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이라는 만병통치약 팔러 다니는
거리의 철학자
김상봉 교수
글 이제훈<한겨레> 통일팀장 nomad@hani.co.kr
사진 김영광사진가 k-photo@hanmail.net
5월 14일 저녁 7시 참여연대. 약속 장소에 모습을 드러낸 김상봉 전남대 교수(철학)는 “인터뷰 끝나는 대로 촛불집회에 가보면 좋겠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날 안에 전남 광주로 다시 돌아가야 하니, 마음이 바쁠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1시간 남짓이면 되리라 생각했던 인터뷰는 밤 9시가 넘어서야 간신히 끝났다. 그는 격정적으로 생각을 쏟아냈다. 중저음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실려 전달되는 ‘철학자의 외침’은 묵직했다.
공공성에 대한 감수성 없는 한국 지배계급
빙고! 사실 나도 김 교수를 만나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결과를 둘러싼 한국사회의 격렬한 반응의 사회적 맥락을 탐색하는 것으로 인터뷰를 시작하려고 했다.
“이명박 정부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합의를 했다고 보시는지요?”
김 교수는 머뭇거림 없이 자신의 진단을 내놨다.
“한국의 지배계급은 다른 나라의 지배계급과 본질적으로 달라요. 다른 나라의 지배계급은 아무리 보수화해도 공화국의 정신을 지니고 있죠. 나라는 사유물이 아니라는 공공성에 대한 감수성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한텐 그런 전통이 없어요. 통치만 있었을 뿐, 우리 모두의 나라였던 적도 없어요. 나라의 주인을 자처한 자들은 철저하게 사적 이익을 추구했어요. 그래서 이 나라에서는 다른 나라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굉장히 빈번하게 일어났죠. 한 예로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을 때 이 나라의 지배계급이 한 일은 외세를 끌어들여 형언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섬멸하고 학살한 것입니다. 다른 나라 같으면 양보하고 타협했을 텐데. 이 나라엔 우익이 없어요. 우익이라는 자들은 외세에 빌붙어 동족을 착취하는 매판세력입니다. 이번 쇠고기 문제도 똑같아요. 심증일 뿐이지만, 이 나라의 현재 지배계급은 그 종주국의 지배계급의 이해가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조선시대 사대주의자, 일제 강점기 친일파 그리고 현재의 지배계급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아요. 외세에 기대어 동족을 적대시하는 게 하나의 전통이 된 나라예요. 국민 건강권? 그 사람들이 광우병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겠어요? 30개월 이상 된 미국산 쇠고기는 먹지도 않을 사람들이죠. 우리와는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죠.”
쇠고기 파동에서 청소년들에게 감동하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시민들이 이렇게 대거 촛불집회에 나선 것이나, 특히 여중고생 등 청소년들이 이례적으로 집회 현장에 나선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김 교수는 “두 가지가 놀라워요”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첫째, 시민들의 저항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어요. 둘째, 상대적인 측면이 있지만, 이번 저항이 여학생들로부터 올 줄도 몰랐고요. 특히 여학생들의 출현이 상당히 놀라워요. 이번에 새삼스레 깨달은 게 있어요. 역시 한국의 역사는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곳에서 온다는 거죠. 마치 제가 학생 시절 박정희가 천년만년 살 것 같았는데 부마항쟁 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암살당하고 유신시대가 끝난 것처럼요. 그리고 중요한 게 어떤 경우에도 인간에 대한 믿음을 포기해선 안 된다는 깨달음입니다. 저는 한국의 학벌체제가 학생들의 정신을 파편화, 탈정치화, 노예화 한다고 생각해왔어요. 한데 이런 끔찍하도록 왜곡된 교육 환경에서도 인간의 양심, 인간의 이성이라는 게 완전히 사장되지는 않는다는 걸 새삼 깨달았어요. 학벌사회 입시교육 아래서 자라난 지금의 학생들이 기성세대가 되어 한국사회를 이끌고 갈 때를 상상하면 좀 끔찍했었는데, 아, 이제 희망을 가져도 되겠구나, 그렇게 생각했어요. 솔직히 감격스러울 정도예요.”
‘학벌 없는 사회’를 주창하는 등 교육운동에 헌신해온 이 ‘거리의 철학자’가 쇠고기 파동을 거치며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감동했단다.
이명박 실용주의는 ‘부자 되자’는 욕망의 포장일 뿐
철학자를 만났으니 철학적 질문을 던져보는 게 예의일 터. “이명박 대통령은 입만 열면 ‘실용주의’를 강조하는데, 그 실용의 핵심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김 교수의 답변, 명쾌하다.
“자본은 자기동일성 속에서 자기 증식 말고는 다른 논리를 갖고 있지 않아요. 하지만 ‘돈 그 자체를 목적으로 돈을 번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을 테니까. ‘자본은 수단일 뿐, 사람을 위해 좋은 것’이라는 거짓말이 필요하죠. 그 이데올로기가 철학의 역사에서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주창한 공리주의예요. 공리주의에서 ‘행복의 총량’은 ‘자본의 총량’으로 환원됩니다. ‘최대 다수’라는 듣기 좋은 말도 있지만, 공리주의를 아무리 뒤져봐도 ‘최대 다수’를 위한 프로그램이 없어요. 주류 경제학도 최대 다수를 위한 분배의 논리를 갖고 있지 않죠. 공리주의는 원래 자본주의의 논리인데, 실용주의는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죠. 사실 실용주의는 철학이 아니에요. ‘부자 되세요’라는 거고,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부자 되자’는 거죠. 적나라한 욕망의 표현이죠. 거기에서 어떤 공공성도 기대할 수 없어요.”
사장과 대통령은 다르다는 자각이 최대 수확
그래도 물었다. ‘새 정부 출범 석 달이 안 됐는데 대통령 지지도가 20% 대로 급락한 것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돈 버는 게 한 사회의 유일한 가치가 되어버리면 나라를 운영하는 게 불가능해져요.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라는 게 나라를 운영하는 것과 정면으로 배치되니 두 달 여 만에 암초에 부닥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죠. 요즘 사람들이 ‘기업과 나라는 다르구나, 회사 사장의 일과 대통령의 일은 다르구나’라고 말하죠. 어쩌면 이게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수확일 겁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진보세력에 대한 실망, 경제에 대한 막연한 기대로 이명박 대통령을 찍었을지 모르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경제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 아무리 무딘 사람도 알게 된 것이죠. 대한민국 시민들은 수십 년에 걸친 민주화 투쟁의 경험을 통해 나라의 최저선이 어디쯤인지 몸으로 알고 있어요.”
좀 이상한지 모르겠지만, ‘이명박 대통령과 새 정부에 충고하고 싶은 말씀’을 부탁했다.
“이 대통령이 자수성가 운운하는데, 자기 욕망을 좇아 성공한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어요.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악질적 독재자에 맞서 민주주의를 성취한 그야말로 자수성가죠. 이명박의 자수성가와 비교할 바가 아니에요. 이 대통령이 동시대 시민의 역사에 대한 존경심과 두려움을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이 대통령이 지금이라도 겸손하게 반성하지 않는다면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고 봅니다.”
새로운 사회운동의 모색, 철학자 앙가주망 네트워크
사실 김 교수는 몇 년 전부터 철학자들의 지식인운동에 주도적으로 관여해왔다. ‘철학자 앙가주망 네트워크’(PEN·펜)가 그것이다. ‘펜’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를 시작으로 이라크파병 반대, 송두율 교수 석방 및 국가보안법 폐지 촉구, 삼성 불매 운동 촉구, 티베트 사태 등과 관련해 철학자들의 목소리를 모아왔다.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초안을 쓰고, 지역별 회람과 토론을 거쳐 문안을 확정했다. 대표도, 사무국도 없는 조직으로 매번 200명 남짓한 철학자들이 한 목소리를 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 관여하는 이에서 민주노동당 당원까지 참여 철학자들의 정치적 사회적 지향은 갈래가 많았지만, 정파와 종교적 신념에 구애받지 않고 ‘철학자의 양심’을 모아낸 것이다.
“정파도 필요하고, 정당 정치도 필요하죠. 하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무엇인가가 필요해요.” 왜? “한국의 사회운동은 결정적인 순간에 힘을 쓰지 못했어요. 배타적 정파운동이 문제였죠. 민중이 밥상을 차려놓으면 전위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엎어버리는 겁니다. 1987년 대선 과정이 대표적이죠. 한국의 역사는 몇몇 잘난 사람들, 전위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만들어온 게 아니에요. 5·18이 무슨 전위가 있어서 이뤄진 게 아니잖아요. 전위를 자처하던 사람들은 오히려 변절했죠.”
김 교수는 ‘펜’을 정파운동을 뛰어넘으려는 준비운동이자 ‘(사회운동의)새로운 모델의 하나’라고 말했다.
“정파가 사회 공동의 기반을 뿌리까지 잠식하면 희망이 없어요. 인간, 세계, 자연에 대한 공동의 가치가 있어야, 정치가 우리를 피폐하지 않게 하고 이상의 실현에 기여할 수 있어요. 한 사회가 유지해야 할 당파성에 앞선 양식, 그것을 이성이라고 하는 것이죠. 그 이성이 바로 우리가 근원에서 다시 확인해야 할 전제라고 생각해요.”
그는 지난해 3월 그간의 철학적 고투를 집약한 『서로주체성의 이념-철학의 혁신을 위한 서론』(도서출판 길 펴냄)을 세상에 내보냈다. 서구의 자유 이념을 ‘내가 주체가 되려면 누군가 노예가 되어야 하는, 자기욕망의 충족을 추구하는 홀로주체성’으로 규정하고, ‘너와 내가 만나 서로를 잃지 않고 더불어 우리가 되는 서로주체성’을 새로운 철학적 지향으로 제기한 것이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서로주체성’의 고갱이는 만남이다.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은 너와 나의 참된 만남이라는 새삼스런 일깨움에 다름 아니다. 촛불집회의 현장은 ‘서로주체성’이 빛나게 어우러지는 만남의 장에 다름 아닐 것이다.
김 교수는 인터뷰가 끝난 뒤 서울시청 광장으로 줄달음질쳤다. 그곳에서 그는 촛불 하나를 밝혀들고 신기한 표정으로 여기저기 둘러보고 박수를 치곤했다. 늦은 밤 그는 다시 5월의 빛고을로 떠났다.
김상봉은 1958년 9월 부산에서 나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곳 바닷가에서 자랐다. 연세대에서 철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86년 독일로 떠났다. 독일 마인츠대학교에서 칸트 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했다. 95년 그리스도 장신대 종교철학 교수로 부임했으나 3년 만에 교수직을 버리고, ‘거리의 철학자’로 나섰다. 2001~2005년 민예총 문예아카데미 교장을 지내며 학벌타파운동을 공론화한 ‘학벌 없는 사회’를 이끌었다. 2005년 아무런 학연-지연-인맥이 없던 전남대 철학과 부교수로 임용됐다. 자신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건으로 ‘5·18’을 꼽는 그에게 맞춤한 새 인연이었다. 그는 당시 이 일을 “사람이 개를 문 것과 비슷한 대사건”이라고 묘사한 바 있다. 학연과 인맥이 난무하는 한국 학계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뜻이다.
그는 광주에 터전을 잡은 뒤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날마다 피아노와 사랑을 나눈다. 요즘 그의 유일한 취미다. ‘오래된 취미’가 하나 더 있긴 하다. 책 쓰기다. “살면서 고마운 분들이 많았어요. 제가 부지런히 책을 쓰는 것은 고마운 분들한테 헌사를 쓰기 위해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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