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시민연대 등 시민단체들의 낙선낙천운동은 적어도 지금까지 두 가지는 확실히 성공했다. 시민사회의 화두를 `‘주식’에서 `‘정치’로 옮겨놨다는 것이 하나요, 정치권으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개혁’의 시늉이라도 내게 했다는 게 두번째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총선시민연대가 1인1투표제의 위헌성을 집중 공략하고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관철시키기 위한 노력을 제때 보여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갖고 있다.
역시 낙천낙선운동의 최대 걸림돌은 수구언론이었다는 게 개인적 생각이다. 무엇보다 봇물터지듯 터져나온 낙천낙선운동을 지역주의의 잣대로 보게 만들며 `‘물타기’를 시도한 주체가 언론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특히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은 불과 몇달새 시민단체에 대한 잣대를 180도 바꾸는 기민함을 보였다. 그는 지난 1월 15일치 칼럼‘낙선운동 감상법’에서 이렇게 썼다.
“국민회의에는 ‘물갈이’ 효과가 있고 ‘명단’을 수용할 처지가 아닌 한나라당과 자민련에는 ‘낙선’에 중점이 있다. … 결과적으로 그리고 상대적으로 이득을 보는 쪽은 대체로 보아… 신당 즉 민주당이다.… 시민운동 내의‘한쪽 날개’는 정치권이 지리멸렬한 틈을 타서 일반 국민에게 널리 어필할 수 있는 결정적 테마를 장악한 셈이다. … 이제 한국정치는 정당인, 정치인들만의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말 그대로 ‘시민’들만의 것도 아닌 상황으로 가고 있다.”
낙천낙선운동이 왜 나왔는지, 시민운동의 본질이나 그 의미를 평가하기 전에 ‘정치적 이해득실’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게다가 총선시민연대 등 시민단체를 “시민이 아닌”, 일종의 ‘불순한 정치적 저의를 가진 집단’으로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논리적 근거는 단 하나다. 한나라당과 자민련은 “‘명단’을 수용할 처지가 아닌” 상황에 있다는 것이다. 왜? 그는 이에 대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이런 논조는 지난 해 8월 28일 칼럼 ‘내년 총선 때 보자’의 내용과는 전혀 딴판이다.
“우리 정치가 이 모양 이 꼴로 타락해가는 이유는 바로 그런 국회의원들을 뽑은 우리 유권자에게도 있다는 자각이 절실하다.… 다가오는 내년 4월 총선거, 여기에서 우리는 일대 유권자 혁명을 시도해야 한다. 보스 체제와 지역성에 안주하는 사람들, 기득권을 가지고 돈과 조직을 악용하는 사람들, 이번 국회에서 ‘저질’을 연출해 공천을 따낸 사람들을 반드시 떨어뜨려야 한다. 많은 시민단체들은 이런 운동에 앞장서는 것이 진정한 엔지오정신에 부합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당시에 이것을 ‘탐사적 민주주의의 실천’이라고 불렀다. 그가 열거한 ‘떨어뜨려야 할 국회의원’의 기준은 총선시민연대 등이 공천반대자를 선정하면서 잡은 기준과 거의 일치한다. 우스갯소리로 “시민단체들의 낙천낙선운동을 김대중 주필이 부추긴 게 아니냐”는 ‘음모설’까지 나올 법하다.
김 주필의 이런 카멜레온과 같은 돌변을 설명할 길은 없다. 타당한 논리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1980년 5월 광주시민들을 ‘폭도들’이라고 규정했던 그가 20년이 흐른 지금에는 총선시민연대를 ‘민주당의 제2중대’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김 주필의 감상법은 총선시민연대가 공천반대인사 명단을 발표한 1월 24일 이후 ‘음모설’로 구체화한다. 『조선일보』는 1월 25일치 사설 `‘명단론’에서 선정기준의 공정성을 문제삼는 데서 한발 나아가 “이번 명단 고르기가 공정성을 기하지 못했다고 보았는지, 한나라당과 자민련은 벌써부터 ‘배후설’을 거론하고 있다”고 은근히 음모론을 부추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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