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0년 05월 2000-05-01   1042

낙선운동에서 선관위 전과기록 공개까지

이제는 사이버정치시대

내가 처음 PC통신망에 가입하여 활동을 했던 것은 94년도였다. 일반 여론매체와는 달리 직설적이고 적나라한 글쓰기는 물론 그에 대해 곧바로 반론, 재반론이 올라오며 여론이 조성되는 PC통신 공간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실제로 95년도의 한국통신 파업 때와 대구 지하철 화재사건 때 PC통신은 기존 매체보다 더 빠르고 정확한 정보를 주는 새로운 매체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다하였다.

그때 나는 조금 성급한 판단을 내렸었다. 정보의 차단과 의사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구 패러다임에서 서서히 벗어나, 앞으로는 사이버 공간을 바탕으로 보다 자유롭고 보다 공평한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 확신했던 것이다.

그 뒤 인터넷이 보급되어 현재는 이미 1,000만명 이상의 네티즌이 사이버망에 접속할 정도로 사이버 정치는 양적으로는 어느 정도 기반이 조성되었다.

양적인 팽창

상업 텍스드 모드의 통신망(하이텔, 나우누리, 천리안 등)에서는 주로 ‘토론실’과 ‘큰마을’에서 네티즌들의 여론이 형성되었다. 97년 이전까지의 사이버 여론정치란 곧 이러한 활동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97년 대선 이후에 네티진들은 사이버 정치 웹진 및 기존 언론의 웹사이트를 바탕으로 인터넷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게 된다.

PC통신의 큰마을에는 대다수가 참여하기는 하지만 대안적 합의가 도출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그에 반해 각 인터넷 웹사이트에서는 여론을 곧바로 대안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사이버 정치가 한 걸음 더 진일보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또한 1999년에는 진보네트워크(www.jinbo.net)가 개설되어 그 동안 여론에서 소외되었던 진보진영의 목소리도 최소한 사이버상에서는 담아낼 수 있게 되었다.

진보진영과 시민단체가 사이버 정치의 잠재성을 눈여겨보게 되면서 진보네트워크센터에는 600여개의 운동단체, 시민운동정보센터에는 3,300여 개의 운동단체가 웹사이트를 개설할 정도로 양적인 성장을 이룩하게 되었다.

또한 국회전자민주주의연구회가 조직한 사이버파티(cyberparty.or.kr)에서는 1999년에 본격적인 온라인 공청회를 개최하여 네티즌의 여론을 국회 정치에 반영할 수 있는 소통공간을 확보하였다. 이와는 별도로 민주당(당시 국민회의), 한나라당, 자민련 등 각 정당들 역시 97~98년 사이에 정당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사이버 쪽으로 눈을 돌렸으며 2000년 총선에 참여한 민주노동당과 청년진보당 역시 사이트를 개설하며 선거운동에 돌입하였다.

4 · 13총선의 사이버 정치 활동

이렇게 조성된 양적 기반을 바탕으로 4 · 13총선에서는 본격적인 사이버 정치 시대를 열게 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두말할 것 없이 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이 큰 공헌을 하였다. 총선시민연대의 활동은 선거법상 낙선 리스트 발표에만 국한되었기 때문에 제도권 언론에서 보도해 주지 않는 한 자체적으로 낙선 리스트를 시민에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은 사이버 공간뿐이었다. 4월 14일 현재까지 총선시민연대의 사이트는(www.ngokorea.org) 9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사이버 운동의 한 획을 긋게 되었다. 또한 이에 고무받은 군소 네티즌 단체는 총선정보통신연대(netngo.or.kr)라는 연합체를 구성하여 총선시민연대의 활동을 사이버상에서 지원하였다.

이뿐 아니라 두루넷, 나우누리 같은 상업 통신망, 디지털 한겨레와 같은 기존 언론사들 역시 ‘386세대’의 정치권 진출, 각 당의 정책 기획 같은 소재로 사이버 토론을 개최하여 사이버 정치를 더욱 더 활성화하는 데 기여하였고, 선관위 역시 후보자들의 병역, 탈세 비리를 사이트에 올려놓아 하루 조회수 수십여만 건을 기록하는 등의 성과를 올렸다.

사실 사이버 정치 활동이 4 · 13총선에서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쳤는지 측정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4 · 13총선이 실질적으로는 최초의 사이버 선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의 정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를 바탕으로 이루어질 것이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더 이상 제도권의 은폐로 인한 정보 부족 때문에 후보자나 정당을 잘못 판단할 여지는 최소한 기술적으로는 현저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더욱 더 현실로 다가서는 사이버 정치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이런 양적인 성과와는 달리 질적인 부분까지 따져 들어가면 아직 미흡한 점이 많다. 선거기간 내내 사이버 정치의 중심에 서 있던 총선시민연대조차도 사이트 업데이트말고는 그다지 활발한 활동을 하지 못했다 평할 수 있다. 적극적인 이메일 홍보, 사이버상에 떠 있는 수많은 단체, 개인 홈페이지와의 연계, 사이트의 디지털 미디어로의 전환 등은 인적, 기술적 부족으로 현실화하지는 못했다.

이러한 점은 총선정보통신연대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직도 각 사설 BBS에 흩어져 있는 자유로운 네티즌들이 그 대표성을 의심받는 총선정보통신연대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대부분 산발적인 활동을 할 뿐이지 그것을 느슨한 연대의 조직활동으로 묶어낼 수 있는 노하우는 없었던 것이다.

각 정당들 역시 홈페이지를 개설만 해놓았을 뿐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는 못했다. 가장 조회수가 많다는 새천년 민주당 홈페이지도 하루 조회수가 수천 회에 불과했으니 오히려 리얼 스페이스에 유인물이나 유세홍보가 더 효과적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민주노동당과 청년진보당, 그리고 진보네트워크는 과연 사이버상에서의 진보운동이 가능하기나 할지 염려스러울 정도로 사이트의 업데이트나 서비스 구조가 초보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특히 젊은 유권자가 대부분인 네티즌의 성분을 감안할 때, 4 · 13총선의 젊은 층의 투표율 저하는 어쩌면 사이버 정치 활동의 실패라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이버상의 가장 큰 특징은 자유로운 의사표현에 바탕을 둔 쌍방 소통이다. 그런데 이것은 그 반대편에서 보면 조직적 활동의 장애 요인으로서 작용하기도 한다. 양적인 성장이 질적인 성장으로 옮겨지려면 바로 이러한 점이 하루빨리 극복되어야 한다.

일단 거시적인 관점에서 각 정당 및 각 단체들은 사이버 스페이스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제 각각 따로 놀다가도 사안이 생기면 한꺼번에 움직이는 네티즌 게릴라 상을 바로잡는 노력도 필요하다. 부산에서 노무현 후보가 낙선했다는 말을 듣고 몰려든 수천 명의 네티즌들이 조금 더 빨리 움직여 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전자프론티어 재단의 창립자인 존 페리 발로의 사이버 공간 독립 선언문, “우리는 사이버 공간에 정신의 문명을 창조할 것이다. 우리는 그 문명이 당신의 정부들이 이전에 창조했던 세계보다 훨씬 더 인간적이고 공평하길 기원한다.”라는 말은 가만히 앉아서 기원을 한다고 현실화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하나 문제점을 해결해 나가면서 자유로운 쌍방소통에 바탕을 둔 커뮤니티 건설이라는 대의를 꾸준히 실천해 나가야 가능한 것이다. 그것의 시작은 바로 지금부터이다.

변희재 인터넷 신문 대자보(jabo.co.kr)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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