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7년 01월 2007-01-01   1048

내가 배운 역사, 뭔가 이상하다

얼마 전 뉴라이트 진영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시안이 발표되었을 때 주변 반응 중 하나이다.

“현대사가 엉망이지, 민족운동사는 그런 대로 썼네.”

순간, 교육이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라이트 교과서 시안에 등장하는 민족운동사는 우리가 학교 다니던 시절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익숙함이 어찌 “문제없다”로 둔갑한단 말인가. 뉴라이트 진영이 한국근현대사 교과서가 좌편향이라고 주장할 때 코웃음 칠 수밖에 없는 것은 현존 교과서야말로 반공주의·우편향적 시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상황에 따른 민족운동사의 변천과 왜곡

일제강점기 민족전선은 좌(사회주의적 근대화론)와 우(자본주의적 근대화론)의 두 축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이념적 대립축은 민족주의 대 사회주의였다. 용어에 있어서도 좌파는 조선, 해방, 혁명, 투쟁 등을, 우파는 대한, 조국, 독립, 광복 등을 즐겨 사용했다. 그런데 해방 후 분단과 종속의 남한 현실 속에서 우파가 주도하는 반공진영이 집권하면서 민족운동사는 혹독한 이념적 검열을 거쳐 ‘독립운동사’로 주조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친일파가 쓴 독립운동사인 셈이었다. 자신들의 친일행적으로 정당화할 수 없었던 그들의 선택은 하나였다. 우파와 민족주의 일색의 독립운동사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민족해방은 거론조차 불가능한 불온한 단어가 되었다. 우리가 배운 3·1운동-대한민국임시정부-의열테러활동-6·10만세운동-광주학생운동-신간회-광복군으로 이어지는 독립운동사는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민족운동을 사실상 주도했던 좌파·사회주의 계열의 역사는 왜곡되거나 은폐되었다.

1980년대, 냉전과 반공의 금기를 깨고 자주와 민주와 통일을 당당히 이야기하던 시절이 되어서야 민족운동사는 민족해방운동사의 이름으로 화려하게 개화했다. 좌파·사회주의 계열은 물론 중도파의 민족해방운동사가 복원되었다. 분단 극복을 위한 민족통일전선운동과 민중 주도의 사회운동이 주목을 받았다. 당시 민족해방운동사는 그야말로 해방과 혁명을 위한 역사운동의 일환으로 살아 숨쉬는 역사 그 자체였다. 때문에 국가보안법의 칼날을 피할 수 없었고, 「한국민중사」와 「한국근현대민족해방운동사」가 재판정에 섰다.

이처럼 민족운동사는 종속과 분단의 현실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관점과 시각에 따라 민족운동을 부르는 용어가 독립운동(우)과 민족해방운동(좌), 혹은 민족운동(중도?)으로 달랐고 서술에 있어서도 그 취사선택에 이념성이 짙게 배어 있었다. 우리가 수십 년 간 배운 민족운동사는 외눈박이 역사였던 것이다. 물론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민족운동사를 지칭하는 공식용어는 독립운동이다. 독립기념관, 독립유공자……. 갑자기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단순한 사실이 복잡하게 보인다.

식민사학 이어온 우리의 역사교육

역사교육에서 친일적 속성을 지닌 ‘독립운동사’의 명맥 유지는 눈물나는 희극이다. 그것은 해방 후 역사학과 역사교육이 과거청산을 거부했기에 가능했던 애사(哀史)였다. 우리 근대 역사학은 역사운동으로 출발한 특징을 갖고 있다. 민족해방과 근대화를 성취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 속에서 그 자부심을 조장하기 위한 운동으로 시작되었던 것이다.

고난의 행군으로 드넓은 중국을 누비며 자료를 찾고 역사를 기록했던 단재 신채호의 역사투쟁을 생각해보라. 그러나 해방 후 남한에 우파·반공정권이 수립되면서 역사운동의 맥이 끊어졌다. 불행하게도 그 공백을 일제의 식민사학과 관련 맺었던 친일적 문헌고증사학자들이 메웠다. 그들은 이념에 종속된 역사를 거부한다며 실증만을 강조했고 학문적 순수성을 부르짖었다.

이 문헌고증사학의 고도의 정치 전략은 바로 식민사학의 청산을 외면하는 것이었다. 60년대 이후에도 식민사학의 청산이 제기되고, 분단현실에 주목한 분단시대론, 민중 주체의 역사상을 강조하는 민중사학론이 등장했지만, 여전히 문헌고증사학 계열과 그 후학들이 부동의 지위를 누리며 군림했다. 역사교육 역시 그들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 교과서를 통해서는 여운형, 김원봉, 박헌영, 김일성, 김산의 민족해방투쟁을 결코 배울 수 없었다.

새롭지 않은 뉴라이트의 역사관

최근 뉴라이트는 독립운동사 계열의 입장을 답습하면서도 민족운동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식민의 역사를 적극적으로 해석하지만, 반일민족주의를 자극하는 서술은 극히 자제하고 있다. 적어도 이 대목에서는 4월혁명을 학생운동이라고 지칭하는 순진함을 넘어서는 세련된 정치적 안목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가치전도는 심각하다. 일본 육사를 나왔어도 나라를 중흥시켰으면 민족주의자이고, 일제하에서 항일투쟁을 했어도 그 후에 제 민족을 억압하고 반인권적 방식으로 통치하며 굶주리게 했다면 반민족주의라고 한다. 참으로 황당한 주장이다.

또한 그들은 일본의 조선 지배에 대해 ‘인류 문명사의 관점에서 크게 말해 전통문명과 외래 근대 문명이 서로 충돌하고 접합하는 시기로서 곧 근대로의 이행과정’이라고 해석한다. 이에 따르면, 민족운동은 근대화를 지연시켜 한국 사회의 발전을 저해한 시대착오적인 역사로 전락하고 만다.

뉴라이트는 이런 가치관을 정(正)이라 우기며 교과서 발행을 통한 교육계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이제 역사교육에서도 내전이 시작된 것이다.

역사교육 속 정치코드를 해독하라

흔히 역사는 정(正)과 부정(不正)을 가르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민족운동사 교육의 뒤틀림은 정(正)=민족해방운동을 부정(不正)한 세력=친일세력이 전유할 때 어떤 가치전도가 발생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 는 슬픈 ‘격언’이 통용되는 교육이 이루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민족운동의 사례를 들어 역사교육을 통해 형성된 우리의 편견과 오해를 지적했지만, 주몽, 대조영, 연개소문처럼 고구려 관련 인물들이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요즘, 우리의 역사인식 속에는 약자로서의 콤플렉스가 배어 있는 왜곡된 ‘패권의식’은 없는지도 점검해 볼 일이다. 우리는 ‘알고 배운’ 역사를 스스로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 그러나 역사교육에 스며든 은밀한 정치 코드를 해독하기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김정인 참여사회 편집위원, 춘천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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