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약 주세요.” “간이 안 좋은 것 같은데 요즘 선전하는 000약 있죠?” 동네의 어느 약국을 가든 쉽게 볼 수 있던 이런 풍경이 오는 7월이면 바뀌게 된다. ‘진료는 의사에게, 조제는 약사에게’라는 말 그대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의약품 중 약 60%(전문의약품)는 의사의 처방전 없이는 약국에서 구입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의약분업은 필연적으로 소비자에게는 다소 불편을 주는 제도다. 이전과 같이 병원이나 약국 한 군데만 선택하면 자유롭게 약을 먹을 수 있던 관행에 비춰 볼 때 병원과 약국을 두 번 방문해야 하는 의약분업은 번거로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얼마 전 소비자의 이런 불편한 마음을 꼭 집어주는 광고가 있었다. 의원들의 집단휴진에 맞춰 ‘국민에게 불편한 의약분업 반대’한다는 내용의 대한의사협회 광고에서 할머니가 아픈 다리를 이끌고 약국 문을 열기 위해 낑낑대는 모습은 보기에도 안쓰러웠다. 의사들이 소비자의 대변인으로 나선 듯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우리나라는 약에 대한 접근이 지나치게 쉬운 만큼 오·남용에 따른 여러 가지 부작용도 발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약 소비량은 미국이나 선진국에 비해 2∼3배 가량 많다고 한다. 항생제 내성률은 10여 배나 높다.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1세대, 2세대, 3세대 항생제라는 말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질병의 원인균을 죽이는 항생제는 효과적 치료제가 되지만 동시에 원인균의 힘을 키워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항생제는 사용 초기에는 효과가 뛰어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더욱 강력해진 박테리아가 등장하게 되고 이에 맞서 더 강력한 항생제가 필요해진다. 그래서 2세대 항생제가 개발되고, 3세대 항생제가 개발된다. 강력해진 박테리아에 걸맞는 항생제가 개발된다면 다행이지만 항생제 개발에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항생제의 효과가 강력할수록 우리 몸에 미치는 부작용도 크기 때문에 3세대, 4세대 항생제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어서 외국의 경우 항생제 사용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감기만 걸려도 팔뚝 걷고 항생제 주사를 맞고 있다. 꼭 필요할 때 써야 할 훌륭한 보약을 우리는 하루하루 독약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미 의료계 내부에서는 높은 내성 때문에 쓸 약이 없다는 탄식이 나온 지 이미 오래다.
의사들의 ‘체험! 극과 극’
의약분업은 지난 1963년부터 약사법에 등장했지만 35년간 미뤄지다 지난 1999년 12월 약사법 개정을 통해 2000년 7월 1일부터 시행하게 됐다. 의약분업이 이렇게 오랜 시간 미뤄진 이유는 의약계가 약을 통한 이윤을 놓지 않으려는 이유가 컸다. 의료기관이 제약회사에서 구입한 약값에 비해 의료보험조합을 통해 받을 수 있는 약값이 2배 이상 높게 책정돼 있기 때문에 의사, 약사들은 약을 많이 팔면 팔수록 엄청난 약가 차익을 누릴 수 있었다. 그 규모는 97년 한해만도 1조 2,000억원에 이른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의약계도 할 말은 있다. 의료행위에 대한 보험 수가가 너무 낮아 음성적인 수입을 만들지 않으면 안되었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런 항변을 받아들여 지난해 11월 보험약가를 실거래가 수준으로 낮춘 반면 그로 인해 예상되는 보험재정 이익의 대부분을 두 번의 수가인상으로 의사에게 돌려주었다. 그렇다면 수치상으로는 약의 판매를 통한 이익이 없는 상황에서는 의사가 의약분업을 별로 반대할 이유가 없는 듯하다.
그러나 의사협회는 올 들어 수차례의 광고를 통해 ‘완전한 의약분업’과 ‘의약분업 반대’라는 상반된 주장들을 펴면서 소비자에게 의약분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켰다. 도대체 왜 이렇게 의사회의 주장이 극과 극을 치닫게 됐을까? 솔직히 국민 불편을 이유로 의사계가 의약분업을 반대했다면 이와 같은 극과 극의 주장은 도저히 나올 수 없다. 즉, 의약분업 반대는 결국 지금껏 누려온 약가 차익을 계속 누리겠다는 거고, 의약품 사용을 통제할 수 없는 약의 오·남용을 방조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실제 의약분업은 의약품의 오·남용을 최대한 막아보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의사들은 전문가의 지위를 이용해 악선전을 해댔다. 약간 주춤한 상태이기는 하나 의사회의 요구가 계속 변하고 있는 점은 의사회의 주장을 더욱 신뢰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실제 정부는 의사들이 전문의약품의 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해 애초 전문의약품 대 일반의약품을 50 : 50에서 60 : 40으로 높여 주었고, 약가 차익이 없어진 상황에서 동네의원이 다 망한다 하여 두 차례에 걸쳐 없어진 약가 차익을 보장해줄 만한 수준으로 의료보험 수가를 조정해줬다. 그러자 이에 힘을 얻은 의사회는 더욱 과감하게 의약분업 철회를 주장하며 의권쟁취를 외친 것이다. 또한 의약분업과는 별개로 추진돼야 할 의료계 내부의 근본적 문제들을 들먹이며, 의약분업 문제가 터진 김에 함께 해결하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의사들의 요구수준이 점증되면서 시민단체들은 의사회가 이런 주장들을 마구잡이로 늘어놓는 진의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진정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의약분업이 실시되면 지금보다는 조금 번거로울 테지만, 의사회의 주장처럼 약국을 헤매야 할 만큼 불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개정 약사법은 시군구 지역별로 약사, 의사, 소비자, 행정단체들이 참여하는 협력회의를 구성, 지역에서 처방하고 조제할 의약품 목록을 정하게 되어 있다. 이 목록이 정해지면 약국은 그 목록대로 약을 구비하면 된다. 따라서 소비자는 더욱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아직까지 의약분업에 대한 칼자루는 의사회가 쥐고 있다. 가장 시급한 지역협력회의의 구성이 의사회의 거부로 늦춰지고 있다. 결국 의약분업이 국민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을 거부하는 의사회가 국민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의사들은 공공연히 의약분업이 시행되더라도 오래 못갈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사실 지역에서 구하기 어려운 약을 처방한다면 소비자를 얼마든지 불편하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집단이 의사회이기도 하다. 이번 집단휴진이 정부와 의사회의 밀약으로 일단락된 점에서 알 수 있듯 의사회는 보건의료 문제에 있어 여전히 국민을 왕따시키고, 자신들이 보건의료문제의 유일한 당사자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의 입장은 확고하다. 의약분업을 포기할 수 없다. 국민의 건강권은 더더욱 포기할 수 없다. 따라서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달 일단락된 의약분업의 일부 당사자인 정부와 의사회 사이의 밀약을 인정할 수 없으며, 원활한 의약분업을 위해 의사회는 지역협력회의에 조속히 참여할 것을 촉구한다. 더불어 임의조제나 처방전을 남용하는 사례 등 의약분업의 취지에 위배되는 행위에 대한 강력한 감시와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끝으로 집단의 이익을 위해 전문가적 양심을 내팽개친 의사회에게 히포크라테스의 선서가 아직 유효한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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