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0년 09월 2000-09-01   1014

이부영이 윤지희에게

권병덕님께

먼저 전교조 합법화 1년에 대한 축하와 그 동안 보내주신 신뢰에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돌아보니 합법화 쟁취의 벅찬 감격과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커다란 희망으로 맞이했던 합법화 1년이 어느 새 훌쩍 지나갔습니다. 편지를 읽으면서 전교조에 대한 기대와 애정 어린 비판에 한편 반갑기도 하고 한편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전교조 선생님들도 아이들을 많이 때린다는 이야기와 내가 2년 전에 복직하여 겪었던 학교 현장의 상황들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내가 10여 년 만에 복직하여 느꼈던 첫 소감은, 복직의 기쁨도 잠깐이었고 거의 변한 것이 없는 학교의 모습에 대한 분노와 대책 없이 변한 아이들에 대한 무력감이었습니다. 학교는 지난 10여 년 동안 어쩌면 그리도 변한 것이 없는지, 반면에 아이들은 너무나 놀랍게도 변해 있었습니다. 복직한 학교가 공고였기에 좀더 심했겠지만 한 반에 거의 절반은 교과서조차 없으며 1/3은 엎드려 자고 나머지 아이들은 한 시간 내내 떠들고 있었습니다. 수업도 어려운 상황이었고 좀처럼 대화의 채널을 찾기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는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매일같이 겪고 있는 일상적인 상황이었습니다. 대다수 선생님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애들 버릇없다는 한탄과 가정 환경 탓이라는 이야기를 되풀이할 뿐 거의 무력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작년에 한 교실의 실상이 언론에 소개되어 국민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러한 상황이 지나친 과장만은 아니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한 초등학교의 교실붕괴 실상이 소개되어 또 한번 국민들을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원인이 마치 청소년들의 의식과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선생님들과 학생들 간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처럼 부각된 것은 문제의 본질을 잘못 파악한 것이었습니다. 학교 붕괴의 근본 원인은 수십 년 동안 전혀 변하지 않는 학교의 열악한 환경과 교육 시스템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전교조는 학교를 신명나는 삶의 공간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또한 학생들의 자치 활동을 보장하고 동아리 활동을 적극 권장하는 것이야말로 창의성을 길러주는 교육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학생들이 학교의 주인으로서 학교 운영에도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런데 권병덕 님의 친구가 고등학교 시절에 겪었다는 경험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대했던 전교조 선생님들께 받은 배신감이 너무나 컸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학생회 활동을 돕기는커녕 방해했다는 일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교사 개인의 학생관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정년단축조치 이후 교사를 무능력한 집단으로 몰아간 교육정책과의 연관 속에서 이해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위 5.31 교육개혁조치 이후 교사는 공급자요, 학생·학부모는 수요자라는 시장경제 논리가 도입되면서 교육민주화와 교육환경 개선 등의 시급한 과제들이 해결되기는커녕 교사와 학생, 학부모간의 갈등과 반목을 심화시키는 정책들이 실현돼왔습니다. 이러한 정책의 문제점에 대한 공동의 인식과 함께 교사와 학생이 인간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공동 노력과 학교를 교육주체인 교사와 학생·학부모의 권리가 실현될 수 있는 교육공동체로 만들기 위해 전교조는 최선을 다해 나갈 것입니다.

전교조는 전문직노조로서 교원의 사회 경제적 지위 향상과 참교육 실천을 강령으로 삼고 있습니다. 교원노조의 목표는 교원의 처우 개선을 통하여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제도 개선을 통하여 교원의 근무 조건은 개선하는 것은 물론 학생들에게는 학습 환경을 개선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전교조는 참교육 실현을 위하여 많은 정책 대안을 마련하여 교섭에 임해 왔으나 교육부는 한사코 정책과제들을 의제에서 제외시킴으로써 전교조는 부득이하게 교원의 임금과 복지 중심으로 올해의 교섭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결과에 대하여 많은 분들이 우려하고 있는 점을 전교조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전교조는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하반기에는 7차 교육과정 도입, 자립형 사립학교 도입 등 교육의 공공성을 약화시키는 교육정책에 대항하여 전 조직력을 기울여 싸워나갈 것입니다.

전교조가 처음 결성할 때 국민에게 약속했던 교육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새로운 장정에 모든 교육주체와 국민이 함께하기를 바라면서 건승하기를 기원합니다.

윤지희 회장님께(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

지난 전교조의 단체교섭에서 저의 단식투쟁을 격려하고 염려해주신 데 대하여 먼저 감사드립니다. 평소에 자주 만나면서도 충분한 대화의 시간을 못 가졌었는데 이렇게 글로써 대화를 나누게 되어 어색하기도 하고 한편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제가 이렇게 편지를 드리는 것은 제자같은 대학생으로부터 편지를 받고 교육의 주체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전교조에 대한 학부모님들의 기대가 어떠한 것인지,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전교조가 합법화 이후 참교육보다는 권익 중심으로 흐르지 않느냐 하는 우려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우리의 상황을 한편 아쉽게 생각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전교조에 대한 학부모님들의 이해가 부족한 부분에 대하여도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작년에 합법화를 맞으면서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가장 많이 받았던 인사는 ‘지금부터입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탄압을 받던 지난 시기에는 정권에 맞서 싸우는 것만으로도 전교조의 정당성이 확보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정책 대안과 실천으로써 책임 있는 전교조로서의 역할을 다해 달라는 당부가 담겨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교조가 노동조합법에 의한 단체교섭을 통하여 교육환경 개선과 교육발전의 토대를 만들고자 했던 노력은, 전교조를 권익집단화하고, 조합활동을 무력화하려는 교육부의 구도와 충돌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작년에 명동성당 농성에 이어 올해 단체교섭 과정에서 제가 머리를 삭발하고 18일간의 단식농성을 전개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기본적인 조합활동조차 허용하지 않고, 교육정책협의회조차 구성할 수 없다는 전교조 무력화정책에 대한 처절한 저항이었습니다.

그러나 단체교섭을 전후하여 이루어진 조기유학 허용, 외국인학교 내국인 자녀 허용조치, 자립형 사립학교 도입, 인적자원 개발 중심의 교육부총리제 도입에 대해 전교조와 교육운동단체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많은 부분에 대한 책임이 전교조에 있음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반성을 토대로 전교조 간부연수에서는, 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이 공교육의 토대를 무너뜨리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전 조직력을 기울여 싸워 나갈 것을 결의하였습니다. 10%의 우수한 인력이 나머지 90%를 부양하는 것이 지식기반사회요, 이 지식기반사회에 필요한 능력을 기르기 위해 교육이 개편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교육부문마저 정글의 법칙에 지배당하도록 하며, 빈익빈부익부의 폐해가 교육의 이름으로 합리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진 자에게도 선택할 자유를 달라는 이러한 논리하에 대다수 민중의 자녀들을 무한 입시경쟁의 낙오자로 전락시키려는 정책이 7차교육과정이라는 이름으로 도입되고 있습니다. 자립형 사립학교는 이러한 정책의 대표적인 표징일 따름입니다.

윤지희 회장님, 죽어가는 아이들을 살리자는 절박한 심정으로 전교조를 결성하였던 그 심정으로 우리는 현 정부의 교육정책이 진정한 교육복지를 실현하고 통일민족국가를 이끌어나갈 민족 교육을 구현하도록 촉구하고 싸워나갈 것입니다. 자립형 사립학교 도입 등의 교육정책에 대해 참교육학부모회가 우리는 대다수 국민들의 편에서 반대한다는 입장을 개진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제 교사, 학생, 학부모가 하나되어 중학교 의무교육조차 이루어지지 못한 교육후진국의 멍에를 풀어내고 최소한 아이들이 마실 물은 있는, 찜통교실은 아닌 곳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교육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싸워나가야 할 때입니다.

새천년 우리교육의 방향이 결정되는 엄중한 시기에 이러한 대오의 중심에 전교조와 참교육학부회가 함께 하자는 결의의 말로 마지막 인사말을 대신합니다. 내내 건강하십시오.

2000년 8월 17일, 전교조 위원장 이부영.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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