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6년 05월 2006-05-01   2718

멜라콩 다리를 아시나요?

멜라콩 다리의 주인공 박길수 씨는 선천성 소아마비로 손발이 떨리는 장애를 지녔고 체격까지 작았다. 하지만 어렸을 때 형이 병으로 오랫동안 앓아누워 살림이 기울자 고향을 등지고 나와 목포역 소화물 취급소에 취직했다. 그는 성치 않은 몸으로 일을 하면서도 48년을 한결같이 불우한 이웃을 돌보았다. 그는 세상을 떠난 뒤에도 목포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멜라콩 다리를 세운 일 때문이다.

지금 목포 땅의 80% 정도가 간척과 매립을 통해 얻어졌는데, 예전에는 목포역 안쪽까지 물이 들어왔다.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목포역 옆은 넓고 긴 하천이었다. 하천 건너편 사람들이 기차를 타거나 어물시장으로 물건을 팔러 가려면 상당히 먼 길을 돌아서 다녀야 했다. 이러한 불편을 없애기 위해 다리를 놓아야겠다고 결심한 박길수 씨는 시청을 찾아가 다리를 놓아달라는 민원을 내지만 거절당하자 직접 모금운동에 나섰다. 몸도 온전치 않으면서 주제넘은 행동을 한다는 주위의 냉소에 굴하지 않고 공사에 필요한 철근과 시멘트를 구하러 다녔다. 이러한 소문이 퍼지자 목포역 근처의 사창가 아가씨들도 얼마씩 모금하여 그에게 전달할 정도로 차츰 주변 사람들의 감화를 이끌어냈다. 박길수 씨는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년 간 저축해온 통장까지 털어서 공사를 시작, 끝내 완공을 보게 된다. 이 때가 1964년 4월 20일이며 박씨의 나이 36세 되던 해였다. 1989년 KBS는 박씨의 생애를 극화한 ‘멜라콩을 아시나요?’ 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기도 하였다.

멜라콩은 박길수 씨의 별명이다. 예전 어느 중국영화에서 일본 무사를 따라다니던 부하의 극중 이름이다. 박길수 씨의 허약한 몸집과 행동이 그와 많이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지금도 지역의 어르신들에게 박길수를 아냐고 물어보면 거의가 모르지만, 멜라콩을 아냐고 하면 대부분이 기억한다. 목포역에서 소화물장으로 가는 담장 밑을 잘 살펴보면 그때를 기념하는 조그만 비석이 하나 묻혀 있는 것도 발견할 수 있다. 멜라콩 다리는 하천 복개로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목포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멜라콩 박씨가 여전히 살아있다.

올초 이건희 삼성 회장이 8,000억 원을 사회에 내놓더니 몇 달 뒤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도 1조 원의 사회 환원을 약속했다. 많은 재산을 가진 이들이 사회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 많은 돈을 내놓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기부행위가 21세기의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기부로 인해 멜라콩 박씨 같은 이들의 순수한 기부와 사회봉사까지 의심을 받게 된다면 그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정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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