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신철희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난 11월 7일 윤석열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기점으로 대통령 탄핵을 언급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016~2017년보다는 아직 시민들의 참여도가 많이 떨어지지만 야당과 시민단체는 주말마다 장외집회를 열면서 대통령과 여당을 압박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21세기 들어서 이미 두 명의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이 되었는데, 이제 대통령 탄핵이 우리나라 정치의 일상적인 일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대통령 탄핵이 빈번해진 것은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대통령 탄핵은 대통령제 국가에서 점점 더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대통령제를 채택한 국가의 94% 정도가 헌법에 탄핵 조항을 가지고 있는데, 지난 30년 동안 2년에 한 번꼴로 어느 나라에선가 탄핵이 시도되었다고 한다. 내년 다시 백악관에 입성하게 된 트럼프도 2019년과 2021년 두 번이나 하원에서 탄핵당했다.
대통령제는 대통령과 의회 모두 직접 국민의 선택을 받는 이원적 정당성dual legitimacy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시초부터 제도적으로 그 안에 탄핵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대통령제를 창안한 미국의 헌법 입안자들은 의회가 행정부와 사법부, 그중에서 특히 행정부와 그 수장인 대통령을 견제하는 최후의 수단으로서 탄핵 제도를 도입했다.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상황에 대비해서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의 권리 및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최후의 비상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하지만 헌법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로서 대통령 탄핵은 매우 신중하게 시도되어야 한다. 탄핵이 쉽게 거론되거나 시도되는 것은 그만큼 정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탄핵의 결과로 정치적 갈등과 혼란이 더 심해지기 때문이다. 대통령제를 유지하는 한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탄핵 제도를 둘 수밖에 없다. 대통령제를 채택한 국가는 정치 지형의 변화에 따라서 언제든지 점화될 수 있는 폭탄을 안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제와 탄핵
의회의 불신임에 의해 언제든지 총리를 교체할 수 있는 의원내각제와는 달리 대통령제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정해진 임기를 보장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 ‘특별한 일’이 바로 탄핵이다. 그런데 대통령제를 처음 도입한 미국을 비롯해서 대통령제를 채택한 중남미나 아시아 국가에서의 탄핵은 1990년대 이전에는 흔한 일이 아니어서 학자들이나 시민들이 별다른 관심을 두지도 않았다. 하지만 1990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대통령 탄핵을 정치 갈등이나 교착상태를 돌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다.
최근 30여 년 동안 대통령 탄핵 시도가 세계적으로 빈번해진 데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바로 대통령제의 특성인 분점정부divided government의 가능성과 정치 양극화의 심화다.
먼저 제도적 요인으로서 분점정부, 즉 대통령의 소속 정당과 의회 다수당이 다른 여소야대의 경우 자신들이 민의에 더 가깝다고 주장하는 여야 사이에 갈등이 격화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대통령과 의회 모두 국민의 선택에 의해서 정치적 정당성을 획득한 만큼 서로 물러서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또한 야당의 의석수가 더 많기 때문에 탄핵의 첫 단계인 의회의 탄핵소추를 시도할 유인이 강해진다.
사실 분점정부는 대통령제를 선택하고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이루어지는 나라라면 통상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다. 1990년대 이전에 분점정부가 등장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21세기 이후 문제가 더 두드러지는 배경에는 정치적 양극화의 심화가 자리를 잡고 있다. 미국을 예로 들면, 이전에는 여소야대라 하더라도 다수당인 야당이 무조건 대통령과 여당의 발목을 잡으려고 하지 않고 사안에 따라 협조하는 초당파주의bipartisanship가 정치 문화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여야 간 대립이 심해졌을 뿐 아니라 이것을 대화와 타협이 아니라 탄핵과 같은 극단적인 수단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심해졌다.
200년이 넘는 미국 역사에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실제 의회에서 이루어진 것은 3명의 대통령(앤드루 존슨, 빌 클린턴,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네 번(트럼프가 두 번)에 불과하다. 탄핵이 확실시되자 사퇴한 리처드 닉슨의 경우를 포함해도 다섯 번에 불과하다. 그러나 트럼프는 불과 4년 임기 동안 두 번이나 하원에서 탄핵을 당했고, 그 직전 대통령인 오바마 시절에도 공화당이 강성 지지자들의 압력에 굴복해서 탄핵을 진지하게 고려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탄핵을 정치 투쟁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경향이 점점 강해지는 것은 분명하다.
2017년 탄핵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웠는가?

대한민국에서도 21세기 들어서 벌써 2명의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됐고, 역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물러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리고 2024년 현재 또다시 대통령 탄핵이 거론되고 있다. 만약 대통령의 헌법과 법률 위반이 심각하다는 객관적 사실이 드러나고 국민의 다수가 공감할 때는 오히려 단호하게 헌법이 정한 최후의 수단을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다수의 국민이 원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비상 상황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되어야 할 탄핵이 일상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통령을 탄핵한 지 10년도 지나지 않아 국민의 입에서 탄핵이라는 단어가 다시 나오는 것은 국가적 비극이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우리는 보통 2016~2017년 사이에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에 의해서 대통령 탄핵에까지 이르게 되는 일련의 정치적 과정과 성과를 ‘촛불혁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진보, 중도, 보수를 망라한 압도적 다수의 시민들이 참여해서 평화롭고 질서 있게 헌법이 정한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은 아름다웠다.
그러나 촛불혁명의 결과를 정말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그전과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 있는가? 현 대통령에게, 그리고 앞으로 대통령이 될 사람들에게 당신이 잘못하면 언제든지 주권자인 국민의 손으로 물러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 이상으로 우리의 정치제도와 문화에서 유의미한 변화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정치는 오히려 더 엉망이 되었다.
정치에서 경쟁과 갈등은 불가피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너무 당연한 일이고, 오히려 경쟁과 갈등이 사라진 사회는 독재국가이거나 전체주의 국가일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탄핵이 일상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탄핵은 정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반증일뿐더러 탄핵이 또 다른 갈등의 요소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현재 그 어느 때보다 여야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데에 보수와 진보 양쪽이 한 번씩 상대 진영의 대통령을 탄핵시킨 것도 크게 작용한다. 탄핵당한 진영은 절망과 좌절에 빠지게 되고 어떻게든 복수를 하려고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치 않는 사실은 탄핵은 헌법과 국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정말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탄핵이 아니라 일상적인 정치활동으로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대통령이 가장 중요하다. ‘정치적 탄핵’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중남미에서는 심각하지 않은 문제로 대통령을 탄핵시키기도 하지만, 탄핵 시도 자체가 발생하지 않게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고 절제된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최근 탄핵이 더 자주 일어나는 것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강화와 무관치 않다. 전쟁과 경제위기 같은 국가적 비상 상황을 겪으면서 대통령의 권한이 점차 강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면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을 넘어서 권한을 과도하게 행사하려는 유혹에 더 쉽게 노출되고, 탄핵이 성사될 수 있는 문턱에 다가가게 된다. 강화되는 대통령의 권한과 날로 심해지는 정치 양극화가 결합해서 탄핵을 국면전환의 방편으로 삼으려는 시도가 빈번해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은 탄핵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정치의 묘를 잘 발휘해야 한다. 대다수의 경우 여당이 분열하거나 국민의 지지를 상실할 때 반대 세력의 탄핵을 시도하려는 마음이 강해진다. 대통령이 탄핵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상대 정당과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여당 안에서도 소통을 활발히 하고 존중의 태도를 보일 때 탄핵의 가능성은 매우 낮아지게 된다.
둘째, 대화와 타협의 정치 문화의 복원이다. 야당이나 반대 세력이 대결 국면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쉽게 탄핵을 시도하거나 입에 올려서는 안 된다. 어쨌든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정상적인 정치 행위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심판을 하더라도 선거라는 통상적인 수단을 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통령은 여야를 떠나 국가원수이자 상징이다. 대통령 탄핵은 국가 전체의 비극이자 슬픔이다. 닉슨 탄핵 여부를 심의한 하원의 법사위원회 의원들이 탄핵소추를 의결하고 여야 의원을 막론하고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가 전하는 메시지에 주목해야 한다.
셋째, 팬덤정치의 불식이다. 전 세계적으로 대통령 탄핵 시도가 증가하는 데는 정치적 양극화가, 그리고 정치적 양극화 뒤에는 정치인을 마치 연예인 대하듯이 무조건 추종하는 팬덤정치의 만연이 자리 잡고 있다. 팬덤정치는 내가 좋아하는 정치인과 정치세력을 좋아하는 만큼 경쟁 관계나 갈등 관계에 있는 정치인에 대해서는 극도의 증오심으로 표현된다. 모든 탄핵은 의회가 소추해야 시작될 수 있는데, 대부분의 정치인은 자신의 선거에 대한 염려 때문에 이런 지지자들의 요구와 정서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팬덤정치는 극단적인 정치 갈등을 만들어내고, 이는 탄핵이라는 최후의 수단으로까지 손쉽게 내달리게 한다. 민주주의의 발전과 정치의 안정에는 합리적이고 온건한 유권자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뽑아서 우리 손으로 물러나게 하는 것은 이유를 막론하고 매우 슬픈 일이다. 우리가 또다시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먼저 각성해야 한다. 제대로 된 후보를 가려내는 것, 그것에 앞서 민주주의 정신을 제대로 갖추고 헌법과 상식의 테두리 안에서 정치하는 정치인을 길러내는 것. 우리 모두의 책임이자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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