을 위한 시민연대’를 결성하고 대중운동도 전개하고 있다. 뜻있는 정치인들도 나서고 있다. 국민들의 형편이 어려워졌다면 그 정책은 잘못된 것이다. 잘못된 현실을 고치는 방향으로 관련 입법도 추진하고 있다. 하도급 거래관계를 보다 공정하게 하고, 중소기업·중소상인·노동자들을 보다 더 보호하고, 재벌의 담합으로부터 소비자들의 이익을 지키고, 재벌 3·4세의 경영권 세습 등 재벌 일가의 이익만을 위해 소액주주나 국민 다수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통제하는 방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재벌 일가는 경제민주화를 위한 입법의 근거가 되는 헌법을 없애자고 한다. 몇몇 집안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지키기 위해 국민 대다수의 합의를 뒤집으려고 하는 것이다. 재벌이 헌법을 바꾸자고 하는 것은, 재벌이 이제 국민의 합의에 기초한 법적 통제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재벌이 제기하는 이러한 개헌론에서 역설적으로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김성진 변호사(민변 중소기업팀장/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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