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25년 11-12월 2025-11-04   71019

[회원 인터뷰] 홀로 분노하던 청년, 동지를 만나다 – 신민규 회원

박효원 / 사진 박상환 작가

참여연대 신민규 회원(청년참여연대 운영위원장)의 사진.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박상환

청년 회원 부족을 고민하는 단체가 많다. 시민단체 회원 그래프들을 보면 대부분 30대 이하 연령대의 파이가 유난히 작고 뾰족하다. 청년 대상의 회원 활동을 열심히 만들어봐도 파이는 점점 작아지고 시민단체들의 고민도 점점 깊어진다. 왜 청년들은 시민단체를 찾지 않는 것일까? 이러다가 시민단체의 의제와 활동 방식도 조금씩 낡아져서 결국 도태되는 것 아닐까? 어떻게 하면 청년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을까?

질문은 난해하고 답은 까마득하다. 참여연대 역시 예외는 아니다. 또렷한 해법은 없지만, 마냥 청년들을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다. 청년들이 다가올 수 있도록 뭐라도 해야 한다. 이는 단지 ‘회원 확대’ 차원의 고민이 아니다. 사회를 바꾸려는 청년이 많아야 한다. 청년 스스로 사회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청년들이 원하는 세상을 이야기하면서 당당히 권리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꾸준히 나아갈 수 있다.

벌써 10년 전인 2015년, 청년참여연대(이하 청참)는 이런 문제의식을 안고 시작되었다. 청참은 참여연대의 하부조직이 아닌 부설기관이다. 청년들이 자체적으로 조직을 운영하고 사업을 기획해 진행한다는 뜻이다. 독자적인 창립선언문과 회칙도 있다. 창립선언문에는 청참이 꿈꾸는 공동체의 모습이 담겨있다. “청년들 스스로가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다양한 배움과 나눔의 공간을 준비해야 합니다. 파편화된 청년들을 연결하고 공감하며 함께 보듬는 청년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 아름다운 문장들은 신민규 회원의 이야기에 딱 들어맞는다. 3년 전의 그는 점점 심각해지는 디지털범죄에 홀로 분노하던, 그래서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보던 ‘쌈닭’이었다. 외롭고 힘들게 세상과 맞서던 그는 2022년 청참을 만나 ‘나 혼자가 아니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럿이 함께하니 ‘세상에 대한 분노’는 ‘세상을 바꾸는 즐거움’으로 바뀌었다.

이 기쁨 때문에 신민규 회원은 이듬해에도 청참 활동을 이어갔고 운영위원이 되었으며 2025년에는 운영위원장까지 맡았다. 중학교에서 시간강사로 역사를 가르치는 한편 교사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거기에 청참 캠페인에 운영위원장까지. 올해는 그에게도 청참에게도 참 분주한 시기, 변화를 준비하는 시기인 듯하다. 청참은 지난 10년간 청년들을,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꿨을까? 다음 10년은 어떤 길을 만들어야 할까? 신민규 회원을 만나 청참 활동 이야기, 사는 이야기를 나눴다.


청참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으셨나요?

2022년에 청참 활동을 시작했고, 참여연대 회원도 그때 가입했습니다. 시작한 계기는 카톡이었나 문자였나, 하여튼 청참 활동에 대한 메시지를 받았어요. 유튜브 감시단을 만들어 혐오 콘텐츠를 모니터링한다는 참여자 모집 공지였죠. 그 전에 가끔 참여연대에 일시후원을 한 적이 있어서, 그때 남긴 정보를 보고 보내신 것 같아요.

그런데 마침 제가 디지털범죄에 대해 혼자서 분노하던 때였거든요. 지인이 그런 사건을 겪어서 ‘유명인만이 아니라 일반인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았어요. 당시만 해도 제가 시민 저항에 대한 개념은 없었지만, 가만히 있기에는 너무 분노스러운 거예요. 유튜브를 운영하는 구글코리아에 연락도 해보고 정보공개청구도 해보고, 그렇게 혼자서 활동을 했죠. 그러던 차에 청참 캠페인을 만나니까 ‘나 혼자가 아니구나’ 싶더라고요.

그렇게 활동을 시작해서 2025년에는 청참 운영위원장까지 왔네요.

예. 2023년에도 혐오 콘텐츠 규제 촉구 캠페인을 계속했고, 그러면서 청참 운영위원도 되었어요. 운영위원장이 된 것은… 제가 요청에 그다지 저항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웃음) 사실 부담도 없지 않았어요. 졸업을 앞둔 시기라서 2024년에는 활동도 많이 못했거든요. 정기회의만 나가는 정도였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정도구나’ 싶어서 운영위원 역할도 내려놓을까 생각했어요. 그런 상황을 이야기했는데, 참여연대에서 “민규 님이 제일 출석률이 높으세요” 그러는 거예요. (웃음) 그래서 ‘이 정도로 활동하는 거라면 운영위원장 역할이 아주 무리되진 않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해보니까 실제로 그렇게 힘들진 않더라고요. 청참 운영위원장이자 캠페이너이고 또 학교 시간강사이면서 고시생으로 살았는데요. 이렇게 여러 가지를 했지만 잘 병행할 수 있었어요. 수면 시간은 조금 줄었지만요. 제가 너무 앞서 걱정하면서 과한 부담감을 느꼈나 봐요.

올해는 캠페이너로서도 다양한 활동을 하셨더라고요. 지난 6월에는 ‘민규따라 민주따라’라는 답사 프로그램을 직접 진행하셨네요.

아, 그 이름은 제가 정한 게 아니에요. 청참 회원들의 투표로 정한 것이라서 저는 수정 권한이 없었어요. (웃음) 청참의 캠페이너나 운영위원이 꽤 다양해졌거든요. 각자의 분야를 살려서 새로운 활동을 해보자는 논의가 있었어요. 저는 답사 프로그램을 맡았죠. 역사 이론에서는 사람들이 보통 150년 이전까지의 근현대사로부터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해요. 지금 시점에서 150년 전이면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권이 확장되던 시기예요. 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적 배경을 생각해보니 독립문부터 덕수궁까지의 코스가 되더라고요.

사실 저는 답사에 참여한 경험이 많아서 조금 쉽게 생각한 것 같아요. 막상 해보니까 답사 진행은 전혀 다른 일이더라고요. 게다가 이전까지 제가 참여했던 답사는 역사 전공자들이 5명 안팎으로 참여하는 행사인데, 이번 답사는 규모나 성격이 전혀 달랐죠. 그러다 보니 부끄러운 실수가 너무 많았어요. 행사를 마친 직후에는 다시는 못하겠다 싶었는데… 참여연대에서 북돋아 주시니까 마음이 조금씩 바뀌어서 이제는 답사를 다시 진행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웃음) 일단은 1986년 5월 3일 학생, 노동자, 시민 등이 국민헌법 제정 및 헌법제정민중회의 소집을 요구하며 민주화운동을 벌였던 인천을 생각하고 있고요. 수도권을 시작으로 점차 다양한 지역으로 가고 싶습니다.

근현대 민주정치 답사 〈민규따라 민주따라〉현장 사진. 독립문 앞에서 신민규 회원 및 참가자 10인이 단체 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모습.
2025.06.07. 근현대 민주정치 답사 〈민규따라 민주따라〉현장 사진 ⓒ김서인

얼마 전에는 청참에서 보드게임도 만들었다면서요. 회원님도 제작팀에 함께하셨고요. 9.27 기후정의행진에서 처음 공개했다고 들었습니다.

‘누가 좀 막아봐’라는 보드게임이고요. 기후위기와 주거권이라는 두 가지 의제를 동시에 다루는 게임이에요. 기후재난이 초래하는 주거 불안의 문제가 있잖아요. 예를 들어 에너지를 많이 소비한 국가 사람들은 좋은 주거를 누리기 때문에 재난을 피하고, 오히려 에어컨도 쓰지 않는 저개발국가 사람들이 열악한 집에 살면서 위기를 직격으로 맞죠. 이런 문제들을 다루고자 게임을 만들었어요.

게임 만드는 과정은 정말 어려웠어요. 완성본 제작까지의 과정이 10이라고 하면 그중 7~8은 기획이더라고요. 열심히 만든 기획을 묻었다가 살리고 다시 엎고, 그런 과정을 계속했죠. 기획이 자꾸 바뀌니까 디자인도 계속 바뀌고. 시안만 7번을 만들었는데, 괴로워하던 디자인 담당자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웃음) 제작비도 생각보다 많이 들고 게임 홍보도 그동안 해본 캠페인 홍보랑 달라서 너무 낯설고. 하여튼 다사다난했습니다.

참여연대 신민규 회원(청년참여연대 운영위원장)의 사진.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누가 좀 막아봐! – 기후위기 속 모두의 집〉구성품을 펼쳐서 설명하고 있다.
기후위기 속 모두의 집을 지키는 토론·협상형 보드게임 〈누가 좀 막아봐! – 기후위기 속 모두의 집〉을 소개하고 있는 신민규 회원(청년참여연대 운영위원장) ⓒ박상환
〈누가 좀 막아봐! – 기후위기 속 모두의 집〉구성품 사진
〈누가 좀 막아봐! – 기후위기 속 모두의 집〉구성품 사진 ⓒ권동원
2025. 9. 27. 신민규 회원과 14명의 청년 캠페이너들이 927 기후정의행진에서 부스 운영을 마친 뒤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2025. 9. 27. 15명의 청년 캠페이너들이 927 기후정의행진에서 부스 운영을 마친 뒤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청년참여연대

사명감이나 신념만으로는 그렇게 오래 활동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청참은 회원님에게 어떤 즐거움을 주었을까요?

맞아요. 신념만으로 참여할 수 있는 횟수는 4~5번을 넘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느낀 효능감과 즐거움이 상당했기 때문에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어요.

저는 청참 활동을 하면서 고립을 돌파했어요. 현실에 대한 분노와 스트레스가 쌓이는데, 저 혼자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었거든요. 그때의 저는 성질 고약한 쌈닭이었어요. 많이 공격적이었죠. 친구들에게 감사할 따름이에요. 그 친구들이 보살이고 예수죠. (웃음) 그러다가 청참에서 함께 활동하게 되니까 ‘원자화된 개인’을 넘어설 수 있더라고요. 아,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구나. 상당히 많았구나. 이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구나.

청참에서 배운 것도 참 많아요. 기자회견은 어떻게 하는지 또 집회 시위나 캠페인은 어떻게 하는지, 참여연대의 경험치를 전수받아 그 인프라를 누린 셈이죠. 제 일상에서도 더 효과적으로 사회 이슈를 이야기하게 되었어요. 저항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을 바꾸기 위한 활동이잖아요. 그러려면 분노만 드러내는 게 아니라 더 전략적으로 행동해야죠.

올해로 청참이 창립 10주년을 맞았습니다.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할지 고민이 많을 시기예요.

처음엔 모든 게 다 새롭잖아요. 하지만 10년이면 정착이 완료된 시간이죠. 언제까지 ‘청년’이라는 참신함으로 버틸 수 있겠어요. (웃음) 지금껏 경험이 쌓였으니까 새로운 물줄기를 만들 때가 됐어요. 그동안 청참이 여러 의제를 다뤘는데, 이런 의제들을 융합하자는 의견도 있고 의제를 더 깊이 파고들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또 청참의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이 있어요. 청년 의제를 발굴하는 공간이 되어야 할지, 아니면 (꼭 청년 의제를 다루지 않더라도) 청년이 함께 모여 얘기하는 공간이 되어야 할지, 그런 이야기를 얼마 전에도 운영위원들과 나눴어요.

참여연대는 2030세대의 회원 비중이 작다 보니 청참 활동이 더 귀하게 느껴집니다. 어떻게 하면 청년 회원들을 늘릴 수 있을까요?

참여연대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전반적인 사회운동에서 청년의 비율이 낮죠. 이유는 여러 가지라고 생각해요. 우선 청년들이 고립되어 있어요. 자기 영역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고 벗어날 수도 없으니까 세상에 무관심해지는 거예요. 게다가 청년들은 사회운동의 성공을 경험하지 못했어요. 이전 세대는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성과가 있죠. 지금 청년들에겐 구심점이 될 만한 사건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 탈정치화되죠. 그런데 사실 ‘탈정치’를 말하는 청년들이 누구보다 정치적이에요. 악성 인터넷 공간에서 (혐오 차별을 확산하는 등의) 정치활동을 열심히 하거든요.

상황은 어렵지만, 그렇다고 사회운동이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더 조직적으로 청년에게 다가설 방법을 고민해야 해요. 지금도 열심히 하지만 그보다 더 깊게 들어가야 한다는 거죠. 당장 고시촌에 가보면 사회문제를 피부로 느끼는 청년들이 많아요. 저마다 불만을 얘기하는데 그 골목을 벗어나지 못해요. 분노의 방향은 결국 악성 인터넷 공간으로 향하고요. 그렇게 빠지기 전에 시민단체가 먼저 다가서야 해요. 물론 품이나 비용이 상당히 들겠죠. 그래도 ‘이런 활동도 있다’고 청년들에게 알려줘야 해요. 시민단체가 먼저 다가오길 바라는 청년도 사실 많아요.

어려운 과제를 던져주시네요. 인터뷰를 마치기 전에 회원님 삶에 대해서도 조금 이야기 나눠볼게요. 역사를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았는데, 어떻게 선택한 길인가요?

어릴 때부터 사회 과목을 좋아했어요. 사회과부도 책을 재미있게 읽는 별종이었죠. 그중에서도 역사가 참 재미있었어요. 우리 사회의 정서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 연대기가 궁금하더라고요. 예를 들면 ‘왜 할아버지는 일본을 그렇게 싫어하나’ 그런 것들이요. 그리고 남에게 설명하는 것도 좋아했어요.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요. 시험 기간에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서로 잘하는 과목을 가르쳐줬는데, 그때도 저는 자연스럽게 역사를 담당했어요.

그래서 역사교육을 전공했고, 졸업하고는 얼마 전까지 중학교에서 시간강사도 했는데요. 중학교는 지루할 틈이 없어요. 늘 우당탕탕이거든요. (웃음) 수업 시간에 자는 학생들도 있지만, 역사에 관심 두는 학생들도 있어서 은근히 질문이 많이 들어와요. ‘내 직업이 사람들의 의문을 해소하는 자리구나’ 싶어서, 그 효능감도 커요. 그래서 지금은 정규교사가 되고자 임용고시에 집중하기 위해서 시간강사 일을 중단한 상태입니다.

‘청년의 극우화’가 이슈인데, 청소년의 상황이 더 심각하다는 우려가 많이 들려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민주주의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고, ‘그런 계몽적인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반론도 있어요.

교육도 해야죠. 교사가 더 열심히 설득해야 하고요. 학생들이 (“교사가 사상을 강요한다”고 민원을 넣어서) 신고하는 상황도 감수해야 해요. 특히 사회 과목에서는 그런 위험이 크고, 저도 정규교사가 되어 현대사를 가르치면 그런 상황을 피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에게 두려움이 없다면 거짓말이죠. 그래도 더 철저히 교육해야 해요.

그런데 학교에서의 교육만으로는 안 됩니다. 청소년의 극우화는 범사회적 문제예요. 그렇기 때문에 학교를 넘어서 범사회적인 교육이 필요해요. 교사가 몇 시간을 붙들고 “남을 혐오하면 안 된다”고 아무리 가르쳐도, 사이버렉카가 올린 영상을 30초 보면 다시 무너지거든요. 집에서 거리에서 공공장소에서 전인격적 교육이 되지 않으면 결국 극우화의 꼬리만 쫓아다니는 셈이에요.

참여연대 신민규 회원(청년참여연대 운영위원장)의 사진.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참여사회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신민규 회원(청년참여연대 운영위원장) ⓒ박상환

들을수록 가슴이 답답하네요. 그래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인 것 같아요. 학교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각자 몫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마지막 순서로, 회원인터뷰의 공식 질문을 드립니다. 나에게 참여연대란? 그리고 청참이란?

먼저 참여연대란 ‘원자화되어있던 나를 사회운동을 하는 한 명의 온전한 시민으로 만들어준 공간’이고요. 그리고 청참이란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 연대할 사람을 만나서 나를 확장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준 공간’입니다. 이 인터뷰를 읽는 청년들에게도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생각보다 활동이 무겁지 않다고, 부담스러워하지 말고 한번 와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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