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8년 04월 2008-03-17   1260

이제훈이 만난 사람_

대중의 민주적 정치참여 확대 노력해야

최장집 고려대 교수

글    이제훈 <한겨레> 통일팀장 nomad@hani.co.kr
사진  김영광사진가 k-photo@hanmail.net

 2007년 12월 21일 최장집 고려대 교수를 만났다. 이틀 전 치러진 제17대 대통령 선거 결과는 어찌 보면 예상했던 대로였다. 하지만 스스로를 개혁적 시민으로 여겨온 이들에겐 ‘너무도 충격적’인 결과이기도 하다.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한국의 민주주의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고민은 꼬리를 문다.

 최 교수는 2002년 이후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비롯한 일련의 저작을 통해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는 질적으로 나빠졌다.”며, ‘정당 없는 민주주의’의 위험성을 지속적으로 경고해왔다. 그러니 이런 때에 최 교수를 찾은 일이 생뚱맞은 선택은 아닐 것이다.

최 교수는 이번 선거의 핵심 쟁점이 ‘경제’라는 다수의 분석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른바 ‘민심’의 좌에서 우로의 이동, 곧 ‘보수화’라는 분석에도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이번 대선 결과는 “민주정부가 민주주의의 원리와 규범을 실천하지 않은 결과”라고 단호하게 평가했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민주주의의 가치에 상응하는 제도적 실천’이라는 일관된 잣대를 적용했다.

‘대표’와 ‘책임’ 무시한, 정당 없는 선거

이번 대통령 선거의 의미를 짚는다면?
1987년 이후 민주화를 향한 궤적의 한 단계가 끝나는 계기로 이해할 수 있다. 민주화 이전에 정치적, 사회경제적 기원을 두고 있는 세력을 대표하는 정당이 민주적 정치경쟁을 통해 다시 집권하게 되는 새로운 경험이자 현상이다. 이로써 민주정부의 연속 집권은 일단락됐다. 민주주의의 전개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현상이다.

보수세력의 집권은 민주정부가 민주주의의 핵심원리인 ‘대표-책임’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은 결과다.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은 정당인데, 이번 선거는 사회적 갈등과 이익의 차이를 대표하고 조직해야 할 정당의 역할이 사라진 상황에서 치러진 ‘정당 없는 선거’로 특징지을 수 있다. 이렇게 된 원인은 민주화 이후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특히 2003년 이래 노무현 정부 아래서의 선거법개정이 반부패, 반지역, 생산적 정당 등의 가치나 담론을 통해 당정분리, 원내정당적 성격이 강화됐다는 점이다. 중산층과 서민의 요구와 갈등을 매개할 대중적 참여의 채널들이 협소해지고, 정책의 내용은 관료와 재벌, 전문가그룹으로 넘어가며 이후 신자유주의적 정책방향으로 달려 나가는 길을 닦았다. 앞으로 대중의 밑으로부터의 소리가 어떻게 대표되고 정책으로 반영될 수 있는지, 보수정부에 대응해서 견제와 균형의 힘을 어떻게 창출해낼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저항, 징벌투표 성격 강해

이명박(48.7), 정동영(26.1), 이회창(15.1), 문국현(5.8), 권영길(3.0) 등 17대 대선의 주요 후보별 득표율 분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언론에선 좌에서 우로, 곧 보수의 강화라는 식의 설명이 지배적인데,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사람들의 정치적 태도와 투표 정향의 변화는 상당히 복잡한 사회경제적 조사와 분석을 통해 살펴야 한다. 한 사회의 이념 성향은 몇 년 사이에 쉽게 바뀌는 게 아니다. 5년 전에는 진보적이었다가 지금은 보수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결과론적이다. 만약 5년 뒤 보수정당이 못해서 재집권에 실패하면 그때는 또 우리 사회의 이념 정향이 보수에서 진보로 바뀌었다고 평가할 것인가?

이번 선거 결과는 단순하고 분명하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국민의 평결이다. 저항투표, 징벌투표의 성격이 굉장히 강하다. 현 정부에 대한 투표자들의 평가가 어떤 것인지 확인할 기회는 굉장히 많았다. 수십 차례 보궐선거에서 한 번도 승리한 적이 없다. 지난 해 지방선거에서는 완패했다. 국민들은 분명한 신호를 보냈으나 정부는 반응하지 않았고, 그게 누적돼 대선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선거 결과를 ‘회고적 투표’라고 하는데, 정치학적으로 정확한 용어는 ‘회고적 경제투표’다. 현임 정부의 경제적 업적에 대한 투표자들의 판단을 기준으로 투표하는 것이다. 정당 간에 경제 정책을 둘러싼 서로 다른 대안과 이념, 비전 등이 안정적으로 존재하는  선진국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번 선거는 ‘회고적 투표’라 불릴만한 경제 투표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나라의)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주요 정당간 경제적 비전과 대안에 뚜렷한 차이가 없다. 때문에 주요 정당의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은 전체적으로 선택의 항목으로 제시될 수 없었고 실제 그랬다.

‘경제가 문제’라고 할 때, 그게 한나라당 식은 아니다. 한국사회는 그동안 경제 성장률 자체는 높았다. 중산층 이상의 소득증대도 매우 빠른 속도로 이뤄졌다. 문제는 양극화, 비정규직 문제 등 하층에 속하는 사람들의 생활여건이 빠른 속도로 나빠진 것이다. 한나라당이 말하는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으로 성장률은 높아질지 모르지만, 분배와 고용의 질은 전혀 해결할 수 없다.

CEO형 리더십? 국가는 회사가 아니다

‘이명박 리더십’을 ‘CEO형 리더십’으로 표현하는 이들이 많다. 어떻게 생각하나?
정치와 기업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기업은 이윤창출을 기본 목적으로 CEO가 조직을 위계적으로 통솔한다. 그러나 통치를 위임받은 선출된 대표로서 정부 수반은 자기를 선출해준 투표자에게 항상적으로 반응하고 책임져야 한다. 정치에서의 관계는 상호적이다.

‘CEO형 리더십’이란 국가를 마치 회사처럼 일사불란한 효율성을 추구하는 조직으로 이해하게 함으로써, 효율성 추구에 장애가 되거나 도움이 되지 않는 성원과 집단을 배제하거나 권위적으로 다룰 수 있다는 인식을 부지불식간에 만들 수 있다.

현 정당체제론 사회 갈등과 이해관계 대표 못해

‘정당 없는 민주주의’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한국의 정당체제는 왜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한국의 정당체제가 사회의 갈등과 이해관계를 폭넓게 대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당이 사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것이다. 정당체제가 사회경제적 이익을 폭넓게 대표하지 못한다는 것은 사회경제적 문제를 상상하고 정책대안을 창출하는 데서 비전과 이념의 스펙트럼이 좁다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이라는 정치경쟁의 가장 중요한 이슈와 내용이 정치경쟁의 틀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결과를 낳는다. 우리의 제도화된 정당 구조는 사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요구를 대표하기엔 턱없이 협애하다. 정당간 차이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투표자들의 투표정향에) 유동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선관위

대선 등 선거 제도를 고쳐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나?
난 평소 제도를 자주 바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를 밝혀왔다. 그러나 이번 대선을 보며 제도 보완의 필요성이 강하다고 느꼈다.

우선 단순다수제를 통한 대통령 선출 방식을 바꿔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 단순다수제에서는 한번만 투표하므로 사표 방지 심리가 작용해 전략투표를 하게 된다. 하지만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면, 첫 번짼 사표심리에 구애받지 않고 가장 좋다고 하는 후보에 투표할 수 있고, 2차 투표에서 다수 득표자 2명을 놓고 투표하면 된다.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정당체제가 양당제적 압력을 덜 받게 된다는 점이다. 단순다수제를 통한 대선은 양당제를 추동하는 힘이 굉장히 강한 제도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갈등구조는 양당제를 통해 안정적으로 대표될 수 없다. 대선 때마다 제3후보가 출현하는 것이나 우리 정당체제가 안정적으로 제도화하지 못하는 중요한 요인엔 선거제도 문제도 있다.

둘째, 선거기간이 길어야 한다. 선거 캠페인 기간이 너무 짧아 투표자들이 충분한 정보를 갖고 투표하기 어렵다. 또 민주화 이후 여러 차례 정치개혁이라는 걸 했는데, 앞에서도 말했지만 제도개혁들은 불행하게도 부패 근절과 정치적 효율성의 이름으로 대중의 민주적 참여를 제한하는 반민주적 정치개혁이었다.

정당과 후보가 대중과 접촉할 기회와 시간을 되도록 제한하는 방향으로 제도 변화가 이뤄져 왔다.

조금만 뭘 하려고 하면 선거법 위반이다. 선관위의 역할이 과도하게 확대됐다. 지금은 선관위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된다. 대중의 밑으로부터의 정치 참여가 폭넓게 확대돼야 한다.      

이번 선거에선 민주노동당을 상대로 사표방지심리가 작용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었는데도 민노당의 득표율이 5년 전보다 낮아졌다.
이번 선거 결과는 민노당에 재난이다. 민노당은 우리 사회의 소외계층, 저소득층을 대표해야 하는데, 이런 실제 문제를 젖혀두고 너무나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이념과 가치를 중심 노선에 놨다. 대표적인 게 코리아연방공화국이라는 슬로건이다. 그건 보통의 투표자한테는 투표하지 말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민노당은 선거과정에서 FTA 반대 파업과 데모를 조직했다. 이런 것도 투표율을 떨어뜨리는 집단행동이다. 선거란 평화적 정치경쟁을 통해 지지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민노당은(선거과정에서)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만 골라서 했다. 민노당이 이번 선거에서 당세를 확대해서 장기적으론 집권할 것을 기대하고 후보를 냈는지 의심스럽다. 민노당은 민주주의 제도가 부여하는 선거경쟁의 정치과정이 갖는 특징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너무 안이하고 관념적이고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민노당은 한국사회에서 굉장히 커질 수 있는 자원과 사회경제적 기반을 갖는 정당이다. 민노당은 민주주의 제도를 잘 이해하고, 전략을 잘 세우고, 좋은 리더십을 만들고, 현실적인 이념을 만들면 굉장히 가능성이 많은 정당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좋은 정당 건설과 민주주의 교육에 힘써야

최 교수는 인터뷰가 끝날 무렵 “관찰자로서”라고 전제하며, 시민사회진영에 ‘좋은 정당’ 건설과 민주주의 교육에 힘써줄 것을 당부했다. 최 교수는 “우리는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제도를 잘 활용하고 실천해서 좋은 정당을 만들고 그를 통해 좋은 정책과 목적을 실현할 수 있는 민중 권력을 만드는 일을 잘 못했다.”며 “우리사회에서 대표되지 않은 세력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그들의 문제를 잘 해결하고 실현할 수 있는 정당 건설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우리 민주주의 교육은 중학교 수준에서 멈춰 있다.”며, ‘민주주의에 대한 지적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해야 하는 문제’를 극복할 수 있도록, 민주주의 교육에 힘써줄 것을 거듭 당부했다.

※ 2008년 1월호부터 <한겨레> 이제훈 기자가 ‘이제훈이 만난 사람’으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지난해 인터뷰를 맡아 수고한 박영선 편집위원장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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