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6년 07월 2006-07-01   2255

외국건축가, 한국건축가

정부종합청사, 교보빌딩, 롯데호텔, 63빌딩, 삼성종로타워, 삼성동무역센터, 포스코빌딩, LG빌딩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건물들이 가진 공통점은 무엇일까? 알만한 독자들은 벌써 눈치 챘겠지만, 이 건물들이 그렇듯이 우리 도시를 대표하는 대형건물들 중 거의 대부분이 안타깝게도 외국의 건축가들에 의해 설계되었다. 국내의 건설회사들이 해외무대에서 최고로 높은 건물을 짓고 높은 기술 수준과 수주실적을 자랑하고 있지만 정작 국내 대형 건물의 설계는 외국에게 내맡기고 있는 실정이다.

공공부문조차 외국건축가 선호

이는 아직까지 국내 건축가들의 설계능력이나 기술력이 아직 부족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건축설계라고 하는 분야는 최초에 건물을 짓기 위한 밑그림으로부터 그 디자인을 발전시켜서 공사를 위한 도면을 준비하는 과정까지 건축가와 그 협력자들의 능력과 경험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구조 및 설비와 같은 엔지니어링 관련 기술력이 무엇보다 요구되는 분야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에 대형 건물을 짓기 시작한 초기인 70-80년대에는 경험 있는 외국 설계회사들의 도움이 당연히 필요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외국건축가들에게 우리 도시의 상당부분을 내맡기고 있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2천 년대 들어와서는 외국의 유명 건축가들이 기술력과 함께 예술성과 상품성까지 내세우면서 국내에 다양한 작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이제는 대형건물뿐만 아니라 미술관과 같은 문화시설에까지 작가로서의 유명세를 배경으로 국내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3명의 외국 유명건축가를 초빙하여 지은 삼성의 미술관 리움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민간이나 기업의 영역 뿐 아니라 공공건축물에서도 이러한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심지어 노들섬 오페라하우스의 예는 한술 더 떠서 외국의 건축가에게는 특혜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건축가 선정의 방식을 시도하였다. 아이디어공모라고 하는 애매모호한 절차를 거친 후 이 당선자와 따로 선발된 외국의 유명 초빙건축가, 그리고 시공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설계시공일괄입찰방식인 턴키방식으로 설계와 시공자를 선정한다고 한다. 외국의 초빙 건축가가 물론 지명도나 건축적 완성도에서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그 건축가를 선정한 근거도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이는 마치 따로 예선전을 치른 후 시드를 배정받은 선수들과 경쟁을 시키는 스포츠경기에서나 나올법한 방식으로 국가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물론 현재 이 오페라하우스가 실현될지는 불투명한 상황이지만 이러한 방식으로 일이 추진되었다는 경험 자체만으로도 안타까울 뿐이다.

외국 건축가들의 실험무대가 된 우리 도시

실제로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는 외국건축가의 대형 프로젝트 등용의 무대가 되기도 한다. 유럽에서 빌라를 주로 설계하던 한 건축가는 우리나라 강남의 중요 요지에 대형 빌딩을 설계함으로써 대형 건축물의 설계의 꿈을 이루었다. 또한 상당수의 외국 건축가들에게 대한민국은 우리 도시의 맥락이나 삶의 방식에 대한 진지한 고려 없는 개념적인 표현과 과장된 표피의 실험무대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우리 도시의 중요한 풍경들이 외국의 건축가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게 된 것은 물론 우리 한국건축가들의 책임이 크다. 그동안 경제성장과 개발의 과정에서 수많은 프로젝트를 경험하면서 우리의 건축가들은 스스로의 경쟁력 확보와 도시환경에 대한 책임을 다해왔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노들섬 오페라하우스의 진행방식이나 강남의 대형건물들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무조건 우리 건축가들의 책임만을 물을 수 없다.

실제로 영국은 건축가들을 프로모션하기 위해 작위수여와 같은 국가적인 뒷받침을 하고 있으며, 이 후원받는 건축가들은 전 세계를 무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는 젊고 실험적인 건축을 실현할 수 있는 공공발주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건축연구소등의 각종 건축정책을 통해 자국 출신 건축가를 세계적인 건축가로 등용시켰다. 중국은 현재 대부분의 대형 건물을 외국의 설계사무소를 통해서 짓고 있지만, 21세기에 중점을 두어야 할 첨단분야 중 하나로 건축분야를 선정하여 중점 육성을 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초기의 대형 건물의 설계를 외국에서 많이 수입했지만, 이후 기술력 개발과 건축가에 대한 발굴과 후원 등을 통하여 세계적인 무대에서 활동하는 건축가를 갖게 되었다. 영국의 노만 포스터 경, 리차드 로저스 경, 프랑스의 쟝 누벨, 네덜란드의 렘 쿨하스, 헤르조그 데 뮈롱, 일본의 안도 다다오, 도요 이토와 같은 건축가 들이 이들이다. 실제로 이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한 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 삶의 공간을 만드는 건축

조만간 WTO다 FTA다 하여 설계시장의 국제적 장벽은 완전히 없어질 예정이다. 실제로 모 언론에서는 한국의 서비스 분야의 경쟁력에 대한 기사에서 디자인 관련 분야의 1인당 매출이 미국에 비해 거의 삼분의 일에 불과하다는 내용을 보도한 적이 있다. 물론 외국과 한국의 지적 용역의 서비스에 대한 보상에 차이가 있고, 실제 서비스의 질적 수준에서도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이 상황에서 결국 국내의 건축가와 설계회사들은 외국의 설계회사의 대리인으로 전락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결과는 우리의 도시환경을 외국의 건축가들에게 내어주는 것이 될 것이고, 이는 내가 살 집의 거실과 마당을 옆집사람의 지시로 꾸미게 되는 것과 같다. 건축설계라는 분야가 서비스 산업의 한 분야이기도 하지만 결국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도시환경과 관련된 분야라는 것을 간과할 수는 없다.

현재 우리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혼돈의 도시라고 규정하고 자신이 디자인한 건물이 어떠한 맥락을 갖던 상관없이 서울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갖게 될 거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외국의 건축가들에게 우리의 도시를 내맡기고 있다. 그들은 서울적인 것, 한국적인 것, 아시아적인 것에 대해 우리와 분명히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의 경제적 규모에 걸맞은 국제적 경쟁력이 있는 건축가를 발굴하고 키우는 것을 더 이상 늦출 수는 없다.

박훈영민족건축인협의회, 아름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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