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장은
에너지 충전소” 조룡상 회원
이명박 대통령의 두 번째 특별기자회견이 있던 날이었다. 촛불집회 43일 만에, 취임 117일 만에 나온 두 번째, 대국민담화문 형식이다. ‘뼈저린 반성을 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국민들 앞에 고개를 숙였지만, 내용의 알맹이는 없고 표정은 덤덤했다. 더구나 미국에서 협상이 종결되기도 전에 내놓은 민심수습책이라 시청 앞 광장의 민심은 여전히 냉담했다.
도심의 초여름 밤은 역동적이며 평화로웠다. 부드러운 바람, 귀에 익은 음악, 경쾌하게 물줄기를 쏴올리는 분수,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힘찬 연대…. 광장 한 쪽 펼침막에는 시민들의 걸림 없는 자기표현과 주장이 당당하게 펄럭이고 있었다. ‘아! 이게 747공화국이구나’, ‘닭장 속에는 전경이/ 외양간에는 미친소/ 쥐구멍에는 대통령/ 폐휴지함엔 조중동’, ‘하지 마, 하지 마, 아무 것도 하지 마’… 풍자와 해학, 조롱과 야유, 촌철살인(寸鐵殺人), 점입가경(漸入佳境)의 경지였다.
반가운 얼굴들이 여기저기서 손을 흔들며 모여들었다. 그 중 한 사람. 참여연대 회원 중 촛불집회 최다 참석자 – 조룡상(45세) 회원. 짧게 깎은 머리에 검은 뿔테 안경. 맑은 혈색에 강단 있어 보이는 체격은 화이트칼라, 아니 선비의 전형이다. 집회 속의 선비는 감색 점퍼 차림의 간편한 복장이다. 배낭에서 일인용 자리를 꺼내며 스스로 ‘집회용 배낭’이라며 웃었다. 수줍은 소년의 모습이 얼핏 스쳐갔다.
남 앞에 나서기를 꺼리고, 주인공이 되는 걸 거북해하고, 혀보다는 귀의 감각이 발달한 사람이라 섭외의 어려움이 있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촛불집회에 그렇게 적극적일 수가 있을까, 촛불집회에 절반이 훨씬 넘게 참석한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남들이 선망하는 은행원이라는 안정적인 직장도 그에겐 삶의 방편에 불과한 걸까. 마주한 자리에서 의문은 동시다발로 터져나왔다. 이미 그도 각오하고 나온 듯했다.
머리와 발이 함께 가기 위해 서울로 오다
‘룡상(龍相)’이라고 표기하는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두음법칙을 거부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호기심이 일었다. 거부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재작년, ‘민화협’(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에서 1박 2일로 평양을 다녀온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우리가 말하는 메뉴판을 평양사람들은 ‘료리책’으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발음을 하더군요. 우리는 외래어에는 관대하면서 굳이 우리말에만 두음법칙을 적용하여 ‘ㄹ’발음을 소홀히 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1933년 한글맞춤법이 제정되면서 남한에만 있는 이론이니 일제의 잔재가 아닌가 하는 개인적인 생각도 들었고, 한자로도 ‘룡’이 맞죠. 그래서 평양 다녀온 이듬해 호적정정 신청을 해서 호적까지 깨끗이 정정했지요.”
회원모임인 통일희망모임에서 활동하는 그로서는 당연한 결정이었으리라.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발음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고,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해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통일의 시대를 위해 미리 씨앗을 뿌리는 사람을 만날 때면 절로 기립박수가 나온다. 한편으론 부끄럽기도 하다, 씨앗조차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주변에 너무나 많기에. 그 역시 보수층이 주류인 토양에서 3,000년에 한 번 꽃을 피운다는 우담바라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하지만 그는 ‘준비된 지성’이요, ‘행동하는 양심’이다.
최근 그에게 일어난 큰 변화는 서울로 이사를 한 것이다. 직장이 수원이라 주로 과천, 의왕시에 오래 살았다. 사회 여러 현안에 관심이 많은 그로서는 지역 활동도 왕성했지만 감로수 같은 강좌가 지방에서는 취약함을 안타깝게 여겼다. 참여연대나 민언련(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과 같은 진보적인 시민단체의 강좌를 듣고 2시간 넘게 걸려 집으로 돌아가면 파김치가 되었다고 한다.
방법을 모색하다 작년 대통령선거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명박후보의 당선이 유력시 될 즈음 서울로 살림살이를 옮기기로 결정을 내렸다. 늘 한곳을 같이 바라보는 아내와 의기투합했고 직장은 상암동으로 집은 은평구로 가닥을 잡았다.
‘결정적인 계기’를 의아해하자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면 거리에 나설 일이 많아질 것 같아 미리 준비를 했지요. 그런데 이거 너무 빨리 시민들을 거리에 나서게 하네요. 5월부턴 주말도 없이 집회에 참석하다 보니 몸도 좀 지치네요. 하지만 이곳에 오면 삶의 활력과 에너지를 충전 받아요. 젊은 날, 시대를 고민하기보다는 최루탄 가스가 도서관으로 못 들어오게 문을 닫고 공부에 열중했고, 군복무도 특수부대였죠. 이래저래 세상에 빚진 게 많아서 늘 불편했죠, 부끄럽기도 하고. 한마디로 이중적인 삶을 산다고 생각해서 선뜻 인터뷰에 응할 수가 없었어요.”
건강하게 웃는 모습이 행복바이러스 보균자다. 하지만 이젠 그를 바라만 보아도 주변은 바이러스에 전염되기 십상이다. 그의 ‘한양천도설(漢陽遷都說)’에 모두가 환호하자 멋쩍은 듯 부연설명을 했다.
“또 하나의 이유는 공부를 계속할 생각이었어요. 법학을 전공했지만 북한학이나 NGO관련 공부를 하고자 작년 성공회대학원에 원서를 냈지요. 예비합격생으로 발표 되는 바람에 좌절되었죠. 예비합격생이란 등록을 안 한 사람이 생기면 일순위로 입학이 보장되는데…. 서울에 있으면 ‘기회’에 접속하기가 훨씬 수월할 것 같기도 하고. 이미 민언련 언론학교 65기에 수강 신청했어요. 7월 1일 개강입니다.”
태산을 옮길 수 있는 힘이 바야흐로 용솟음치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발까지’라고 하는데 그는 이미 목적지에 깃발을 꽂은 사람이다.
정치는 삶, 그 자체
작년 그에겐 ‘국내 최고’라는 기록을 가진 일이 있었다. 한겨레신문을 구독하는 그로서는 조중동이 저지르는 왜곡 편파보도는 위험수위를 넘었다는 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고, 그것들이 거대한 자본으로 신문시장을 주무르는 것도 늘 입안에 가시였다. 벼르고 벼르던 참에 ‘딱 걸린’ 사건이 생겼다.
오마이뉴스와 민언련이 공동으로 신문구독판촉캠페인 중 불법판촉사례를 신고하는 때였다. 2004년 공정거래위원회에서 포상금 신고제를 실시하고 있었지만 홍보가 부족한 탓인지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가 드물었다.
중앙일보가 그의 미끼에 걸렸다. 찌가 내려가는 순간 낚싯대를 성급하게 올리는 사람은 초보다. 손맛을 즐기듯 판촉 사원과 실랑이를 벌일수록 상품권은 한 장씩 추가되었고, 무료구독 개월 수도 늘어났다. 일만 원권 백화점 상품권 7장, 무료구독 9개월로 대어를 낚았다. 그것으로 끝이 나면 대어를 방생하는 거나 다름없다. 구독신청확인서와 판촉사원의 연락처를 꼭 받아두어야 대어가 박제되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세금 제하고 297만 원이 그의 통장으로 입금되었다. 물론 포상금의 일부는 재정 상태가 열악한 민언련에 희사하였다. 아직 그의 기록을 깬 사람은 없다고 한다.
초여름 밤의 어둠은 멀리 있는 사람도 가깝게 보이는 마력이 있다. 광장 중앙무대에서 앳된 여학생이 학교교육 정상화에 대한 자유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급식문제에서 야기된 광우병 파동이 이젠 자신들의 생활에 직결된 교육문제로 확대되어나가고 있다. 귀를 크게 열고 있던 그가 다시 한마디 한다.
“정치는 삶 그 자체입니다. 우리 삶과 직결된 쇠고기문제, 의료보험민영화, 공기업민영화 등등 우리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만 사람들은 자기 문제가 아니면 관심을 갖지 않죠. 직장에서도 촛불집회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저는 직접 한 번 나와 보라고 말합니다. 그래도 마음을 내지 않는 사람들에겐 금산분리완화정책 같은 내용을 이야기하죠. 이해를 하는 사람은 금방 반응을 보이지요. 정치란 이렇게 직결된 삶 그 자체인데 군사정권시절부터 위정자들은 정치는 정치가들이 하는 것이라고 주입시키고, 국민들을 우매하게 만들기만 했죠. 스포츠, 스크린, 섹스 3S로 사람들을 몰아가기만 했지요.”
조용한 함성이 마이크 소리의 위력을 넘어서고 있었다. 집회가 끝나면 행진으로 나갈 기미가 보여 서둘러 마무리 단골 질문을 겹쳐서 여쭸다. 회원 가입 동기와 애정 어린 비판을.
“회원 가입은 05년 6월로 기억합니다. 그간 여러 매체를 통하여 참여연대는 잘 알고 있었죠. 특히 전임 김기식 처장이 토론프로그램에 나와서 말씀하는 걸 듣고 그 단체에 대한 신뢰감이 생기더라고요. 박원순 변호사님도 그랬고, 특히 K간사는 ‘안정적이고 보수도 좋은 직장’을 박차고 나와서 상근자로 활동하는 걸 보고 결심을 굳히게 되었죠.”
부드러운 음성으로 역할모델에 대한 찬사를 보냈다. 잠시 뜸을 들이다 단호한 어투로,
“임원과 간사 그리고 회원간의 유기적인 소통이 부족한 것 같아요. 작년 운영위원으로 위촉을 받고 회의에 나가보니 들러리를 선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제가 고심 끝에 몇 가지 아이디어를 제안했지만 별 반응이 없었어요. 오해 없길 바랍니다. 서운해서 그러는 게 절대 아닙니다. 쓴소리도 할 수 있고 그 소리를 포용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어떤 단체든 정체되어서는 안 됩니다. 20대 대학생들도 운영위원으로 위촉해야 합니다. 그들의 소리가 반영되는 회의가 되어야 합니다.”
쓴소리를 이렇게 달콤하게 하다니. 그도 웃고 있었고 듣는 사람 모두도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만장일치가 된 초여름 밤의 표정이었다. 중앙 무대에서는 대통령 특별기자회견에 대한 대책회의의 토론회가 준비 중이었고, 삽상한 바람 한 줌이 광장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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