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9일, 참여연대 납세자운동본부와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가 ‘2000년 납세자의 新권리선언―납세자 중심의 조세제도만들기’라는 사업계획을 발표했다. 이때 ‘부당하고 불합리한 세법’의 대표적 항목으로 자가용 자동차 면허세 폐지, 자동차세 개정을 주장했는데, 얼마 후 정부는 ‘경제정책조정회의’를 통해 이런 참여연대의 주장을 대폭 수용했다. 물론, 아직까지 구체적 일정이나 방침이 결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섣불리 환영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진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날 함께 발표한 내용 가운데 하나가 ‘지나치게 어렵고 난해한 세법의 개정’이었다. 워낙 어렵고 복잡하기로 유명한 세법 덕분에 많은 납세자들이 자신이 내는 세금이 무엇인지, 왜 내는지조차 모르고 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뭔가 억울하다고 느끼면서도 그 이유를 도저히 알 수도, 납득할 수도 없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성실한 납세의무’를 강조한다면, 최소한 그 의무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제대로 알려줘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나라 세법의 가장 큰 특징 중에 하나는, 분명히 한국말임에도 불구하고, 읽어도 읽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소득세법 제52조 [특별공제]의 한 부분이다. ‘제34조 제1항에 규정된 기부금으로서 당해 연도의 근로소득금액에 100분의 5를 곱하여 계산한 금액(사립학교법에 의한 사립학교에 지출한 기부금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에는 사립학교에 지출한 기부금과 당해 연도의 근로소득금액에 100분의 5를 곱하여 계산한 금액 중 적은 금액을 추가한 금액)을 한도로 한 금액과 동조 제2항에 규정된 기부금의 합계액(부동산임대소득 또는 사업소득이 있는 자로서 당해 연도의 소득에 대한 소득금액 계산시 필요경비에 산입한 경우를 제외한다.’ 솔직히 무슨 말인지, 어떻게 계산하라는 소리인지 헷갈리기 그지없다. 웬만한 집중력과 이해력을 갖지 못한다면 결국 ‘내라는 대로 내지 뭐…’라고 결론내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뺑뺑이 돌리기 식’이 명분?
다음엔, 소위 ‘뺑뺑이 돌리기 식’ 세법이다. 이 내용을 찾아가면, 어디로 가라, 거기에 가면 또 다시 어디로 가라…라는 식이다. 약간 길지만 한번 예를 들어보자. 소득세법 제14조[과세표준의 계산] ③ 다음 각호의 소득금액은 제2항의 종합소득과세표준의 계산에 있어서 이를 합산하지 아니한다. 3. 제129조 제1항 제1호 가목 또는 동조 제2항의 세율에 의하여 원천징수하는 이자소득 및 배당소득의 소득금액과 제16조 제1항 제11호에 규정하는 직장공제회초과반환금. 그러면 제16조 제1항 제11호로 찾아가보자. 거기에는 다시 ‘대통령령이 정하는 직장공제회 초과반환금’이라고 되어 있다. 한번 더 발길을 옮겨 보면, 소득세법시행령 제26조[직장공제회 초과반환금] ① 법 제16조 제1항 제11호에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직장공제회’라 함은 민법 제32조 기타 법률에 의하여 설립된 공제회·공제조합(이와 유사한 단체를 포함한다)으로서 동일직장이나 직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의 생활안정, 복리증진 또는 상호부조 등을 목적으로 구성된 단체를 말한다. 돌고 돌아서 온 길의 끝에는 역시 ‘뭔 소리를 하는지…’.
뿐만 아니라, 동일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 법률에서 정의하는 바가 다른 예들도 많다. 예를 들어 ‘지점’이라는 하나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법과 민법, 세법이 각각 다르게 이를 정의함으로써, 혼란과 갈등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이와 유사한 사례는 물론 많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 지 알 수 없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많은 납세자들은 세법을 들여다보는 것 자체를 포기하기 십상이다. 또는 그 반대로, 과세당국의 처분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는 이의신청과 소송이 끊이지 않는다. 결국 과세당국에게도, 납세자에게도 많은 비용과 수고를 들이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세법 내용 자체의 난해함뿐만 아니라, 그 체계가 복잡하고 어지럽기 때문에, 세금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감시가 그만큼 어렵다. 자신이 내고 있는 세금이 정당한 것인지, 나아가 그것이 제대로 걷히고 제대로 사용되는지를 감시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납세자로서의 정당한 권리이자 의무이기도 하다. 그러나, 30개가 넘는 세목에, 어렵기 그지없는 세법규정 등의 현실은 실제로 이러한 관심과 감시를 어렵게 하고 있다.
이처럼, 세금에 대한 과세당국과 납세자간의 정보 불균형은, 사전적 감시는 물론 사후적 감시조차 힘들게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의 조세개혁운동, 예산낭비감시운동이 여전히 ‘전문가 중심’으로만 이뤄지고 있는 것도 이러한 문제가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누구나 알기 쉽게 만들면 덧나냐?
국회의원들은 물론이고, 법을 실제로 만드는 ‘법제관’들조차 세법에 대해선 제대로 모르겠다고 한다. 특히,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정도로 내려가면 읽고 이해하는 것조차 힘들다고 한다. ‘법’으로 ‘밥’먹고 사는 변호사들도 마찬가지이다. 세법에 대해 자신 있게 아는 변호사는 거의 없다고 한다. 일선공무원들도 마찬가지이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문제를 삼으면 결국 한다는 소리가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이제까지 그렇게 해왔다’라는 식이다.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아무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는데, 그것이 엄청난 사회적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공평한 사회적 부담으로 분배되고 있는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피해는 고스란히 납세자의 몫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인식의 대전환’이다. ‘세법이란 원래 어렵고 난해하기 때문에 함부로 쉽게 고칠 수 없다’는 기존 과세당국의 입장과, ‘그렇기 때문에 더욱 알기 쉽고 명쾌하게 바꿔야 한다’는 우리들의 입장은 똑같은 상황을 반대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쉽게 만들자’라고 해서 모든 법과 시행령을 당장 그렇게 만들 수는 없다. 그만큼 전문적이고, 엄밀한 조사와 준비, 노력이 오랜 기간에 걸쳐 투여돼야 한다. 당장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참여연대 조세개혁팀에서조차 각각의 난해한 조항들을 어떻게 하면 쉽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해보면 쉽사리 대안이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엄청나게 방대한 세법 전체를 모두 쉬운 우리말로 바꾼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런 문제점은 비단 세법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법체계 자체가 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누구의 입장에서 상황을 개선해 나갈 것인가를 분명히 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납세자 중심’이라는 추상적 표현이 구체적 실천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이러한 ‘어렵고 난해한 세법의 개정’을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단, 이것이 다시 ‘전문가들만의 고민’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납세자 스스로가 이를 적극적으로 문제삼고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모르겠다’고 손을 놓아버린다면, 결국 그 책임과 피해는 고스란히 납세자들 몫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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