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인터뷰] 모든 것이 녹는 봄을 기다립시다. 우리 함께 얽혀서 – 박혜진 회원

그는 “시민이고요. 방송인이고요. 다람출판사 대표를 맡아서 책 만드는 박혜진입니다”라는 자기소개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이 단정한 인사말에 숨 가쁜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기꺼이 세월호참사 기억식의 사회를 맡는 시민, 뉴스데스크를 진행하면서 ‘MBC의 얼굴’로 불리던 방송인, 그리고 어느덧 13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은 출판인.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두 차례에 걸친 파업 끝에 여러 아나운서가 사표를 제출하던 시절, 그 역시 MBC를 떠났다. 이후에도 꾸준히 방송을 이어나갔지만, 무엇보다 눈에 띄는 행보는 출판 활동이다. 인터뷰 내내 독서 문화를 걱정하고 신간을 소개하면서 눈을 반짝이던 그는 이제 ‘아나운서 박혜진’보다 ‘다람출판사 대표 박혜진’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듯 보였다.
그에게 붙은 호칭은 하나가 더 있다. 바로 ‘참여연대 회원’. 어디든 자신이 선 자리에서 목소리를 내며 사회에 참여해 온 그에게 참 잘 붙는 이름이다. 2017년 회원에 가입한 뒤 박혜진 회원은 참여연대의 여러 캠페인에 함께했고 행사 사회나 광고 내레이션도 기꺼이 맡아주었다. 또다시 춥고 어두운 시절을 지나는, 그러나 봄이 오면 이 모든 슬픔이 녹아내릴 것이라는 희망을 여전히 붙잡고 있는 박혜진 회원을 만났다.
회원님은 말 그대로 MBC의 ‘간판 아나운서’였고, ‘예비 아나운서들이 가장 만나고 싶은 여성 아나운서(2006)’로 꼽히기도 했어요. 그런데 2014년 MBC 퇴사 이후에는 프리랜서 방송인뿐 아니라 출판인으로도 왕성하게 활동하시잖아요. 어떻게 출판을 시작하셨나요?
그러니까요. (웃음) 어쩌다 보니 인생 2모작을 하는 N잡러1가 되었네요. 제가 출판을 한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많이 놀랐나 봐요. “출판이 방송과 어떤 연관이 있냐”고 물어보는데, 저는 그렇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저는 방송을 하면서 정말 많은 사람의 삶을 접하고 또 전했어요. 타인의 삶에 자주, 깊게 얽히면서 살아왔죠. 그 감각이 되게 좋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일렁였어요. 방송사를 그만두면서, 다른 일을 한다면 무엇일지 생각했어요. 방송만큼 좋아하는 일이었으면 좋겠고 제가 주도적으로 창작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기준이 있었죠. 한편으로 방송은 취재한 내용을 많이 채워서 프로그램에 쏟아내는 방식이거든요. 여러 방송을 했지만 돌이켜 보면 ‘어디로 갔지?’ 싶게, 마치 흩어져버린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그래서 새로 도전하는 일은 휘발되지 않고 기록으로 남는 일이길 바랐죠. 그에 맞는 일이 바로 출판이었어요. 자연스럽게 방송 미디어에서 활자 매체로 간 건데, 하는 일이 바뀌었다기보다는 확장되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데 따른 부담이나 걱정도 있었죠. 하지만 두려움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지 못하는, 그런 바보 같은 짓은 하고 싶지 않았어요. 성공적인 결말을 가져올지는 중요한 기준이 아니었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중요했어요.
그렇게 시작해서 어느새 출판사 사장님까지 되셨어요.
이제 비즈니스의 영역으로 왔어요. (웃음) 좋은 책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서, 정말 열심히 하고 있어요. 직접 카드뉴스나 릴스2도 만들고, 크고 작은 서점들을 다니면서 이벤트 협업도 하고, 북토크를 열면 제가 진행도 하고. 할 수 있는 건 모두 다 해요.
회사 경영만 해도 쉽지 않은데, 기획·편집, 교열·마케팅까지 회원님이 혼자 하신다면서요. 힘드실 텐데 직원을 고용할 생각은 없으신가요? (웃음)
편집은 전문 편집자께 대부분 의뢰합니다. 마케팅은 함께 해 줄 분이 계시다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은 출판사 재정이 충분치 못해서요. (웃음) 좋은 책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게 홍보라는 걸 정말 실감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신문이나 TV, 라디오 등 소위 말하는 레거시 미디어3를 통해 신간 소식을 접했는데 지금은 상황이 다르잖아요. 독자에게 어떻게 다가설지 고민을 안 할 수 없어요. 제가 마케팅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홍보 방법도 굉장히 빠르게 바뀌니까,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싶긴 해요. 어느 시점에는 훌륭한 마케터를 고용하고 싶다는 마음인데 그 시점이 빨리 오기를 바랍니다. (웃음)
요즘 같은 불황에 어떤 업계든 어렵겠지만 출판사는 특히 더 힘들 것 같아요.
출판사 통장에 얼마 들어오냐를 떠나서, 사람들이 책을 너무 안 읽어서 괴롭습니다. 작년에 영국 옥스퍼드 출판부가 정한 ‘올해의 단어’가 바로 뇌 썩음Brain rot 4이었잖아요. 사람들의 문해력 수준이 점점 떨어지고, ‘성인 10명 중 6명은 1년에 책을 한 권도 안 읽는다’는 기사의 수치가 이제 별 타격감도 없을 정도죠. 또 갈수록 사회의 혐오·차별·폭력의 수준이 심각해지는 것을 체감해요. 염치나 부끄러움이 사라지고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도 결여되고요.
그 원인이 뭔가 생각해보면, 굉장히 자극적이고 호흡이 짧아서 생각할 여지조차 없는 미디어에 사람들이 중독된 것 같아요. 자기의 삶도 타인의 삶도 들여다볼 틈이 없는 거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알아야 마음이 열리는 거잖아요. 자기의 삶을 확장하고 타인의 삶과 스며드는 방법으로 가장 좋은 게 책인 것 같아요. “꾸준히 다양하게 책을 많이 읽자”고, 제가 정말 캠페인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책을 많이 읽자고 하셨는데, 그동안 다람출판사에서 나온 13권의 책 중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읽히고 싶은, 회원님이 가장 애정하는 책은 무엇인가요?
출판사 대표에겐 정말 괴로운 질문이에요. (웃음) 딱 하나만 꼽을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이런 질문을 받을 때는 따끈따끈한 신간을 소개하곤 해요. 오늘도 그래야 할 것 같네요. 이번에 《봄이 오면 녹는》 소설 앤솔러지5를 냈어요. 3편의 단편이 담긴 소설집인데요. 3명의 작가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면서 각각의 소설을 쓰는 거예요. (이번 1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얽힘’이라는 시리즈로 계속 책을 낼 예정이고요.
소설을 공동으로 함께 작업할 수 없을까 고민하던 중에 ‘얽힘’이라는 말에 제가 꽂혔어요. 우리는 각자 고유한 삶을 살고 있지만 동시에 타인의 삶과 조금씩 얽히잖아요. 그래서 기획한 방식인데요. 출판사가 주제를 정하지 않고 작가들이 모여 함께 이야기하면서 공통의 주제를 직접 정해요. 그걸 가지고 작업을 한 뒤에 초고가 나오면 공유하고요. 다른 작품에서 자신이 얽히고 싶은 고리를 찾아내 (이를 자기 원고에 반영하는 방식으로) 소설을 만드는 거예요. 그래서 작품들의 인물이나 사건, 배경 등이 촘촘히 얽혀요.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3편의 소설이 나오는 거죠.
정말 재미있고 새로운 방식이네요. 그런데 소설 창작을 공동 작업으로 진행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약간의 우려는 있었죠. 작업을 제안하면서도 작가들이 이런 방식을 꺼리지 않을까 걱정했어요. 그런데 제 기대 이상으로 작가들이 새로운 시도에 흥미를 느끼더라고요.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면서 이야기도 풍성해졌고요. 서로의 작품에 대해서도 열심히 분석하고 질문하니까 작가 혼자 쓸 수 있는 서사의 폭을 뛰어넘는 거예요. 한 사람이 썼다면 마무리될 뻔한 이야기가 공동 작업을 통해 확장되는 경험이었어요. 출판사 대표로서도 너무 뿌듯했고요.
다람출판사의 다음 기획은 무엇인가요?
일단 ‘얽힘’ 시리즈가 앞으로 계속 나올 거예요. 작업 제안을 드린 작가들이 흔쾌히 허락하셔서 이미 6기까지 섭외가 되었어요. 2기 시리즈는 이미 초고가 나왔는데 이르면 올해 5~6월에 나올 것 같아요.
이와 함께 사회과학 서적도 준비하고 있어요. 감정이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하는 책입니다. 흔히 정치를 이야기할 때 감정을 배제하고 이성과 합리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실제로 광장에 나서는 시민들, 트랙터를 몰고 거리로 나오는 농민이나 파업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을 보면, 결국 평온하고 안정된 일상을 지키고 싶은 감정에서 행동이 비롯되고 이게 정치를 만들어가는 거잖아요.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과도 연결되는 책일 것 같아요.

출판사 일도 하시지만 여전히 방송 일도 하시죠. 출판만 하기에도 벅차실 텐데 방송 활동을 이어가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좋으니까요. 저는 방송이 좋아요. 방송을 하면 몸져누웠던 몸도 살아나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에너지를 한꺼번에 쏟아내는 일인데도, 방송을 준비하면서 어느 때보다도 에너지와 생동감이 생겨요.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저와 맞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분들은 언제든 연락 주세요. (웃음)
프리랜서로 활동하시면서 뉴스타파 세월호참사 100일 특집방송 ‘세월호 골든타임, 국가는 없었다(2014)’, MBC스페셜 ‘촛불1주년(2017)’, 온스타일 ‘뜨거운 사이다(2017)’, 채널A ‘외부자들(2018)’, JTBC ‘사건반장(2020)’ 등 다양한 방송을 진행하셨습니다. 프로그램을 고르는 회원님의 기준이 있을까요?
특별히 기준을 정해두진 않는데, 이제까지 했던 프로그램들을 돌아보면 뭔가 목소리를 내어야 할 자리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맞았던 것 같아요. 또 제가 주로 뉴스와 시사교양을 진행했기 때문에 방송을 보시는 분도 그게 편한 것 같고요. (시사교양은) 제가 가장 열성을 다해서 할 수 있는 방송이기도 해요.
2017년부터 참여연대 회원으로 함께해 주고 계시죠. 공익제보 캠페인, 한반도 종전평화 캠페인 등에 큰 힘이 되어주셨고요. 또 지난해 30주년 창립기념식 사회도 맡았고 최근에는 참여연대 광고에 내레이션까지 참여해주셨어요. 참여연대 활동의 전면에 나서는 것이 혹시 부담스럽진 않으셨나요?
참여연대가 무서운 곳이 아니잖아요. (웃음) 제가 할 수 있는 일로 참여연대와 함께 가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참여연대와 함께 해온 여러 일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을 하나만 꼽는다면 무엇일까요?
공익제보 캠페인이요. 너무 필요한 일인데 (공익제보자에게) 부담이 갈 수밖에 없고, 옳은 일인데도 사회적으로 인정을 못 받는 상황이 될 수 있으니까요. 공익제보가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알리는 캠페인이라서 기꺼이 함께했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시민단체의 행사나 세월호참사 기억식 등에서 꾸준히 진행을 맡고 계세요.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 마음이 동해서 가게 되어요. 세월호참사 기억식 같은 경우는 거의 매년 함께하고 있는데, 오랜만에 (세월호 유가족인) 엄마·아빠들을 만나 인사할 수 있어서 좋아요. 참사 당시에 힘든 꿈을 여러 날 꿨어요. 괴로운 뉴스를 챙겨보고 나면 어김없이 힘든 꿈을 꿨죠. 저의 말과 행동이 유가족들에게 위로가 되지 않겠지만 뭔가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세월호100일 특집방송 때는 많이 울기도 했지만, 그런 감정에 매몰되어서 상황을 외면하고 싶진 않더라고요.
작년 12.3 비상계엄의 밤 페이스북에 “공포스럽고 치욕스러운 마음으로 상황을 지켜보면서 민주주의란 무엇인지 많은 생각이 들었다”는 글을 쓰셨지요. 벌써 두 달이 넘게 지났고 그사이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 밤의 고민에 대한 답을 얻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일단 그날에는 현실이 믿기지 않았고 너무 놀랐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으로 그런 글을 썼어요. 지금은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거 아닌가 싶어요.
돌아보면 우리가 이룬 민주사회가 언제까지고 유지될 거라고 착각한 것 같아요. 권력이나 자본만 좇는 광란이 여전히 도사리고 있고 이것이 현실로 드러났을 때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극악무도한 세상이 펼쳐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현장으로 모이고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며 외치는 모습에서 희망을 느꼈고, 이걸 붙들고 가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여전히 깨어있는 시민들이 많이 있구나. 낙담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싶습니다. 여러 의미를 담아서 ‘빨리 봄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뉴스데스크를 떠나던 2009년 4월 24일 방송에서 회원님이 남긴 클로징멘트가 많이 회자됐죠. 당시 “지금 많이 어렵지만 추위와 어둠을 뚫고 꽃이 피듯 또 여러분 마음속에도 곧 봄날이 올 것을 믿습니다.”라고 하셨는데요. 지금은 다시 춥고 어두운 시절인 것 같습니다. 만일 오늘 뉴스를 맡는다면 어떤 클로징멘트를 전하고 싶으신가요?
그날의 클로징멘트를 잊고 있었는데 인터뷰 덕분에 다시 상기했어요. 회상해봤는데 그때도 봄을 간절히 기다리던 시절이었더라고요. ‘10여 년이 지났는데 우리는 왜 아직도 봄을 기다리고 있지?’ 하는 마음도 들었어요. 그래도 겨울 동안 꽁꽁 얼었던 강도 봄에는 다 녹잖아요. 그게 순리잖아요. 그래서 “단단하게 얼었던 모든 것들이 봄이 오면 녹아내리길 바랍니다”, 이렇게 멘트를 하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회원인터뷰 공식 질문입니다. 나에게 참여연대란?
저에게 참여연대는 ‘가로등’이에요. 항상 그 자리에서 그리고 우리 가까이에서 어둠이 무섭지 않게 길을 밝혀주니까요.
- 2개 이상의 직업을 가진 사람 ↩︎
- 소셜미디어 ‘인스타그램’의 짧은 영상 콘텐츠 ↩︎
- 과거에 출시되었거나 개발된 전통 미디어를 이른다. 일반적으로 TV(지상파, 케이블)·라디오·신문 등이 이에 해당한다. ↩︎
- 텔레비전, 비디오 게임, 또는 무의미한 활동에 지나치게 몰두해 정신적으로 피곤하거나 생각이 멍해지는 상태를 의미한다. ↩︎
- 시나 소설 등의 문학 작품을 하나의 작품집으로 모아놓은 것 ↩︎
글 박효원 / 사진 김서인 미디어홍보팀 활동가, 박상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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