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8년 04월 2008-03-13   1285

칼럼_정직한 노동이 가능한 사회, 아직 멀었나요?

정직한 노동이 가능한 사회,
아직 멀었나요?

박영선「참여사회」 편집위원장 baram@pspd.org

시샘 달이 물러가고 물오름 달이 왔습니다. 물오름 달이 뭐냐고요? 삼월을 우리말로 풀어 쓴 이름입니다. 「참여사회」의 경쟁지(?)인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쓰고 있는 우리말 달 이름인데, 참 어여쁘지요. 우리가 오래전부터 쓰던 입말이 아니어서 낯설긴 하지만, 실용적일 뿐인 아라비아숫자에 묻혀 있는 자연의 흐름을 일깨워주는 데 도움을 주는 달 이름입니다. 한 번 물오름 달이라고 중얼거려보세요. 아마도 뫼와 들에 물이 올라 꿈틀대고 있는 온갖 생명체들의 아우성을 실감할 수 있을 겝니다.

새해가 밝았느니 어쩌고 떠든 게 불과 며칠 전 일인 것 같은데 벌써 삼월이라니, 세월 한번 빠르지요. 마흔을 넘긴 사람의 시간은 쏜살같다는데, 선생님도 동감이십니까? 저는 요즘 그다지 게으름을 피우는 것도 아닌데 출근하자마자 퇴근 시간이고, 월요일인가 싶으면 벌써 주말에 다다라 있습니다. 가는 세월을 잡을 수는 없고, 하여 제가 할 일은 하소연뿐이겠지요. 그런데 어느 날 제 하소연을 들은 지인이 색다른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끼는 것은 하는 일이 즐겁기 때문이란 겁니다. 그러면서 제가 부럽다고 하더군요. 아무리 시간의 상대성이 작용한대도, 나이든 이가 내키지 않는 일을 하면서 시간이 화살처럼 빠를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그 분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봤지요. 제가 하는 일에 대해서 말입니다. 때때로 힘에 부쳐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빠져들기도 하고, 가끔 제가 받는 대접이 형편없다고 느껴져 스스로 자존감을 팽개친 날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제 마음 밑바닥에 깔려 있는 자부심은 한 번도 훼손당한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노동에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고 가까운 사람들의 성원이 있으며 일면식 없는 이들의 소리 없는 격려로 힘을 얻을 수 있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일각이 여삼추 같다면 말이 안 될 테지요. 새삼 제가 시간이 가는 걸 아쉬워하며 일할 수 있다는 것에 고마움을 느꼈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자부심은커녕, 자신이 납득하지 못하는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단박에 삼성에서 일하는 사람들 얼굴이 떠오릅니다. 얼마 전에도 삼성 특검의 압수수색에 대비하여 증거인멸에 동원된 삼성 직원들 얘기가 언론에 실렸었지요. 신문을 보니 그들은 새벽 1시에 출근 차림으로 나와 서류 뭉치 옮기는 일을 5시까지 했다는군요. 한밤중에 갑자기 불려나온 그들이 ‘이대로 차 몰고 검찰청으로 갈까’라는 말을 한 것은 무척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아마 누구라도 그랬을 테니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고된 노동에 비해 정직하지 못한 노동을 견디는 것이 더 힘겨울 것 같습니다. 그 노동이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면 더더욱 그렇겠지요. 요즘 같은 시대에 거룩한 노동을 기대하는 것은 사치, 아니 불가능에 가까워졌습니다. 그렇지만 즐거운 노동까지 포기할 순 없겠지요. 개인에게 일하는 기쁨 대신 사주의 불법행위를 면피하기 위해 동원당한 그 노동자들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갔을까요?

김 선생, 그렇다면 일 년 반 사이에 열다섯 명이나 되는 노동자들이 집단 돌연사를 당한 경우는 어떤가요? 아마 그들은 처음에는 사십 도가 넘는 고온 환경도 묵묵히 감내하는 건강한 노동자들이었겠지요. 그러다가 타이어의 원료가 되는 벤젠, 톨루엔, 자이렌 등의 화학약품을 다루면서 머리가 어지럽고 아프기 시작했을 테구요. 마침내 심장 질환이나 암 등이 발병해 결국 땀 흘려 일하던 공장을 떠나게 되었겠지요. 그들은 고열과 유기용제로 뒤덮인 현장에서 하루하루 힘겨웠을 테지만, 정직한 노동을 했던 노동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직한 노동의 결과는… 죽음이었습니다. 원진레이온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김 선생도 기억하시지요? 이황화탄소 중독으로  많은 노동자들이 팔다리 마비와 언어장애, 콩팥기능장애 등의 증상을 겪고 결국 한 노동자는 사망에 이르렀던 인재였지요. 원진레이온 문제가 사회에 드러난 지 이십 년이 지났지만 이윤 추구에 눈먼 기업이 생사람을 죽이고 불구로 만드는 일은 여전하다니, 우울할 뿐입니다.

노동자가 뿌듯한 자부심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일하는 세상. 노동자의 정직한 노동 앞에 힘껏 손뼉쳐주는 세상. 노동의 결실이 우리 사회의 정의를 한 걸음 앞당기게 하는 세상. 아직 멀었나요? 김 선생이나 저나 아직 반평생은 남았다고 할 수 있는데, 곧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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