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쉐르빌 Ⅰ, 부실과 업체간 싸움으로 입주자 피해 커
삼성중공업 쉐르빌. 2001년 대한민국 능률협회 브랜드 파워 1위에 선정된 건설산업계의 기린아가 부실시공 의혹에 휘말려 하루 아침에 명성이 빛바래고 있다.
서울 서초동에 들어선 주상복합건물 서초쉐르빌Ⅰ은 지난해 7월 준공, 사용승인을 얻었지만 지금까지도 건물 곳곳에서 보수공사가 계속되고 있다. 게다가 시공사와 건축주 사이에 건물인수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아 입주자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곳곳에 부실의혹, 화재시 대규모 참사 우려
서초쉐르빌Ⅰ에서 부실의 흔적은 쉽게 찾을 수 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지은 건물인지 의심조차 간다. 보수공사를 위해 오르내린 천장에는 벌써 금이 가 있다. 수도관이 터져 거실로 물이 넘치는 바람에 바닥을 전부 뜯어내는 일도 벌어졌다. 가구들은 설계도대로가 아니라 품질 미달의 재료를 사용해 군데군데 벗겨져 있다. 방화용 석고보드를 대야 할 창문 아래쪽도 가격이 싸고 불에 타기 쉬운 합판과 스티로폼으로 시공되어 있다.
이 건물은 특히 화재에 무방비다. 건물 여기저기에 흰색 거품 같은 물질이 뿌려져 있는데 이것은 불에 잘 타고, 불이 붙으면 유독물질을 내뿜는 우레탄폼으로 공동건축물의 마감재로 쓸 수 없게 되어 있는 재료다. 그런데도 우레탄폼은 건물의 복도와 천장을 비롯해 방문틀, 배관 등에서 발견되었으며, 엘리베이터 프레임 사이도 우레탄폼이 가득 채워져 있다. 우레탄폼은 시랜드 화재와 인천 호프집 화재 때도 유독가스를 내뿜어 많은 인명을 앗아간 바 있다. 건물 안전책임자 한상철 씨는 “우레탄폼은 아주 적은 양이라 할지라도 여기에서 생성된 유독가스는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치명적인 물질’이며 불에 타지 않는 재료의 내부에 충전재로 사용될지라도 온도가 100도만 넘으면 녹으면서 유독가스를 내뿜기 때문에 건축물에 절대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또 서초쉐르빌Ⅰ은 불이 났을 때 건물의 철골이 불에 견딜 수 있도록 해주는 철골 내화피복이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검사결과 기준치인 40㎜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철골 내화피복은 어느 한 부분만 기준치에 미달하더라도 부적합 판정을 받게 되는데 이 건물은 적지 않은 곳이 기준에 미달했으며, 철골구조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경우도 있었다.
시공사가 방화문이라고 주장한 출입문도 실험결과 불에 쉽게 타버렸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실시한 실험에서 1시간 이상 불에 견뎌야 하는 방화문이 12분 만에 유독가스를 내며 타버렸다.
이밖에도 높이가 165㎝로 성인의 머리가 닿을 듯한 피난계단과, 배기와 환기가 재대로 되지 않는 지하층 역시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삼성중공업은 부실시공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서초쉐르빌Ⅰ 건설사업부 김종훈 소장은 “우리는 설계도면에 따라 적법하게 시공했고,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그는 “우레탄폼은 건물의 마감재로 사용이 금지되었을 뿐, 불에 타지 않는 재료 사이에 충전재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은 없다. 내화피복도 기준치에 미달하는 곳이 발견되었지만 보수를 하고 공인기관의 검사를 마쳤다”고 주장했다. 방화문에 대해서는 “실험에 사용되었던 출입문은 도면상 방화문이 아닌 일반 출입문으로 당시 참관했던 책임자가 잘못 알았던 것이고 서류상 실수가 있었다”며 “그게 방화문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할지라도, 건축법상 요구하는 철판 두께를 초과하기 때문에 방화문 기준에 미달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삼성중공업의 이러한 태도는 주위로부터 ‘잘못을 책임지려 하지 않고 법의 미비한 부분을 틈타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한 행태’라는 비난을 사고 있다.
시공사와 건축주의 이면합의 통해 사용승인 취득
흠 투성이 건물이 어떻게 사용승인을 얻을 수 있었는지도 관심거리다. 지난해 7월 구청에서 사용승인이 나기 한달 전쯤 시공사인 삼성중공업과 건축주인 광명산업개발 사이에 비밀보장을 원칙으로 이면합의가 이루어졌다. 광명산업개발이 건물을 인수할 때 삼성중공업은 부실시공과 관련해 공사비 20억 원을 깎아주고 6가지 부실시공은 재시공을 하겠다는 합의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 합의서에는 광명산업개발이 당시까지의 시공에 대해 이후 일체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도 붙어 있었다. 광명산업개발은 삼성중공업의 재시공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부실이 여전한데도 사용승인 당시 이 사실을 눈감아 주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입주자들은 ‘삼성쉐르빌’이라는 이름과 구청의 사용승인만 믿고 문제투성이인 건물에 입주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건물 감리를 맡은 감리회사 A&A는 정밀하게 감리하지도 않고 업체들의 요구대로 사용승인이 날 수 있게 했다. 공사 도중 감리 책임을 맡게 되었다는 황완진 감리사는 “준공된 상태에서 건물 내부의 부실을 밝혀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사용승인 당시 시공사나 건축주가 모두 문제가 없다고 했기 때문에 도장을 찍었다”고 말했다.
담당 공무원의 무사안일한 업무처리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 건물이 사용승인을 받기 이전 건설교통부는 산하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현장조사 결과를 기초로 ‘부실시공에 대한 조치, 부실시공현장 시공자, 감리자에 대한 의법조치’를 서초구청에 지시했다. 하지만 서초구청은 현장실사 없이 사용승인을 내줬으며, 담당자에 대한 조치도 하지 않았다. 서초구청 건축과 배연탁 계장은 “우리에겐 정확한 판단을 할 만한 전문성이 없고, 현장실사 의무도 없다”고 항변했다.
업체간 책임 떠넘기기, 입주자만 피해
서초쉐르빌Ⅰ은 게다가 시공자와 건축주 사이에 건물인수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아 상가 입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건축주인 광명산업개발은 삼성의 합의내용 불이행과 부실시공을 이유로 건물의 인수를 거부하고 있다. 반면 삼성중공업은 ‘광명산업개발이 건물의 용도변경을 위해 재시공을 하다가 공사비가 예상보다 많이 들자, 공사대금을 지불하지 않기 위해 부실의혹을 제기하며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삼성중공업은 광명산업개발의 인수거부에 맞서 법원에 점유방해금지가처분 신청을 내 가처분 결정을 받아냈다. 이 과정에서 광명산업개발의 비리도 드러나고 있다. 광명산업개발이 설계사무소, 감리사무소와 이중 계약을 통해 입주자들에게 고시한 설계비와 감리비 중 절반을 빼돌린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영업 편의를 위해 건물이름도 ‘서초 쉐르빌Ⅰ’에서 ‘밀라톤 오퓨런스’로 입주자들의 동의 없이 바꿔 원성을 사고 있다.
입주자 박낙원 씨(53세)는 “삼성 쉐르빌이라는 명성을 믿고 분양받았는데 눈에 보이는 부실이 심각한데다 업체 간의 싸움으로 입주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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