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25년 05-06월 2025-05-07   9782

[특별 집담회] 참여연대이고, 비상행동입니다

ⓒ박영록 작가

패널

이지현 참여연대 사무처장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경제팀 팀장
김희순 참여연대 권력감시1팀 팀장
최보민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활동가

박수진 편집위원

사진

박영록 작가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부터 2025년 4월 4일 ‘대통령 윤석열 파면 선고’까지 시민들은 잊지 못할 뜨겁고 치열한 123일의 시간을 보냈다. 시민들의 뜨거운 저항의 시간을 치열하게 함께 한 사람들이 있다. 비상계엄 선포 직후 1,549개 시민사회·노동단체는 ‘윤석열 즉각퇴진 사회대개혁 비상행동’(윤석열 파면 이후 ‘내란종식·사회대개혁 비상행동’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현재 1,739개 단체가 함께하고 있다. 이하 ‘비상행동’)을 꾸리고 서울 여의도·광화문·한강진 등 서울에서만 67차례 집회를 열었다. 3월 8일 ‘내란범’ 윤석열이 석방된 뒤에는 긴급 집중 행동 시위를, 헌재가 선고일을 공지한 뒤에는 4월 1일~2일 24시간 철야 집중 행동, 4월 3일~4일 끝장 대회를 열고 ‘파면 선고’의 순간까지 비상하게 대응했다.

비상행동 한복판에 참여연대 활동가들이 있다. 비상행동 공동운영위원장을 맡은 이지현 사무처장과 이태호 운영위원장을 비롯해 총 12명의 활동가가 파견되어 열성적으로 활동했다. 그 가운데 ‘비상행동 활동가’로서만 123일을 보낸 김주호 민생경제팀 팀장, 김희순 권력감시1팀 팀장, 최보민 사법감시센터 활동가와 공동운영위원장으로 크고 작은 결정의 과정을 함께 했던 이지현 사무처장을 대표로 만났다. 광장의 빛과 내내 함께였던 123일의 우여곡절과 소회 등을 나눴다.

이지현 사무처장
김주호 팀장
김희순 팀장
최보민 활동가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그 순간 뭐 하고 있었나?

이지현 12월 3일이 참여연대 (전·현직 집행위원) 홈커밍데이였다. 구순이 넘으신 초대 대표님 등 60여 명이 참여한 행사를 마치고 뒤풀이를 갔다. 첫 잔을 반 정도 비웠을까, 방송에서 계엄이 선포됐다. 마시던 술잔을 내려놓고 다시 사무실로 갔다. 온라인으로 비상 상집을 열고 논의한 뒤 여의도로 바로 갔다.

김희순 홈커밍데이 행사를 함께 치르고 뒤풀이는 안 가고 집에 갔다. 들어가는데 남편이 뉴스를 보다가 ‘이게 뭐지?’ 그러더라. 계엄이 선포되고 있었다.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에서 다음날인 12월4일 오전, 배달의민족 본사 앞에서 농성하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배달비 수수료 문제 끝장 농성’을 상인단체 분들과 함께하기로 했다. 텐트, 방한용품 등 농성장에서 쓸 물품들을 다 챙겨서 차량에 싣고 ‘내일 아침 일찍 가져가야지’ 생각하며 차를 갖고 집에 왔는데 ‘계엄 선포’ 소식을 들었다. 배민 농성에 쓸 차량을 국회 앞으로 가져오라는 연락을 받고 준비하는데 비상계엄 해제가 진행됐다. 다시 ‘대기하라’는 연락을 받고 기다리던 중 계엄이 해제됐다. 뉴스를 보면서 성긴 잠을 잤다.

최보민 집에 있었는데, 간사 메신저 방이 난리가 났다. 처음에는 ‘가짜뉴스’인 줄만 알았는데 ‘진짜 뉴스’라는 사실을 알고 당황한 기억이 생생하다.


비상행동에서는 각자 어떤 일을 맡았나.

이지현 공동운영위원장을 맡아서 일주일 단위로 주요 집회, 기자회견, 고발 등 비상행동 활동 전반의 목표와 기조를 점검하고, 어떻게 집행할지를 정하는 등 일상적인 의사결정을 했다.

김희순 언론대응팀에서 기자 대상 공보방 운영 등 언론 대응 업무를 했다.

최보민 언론대응팀에서 같이 활동했는데 ‘땜빵’ 사회도 봤다. 매주 토요일에는 집회가 끝나면 범시민대행진을 했는데 행진할 때 사회자가 필요하다. 차량이 10대, 많게는 20대까지 행렬 중간중간 배치되고 트럭마다 2명의 사회자가 필요했다. 이번 집회 트렌드가 케이팝이다 보니 리듬 감각은 물론 케이팝도 잘 알아야 한다는 나름의 ‘자격요건’이 있었다. 저는 구호도 엇박자로 잘 넣고 리듬도 잘 타는 ‘고퀄’ 사회자다. (웃음)

김주호 비상행동 공식 출범 전에는 행진 사회도 보고 안전선도 치고 질서 유지도 하고 밖에서 몸으로 일했는데 비상행동이 출범하면서 정책기획팀장이 돼서 현장에서 몸 쓸 일이 많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조금 재미는 없었는데(웃음) 비상행동의 거의 모든 입장문과 기자회견문, 선언문을 쓰고, 주요 구호, 기조 등을 함께 정했다. ‘윤석열 퇴진’, ‘국민의힘 해체’, ‘한덕수 퇴진’, ‘최상목 파면’ 등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주요 구호와 기조가 달라져야 해서 그런 것들을 정하고, 공동대표자 회의, 운영위원회 회의 준비를 위한 자료도 만들었다.

집회 사회를 보고 있는 최보민 활동가 ⓒ김서인

1,500여 개에서 시작해 연대하는 단체가 1,700여 개까지 늘어나다 보니 이견 차이를 좁히고 의사 결정하는 게 쉽지 않았겠다.

이지현 단체명을 정할 때부터 엄청났다. (웃음) 사회대개혁을 넣느냐 마느냐, 사회대개혁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이 많은 단체가 합의할 수 있는 수준이 있냐, 사회대개혁은 언제 끝나는 거냐는 등. 퇴진이냐, 파면이냐, 탄핵이냐, 국민을 넣느냐 마느냐 다 토론 거리였다. 그러나 윤석열 즉각 퇴진을 단기 목표로, 사회대개혁 성취를 장기 목표로 하는 데 뜻을 모으고 혐오·차별 배제라는 최소한의 원칙을 만들었다.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하기 이전에 이미 윤석열의 파행적인 거부권 선포에 대해 심각성을 느낀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거부권을거부하는전국비상행동’을 꾸리고 2024년 12월 1일에 3차 시민 행진까지 함께 했다. 그 과정에서 이미 주요 시민사회단체들이 호흡을 맞춰왔기 때문에 의사결정도 가능했던 것 같다.

김주호 월요일에 그 주 사업계획이나 주요 기조 같은 것들을 짜서 화요일 운영위원회 회의에 가져가면 ‘너무 좋다’는 피드백은 받은 적이 없다. (웃음) 100여 명이 모인 비상행동 상황실에서 4개월 내내 격렬하게 토론하고 소리 질러가며 이견을 조율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이렇게 다르구나’, ‘이런 부분은 같구나’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최소 강령, 최대 연대’의 원칙을 가지고 합의해 나갔던 것 같다.

최보민 윗선에서는 많이 싸우셨겠지만(웃음) 실무 라인에서는 그냥 같이 고생한 사람들로 힘든 이 시간을 의지하며 잘 지냈다. 사실 시민운동을 하는 여러 단체를 이렇게 다양하게 한꺼번에 만날 기회가 많지 않은데 이번 광장에서 어떤 고민을 하는지, 어떻게 활동하는지 서로 알게 되고, 젊은 활동가 간 네트워크가 생기는 소중한 기회가 됐다.

김희순 감수성이 높아지는 계기가 됐다. 여러 단체가 모여있다 보니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비상행동은 활동 처음부터 혐오·차별 발언을 지양했는데, 발언 중 윤석열을 멧돼지에 비유한 부분이 ‘멧돼지의 동물권을 침해한 표현’이라고 하더라. 처음에는 선뜻 동의가 안 됐는데, 지금은 ‘당연히 그런 발언은 안 되지’를 배우게 됐다. ‘윤석열의 뇌내망상’에서 ‘망상’이라는 표현도 정신질환을 차별하는 표현일 수 있어서 쓰지 않게 됐다.

비상행동 상황실에서 회의 중인 참여연대 활동가들의 모습 ⓒ김서인

이번 광장에서는 시민들의 다양성이나 자발성이 빛났다.

김희순 남태령이나 한남동 집회는 시민들이 먼저 나선 집회였다. 윤석열 체포영장이 발부된 뒤 시민들이 광화문 집회 끝나고 한남동으로 먼저 갔고 비상행동이 따라 넘어갔다. 밤 10시에 집회를 끝내려고 하는데 시민들이 흩어지지 않는 거다. 긴급하게 밤샘 집회를 결정하고 2시간 단위로 사회자를 섭외하고, 공연자를 조직하며 집회를 이어갔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걱정이 컸는데 시민들이 보내준 은박담요, 난방버스, 푸드트럭 등이 속속 도착했다.

김주호 사실 한남동은 집회하기 좋은 장소가 아니다. 역에서도 멀고, 보수단체들이 상주하고 있어서 충돌할 위험도 크고, 화장실도 없다. 그런데 마침 인근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원에서 수도사님이 응원봉을 들고 나타나 화장실을 안내하고, 일신제강은 건물 1층에 미술품이 전시돼 있는데도 화장실을 개방했다.

이지현 12월 4일 처음 집회를 준비할 때 초와 종이컵 만개씩을 주문했다. 그러면서 ‘기후위기 시대에 이게 맞나, 양초 말고 LED 초를 준비해야 하나’ 논의를 했다. 그러고 집회를 하러 갔는데 뭔가 다른 물건이 있었다. ‘저게 뭐야’ 했는데 응원봉이었다. 12월 7일에 탄핵소추안이 1차 부결됐을 때도 기억난다. 이 낙담스런 분위기를 어떻게 수습하고 다시 다음주를 약속할 것인가 무대 근처에서 고민하고 있는데, 당시 무대팀이 갖고 있던 케이팝 리스트를 틀고 박민주 씨 같은 젊은 사회자가 구호를 외치면서 ‘낙담’, ‘수습’ 이런 단어가 무색해졌다. 이후 시민들에게 ‘집회 플레이리스트’를 모아달라고 했더니 2만여 개의 플레이리스트가 들어왔다. 이렇게 초반부터 ‘이 집회는 내가 참여하고 함께 만드는 집회’라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 같다.

최보민 시민 스스로 안전한 집회를 만들려는 노력이 있었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기까지 비상행동이 정식 발족하지 않던 여의도 집회 초창기에는 별도로 자원봉사자를 모집하지 않고 활동가들로만 운영했다. 인파가 너무 많이 몰리고 위험한 상황이 매우 많았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니 시민들이 ‘우측통행해 주세요’, ‘밀지 마세요’ ‘앞으로 가서 착석해 주세요’ 같은 말들을 하더라. 모두가 집회 스태프 같았는데 그 모습이 감격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태원 참사가 생각나서 슬프기도 했다.

아쉬운 점은 없었나?

김희순 언론대응팀에 있다 보니 더 크게 느꼈던 부분인데 집회 초반에 언론사 대부분이 20대 여성에 포커스를 맞추고 ‘20대 여성 누구 인터뷰할 사람 좀 알려달라’는 요청을 정말 많이 했다. ‘20대 여성의 응원봉 집회’라는 부분만 너무 부각되고 전체적인 그림이 잘 기록되지 않은 것 같아서 아쉽다. 어떻게 기록하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시민과 함께 고민하고 채워가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최보민 언론 보도와 관련해서 너무 ‘찬탄vs반탄’ 프레임으로 보도되는 것도 불편했다. 한쪽은 망가져 버린 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모인 사람들인데, 극우 세력을 지키기 위해 모여서 폭력적인 방식으로 힘을 행사하는 집회와 동등한 선상에서 보도하는 것이 온당한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런 보도 프레임이 ‘중도’에 서 있는 시민들에게 ‘양극단들만의 집회인가 보다’라고 생각하게 되고 ‘내가 가면 안 되는 곳’으로 인식하게 만들어 중간 지대를 지워버린 것은 아닌지 고민이 들었다.

이번 ‘광장’에 ‘비상행동’ 활동가로서 함께 한 경험이 각자에게 무엇을 남겼는지 궁금하다.

이지현 저에겐 용기를 줬다. 사실 ‘박근혜 퇴진 촛불’ 이후 문재인 정부를 지나면서 ‘시민운동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 같은 평가도 많았고 참여연대도 지난해 30주년을 치르면서 ‘앞으로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에 대해 2년간 논의했다. 운동 의제도 넓히고 새롭게 정비하자는 다짐 한편에는 ‘시민운동이 시민으로부터 외면받고 있지 않나’ 하는 내적인 자성이 컸다. 어렵게 운동하고 있었는데, 내란이 터지고 그동안 운동 영역에서 만나지 못했던, 만나기 어려웠던 세대와 시민들을 많이 만나게 됐다. 여전히 ‘우리가 이야기하고 지키려는 민주주의가 중요한 가치’라는 걸 느끼면서 용기가 생겼다. 청년 회원 수가 점차 줄다 보니 ‘더는 청년들을 만나기 어려운가’하는 고민이 많았는데 자신감이 생겼다.

최보민 ‘광장이 청년 세대에게도 안전한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걸 많이 느꼈다. ‘윤석열 물어가는 범청년행동’(현재 ‘불평등 물어가는 범청년행동’으로 전환하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등 청년 단위의 활동이 많이 도드라지기도 했고, 광장에 나온 시민들이 서로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청년들도 안전함을 느끼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관해서도 얘기하고 참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멀게는 2008년 광우병 촛불 집회부터 2016년의 박근혜 퇴진 촛불 광장, 2024년의 응원봉 광장까지 계속 열려온 광장의 끊임없는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할 텐데, 이번 광장에서 그 결과물을 확인한 것 같다.

김희순 이번 광장은 시민사회와 시민들이 서로 소통할 준비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실 2016년 박근혜 탄핵 집회만 해도 시민사회단체들이 말하면 ‘너희가 뭔데 우리를 대표해’ 같은 반응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 광장은 시민사회단체들도 ‘대표’를 자임하지 않고 집회 인프라를 만들고, 시민들은 그 인프라 속 내용을 굉장히 적극적으로 채워주셨던 것 같다. 시민사회가 먼저 ‘평등집회를 만들어야 한다’ 외친 게 아니라, 시민들이 요구했고, 시민사회는 8년 전보다 성숙하게 요구를 받아들이고 반영하는 노력이 서로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김주호 비상행동 상황실에서 함께 일한 100여 명이 넘는 동지들이 남았다. 사실 그때는 힘들고 미운 적도 많았다. (웃음) 이런 일이 또 생기면 안 되겠지만, 만약 생긴다면 다시 힘을 합쳐서 싸울 수 있는 활동가 동지들을 얻은 것이 뜻깊은 일이다.

집회 무대를 바라보고 있는 김주호 팀장 ⓒ김서인

윤석열 퇴진은 이뤄냈다. 윤석열 퇴진 이후 이뤄내야 할 사회대개혁 의제가 여러 가지다. 각자 딱 한 가지만 사회 개혁을 할 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김주호 지난 국회가 통과시켰다가 윤석열 정부의 거부권에 막혔던 법안들만이라도 꼭 통과되면 좋겠다. 전국의 수많은 청년이 전세사기를 당하고 사망 피해자만 7명인데 윤석열 정부는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에 대해 결국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때 정말 이 정부가 서민을 보호하거나 책임질 생각이 없다는 것에 분노했다. 이미 국회가 통과시켰다가 거부당한 법안부터 다시 제대로 처리해야 우리가 도출한 400여 개 사회대개혁 과제들도 논의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최보민 차별금지법 제정을 꼽고 싶다. 이번 광장에서 무지개 깃발이 정말 많았다. 무지개 깃발의 존재가 광장의 많은 사람들에게 ‘안전감’을 줬다. 개인이 든 깃발에 빚진 세상을 차별금지법이라는 제도로 갚아야 할 때다.

김희순 기후위기 대응이다. 이번에 10만 시민 서명을 전달하느라 5천 장의 종이를 썼다. 안전선을 치고 지나가는 통로를 만들고 하느라, 플라스틱 테이프도 몇 롤을 썼는지 모르겠다. 활동가들 중심으로 핫팩 사용을 줄이자는 제안도 있었고, 지퍼백에 넣어서 재활용하기도 했다. 이번 계엄 사태로 민주주의도 후퇴했지만, 기후위기도 훨씬 더 심각해졌다고 생각했다. 다 같이 나무 한 그루씩 심어서라도 우리가 찍은 탄소발자국을 줄이고 싶다.

이지현 하나만 해야 한다면 정치개혁을 꼽고 싶다. 혐오·차별 정치를 배격하고, 다양성이 보장되는 정치개혁이 돼야, 우리가 안고 있는 이 수 많은 과제를 해결할 토대가 마련될 것 같다.

2025년 3월 22일, 16차 범시민대행진에 참여한 참여연대 회원, 실행위원, 상근 활동가의 모습 ⓒ김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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