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궤도차량 여중생 사망사건” 이후 고교생 눈에 비친 미국
‘할머니! 갔다올게.’
하얀 반바지에 붉은악마 T셔츠를 받쳐입은 미선이는 가방을 메고 마루에 서서 할머니께 인사드렸다. 효순이랑 친구 생일잔치 갔다가 피자 사먹고, 영화구경 하고 들어오겠다며 생긋 웃고 나갔다.
친구들은 생일 전날인 13일 다혜 생일과 효순 생일(14일)을 한꺼번에 하자고 했다. 선물도 받고 맛있는 것도 사먹으려니 가슴이 설렌다. 투표하는 날, 아침이 밝으면 한동네 아랫집 사는 미선이를 만나 32번 버스 타고 의정부 시내로 나갈 생각이다.
6월 13일 오전 10시. 효순과 미선은 재잘거리며 마을 어귀를 돌아 버스정류장으로 가고 있었다. 인도가 없는 길섶엔 풀들이 웃자라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오가던 통학로. 편도2차선 시골길이지만 차들은 언제나 쌩쌩 달린다. 그래서 마을 어른들은 입버릇처럼 차조심 하라고 일렀다. 등하교 길목. 풀숲이 우거진 이 갓길에선 너나할것없이 한 줄로 다닌다. 흙바람을 몰고 달리는 차를 피하려면 어쩔 수 없다. 그 날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열다섯 살. 아직 여물지 않은 어린 꽃들은 6월 13일 아침 56번 지방도로에서 사나운 맹수처럼 달려드는 미군 궤도차량에 처참히 깔렸다. “교통사고가 났다”는 소문을 듣고 달려온 미선이 오빠 심규진 군(18세 경민고 3학년)은 파열된 두개골과 아스팔트 위에 뚝 떨어져 나뒹구는 하이얀 팔 한 조각을 보고도 그 시신이 동생들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50톤 짜리 육중한 궤도차가 여중생들의 비명마저 삼켜버렸을 때 둘은 서로 뭐라고 위로했을까.
아늑하고 고요한 시골마을 효촌2리. 이 동네 동갑내기는 효순과 미선 딱 둘이다. 아래윗집으로 살면서 비슷한 시기에 딸들을 낳아 두 집은 지금껏 한동네에 산다. 그러니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모두 같이 다녔고 둘은 떼어놓을 수 없는 단짝이 됐다. 효순과 미선의 사진첩엔 코흘리개 때부터 교복 입은 중학교 때까지 함께 찍은 사진들이 영화필름처럼 이어졌다.
‘막내라 항상 자는 모습도 예쁘고, 엄마한테 얘기도 잘해줬는데. 아직도 미선이가 살아 있는 것 같아요. 그거 하나 가고 나니 집안에 웃음이 없어졌어요. 우리, 참 화목한 집안이었는데.’
미선이는 젖 떨어지고 나서 줄곧 할머니와 한 방을 썼다. 미선이가 황망하게 가고 나니 할머니는 아예 그 방 출입조차 삼간다. 그 만큼 상처가 깊다.
‘엄마, 작은누나… 탱크… 이렇게 생겼지이….’
막내동생은 효순을 뭉갠 궤도차를 손가락으로 만들어 보인다. 밭에 나가봐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효순의 어머니는 눈시울을 붉히며 막내를 끌어안고 외마디를 던진다.
‘그래. 이제 그만.’
효순의 죽음 뒤, 막내는 낯선 사람을 볼 때마다 제 누나의 죽음을 그렇게 알리고 있다. 효순의 어머니는 아직도 실감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자꾸 빈 책상을 바라보게 된다. “지금 들어올 시간인데….” 미선과 효순이가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며 들어올 것만 같다.
‘한동네에서 오래 살았으니 당연히 단짝이죠. 죽어서도 손잡고 잘 올라갔겠지요. 하늘나라에서도 둘이 잘 놀 거예요, 외롭지 않게. 다시 태어난다면, 부디 도시에서, 아주 부잣집에서 태어나 걱정없이 살았으면 좋겠어요.’
어머니는 속으로 울고 있었다.
‘윗대가리들이 제일 비겁해요’
남양주군 광적면 조양중학교 운동장. 똑같은 체육복을 맞춰 입은 학생 40여 명이 공놀이를 한다. 두 여중생이 미군 궤도차량에 의해 사망한 지 한 달 여가 지나서일까. 학교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듯하다. 30년 된 조양중학교 개교 이래 이렇게 충격적인 사건은 처음이다. 그런데도 교사들과 학생들은 가슴을 쓸어 내릴 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교통안전교육을 강화하고, 학생들은 제2, 제3의 미선과 효순이가 되지 않기 위해 “개인적으로” 조심할 뿐이다. 학교 측은 양주군청에 도로확장, 반사경 설치, 인도설치를 건의했지만 언제 받아들여질지 알 수 없다. 거기까지가 학교의 일이고, 그 다음은 “윗분”들이 알아서 “하실” 일이다. 이 대목에서 한 조양중학교 교사가 털어놓은 절규는 오히려 침묵이었다.
‘우리는 이제 제자리에 있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죽은 뒤 추모제도 지내고, 울 만큼 울었어요. 언제까지 이 사건에 매달려 있어야 합니까. 애들 데리고 데모하러 다닐까요? 미군 물러나야지요, 기지도 반납해야지요. 그러나 이제 열다섯인 아이들이 뭘 알겠어요. 더이상 아픈 상처를 후벼파지 마세요.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기자들은 정말 나쁜 사람들이에요. 이제 오지 마세요.’
6월 20일 의정부 CRC(camp red cloud) 미2사단 앞에서는 집회가 있었다. 의정부여고를 비롯해 학생 180여 명이 효순과 미선의 죽음을 애도하며 시위에 참여했다. 그후로 조양중학교와 의정부여고엔 집회참가를 막는 “금족령”이 내린다.
‘너희들은 지금 시민단체에 이용당하고 있는 거야. 공부에 전념하렴.’
의정부여고 교사 심우근 씨는 울화가 치밀었다.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조차 인정해 주지 않는 학교는 대체 아이들에게 어떤 자유와 책임을 가르치고 있는가. 가슴에서 불기둥이 솟구쳤다.
‘학생회장이 6월 20일 집회참석을 알리는 방송을 하더군요. 교장선생님도 그때는 허락하셨어요. 집단적으로 가지 말고 갈 사람들은 알아서 가도록 하지 뭐 그랬다구요. 그러다가 조양중학교에 전화를 걸었대요. 사태파악을 하기 위해서였겠죠. 조양중학교장이, 유가족들이 1억7000만 원에 합의봤다니까 애들 시위에 못 나가게 하라고 그런 모양이에요.’
시위현장엔 운동장 조회에 참석하는 것처럼 아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경과보고, 사건개요, 실천행동의 순서로 나아가다 항의서한 전달 대목에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전경들과 시위대가 맞붙어 옥신각신했다. 그러던 중에 미군부대 한쪽 구석 벽이 허물어졌다. 문 틈 새로 보이는 미군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히죽히죽 웃는 자, 껌 씹는 자…. 한국군과 시위대가 충돌하는데, 정작 미군은 이중삼중으로 한국군의 보호를 받으며 히죽거렸다. 바로 이 장면이 아이들의 가슴에선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정치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얘기해 주셨어요. 미선이와 효순이가 어떻게 죽게 됐는지. 그래서 아이들은 우리도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미선이와 효순이 언니들이 의정부여고에 다녀서 더 가슴이 아파요. 남의 문제가 아니니까. 그래서 집회에 참석했던 건데 일이 꼬인 거죠.’
의정부여고 이순진(가명) 학생의 말이다.
지난 6월 24일 “미군 장갑차에 의한 두 여중생 살해사건 경기북부대책위원회”는 회견보조문을 통해 학생들의 자유로운 집회참여를 방해한 ‘조양중학교와 의정부여고장의 비교육적 행동에 개탄을 금치 못한다’며 ‘이번 사건에서 공정하고 객관적인 조사와 관련자 처벌, 최고책임자의 사과, 피해배상, 재발방지 조치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는데 조양중학교장은 의정부여자고등학교장에게 “조정위원이 피해보상조로 1억7000여만 원 정도를 제시해 사건이 해결된 듯하다”는 발언으로 마치 보상금만 받으면 사건이 해결되는 듯이 말한 점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의정부여고장은 처음엔 학생들의 집회참석에 긍정적이다가 조양중학교 측의 위 내용과 같은 연락을 받고는 학생들이 참가하지 못하도록 지시했다. 또한 학생회장을 불러 “너희들은 이용당했다”는 근거 없는 말로 학생들과 교사들, 시민사회단체들을 모욕, 매도했다. 진정한 교육자라면 이에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틀 뒤 의정부여고 홈페이지 게시판은 폐쇄됐다. 학교장의 발언에 대해 분노한 네티즌들이 몰려가 항의하자 이 일이 확산되는 걸 우려한 학교 측이 내린 조치다.
‘우리 교장 미쳤나봐. 지 딸이 그렇게 죽었다고 해봐요. 가만 안 있을걸? 우린 집회에라도 참석하는 게 인간적인 도리라고 생각했어요. 친구 동생이 미군 궤도차량에 치여 죽은 거잖아요. 그런데, 맨 처음 이 집회에 참가하자고 주도했던 회장언니는 쉴새없이 불려가 야단 맞았어요. 처음에는 적극적으로 참가하자던 언니가 나중에는 이러다 나 학교 잘리는 거 아니냐?로 바뀌더라구요. 학교는 참 이상해요. 정치수업 시간엔 집회의 자유가 있다고 배우잖아요.
그런데 현실은…. 오노가 김동성의 금메달을 뺏었을 때 온 국민이 분노하지 않았나요? 일본에선 여중생이 성폭행당한 것 때문에 온 국민이 들고일어나 결국 부시의 사과도 받았대요. 그런데, 우린. 사람을 죽인 미군을 조사조차 못하고 있잖아요. 일부 사람을 제외하곤 전국민적 분노가 없어요. 묻는 말에 애써 외면하시는 선생님들도 웃겨요. 왜 똑똑히 얘기 안 해주죠? 뭐가 잘못된 건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하는 건지. 정부는 미군과 자기들끼리 몇 마디 하고 덮으려는 것 같아요. 약한 동남아 사람들 앞에서는 으스대고 미국놈들 앞에서는 기죽는 윗대가리들이 제일 비겁해요.’
의정부여고 김하늘(가명) 학생의 말이다.
학생들이 시위 간다 했더니 버스에 탄 아줌마가 ‘더워죽겠는데 무슨…’ 하며 혀를 끌끌 찼단다. 여고생들은 시쳇말로 ‘어른들은 이기적인 왕재수’라며 눈을 흘긴다.
인터넷 서명운동 잘하자
의정부 송현고등학교 학생 8명은 효순과 미선이를 생각하며 6·20집회에 참석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미군과 주둔군지위협정(SOFA)은 이렇다. 그들은 주로 안티미군(antimigun.org) 사이트를 통해 소식을 접하고 있었다.
솔림
‘원래 미군이 옆에 지나가도 관심 없었는데, 요즘은 괜히 괘씸하게 생각하며 바라보죠.’
정아
‘미군 부주의로 국민이 목숨을 잃었는데 정부 차원의 대응이 미비해 참 안타까워요. 국력이 약하다는 걸 실감하고 있죠. SOFA개정을 무엇보다 서둘러야 합니다.’
인선
‘미군이 우리 국민을 죽였는데, 왜 미군부대 앞에서 우리나라 사람들끼리 싸워야 되나요? 너무 억울해요.’
선경
‘우리가 시위하는데 한 할아버지가 침을 뱉었어요. 왜 길 막히게 데모하느냐고. 너무 이기적이에요. 자기 손녀가 그랬다면? 상상에 맡길게요.’
떡볶이를 시키고 마주 앉은 그들은 쉴새없이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수능시험 119일을 남겨놓은 고3이지만 그래도 이 땅의 청소년으로서 할 일은 해야겠기에 집회에 나간다고 말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애국은 이런 거다.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우고,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를 줄 안다고 애국시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자기 일이 아니어도 주변에 일어난 사건에 관심을 갖고 힘을 보태는 것이 진정한 애국 아닌가요? 안티미군사이트에서 진행되는 인터넷 서명운동이 잘 됐으면 좋겠고, 학교에 이런 사실을 알리는 대자보를 붙여도 선생님들이 일방적으로 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들은 일본 여중생 성폭행사건 때처럼 부시 대통령의 공식적인 사과를 받아야 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약속, 불평등한 SOFA(주둔군지위협정)도 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민고에 재학중인 준성은 “윤금이사건”을 기억했다. ‘동두천에서 살인사건이 있어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됐지만 그때도 형사재판권을 이양받지 못했다고 들었어요. 지금과 비슷할지 몰라요. 이에 격노해야 할 어른들은 오히려 쉬쉬하며 감추려 들어요. 왜 그래야 하죠? 밝힐 것은 밝히고, 책임 물릴 것은 물려서 반듯한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학교에서는 그렇게 배웠는데요.’
학교에서 배운 것과 현실은 괴리감이 크다고 토로하는 우리 시대 고등학생들. 그들의 예각적이고 분명한 항변은 듣는이에게 자극이 된다.
이 미래세대들은 매우 합리적인 눈으로 미국의 책임을 묻고 있다. 말 안 되는 정치논리는 찾을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을 만나고 돌아오다 길 위에 선 사람들을 보니 또 다시 한숨이 터진다. 마치 외줄을 타는 광대처럼 인도가 없는 좁은 갓길로 양산 쓴 아주머니와 묵직한 책가방을 둘러맨 고등학생이 위태롭게 걷고 있다.
남양주군 광적면을 지나 의정부 시내로 진입하기까지 대부분 도로가 그랬다. 군용트럭과 탱크는 시민의 행로를 방해하고 있었으며 작전 나온 군인들은 검문하기 바쁘다. 15년 전에도 여고생들이 지금과 똑같이 이런 길로 통학했다니 더욱 기가 막힐 노릇이다. 군사도시 “면민”들은 언제쯤이나 평안한 인도를 걸을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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