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26년 01-02월 2025-12-31   69158

[오늘하루 지구생각] 새해엔 다른 이야기가 필요해

나뭇가지를 쥐고 선 왕부리새의 모습을 그린 일러스트.
왕부리새 ⓒ일러스트 최원형

세밑 즈음, 가슴이 미어지는 사진을 한 장을 만났다. 사진은 온몸이 눈투성이인 채로 반쯤 눈 속에 파묻힌 새끼 펭귄들의 사체를 담고 있었다. 몇 번을 외면한 끝에서야 용기를 내어 사진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남극 로스해에 있는 쿨먼섬은 황제펭귄의 주요 서식지로 그 일대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쿨먼섬에서 2024년 황제펭귄의 새끼는 대략 2만 1,000마리가 서식했는데 2025년에 약 6,700마리로 급감했다. 과학자들은 이 죽음의 원인을 굶주림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런 추정을 가능케 하는 단서가 붕괴된 빙붕1이었다.

엄마 펭귄은 6월경 번식지에서 산란을 한 뒤, 아빠 펭귄에게 알을 맡기고 떠난다. 새끼가 부화하면 아빠 펭귄은 뱃속에 저장해둔 영양분으로 펭귄 밀크를 만들어 새끼에게 먹이며 엄마 펭귄이 돌아올 때까지 돌본다. 엄마 펭귄은 7월 말에서 8월 초에 돌아와 아빠 펭귄과 바톤 터치를 해야 했으나 때가 되어도 돌아오지 못 했다. 쿨먼섬 황제펭귄 번식지와 바다를 잇는 주요 출입구를 길이 약 14km, 축구장 5,000개 넓이의 빙산이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참고로 기온 상승이 가속화되면서 빙붕에서 빙산이 떨어져나오는 빈도가 늘고 있어 향후 이런 비극은 반복될 수도 있다. 아빠 펭귄은 두 달 이상 굶주린 끝에 더는 버티지 못하고 먹이를 구하러 떠났고 새끼들은 버려졌다는 추론이다.

눈을 꼭 감고 잠자듯 눈밭에 있던 새끼 펭귄들의 사체 사진은 그래서 더없이 애달팠다. 막힌 출구 쪽에는 수십에서 수백 마리 엄마 펭귄과 그들의 배설물이 확인됐다. 본능이 이끄는 곳으로 가지 못 한 채 발이 묶이며 막막했을 그들의 고통이 읽혔다.

작년 11월 중순부터 2주 동안 브라질 벨렝에서 제30차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가 열렸다. 벨렝은 과마강이 대서양과 만나는 삼각주에 위치한 브라질 북부 항구도시다. 파리협약이 통과된 지 10년이 되는 해에 열리는 기후총회를 아마존의 중심도시 벨렝에서 여는 것에는 여러 함의가 있었다. 과거 제국주의 시절 유럽이 아마존 삼각주에 설립한 첫 식민지였고 한때 설탕과 고무 산업의 중심지였다. 모두 식민지의 대표적인 플랜테이션 산업이다. 거기다 현재진행형으로 가장 거대한 삼림 파괴가 벌어지는 곳이 아마존이다. 이런 역사적인 맥락과 상징성으로 볼 때 벨렝에서 열린 30차 총회에 거는 인류의 기대는 각별했다고 할 수 있다. 2024년에 파리협약 이행규칙이 마무리되었으므로, 벨렝 회의에서는 그동안 약속했던 정책을 이행할 화석연료 전환 로드맵, 삼림 파괴 중단 로드맵에 대한 합의를 끌어내야 했다. 재생에너지 전환 등 산업 부문의 급변에 따른 노동자의 고용 보장, 지역사회 피해 등을 줄이기 위한 정의로운 전환 메커니즘 그리고 저개발국가를 지원할 기후 재원 목표를 확대 수립하는데 합의가 도출되길 기대했다.

국제회의가 기대에 부응하는 결과를 도출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같은 지정학적인 긴장에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고강도 관세조치, 유럽의 재무장 등 기후 문제를 중요한 사안으로 다루기에 국제 정세는 더욱 복잡다단해졌다고 소위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런데 국제 정세가 복잡다단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나? 매번 실망스러운 결과를 끌어내는 건 복잡하고 질서 없는 국제 정세가 아니라 자본의 이윤 아닌가? 화석연료 전환에 동의하지 않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그리고 러시아 등의 반대와 1,600여 명의 화석연료 로비스트와 300명이 넘는 거대 농축산업 로비스트들이 대거 참석하면서 최종 결정문에 화석연료 전환과 삼림파괴 중단 로드맵은 포함되지 못했다.

반면 아마존 삼림 파괴의 직접 당사자인 아마존 선주민들의 참여는 회의장 입구에서 막혔다. 회의장 바깥에서는 아마존 선주민들이 “우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달라”며 산림 벌채로 아마존이 파괴되는 실상을 알리고 있었다. 미래 세대의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브라질, 탄자니아, 솔로몬제도 등 세계 각국에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모였다. 13살 선주민 출신 소년은 “가뭄으로 강 수위가 낮아져 배를 탈 수가 없어 학교엘 가지 못했”다고 호소했고, 10살 소녀는 “어머니가 나무 열매로 전통 장신구를 만들어 파는데 가뭄으로 숲에 있던 나무가 말라 장신구를 만들 수 없게 됐”다고 했다. 남극에 사는 새끼 펭귄들은 하소연 한 마디 없이 굶주림에 스러졌으나 그래도 선주민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항변할 기회라도 있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마존을 지구의 허파라고 표현하는 것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거대한 숲이 품고 있는 수많은 생명과 거기 깃들어 사는 인간을 포함한 더 많은 생명을 생각한다면 산소발생기 같은 표현은 너무나 인간 중심적이고 협소한 해석이 아닐 수 없다. 아직 우리가 다 헤아릴 수 없으리만치 많은 생명이 살아 숨 쉬고 있는 아마존을 누구의 권리로 파괴를 일삼고 있는 건가? 아마존의 삼림파괴는 왜 그리고 무엇 때문에 벌어지는지 구체적으로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고기 메뉴 없는 식당을 찾기가 어려운 것과 아마존 삼림 파괴 사이에 놓인 관계에 대해 고찰해 봐야 하지 않을까? 남극의 빙붕이 무너져 내리면서 새끼 펭귄의 생존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것과 과시적인 소비 사이에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새해엔 좀 다른 이야기가 필요할 것 같다.

2025년 10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IDGs 서밋이 열렸다. IDGs는 SDGs로 알려진 지속가능발전목표의 대안으로 제시된 개념으로 내면개발목표Inner Development Goals의 약자다. 내면의 변화 없이 사회 변화가 가능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에서 도출된 개념으로 보면 된다. IDGs는 지금까지 SDGs의 한계를 넘어서 인간의 내면을 중심에 놓고 우리 인류가 봉착한 갈등과 양극화를 비롯한 다양한 고통을 풀어보자는 취지다.

‘나’라는 한 점과 아마존 어느 숲에 살고 있을 ‘왕부리새’라는 한 점을 잇는 한 해를 소망한다. 점과 점이 만나 이루는 선, 선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얼마나 많은 면들이 생길까? 수많은 면이 만나 이루는 공간 속에서 아마존강을 헤엄치는 물고기와 비정규직 노동자와 내가 함께 공명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이러한 공간 속에서 내면의 힘은 절로 튼실해지지 않을런지.

  1. 남극 대륙에서 빙하를 타고 흘러 내려와 바다 위에 떠 있는 거대한 얼음 덩어리 ↩︎

최원형 환경생태작가의 프로필 사진.

최원형 환경생태작가

큰유리새의 아름다운 새소리를 다음 세대도 들을 수 있는 온전한 생태 환경을 바란다.
《세상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착한 소비는 없다》, 《사계절 기억책》 등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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