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13년 03월 2013-03-08   2026

[특집] 인간의 조건 – 5년차 직딩 채식인의 하루

인간의 조건

5년차 직딩 채식인의 하루

 

 

김우열 번역가

 

 

일러스트 황진주

 

사과 하나, 두유 하나, 든든한 통밀빵 하나를 아침으로 먹는다. 채식을 시작한 지 2년쯤 지나니 이제 뭘 먹어야 하고 어디서 사야 하는지, 좋은 성분인지 아닌지 구분하기는 어렵지 않다. 빵 하나 사는 데도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서 헤매던 때와 비교하면 ‘한강의 기적’인 셈. 그나마 요즘은 채식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인식도 많이 확산되어 정보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만 십 년 전부터 채식하던 사람들은 어땠을까. 여전히 채식으로 먹을 수 있는 종류가 적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지만, 채식을 하면서 ‘다양성’이 꼭 좋기만 한 건 아니라는 생각도 커간다.

 

출근하니 8시 30분. 느긋하게 업무 준비를 마치고 금요일을 맞이한다. 오늘은 은근히 바쁜 하루가 될 것이다. 프로젝트가 중반으로 접어들고 있는 데다가 며칠 간 하던 실험을 오늘 중으로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윤곽을 잡아놓았으니 걱정은 없다. 오전에 최종 점검을 하고, 서너 시쯤 팀장과 얘길 나눈 다음 보고서를 작성하면 된다.

점심시간. 동료들과 평소 가는 밥집에 들어가 콩나물국밥을 시킨다. 사장님은 내 국에 멸치니 다시니 조개 따위를 안 넣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처음에는 주문할 때마다 이러저러한 게 들어가는지 물어보고 빼달라고 부탁해야 했다. 그러나 자주 가서 얼굴 비추며 무엇 무엇을 안 먹는지 차근차근 이야기하고 나니 그 후로는 오히려 편해졌다. 뭐 남자가 고길 안 먹으면 어쩌냐는 둥 그래 가지고 기운을 쓰겠느냐는 둥 타박 반 농담 반으로 하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었고 가끔은 그런 말이 짜증스러운 적도 있지만, 이제 적어도 몇몇 곳에서는 사장 아주머니가 먼저 알아보고 “아무것도 안 넣고?” 하고 묻는다.

 

 

불편하지 않아요

 

동료들도 익숙해져서 놀리거나 빈정거리는 일은 없다. 채식으로 식단을 바꾼 초기에는 진지하게 무슨 일이냐, 건강이 안 좋은 거냐, 왜 바꿨느냐고 묻는 질문부터, 저만 잘난 줄 안다며 대놓고 비난하는 얘기까지 갖가지 말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저 녀석은 어떤 말을 들어도 계속 채식을 하겠구나’ 하고 인식시키고 나니 더 이상 그런 말은 듣지 않는다. 때로는 사람들이 묻는 말(식물은 어떻게 하느냐는 등)에 진지하게 답하려다가 언쟁으로 번지는 바람에 어색해진 일도 있다. 알고보니 대부분은 그저 생각나는 대로 물은 것일 뿐 정말 내 생각을 듣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부정적인 사람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처음부터 나더러 잘했다고, 자기도 할까 생각했는데 실천을 못하고 있다며 격려하는 이도 있다. 어떤 이는 처음엔 좀 놀리는가 싶더니, 시간이 지나도 내가 채식을 포기하지 않자 오히려 대단하다고 추켜세우며 자기도 바꿀까 고민 중이라는 얘기를 제법 진지하게 건넨다. 이래저래 일 년쯤 지나면서 채식이 별로 불편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게 된 것 같다. 지금은 오히려 채식하기 전보다 더 편하다.

 

 

채식인의 회식 요령

 

회식 때는 좀 다르다. 안 그래도 회식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채식으로 바꾸고 나서는 더 달갑지 않다. 친하지 않은 직원들이나 상사들이 같이하는 자리라 말을 듣기가 십상이다. 오늘 저녁에도 회식이 잡혀 있다. 운 좋게 실험 결과도 예상한 대로 나오고 팀장과도 이야기가 잘 풀려 느긋하게 업무를 정리하며 오후 시간을 보낸다. 퇴근 시간이 되자 다 함께 이동한다. 오늘 회식은 개발 파트 전체가 모이는 자리라 사람이 제법 참석할 예정이다. 뭐 그렇다고 해도 팀별로 앉으니까 친하지 않은 사람과 그다지 섞일 일은 없지만. 

 

회식은 늘 그렇듯 고깃집에서 한다. 주 메뉴는 삼겹살에 소주. 난 메뉴를 보다가 조개나 멸치 등을 넣지 않고 된장찌개를 끓여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주문 받는 사람이 주방에 물어보더니 맛은 좀 덜하겠지만 원한다면 그렇게 할 수는 있단다. 난 상관 없으니 된장에 채소만 넣고 끓여달라고 한다. 고기가 나오고, 곧 소주가 따라 나오자 이사님이 다들 잔을 채우라고 하고 건배를 외친다. 나는 술도 마시지 않아 그냥 마시는 시늉만 하다가 내려놓는다. 이젠 이사님도 내가 술을 안 한다는 걸 알고 있으니 괜찮지만, 처음엔 이해시키기가 쉽지 않았다. 나이가 좀 있는 상사들은 내가 채식한다는 것보다 술을 안 마신다는 것에 더 놀라는 눈치였다. “술을 안 해?” 하고 말꼬리를 올리며 묻는 말에는 어딘가 당최 이해할 수 없는 놈이라는 뉘앙스가 묻어났다.

 

 

그래도 채식, 그래서 채식

 

2차까지 갔다가 집에 들어오니 자정이 지났다. 잘 준비를 하고 방에 혼자 눕는다. 문득, 채식이 꽤 괜찮은 패키지 상품이었구나 싶다. 가끔은 이것저것 따지고 가리는 게 나 자신도 성가시지만, 요즘처럼 복잡한 세상에서 아무 기준도 없이 사는 건 좀 무모하다는 느낌이다. 건강도 문제지만 무심코 먹은 음식이 다른 사람과 동물과 식물, 더 넓게는 지구에도 해가 될 수 있다는 걸 감안하면, 먹는다는 행위는 결코 간단하게 넘길 일이 아닌 듯하다. 그런 상황에서 채식을 선택하여 내 건강도 살리고, 공장식 축산으로 고통 받는 이웃과 동물도 돕고, 환경에도 이롭다면, 썩 간편한 해법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일견 더 복잡한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더 간단한 것, 그게 채식의 한 가지 숨은 매력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다, 그런 문제는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고, 오히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따로 있지 않나 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다. 자기 가치관, 자기 선택을 타인에게, 다른 존재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 역설적이지만 사람들에게 질문 포화를 받으면서 난 그걸 깨달은 걸까. 그래서인지 이젠 누군가에게 굳이 채식이 왜 좋은지 설명하려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저 하나의 삶의 방식으로서, 내 몸과 마음에 평화를 주는 채식이 좋을 뿐이다.

 

 

김우열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손전화를 설계하다가, 가슴에서 들리는 작은 목소리에 이끌려 명상과 번역에 입문했다. 저서 『채식의 유혹』, 번역서 『콰이어트』, 『몰입의 재발견』, 『시크릿』 등이 있다.

 

 

월간 참여사회 2013. 3월호 [특집] 인간의 조건
김 대리 격문
엄마는 신神이 아니다
인간적인 상담을 하고 싶다
5년차 직딩 채식인의 하루
한국에서 이주 여성으로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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