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26년 03-04월 2026-03-03   1569133

[회원 인터뷰]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 – 황온선 회원

박효원 / 사진 차종관 공익저널 기자, 권동원 참여연대 미디어홍보팀 활동가

황온선 참여연대 회원의 사진.
ⓒ차종관

참여연대는 회원들을 가만 내버려두지 않는다. 이 글을 읽는 참여연대 회원이라면 아마도 가입한 지 한 달 안에 감사편지를 우편으로 받아보았을 것이다. 안내 팸플릿, 활동보고서 등 참여연대의 사업을 알리는 자료들도 함께 받았을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가입하고 1000일이 될 때, 10년을 맞고 20년, 30년을 맞을 때도 감사의 뜻을 담은 엽서와 기념품이 회원들을 찾아간다. 시민운동은 결국 뜻을 함께할 사람들을 조직하는 일이기에,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관계 맺으며 운동을 넓히기 위해서 참여연대는 꾸준히 회원들에게 말을 건다.

이렇게 회원들에게 보내는 편지와 선물 뒤에는 자원활동가 황온선 회원이 있다. 그는 한 달에 한 번 참여연대 회의실에 앉아 엽서와 홍보물, 기념품 등을 봉투에 넣고 봉한다. 그리고는 명단에 맞춰 봉투에 송장까지 붙여야 발송 가능한 우편물 1개가 완성된다. 얼핏 생각하면 쉬워 보여도 우편물 숫자가 많아지고 발송 대상과 내용물의 종류가 다양해지면 이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매달 적어도 100건, 많을 때는 200건에 가까운 감사편지와 엽서가 나가는데, 모두 황온선 회원의 손길을 거쳐야 회원들을 제대로 찾아갈 수 있다.

이 일을 벌써 10년째 해온 황온선 회원은 자신의 활동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별 대단할 것도 없는데 왜 인터뷰까지 하는지도 연신 궁금해했다. 하긴 그의 말대로 우편 발송이란 게 고도의 지식과 기술이 필요한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다들 스스로 빛나고 싶어서 앞으로 나서는데 빛나지 않는 뒤편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다. 10년을 이어온 그의 활동이 없었다면 참여연대가 회원에게 반갑게 인사 건네는 일이 분명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을 것이다.

황온선 회원은 인터뷰 내내 담담한 말투와 표정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자원활동을 시작했는데 어느새 10년을 맞았다고 했다. 다른 회원들에게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에게는 “필요한 자원활동을 구체적으로 요청하라”고 했다. 기꺼이 함께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마음을 믿고 먼저 손을 내밀라는 것이다. 한결같이 참여연대와 회원들 사이를 이어준, 참 꾸준한 사람 황온선 회원을 만나 10년간의 자원활동 이야기를 나눴다.


참여연대에 가입한 바로 다음 해부터 자원활동을 시작하셨어요. 어떤 계기였나요?

2015년 가을인가 겨울 즈음에 회원이 되었으니까 가입하고 몇 달 뒤부터 자원활동을 시작했네요. 그때 제가 막 회원이 되어서 참여연대 홈페이지도 들어가 보고 관심이 많았거든요. 그러다가 자원활동가를 모집한다는 공지를 본 거예요. 마침 애들을 다 키웠을 무렵이니까 시기가 딱 잘 맞았죠. 제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세상을 위한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은 사실 예전부터 있었어요. 남편한테 ‘시민단체 청소라도 해 볼까’ 그런 얘기도 한 적이 있고요.

그리고 모집하는 활동이 ‘우편 발송’이라는 점도 좋았어요. 너무 복잡한 일은 못 할 것 같았거든요. 우편 발송은 누구나 할 수 있고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 할 수 있는 일이에요. 그런데 많은 사람이 하기 싫어하는 일이기도 하죠. 지루하잖아요. 빛이 나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 점이 오히려 더 좋으셨나 봐요

더 젊었다면 저도 빛나고 싶어서 욕심이 났을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마음가짐이 달라요. 자원활동을 처음 할 때가 제 나이가 50대 초반이었고 지금은 60대 초반이거든요. 이제는 나를 남기지 않아야겠다 싶어요. 가장 아름다운 건 흔적 없이 사라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람들이 제 노력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야 있죠. 그런데 참여연대 활동가들이 충분히 알아주거든요. 맨날 고마워해요. 얼마나 고마워하는지는 그냥 얼굴만 봐도 알아요. 게다가 “선생님이 없으면 어떡해요. 앞으로도 오래오래 해주세요” 그렇게 말도 해주시고요.

어떤 우편물을 어떻게 발송하는지, 회원님이 하시는 일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우편을 보내는 대상은 일단 신입회원이 있고요. 또 그 뒤로는 1000일, 10년, 20년, 그리고 작년부터 30년 회원이 생겼죠. 참여연대가 30주년이 되었으니까요. 신입회원에게는 함께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편지를 보내고요. 또 장기 회원들에게는 오랫동안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셔서 감사하다고 엽서와 기념품을 보내요. 저는 준비된 내용물을 담고 포장한 뒤에 명단대로 송장을 붙이는 일을 합니다. 그 뒤에 택배기사님에게 전달하거나 우체국에 가서 부치는 일은 담당 활동가의 몫이고요.

예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한 적도 있고 요즘은 물량을 모아서 한 달에 한 번씩 발송하는데요. 보통 3~4시간 정도는 걸려요. 일은 혼자서 하지만 심심할 틈은 없습니다. 작업량이 꽤 되거든요. 회원 가입이 많으면 양이 더 늘어나고요. 아무래도 신입회원에게 보내는 우편이 제일 많은데, 대략 100건에서 어떨 때는 200건 정도가 돼요. 탄핵 같은 큰 사회적 이슈가 있다든지 누가 참여연대 앞에 와서 (활동가들을 위협하는 등의) 못된 짓을 한다든지 그럴 때 회원이 크게 늘어요. 일해보니까 상대적으로 민주적인 정부에서 별일이 없으면 회원이 많이 안 늘더라고요. (웃음)

황온선 회원이 자원활동으로 참여연대 회원 대상 감사엽서에 회원들의 이름을 적고 있다.
ⓒ차종관, 권동원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셨지만, 100건이 넘는 우편을 발송하는 게 만만치 않잖아요. 저처럼 덤벙대는 사람이라면 우당탕탕 하다가 분명히 사고를 칠 거예요.

저도 많이 헤맸어요. 해놓고 보니 넣어야 할 물건을 빼먹어서 봉투들을 다시 열었다 붙이기도 했고, 송장을 잘못 붙여서 조심조심 뗀 적도 있고요. 초기에는 더 어려웠어요. 그땐 (송장 용지에 명단을 출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손으로 주소를 쓰고 우표를 붙여서 작업했거든요. 당시엔 자신이 모았던 우표를 기증해 주시는 회원님들도 있었어요. 옛날 기념 우표 같은 걸 보내주시면 우편 요금에 맞춰서 우표를 붙였죠. 그래도 다행히 그동안 큰 사고는 없었어요. 제 성격이 꼼꼼한 편이기도 하고 또 혹시나 참여연대에 폐를 끼칠까 봐 신경을 많이 썼어요. 만일 큰 사고가 났으면 제 멘탈에 미안해서 일을 그만뒀을지도 모르겠네요.

이제는 저도 요령이 생겼고 참여연대의 업무 방식도 체계화되었습니다. 기념품도 좋아졌고요. 처음에는 기념품을 정해놓지 않고 그냥 있는 대로 물건을 보냈어요. 사무실에 있는 책갈피도 보내고, 어딘가에서 기부받은 물건도 보내고. ‘참여연대가 정말 가난하구나’ 생각했죠. (웃음)

우편이라는 게 이제는 굉장히 아날로그한 방식이에요. 뭐든 디지털로 오가는 시대니까요. 편지는 메일로 보내고 선물은 기프티콘으로 보내고요.

우편은 대신 인간적이죠. 이 첨단의 시대에도 사람들은 다이어리에 손으로 일정을 적고 심지어 예쁘게 꾸미기까지 하잖아요. 그런 데서 오는 포기하지 못하는 즐거움이 있다고 생각해요.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저는 그런 게 좋더라고요. 그런데 일하는 사람에겐 쉬운 게 아니긴 해요. 아직도 감사엽서 보낼 때 회원들 이름은 손으로 쓰거든요. 겨우 이름 석 자 같아 보이지만 이게 보통 일이 아니에요.

황온선 회원이 자원활동으로 참여연대 회원 대상 감사엽서에 회원들의 이름을 적고 있다.
ⓒ차종관, 권동원
ⓒ차종관, 권동원

그렇게 보낸 우편이 반송되면 참 슬프겠어요.

맞아요. 주소 변동을 계속 확인해도 반송이 꽤 많아요. 이사 갔다고 해서 시민단체에 등록된 주소를 바꾸는 경우는 잘 없으니까요. 이해는 하지만 정성스럽게 보낸 우편이 되돌아오면 마음이 아파요.

이 글을 읽는 회원님들 중에 ‘내가 참여연대 회원 가입 이후에 이사를 갔다’ 하시는 분 있다면 지금 바로 주소를 꼭 바꿔주세요! (웃음) 2020년에도 미니 인터뷰를 하셨죠. 그때 “세상을 바꾸는 데 벽돌도 아니고 종이 한 장만큼의 도움이라도 되고 싶은데, 그만큼의 비겁함을 덜고 가는 것이 자원 활동의 보람”이라고 말씀하셨어요. 혹시 스스로 ‘비겁하다’는 마음을 가지셨나요?

제가 386세대다 보니 아무래도 사회에 대한 부채감이 있었죠. 사는 게 바빠서 혹은 현재 상황이 충분치 않아서 ‘나중에 하자’고 하는 건데 마음 한편으로 찝찝하거든요. 지금 하는 자원활동도 어떻게 보면 제 부채감을 털기 위해 이기적으로, 나 좋자고 하는 일일 지도 몰라요. 그래도 자원활동을 마치고 나면 ‘참여연대 활동가들이 다른 일을 더 할 수 있게 시간을 확보하겠구나’ 싶어서 그게 좋아요.

아무리 좋은 활동이라도 10년이나 지속한다는 게 쉽지는 않잖아요.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었을까요?

없어요. 굳이 말하자면 ‘내가 하는 일이 도움이 되나? 정말 필요한가?’ 그런 생각을 할 땐 있네요. 우편 발송이라는 일의 속성이 그렇잖아요. 안 하려면 얼마든지 안 할 수도 있고, 자원활동이 아닌 방식으로 처리할 수도 있고, 또 기술이 점점 발달하니까 사람이 안 하는 방식으로 바뀔 수도 있고요. 그런데 ‘이 일이 필요하지 않으면 그때 얘기하겠지’ 싶어서 미리 걱정하진 않아요. 설마 참여연대가 저의 보람을 위해서 이 자리를 보전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웃음)

혹시 참여연대에 ‘이런 자원활동도 만들어보자’고 제안하고 싶으신 게 있으실까요?

없어요. 오히려 제가 되묻고 싶어요. “자원활동이 정말 필요해요? 어떤 활동이 필요해요?” 이렇게요. 사실 단체 바깥에서 보는 사람들은 뭘 해야 할지 몰라요. 보통 자원활동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일들은 ‘봉사’잖아요. 아이들이나 어르신을 돌보고 반찬을 배달하고 연탄을 나르고. 그런데 시민단체 자원활동은 뭘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혀요. 안에 계신 분들이 연구하고 고민해서 “이런 일이 필요하다”고 얘기해야지, 회원이 뭘 시켜달라고 하긴 어렵죠.

참여연대뿐만 아니라 여러 시민단체에 해당하는 이야기네요. 그런데 단체로서는 회원들에게 그런 요청을 드리는 게 쉽지 않아요. 이미 회비로 후원해주시는데 시간과 노력까지 내어주십사 말씀드리기가 조심스럽잖아요. 부담스러워하실 수도 있고요.

그럴 거 같아요. 그런데 사실 회원들도 자원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일단 돈을 내어주는 것도 굉장한 정성인데, 그런 애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원활동에 함께할 마음도 충분히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뭐든 함께 하고는 싶은데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몰라서 못 하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회원들과 시민들의 마음을 믿고 단체가 더 용감하게 다가가야겠습니다. 이번에는 시민들에게도 조언을 부탁드려요. 시민단체 자원활동을 망설이시는 분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음… 그냥 하시면 돼요.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안 하면 되잖아요. (웃음) 시민단체 자원활동은 시작하기 전에 자기검열부터 하게 되더라고요. 아무래도 시민단체 일이니까 역량도 좀 필요할 것 같고, 정치적으로 입장이 더 선명해야 할 것 같고. 시민단체라고 하면 여전히 ‘강성’ 느낌이 강하잖아요. 신념이 확고한 사람들 사이에 꼈다가 말 한마디 잘못하면 (정치적으로 비판을 받아서) 탈탈 털리지 않을까 싶은, 물론 실제로는 활동가들이 그렇게 저를 몰아세우지 않을 걸 알지만, 그래도 두려운 마음이 들거든요. 그러다 보니 ‘과연 내가 그 정도가 될까’ 겁이 나는 거죠. 그런데 ‘할까 말까 할 때는 하는 게 맞다’는 말이 있잖아요. 마음이 아주 없으면 어쩔 수 없지만 그게 아니라면 하면서 뭐든 답이 나오겠죠. 너무 거창하게 의미를 두면 이 일 못 해요. 그냥 좀 더 가볍게 시작하면 좋겠어요.

2015년에 참여연대에 회원으로 가입하셨어요. 작년에 벌써 10년지기가 되셨는데요. 회원님이 받을 10년지기 선물을 직접 포장하신 건 아니죠? (웃음)

설마 제가 저한테 보냈겠어요? (웃음) 제 거는 따로 빼서 다른 분이 포장해서 보내주셨어요. 매번 다른 회원들에게 보내기만 하다가 이번에 받은 사람이 되니까 느낌이 또 다르더라고요. 10년을 함께한 저 자신이 기특하기도 하고요.

당시에 참여연대에 가입한 계기는 뭘까요?

2014년에 세월호 참사가 있었죠. 그해에는 우느라 1년을 보냈고 다음 해인 2015년에 참여연대에 가입했어요.

많은 사람이 애도하고 저항하면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세월호 참사를 겪어냈죠. 그렇다고 그 마음이 모두 참여연대 가입으로 연결되지 않았는데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슬픔이 왜 참여연대 가입으로 이어졌을까, 저도 이번에 다시 생각해 봤어요. 그때 저는 ‘국가가 뭘까’ 이 간단한 질문을 정말 진지하게 파고들었어요. 왜 이 국가가 이렇게 되었을까 생각을 깊게 해봤죠. 그런데 제 안의 ‘영웅주의’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사고가 문제였던 것 같아요.

그전까지 저는 대단한 누군가가 (사회의 리더로)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투표로 좋은 대통령을 뽑으려고 하고, 그러다가 선거 결과가 잘 안 나오면 좌절했어요. 그런데 세월호 참사를 겪고 보니 ‘세상은 어떤 영웅의 결단이나 선의로 바뀌지 않는구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내린 제 결론은 ‘시민운동’이었어요. 세상을 바꾸는 것은 시민운동이니까 저도 시민단체에 후원해야겠다 생각했죠. 그중에서도 참여연대는 특히 다른 도움 없이 시민의 힘으로 굴러가는 단체라는 점에서 좋았고요.

10년 넘게 꾸준히 회원이자 자원활동가로서 참여연대를 지켜보셨어요. 그동안 시민단체의 역할이나 위상도 많이 달라졌는데요. 혹시 더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세상이 많이 바뀌었죠. 사람들이 의지할 데가 참여연대밖에 없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의 소통 방식도 바뀌었잖아요. 세상이 변하는데 참여연대도 그에 맞춰 달라져야겠죠. 쉽진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참여연대 활동가들 보면 참 대단하다 싶어요. 여기가 돈을 그렇게 많이 주는 직장도 아니고 사안에 따라서 외부에 욕을 먹기도 하고, 그런데도 꿋꿋하게 활동하시잖아요. 오래오래 지치지 않았으면, 참여연대가 계속 유지되면 좋겠어요. 30년, 40년이 지나도 지금처럼 참여연대가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회원인터뷰의 공식 질문입니다. 나에게 참여연대란?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요. 참여연대는 비상금 같아요. 생각하면 흐뭇하고 든든하잖아요. 사실 평소에는 비상금의 소중함을 잘 모를 수도 있죠. 비상할 때만 필요한 게 비상금이니까요. (웃음) 하지만 당장 쓰지 않아도 비상금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든든하고, 그래서 다 써 버리면 안 되는 게 비상금이잖아요. 우리 사회에서 참여연대가 그런 존재 같아요.

ⓒ차종관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