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에너지고속도로, 에너지 민주주의로 가는 길이 되려면

사실 ‘에너지고속도로’는 적절한 명칭이 아니다. 이재명 정부 초기에는 주로 호남과 서남해안의 해상풍력에서 생산될 전기를 주요 수요처인 수도권으로 이송하기 위한 해저와 육상 고압 송전선로 구축을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개념도를 제시하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논란과 비판이 일자 이재명 대통령 스스로도 2025년 7월 31일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에너지고속도로는 서울로 가는 뻥 뚫린 길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촘촘하게 연결하는 첨단 전력망”이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에너지고속도로가 “수도권 일극주의로 불리는 불균형 성장전략이라는 오해가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요즘엔 고속도로가 꼭 서울로 가지 않는다”고 부연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이 말로 오해가 다 풀린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남한에 고속도로가 그렇게 많이 뚫렸지만 이 고속도로는 결국 서울을 향하고, 수도권 일극주의를 강화하고 있으니 비유가 아주 맞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대용량의 송전선로 한 두 개가 중요한 게 아니라 촘촘한 첨단 전력망이 필요하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니까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에너지고속도로’가 아니라 다양한 규모와 연결망을 갖는 에너지 국도와 에너지 저수지 네트워크다. 특히 간헐적이고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와 연계되는 에너지 저장장치ESS와 에너지 수급을 실시간으로 조절할 수 있는 기술과 제도의 조합이다.
기술: 대규모 송전탑이 아닌 맞춤한 전력 수급을 달성할 대안들
기술적 대안을 이야기하려면 우선 총 전력 생산량과 총 발전 설비용량보다 전력이 필요한 시간과 지역에 맞춤하게 전력을 생산하고 공급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확인해야 한다. 현재 한국의 총 발전 설비용량, 즉 석탄화력발전, 가스복합발전, 핵발전, 태양광, 풍력, 수력 등 모든 발전소의 설비 용량은 합치면 150GW쯤 된다. 즉 이론상으로 모든 발전기가 동시에 100% 가동된다면 150GW의 전기가 생산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중에는 고장 난 발전기도 있고 정기적 예방정비에 들어간 발전기도 있고, 구름이 낀 시간의 태양광과 바람이 불지 않는 시간의 풍력발전기도 있다. 그런데 전력 수요도 계절과 요일과 시간에 따라 크게 변동한다. 특히 태양광 발전량이 많은 봄가을의 휴일에는 전력 수요가 40GW밖에 안 되는 날도 많다. 이 때에 경직적인 핵발전이 30GW를 생산하고 태양광이 20GW를 생산하게 된다면 순간적으로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져서 전력망에 큰 충격이 가해져서 대정전이 올 수도 있다. 그러니까 전력 생산량을 늘리는 것보다 실시간의 전력 생산과 수요를 맞추는 것이 점점 중요해지는 것이다.
때문에 핵발전과 석탄발전 같은 출력 조절이 어렵고 느린 발전기를 줄이고 ESS 같은 백업 장치와 연결된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게 시스템에서는 핵심적 해법이다. 그리고 시간별 계절별로 차등 요금을 부과하여 피크 시간대의 소비를 줄이는 것도 필요하다. 정부는 차등 요금제라고 하면 발전 시설이 있는 지역의 전기 요금을 싸게 하는 것만 이야기하는데, 수도권과 피크 시간에는 더 비싸진다는 사실을 분명히 전달해야 한다. ‘전기차 역전송’의 잠재력도 크다. 전기차는 그 자체로 움직이는 배터리이기 때문에 이 배터리에 저장된 전기를 피크 시간에 전력망에 거꾸로 흘리면 ESS 기능을 할 수 있다.
이른바 ‘지산지소’ 에너지 계획도 필요하다. 전기를 많이 소비하는 데이터센터와 같은 설비는 전력 생산량이 많고 송전선로를 추가로 필요로 하지 않는 지역으로 분산시키면 된다. 반도체 생산단지도 규모를 줄여서 지역으로 나눠 배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대안들은 기술적으로 가능하지만, 사회적 합의와 연습이 필요하다. 과연 데이터센터가 기업들이 요구하는 만큼 필요한지를 토론하고 전력 수급을 이야기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싱가포르는 2019년에 새로운 데이터센터 건설 모라토리엄을 선언했고, 2023년에 친환경 에너지 옵션을 사용하는 운영자에게만 신규 건설을 허용하기로 했다. 신기술을 성장 동력으로 추앙하고 무조건 허용하는 대신 ‘잠깐 멈춤’ 조치를 취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가 에너지고속도로를 보완하기 위해 내놓은 대책은 ‘차세대 전력망 구축’이다. 재생에너지와 ESS 등 분산에너지를 AI 기술로 제어해 전력 생산부터 소비까지를 최적화한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 정부의 정책과 테크 기업들의 요구는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단지의 증설을 상수로 두고, 송전탑 갈등과 비용을 다시 AI의 힘을 빌어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어떤 기술적 해법이 있다 하더라도 이렇게 기술 수단에만 의존한다면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거버넌스: 언제나 부족했던 정보 공유와 토론
전력 네트워크 개선을 포함하는 에너지전환은 그래서 더 많은 대화와 더 많은 선택지를 이야기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10여년 전 밀양 송전탑 투쟁을 떠올려보자. 한국전력과 정부는 신고리 3,4호기를 완공하면 더 많은 전기를 보내야 하기 때문에 765kV 송전탑 건설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면서 저항하는 주민들을 물리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고립시켰다. 송전탑 건설은 강행되었고 주민들은 재산상의 피해뿐 아니라 극심한 갈등과 심리적 고통을 겪었고 그 상흔은 지금도 남아있다. 그러나 송전탑이 완공된 이후 한전은 실제 이용률을 공개하지 않는다. 시간과 비용을 들인다면 지하화하거나 기존 송전망을 활용하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핵발전은 그런 차분한 검토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에너지고속도로와 반도체단지 때문에 갑자기 이런 논란이 재연된 게 아니다. 밀양 투쟁 이후에도 동해안의 석탄화력발전소와 핵발전소 전력을 수도권으로 수송하기 위해 강원도 홍천에서 경기도 가평을 지나는 고압 직류 송전망이 계획되었고, 경과 지역 주민들은 수년째 이에 저항하는 투쟁을 벌이고 있다. 포화 상태에 이른 사용후핵연료를 기존 핵발전소 부지 내에 중간저장할 수 있도록 허용한 고준위 폐기물 특별법에 지역 주민들은 반대했지만 그대로 추진되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AI와 탄소중립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그대로 추진하는 신규 핵발전소 2기와 소형 모듈식 원자로SMR 1기 부지 선정 역시, 다른 선택지는 없는 것처럼 포장된다. 그리고 싸우는 이들의 목소리와 다른 방안을 이야기하는 의견은 좀체 언론에 나오지 않아서 우리가 모를 뿐이다.
정말 전력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면 수도권에 핵발전소를 지으라는 주장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핵산업계에서는 SMR을 활용하면 안전성과 경제성 모두 보장할 수 있고 재생에너지의 약점도 보완할 수 있다고 자랑하지만, 대형이든 소형이든 핵발전소를 수도권에 짓자는 정부 관료와 정치인은 없다. 어떤 방법은 불가피하고 어떤 방법은 안 된다는 것을 정하는 것은 전력 수요 통계를 작성하고 기술적 아이템을 내놓는, 우리가 모르는 전문가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판단과 선택 역시 자신들의 확증 편향과 관성을 벗어나지 않는다.
다시 밀양으로 돌아가 보자. 밀양에서 갈등이 고조될 때 국회와 전 국민이 진지한 토론을 가졌더라면 어떠했을까? 신고리 3,4호기는 꼭 필요했는지, 765kV 송전탑 말고는 방법이 없는지, 송전선의 노선은 그게 최선이었는지, 비용과 시간을 더 들이더라도 대안은 없는지, 그리고 그 부담을 기업과 시민이 나누어 가질 수는 없는지, 몇십년 뒤를 생각할 때 바람직한 대안은 무엇일지를 이야기하는 길고 진지한 토론 말이다.
물론 문재인 정부 때에도 토론이 없지는 않았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공론화였다. 그러나 이 공론화는 결국 건설 중단과 재개를 물을 뿐이었다. 에너지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제대로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잠깐 멈춤’이 가능했어야 했다. 지금의 에너지고속도로 논의도 마찬가지다.
전력 수급의 정점을 정해본다면
고속도로는 그런 잠깐 멈춤을 허용하지 않는다. 제대로 쉬려면 휴게소에 들어가야 한다. 우리는 휴게소보다 더 크고 넓은 에너지 시민들의 ‘만남의 광장’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이 광장에서는 한 방향으로만 달려가는 AI 경제와는 사뭇 다른 이야기도 만나야 한다. 보다 규제되고, 그래서 에너지도 덜 쓰면서 실제로 사람들의 필요에 기반한 AI 개발과 활용의 사례들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AI 거품 너머도 내다보아야 한다.
그래서 이 글의 말미에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전력 공급의 정점을 잠정적으로 정해보자는 것이다. 2015년 파리협정을 전후로 ‘탄소중립’ 또는 ‘배출제로’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때 단어가 주는 충격이 있었다. 2050년까지 탄소배출이 제로로 수렴해야 한다는 목표가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는 화석연료를 완전히 배제해야 한다는 것조차 여러 가지 기술 수단으로 대체되거나 목표 자체가 시나브로 무시되고 있는 분위기이지만, 2050년 즈음까지 가야 할 목표는 여전히 존재한다. 왜냐하면 지구 시스템은 온실가스 농도와 관련된 양적이고 시간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전력 생산은 이와 무관한 것처럼 여기거나, 재생에너지 확충과 함께 하는 급속한 전기 생산 증가가 당연한 것처럼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재생에너지를 늘리고 에너지 소비를 효율화하더라도, 전기 생산은 물질 소비 및 온실가스 배출과 거의 비례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가 계속 전기를 많이 생산하고 소비해야 한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언젠가는 인류의 총에너지 소비량을 줄여야 하고, 이제부터 점점 줄이기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요즘 현실적 공상으로 제안하는 것은 한국의 전력 규모의 정점 설정이다. 예를 들어 지금 150GW 정도의 총 설비용량을 늘려나갈 때, 전기화를 감안하여 2040년까지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설비를 중심으로 총 설비 용량 400GW, 전력 피크 시간대 순간 최대 공급량 200GW 정도를 목표로 잡아보는 것이다. 이 용량이라면 2050년 탄소중립까지 가는 데에 훨씬 쉽고 분명한 경로가 나온다. 이 숫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른 예측과 목표치를 제시하면 된다. 다만 발전량 확대의 한계에 대한 인정과 정점 설정의 필요성을 회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이게 공상적이라는 비판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의 미래는 어느 정도는 ‘자기 실현적’이며, 국가의 에너지 정책도 그렇다. AI와 반도체 수출에 끌려가는 미래가 아니라, 우리가 집단적으로 토론하고 기획하는 미래여야 한다. 이런 관점과 방식에 대한 합의가 가능하다면 에너지고속도로를 둘러싼 논의도 훨씬 입체적이고 풍부해질 수 있다. 그것은 희생양이 될 지역을 제비뽑기하고 시민을 윽박지르는 에너지 정책이 아니라,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정부와 기업의 책임을 묻는 에너지 민주주의일 것이다.

글 김현우 탈성장과 대안 연구소 소장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진보신당 정책연구원,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으로 활동하며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위한 연구와 실천에 매진해 왔다. 지금은 〈탈핵신문〉 이사장으로 신문 발간을 돕고, 기후 위기를 알리는 교육과 탈성장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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