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5년 06월 2005-06-01   946

한 혁명가가 소멸해가는 풍경

몇 달 전 사이공에 갔다가 쩐 반 저우(Tran Van Giau)선생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베트남이 독립을 쟁취한 1945년 8월 혁명 당시 남부베트남의 최고지도자였다. 일찍이 파리 유학시절에 혁명운동에 뛰어들었던 그는 8월 혁명 뒤에 북으로 가서 호치민과 함께 일했던 인물이다.

집으로 찾아갔을 때 올해 94세인 그는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긴 전쟁이 끝난 다음, 그는 정치일선에서 물러나 역사학자가 됐다. 대학에서 베트남역사를 연구하며 학생들을 가르친 그는 학문적으로도 최고의 성취를 이루었다. 베트남역사에 대한 그의 연구 결과는 외국에서도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인용의 대상이다.

오후 3시부터 7시까지 네 시간동안 나와 얘기하면서 조금도 자세를 흩트리지 않는 그의 눈빛은 형형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은 정신에 양분을 주는 일이지요. 이 일을 멈추게 되면 그 순간 나는 죽게 되는 겁니다.”

역사학자에 더 가까워진 이 노혁명가의 지난날은 벽에 걸린 몇 장의 사진 속에 고요히 담겨 있었다. 소년시절의 배경으로 자리 잡은 큰 저택은 그가 부유한 집안 출신임을 말해 주었다. 지금 그가 살고 있는 사이공의 집은 그것에 비하면 너무나 작고 초라했다. 혁명을 통해서 그가 얻은 것이 무엇일까. 어떻게 해서 그토록 단정하고 고요하게 늙을 수 있었을까. 그런 궁금증에 대한 희미한 대답이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 조금씩 들어 있었다. 그가 빙그레 웃으며 내게 들려준 호치민과 얽힌 일화도 그런 단서의 하나였다.

“북으로 갈 때 입고 갔던 옷이 그게 옷이라고나 할 수 있나.‘옷같지 않은’옷 한 벌로 지내다 그나마 너무 낡아버려 새 옷 한 벌을 맞춰 입게 되었지. 그런데 말야, 따로 청하지도 않았는데 옷집에서 특별히 신경을 썼어. 좋은 옷감에 고급 단추를 단 양복 한 벌을 만들어 주더라구. 그 옷을 입고 출근을 하니까 호주석이 감탄을 금치 않는 거야.”

호치민은 그의 옷에 달린 단추를 몇 번이나 매만지면서 거듭 칭찬을 했다.

“멋있어. 정말 멋있어.”

처음에 칭찬인줄 알았던 그는 호치민의 눈빛을 보고 나서 그만 너무 무안해지고 말았다.

“인민들이 굶고 있는데 혁명의 간부라는 자가 지금 뭐 하고 있는 짓이냐, 호주석의 눈빛은 내게 그렇게 말하고 있는 거야.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 없더라고.”

저녁 시간을 훨씬 넘기도록 이야기를 하고 일어서려는 나에게 선생은 맥주 한 잔 하고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사양하지 않았다.‘타이거’한 깡통씩을 따서 같이 마시며 그의 눈빛이 잠시 아득했다.

“8월 혁명 시절의 내 동지들 중에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은 나 하나뿐일 거야. 오래 살았지.”

2층 계단에서 작별의 악수를 청하는 그의 눈빛은 아직도 상대를 압도할 만큼 강렬했다.

“멀리 못나가네. 일 잘 보고 한국으로 돌아가게.”선생은 천천히 돌아서서 서재로 들어갔다. 이야기하는 동안 아주 점잖게 곁에 앉아 있던 커다란 개도 선생을 따라 느릿느릿 서재로 들어갔다. 문이 열려 있는 옆방에는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부인이 누워있었다.

그들 부부는 결혼하고 나자마자 헤어져서 30년을 떨어져 살았다. 감옥살이와 추적을 피해서, 그리고 남북으로 갈려 30년을 떨어져 살았던 그들 부부에게는 자식이 없다. 대저택을 가진 부잣집의 자식으로 태어나 혁명에 한 평생을 바쳤던 쩐 반 저우는 호치민만큼 크지는 않겠지만, 남부베트남인들의 깊은 사랑과 존경을 받아왔다.

호치민이 아무런 재산도, 한 점의 혈육도 남기지 않고 떠났듯이 그들 부부도 조용히 소멸해갈 것이다.

그를 만나고 온 다음주에 나는 그의 부인이 운명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름답게 사라져가는 한 시대의 뒷모습이 쉽게 지워지지가 않는다.

방현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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