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13년 09월 2013-09-06   1955

[읽자] 엉뚱한 상상이 세상을 구한다?

엉뚱한 상상이 세상을 구한다?

박태근 알라딘 인문 MD가 권하는 9월의 책

 

(나는 여전히 믿지 않지만) 역사 속 수많은 천재는, 대개 당대에는 인정받기는커녕 괴짜라 놀림 받기 일쑤였고, 그들의 업적은 칭찬은커녕 제대로 이해받지도 못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들의 엉뚱한 상상과 거침없는 실천은 무언가를 이루어냈고, 오늘 우리는 그 바탕 위에서 살아간다(고 나는 믿는다). 앞선 두 문장이 진실이라면, 오늘날 세상의 기준에는 부합하지 못하지만 언젠가 그 기준까지 바꿔놓을 상상과 실천을 좀 더 눈여겨봐야 하지 않을까. 요즘에는 ‘덕질’이나 ‘잉여력’이라 불리기도 하는, 세상을 구할 엉뚱한 상상을 찾아보자.

참여사회 9월호

 

4할 타자가 사라졌다고 이 난리를?

 

『백인천 프로젝트』는 ‘1982년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하던 해에 백인천이 4할 타율을 기록한 이후 왜 4할 타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을까’라는 물음에서 출발한다. 과학자 정재승의 트위터 제안으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에는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과 통계분석에 능한 사람 그리고 『머니볼』을 재밌게 읽은 사람까지 수십 명이 힘을 보탰고,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잘못된 자료까지 바로잡으며 공식적인 과학 논문을 영문으로 발표하는 데 이르렀다.(이 논문의 저자는 무려 58명이다.) 전문가와 비전문가가 한데 엉켜 가설을 세우고 자료를 분석하며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은, 멋지게 표현하면 집단 지성이지만 현실적으로 표현하면 100일 동안의 분투라고 하는 게 어울릴 텐데, 그 과정을 들여다보면 4할 타자가 사라진 까닭보다도 개방, 참여, 공유라는 시민 과학의 3요소를 발견하고 확인하는 지점이 더욱 흥미롭다. 4할 타자가 언제고 나올 가능성을 품고 있듯이 여러분의 엉뚱한 질문 또한 비슷한 물음표를 가진 이들과 함께 풀어낼 가능성을 품고 있지 않을까. 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 뭐든 좋다. 머뭇거리지 말고 도전해보시라.

 

참여사회 9월호

 

페트병으로 만든 배, 태평양을 건너다

 

데이비드 드 로스차일드는 영국의 금융 재벌 로스차일드가의 막내아들로 모험가이자 환경운동가다. 그는 북극점 횡단 과정에서 급속도로 녹아내리는 빙하 때문에 탐험을 중단했는데, 이때 생태계 파괴의 현장을 목격했다. 이후 새로운 탐험 주제를 찾다가 바다를 떠다니는 플라스틱 폐기물이 1㎢당 1만 7800개나 된다는 국제연합환경계획의 보고서를 읽고는, 이 사태를 제대로 알려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인간이 바다를 오염시킨 가장 확실한 증거가 플라스틱이라면, 그 플라스틱으로 배를 만들어 태평양을 횡단하며 플라스틱이 쓰레기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기로 하는 데 이른다. 우여곡절 끝에 재활용 플라스틱 섬유로 만든 돛, 전기를 생산하는 풍력 발전기, 태양 전지판, 자전거 발전기 그리고 1만 2500개의 페트병으로 만들어진 친환경 자가발전 돛단배가 완성되는데, 이 과정을 보면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프로젝트 전 과정에서 환경 파괴를 줄이고 새로운 자원 개발의 가능성을 찾아보려는 주인공의 노력을 알 수 있다. 거대한 쓰레기 섬과 그 때문에 죽어가는 생명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이 거대한 모험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시기 바란다.

 

참여사회 9월호

 

상상 그 자체로 충분하다

 

이번에는 상상의 세계로 여행을 떠난다. 세계적인 독서가 알베르토 망구엘과 이탈리아 여행작가 자니 과달루피가는 아틀란티스와 드라큘라의 성에서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해리 포터의 호그와트까지 『인간이 상상한 거의 모든 곳에 관한 백과사전』을 만들었다.(이런 걸 어디에 쓰느냐고 생각한다면 뒷부분은 읽지 않아도 좋다. 누가 손해일까.) 이 장소는 실제 지도 위에 표시할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지명을 만들어낸 작가 자신도 그곳을 찾아갈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이 책은 1200여 개에 이르는 장소를 찾아 지리상 위치부터 지형, 생태, 역사, 제도, 풍습에 이르기까지, 마치 그 장소가 실제로 존재하는 듯 생생하고 세밀하게 그려낸다. 로빈슨 크루소의 섬에서 그의 친구가 되어준다면,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서성대는 북극의 평원에서 그의 얼굴을 따뜻하게 보듬어준다면 어떨까.(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 뒷부분은 읽지 않아도 좋다. 어차피 얼마 남지도 않았다.) 수많은 문헌에서 길어 올린 방대한 자료는 상상의 장소를 현실만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실제 그곳을 탐험하듯 진지한 태도로 일관하는 저자의 자세는 그곳이 현실에 존재하는 양 우리를 착각하게 한다. “작가들이 꿈꾸었던 많은 장소들은 그 자체로서 완벽하며 다른 어떤 정당화도 필요로 하지 않”듯이 오늘 함께 살펴본 엉뚱한 상상과 실천도 그 자체로 귀한 값어치가 있지 않을까. 마침 이 책에서 한국의 상상 지명을 다루지 않았으니,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것도 괜찮겠다.

 

 

박태근 온라인 책방 알라딘에서 인문, 사회, 역사, 과학 분야를 맡습니다. 편집자란 언제나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 사람이라 믿으며, 언젠가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을 짓고 책과 출판을 연구하는 꿈을 품고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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