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4년 02월 2004-02-01   962

시민발언 진보정당은 ‘정당’이기 전에 ‘정치운동’이다

물론 그 긍정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민단체의 정치개혁운동에는 한계가 있다. 총선시민연대가 지난 총선에서 낙천 낙선운동을 벌여 80%이상의 대상자를 떨어뜨렸지만 그 결과인 오늘의 우리 정치가 크게 좋아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이 때문에 어떤 시민단체는 이번에는 ‘당선운동’ 이라며 물갈이를 주창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역시 한계가 있다. 역대 선거결과를 종합해 보면 매번 총선 때마다 40%이상의 현역의원들이 물갈이 되어왔다는 것이 선관위의 공식통계다. 자연적인 물갈이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정치판은 오늘 이처럼 비참한 현실을 맞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물갈이는 부패하고 낡은 정당들이 자신의 본질을 유지하면서 이미지만 쇄신하는 기만적인 수단으로 이용되어 왔다. 전두환 시절 민정당으로 출발해 2000억원에 이르는 안기부 자금 유용을 거쳐 최근 차떼기 파동에 이르기까지 면면이 내려온 한나라당의 역사와 전통을 조금만 바라본다면 정말 인물들을 물갈이하는 것이 정치발전의 대안인지 의심하게 된다.

이제 좀 더 직접적이고 좀 더 본질적인 정치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인물운동’이 아니라 ‘정당운동’이다. 판이 썩어있는 마당에 물만 갈아준다 하면 그 물은 다시 썩을 수밖에 없다. 물갈이가 아닌 판갈이를 해야 하고 인물 대신 정당을 바꿔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정치하는 것들은 다 똑같다고. 맞는 말이다. 이제 기존의 정치하던 것들, 그 똑같은 것들을 밀어내고 ‘일하는 사람들’이 직접 정치의 주인으로 나서야 한다. 원래 정치의 주인은 ‘일하는 사람들’ 즉 민중인 것이다. 그러나 여지껏 정치의 주인이 되어야 할 ‘민중’은 정치판에 나갈 수 없었다. 돈 없이는 정치를 할 수 없도록 ‘정치제도’가 꽉 막혔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땅의 진보정당 운동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갈망해 왔고, 이제 민주노동당이 얻어낸 헌법재판소 판결에 힘입어 기존 전국구 제도를 대체한 ‘1인 2표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의 도입을 코 앞에 두고 있다. 한국 자본주의 역사상 처음으로 진보정당의 의회진출이 실현되려 하는 것이다.

유권자는 정치판의 공정한 심판이 아니다. 유권자는 정치의 ‘주인’이다. 그러나 그 동안 낙선운동, 당선운동 같은 인물중심 정치개혁 노선은 ‘민중’을 정치의 객관적인 심판으로 만들려고 했을 뿐, 민중 자신이 바로 정치의 주인이라는 측면은 간과하게 만들었다. 시민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참여인 정치참여 문제를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바라보게 만든 치명적인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시합이 끝난 뒤 승리의 기쁨도 없고 패배의 슬픔도 없는 심판노릇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세상에 완전히 객관적인 것이 어디 있단 말인가? 지난 반세기동안 정치는 돈 많은 사람들의 전유물에 불과했다. 차떼기가 아니면 정치를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오랜 한 맺힌 염원 끝에 처음으로 노동자들이 만원씩 모은 돈으로 자신들의 대표를 국회에 보내는 꿈 같은 역사가 눈앞에 와 있다. 이 가슴 뻐근한 시점에서 심판이나 보고 있다니 얼마나 심심한 일인가? 이기건 지건, 민중의 정치! 그 격랑의 파도 속에 함께 휩쓸려야 하지 않겠나?

홍기표 민주노동당 인터넷위원회 상근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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