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하는 은행에서 온 우편물을 뜯어보았다. 고객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인상이 전혀 들지 않는 그 인쇄물은, 눈으로 한번 훑어볼 요량도 내키지 않게 할 만큼 무미건조해 보였다. 억지로 읽어 보려 했더니 “항상 저희 은행을 이용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로 시작되는 첫 줄 외에는 쉽사리 알아먹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그렇지만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꼭 알아둬야 한다는 느낌은 들었다. 몇 번을 정독한 결과 그것이 내 거래 계좌를 은행에서 없애고 다른 계좌로 만들어 주려고 하니 한번 나와 달라는 내용임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이런 한자 표현 투성이 편지로 신세대 고객을 어떻게 맞을지 걱정이 되었다.
소위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머리를 싸매야 겨우 해독되는 난수표 같은 이 글은 도대체 누굴 위해 쓴 것인가? 하여튼 은행에서 날아오는 것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어려워야 하는가? 은행 사람들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들인가? ‘쉬운 영어운동’처럼 나도 ‘쉬운 한글운동’을 펼쳐 그 이상한 나라를 공격해 볼까?
‘쉬운 영어운동’에 대한 궁금증은 영국에서 내가 거래하던 은행에서 매달 보내주는 편지에 따라붙는 크리스털 마크에서 시작되었다. 창구에 가서 무슨 표시인지 물어보았다. 자기 은행의 모든 문서에는 내용을 쉽고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징표로 크리스털 마크를 부착하고 있다고 자랑스레 말해주었다. 그 뒤부터는 내가 직접 알아보았다. 크리스털 마크를 추적하면서 쉬운 영어운동과 그 주인공 크리시 마허 여사를 알게된 것이다.
‘쉬운 영어운동’은 잉글랜드의 리버풀에 살던 크리시 마허 여사가 시작한 언어운동이다. 그는 가난한 집안형편과 전쟁통에 초등학교도 다 마치지 못해 클 때까지 글을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 주경야독으로 일하고 배우면서 마침내 야간대학까지 나와 보험회사 직원, 시청 공무원으로 일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그는 어려운 글이 휘두르는 ‘폭행’을 목격하게 되었다. 시청에서 일하던 때, 난방비 보조 신청서 작성을 어떻게 하는지 몰라 그냥 얼어죽은 노부부 사건이 있었다. 관공서 문서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 때문에 못 배우고 가난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피해를 보고 사는지 그는 절실히 느꼈다. 그래서 공문서를 쉽게 고쳐 쓰자는 시민운동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쉽게 쓴 공문서 읽기는 ‘국민의 권리’라는 주장이었다. 그는 국회 앞에서 어려운 공문서를 불태우고 분쇄기로 잘라 내는 등 복잡하고 어려운 문서 퇴치운동에 발벗고 나섰다. 마침내 그의 활동은 결실을 맺어 전국 공문서의 서술 방식을 완전히 바꾸게 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크리시 마허는 그 공로로 대학의 명예박사 학위와 왕실에서 주는 작위도 받았다. 그리고 쉬운 영어운동의 명성은 국제적으로 알려져 미국을 비롯한 영어권 국가뿐만 아니라 비영어권 나라에서도 함께 참가하는 언어운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내가 한국의 언론을 통해 이 운동을 소개하자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대부분 영어를 쉽게 할 수 있는 첩경으로 오해한 듯했다.
우리에게도 병원 진단서, 법원 판결문, 보험회사나 은행의 약관 등 도저히 오를 수 없는 산이 도처에 있다. 관청의 진부하고 어려운 공문서는 제쳐두고라도 말이다. 전문성을 칸막이로 내세워 일반인들의 접근을 일부러 어렵게 해야만 자신들의 권위가 유지된다고 믿는 것인가? 어려운 영어와 한자어를 섞어 쓴 문서들, 깨알 같은 글씨로 돋보기를 대어서도 읽기 어려운 약관을 내놓고서는 ‘안 읽으면 고객의 손해’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무더운 여름, 하늘의 뭉게구름을 보면서 나의 작은 운동을 꿈꿔본다. 쉬운 한글운동. 간결하고 순하고 명료한 한글을 쓰기 위해 남은 생을 바쳐볼까 하다가도 멈칫해진다. 내게는 아무래도 마허 여사 같은 열성이 없을 듯해서이다. 당신의 운동에 대해 알고 싶다는 전화를 한 지 단 하루 만에 한 아름의 소포를 내 품에 안겨준 마허 여사의 그 열성을 난 아직 잊지 못한다. 쉬운 언어운동은 결국 열린 마음,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이 글을 쓰는 지금 머리 속을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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