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0년 03월 2000-03-01   2562

시민참여막는 선거법 ㅣ 불복종은 당연한 권리선언

오늘날 보편적인 정치제도로 승인된 대의제는 국민의 의견과 의지가 정치기구에 직접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중간 매개과정에서 부패·무능·집단이기주의·관료화 그리고 형식합리성 이면에 있는 실질적 비합리성 등으로 그 뜻이 왜곡되는 필연적 한계를 가진다. 특히 대의제 민주주의의 정치축인 의회가 왜곡의 근원인 경우에, 국민의 의사는 다른 정부기구로 더욱 더 왜곡되어 전달된다.

시민불복종 운동은 ‘제도화된 저항권’

대의제 민주주의의 형식적 절차주의가 배태하고 있는 한계가 전면적으로 증폭되고 있는 우리사회에서, 전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는 낙선운동은 대의 기구인 의회에 부여했던 지지를 국민 스스로 철회하려는 정치행위로 파악된다. 특히 입법자들의 농단으로 국민의 요구가 의회에서 병목현상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오히려 왜곡되는 현실에서 ‘법준수’라는 형식적 절차주의를 고수한다면, 국민이 정치적으로 취할 수 있는 다른 방도가 없다는 사실이 이미 증명되었기 때문에 직접 행동으로 나서는 것이다.

이 경우의 정치행위 즉 헌법정신의 민주적 가치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헌법정신에 어긋나는 개별 법률이나 하나의 조항에 대한 복종을 철회하는 행위가 ‘시민 불복종’이다. 시민 불복종은 민주 사회를 특징지우는 공적 정의관으로부터 자발적으로 분출되는 “법이나 정부의 정책에 변혁을 가져 올 목적으로 행해지는 공공적이고 비폭력적이며, 양심적이긴 하지만 법에 반하는 정치적 행위”로써, ‘제도화된 저항권’이라 부를 수 있다.

시민 불복종은 어느 정도 정의로운 국가 내에서 그 체제의 합법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시민들에 있어서만 생겨나며, 독재국가의 권력을 전복하거나 정복하기 위한 군사적 행동과 구별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4.19, 5.18, 6.10 등 과거 우리사회의 불복종운동은 그 운동의 목표가 부정의한 정치체제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민불복종보다 한 차원 높은 혁명적 불복종으로 파악된다.

시민 불복종은 도덕적 정당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사적인 신념이나 자기이해에 기초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통상적으로 미리 고지되며 경찰도 그 상황을 예측할 수 있다. 또한 개별적 법규를 의도적으로 위반하기도 하지만 전체 법질서를 부정하지 않으며, 규범위반의 법적 결과를 책임질 마음의 자세를 요구한다. 시민 불복종을 표현하고 있는 규칙위반이 상징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저항을 비폭력적 수단으로 제한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법률이나 정부의 정책·결정사항 등에 대한 시민 불복종의 요건은 공개성, 공공성, 의도성, 비폭력성, 위법성, 불가피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공공성은 시민 불복종이 사사로운 개인의 이익이나 이기적인 집단이익이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의도성은 구체적인 행위의 이유와 결과를 행위자들이 의식하고 있다는 점을, 비폭력성은 폭력이나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의사소통행위와 상징적 방법만을 사용한다는 점을, 위법성은 현존하는 법률을 위반한다는 점을, 불가피성은 사전에 적법한 절차를 통한 법개정 노력이 좌절되었기 때문에 법개정을 위해서 위법행위를 피할 수 없음을 각각 의미한다.

위의 요건을 갖추었을 때, 시민 불복종은 정당한 정치행위가 된다. 이러한 시민 불복종운동은 간디의 불복종운동, 여성의 참정권 운동,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흑인 민권운동, 베트남전 반대운동, 남미의 인권운동, 핵무기 반대운동 등 수많은 사례들을 통하여 세계적 차원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보호하고 민주주의 제도 자체를 발전시켰다.

위에서 살펴본 시민 불복종의 예들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낙선운동의 중요한 선례가 된다. 낙선운동이 다음과 같은 이유로 선거법에 복종하기를 거부하기 때문에 시민 불복종으로 규정된다.

먼저 선거법 58,59조와 87조가 개정되어야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 조항들은 국민의 정치적 자유를 현저히 제한하고, 노조와 시민단체의 관계에서 평등한 자유의 원칙을 심각하게 위반하였으며, 국민의 알권리를 제한하여 국민의 정치행위의 방향을 근원적으로 왜곡하며, 결과적으로 국민의 이익을 원천적으로 침해하고 현직 국회의원들의 집단이익만을 보호한다.

낙선운동 불법규정은 ‘법적 가치 위기’초래할 것

시민 불복종의 이유 즉 현행 선거법 58, 59, 87조에 복종하기를 거부하는 이유는 우선 관련 선거법이 개정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준법선거는 밀실공천과 지역감정으로 3분된 정당구조하에서 유권자의 선택기준을 원천적으로 제한하고 현재와 같은 정치구도를 재생산할 뿐이다. 따라서 시민단체는 의도적으로 현행 선거법을 위반한다.(의도성, 위법성)

또 선거법개정과 정치발전을 위한 입법청원 노력이 지난 수년동안 국회에서 계속해서 무산되었기 때문에, 국민들은 현행법상의 적법한 수단을 통하여서는 지금과 같은 정치구도를 혁신할 수 있는 아무런 대안이 없다.(위법의 불가피성) 이러한 시민불복종은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이나 집단의 이기적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의 공공이익을 위하여 공개적으로 추진한다.(공개성과 공공성) 또 시민 불복종은 그 목적에 맞게 어떠한 폭력행위에도 반대하며, 그 취지와 목적을 평화적인 방식으로 국민들에게 전하기를 원한다.(비폭력성)

낙선운동은 이미 실천적 정당성을 인정받았다. 1968년 제17차 개헌법률인 서독 연방공화국헌법 제20조 4항은 “모든 독일인은 이러한 질서(민주적 사회적 연방국가적 질서)를 폐지하려고 하는 모든 자에 대하여 다른 구제수단이 불가능할 때에는 저항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독일처럼 헌법에 명문화시킨 경우나 명문의 규정을 갖지 않는 나라나, 국민의 저항의 권리는 자연법적 권리로서 국민주권과 인간의 존엄을 바탕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것이 법의 정신이며, 민주주의의 근원적 정치원리이다. 우리의 정치현실에서 이와 같은 법정신보다 더 긴요한 것은 없다.

우리 헌법은 저항권을 명시하고 있지 않지만, 전문(前文)에서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밝히고 있어서, 간접적으로 저항권과 시민불복종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있다고 해석된다. 또한 정치적 차원에서 우리 헌법정신도 대북관계의 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초법적 정치행위에 대한 예외를 대통령의 정치행위에 적용하여 인정하고 있다. 낙선운동은 대통령의 정치행위에 앞서 국가수반으로서의 대통령조차 복종해야하는 국민의 직접적이고 합의된 정치행위이므로 당연히 그 정당성이 인정된다.

국민들은 이미 정치권의 자정 노력을 끝없는 인내심으로 지켜보았다. 그러나 정개특위의 결과를 보면서 더 이상의 인내는 오히려 민주주의를 퇴보시킬 것이라는 명백한 사실과 정치혁신의 임무를 현정치권에 맡길 수 없다는 점에 거의 모든 국민들이 동의하고 있다. ‘민주법치국가는 시민에게 무조건적인 법에의 복종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조건부의 복종을 요구하며, 무엇보다도 동의는 심사권을 박탈당함을 의미하지 않고, 주권자의 자유로운 동의는 한번으로 끝나는 행위가 아니라 지속적인 이해의 한 과정’이다.

국가기구가 형식적인 ‘법적 질서의 안정’에만 몰입된다면, 장차 ‘법적 가치의 위기’가 도래할 것이다.

오현철 학술단체협의회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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