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1-02-22   2169

[제95호 개혁정론] 증권집단소송제 도입이야말로 분식회계 근절대책입니다.

대통령님,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지도 벌써 3년인데 부도위기에 처한 국가 신뢰도의 회복, 꿈이라고 생각할 만큼 기뻤던 남북정상의 만남 등 상당한 성과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개혁, 즉 국가의 격(格)을 올리는 개혁정책은 정부의 타성, 전략부재, 허약한 집중력으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의료소비자인 국민보다는 의료공급자의 힘에 밀린 의약분업 문제나 부패방지법 등 각종 개혁법안의 표류가 그렇습니다. 특히 집권초기 강력히 추진했던 경제개혁마저 이제 꼬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60년대 개발연대 때부터 우리는 기업의 투명성보다는 수출실적과 규모를 장려하였고 기업 총수의 이익을 풀뿌리 주주의 권익에 우선했습니다. 기업의 불투명성 문제는 IMF위기로 표면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보, 대우, 대한생명, 그리고 각종 은행 및 최근의 동아건설 문제까지 그 원인은 투명성 부재에 있었습니다.

대주주 오너는 ‘회사 돈은 내 돈’이라는 원칙을 철저히 고수하여, 기업의 재산상태는 ‘머슴’인 직원은 알 수 없고 다만 ‘주인’만이 알뿐일 정도였고 일반 투자가들은 기업 총수가 내건 허상을 좇으면서 미래가치를 평가하고 투자했던 것이었습니다.

대통령님, 정부가 최근 지난 10년간의 기업의 감사보고서를 감리해 본 결과 1,400개의 대상기업중 500개 이상의 회사가 분식회계(粉飾會計)를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어찌 분식회계뿐이겠습니까? 허위공시, 내부자거래, 시세조정 등으로 경제의 젖줄인 증권시장의 근간을 흔들어 왔습니다.

한 나라의 증권시장은 그 나라의 미래가치를 평가하는 장터라고 하는데 증권시장은 신뢰를 생명으로, 투명성을 먹고 자랍니다. 분식회계가 만연하는 현실에서 어떻게 시장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 절묘한 위장으로 모두가 우량기업이라고 주장하는데 어떻게 시장이 리스크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 정보가 한정된 개미투자가들이 옥석을 무슨 수로 가리겠습니까?

증권시장의 왜곡은 국내 투자가뿐만 아니라 해외 투자가와 관련해서도 더 큰 문제입니다. 개방경제체제인 우리경제는 세계경제와 분리할 수 없으며 현재 우리나라 자본시장은 투자 유치를 위해 전세계, 특히 아시아국가들과 치열한 경쟁상태에 있습니다. 인기있는 시장일수록 공급자금이 풍부해지니 자금조달도 쉽고 조달비용도 적습니다.

그런데 투자가들은 불투명함을 본능적으로 싫어하고 따라서 대상 기업의 금리위험이나 신용위험이 어느 정도인지 불투명하다면 가장 보수적으로 즉 가장 낮게 가치를 평가할 수 밖에 없습니다. 국내 기업이 증시에서 저평가받고 있다는 것은 국내 기업의 경영이 분식회계 등으로 불투명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대통령님, 분식회계를 비롯한 자본시장의 불법행위를 가장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사후제도는 증권집단소송제도입니다. 분식회계와 그에 따른 회계장부조작, 감사보고서 허위기재 등의 불법행위에 대해 시장에서 엄중하게 책임을 물고 다수의 피해자들이 손해배상을 손쉽게 받게 한다면, 과연 어떤 ‘강심장’을 가진 기업주와 회계법인이 분식회계를 저지르겠습니까?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것으로, 미국경제의 투명성이 높은 이유는 기업의 행위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묻고 반응을 보이는 시장과 시장참여자들이 있기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기업의 불법행위에 대해 엄중하게 책임을 물고, 피해를 본 시장참여자들이 손쉽게 반응을 보일 수 있게 하는 증권집단소송제와 같은 제도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제도는 전문가들에 의해서 80년대부터 제기되었고 정부에서도 1990년부터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준비해왔지만 지금까지 기업의 적극적인 로비로 서랍속에서 잠자고 있습니다. 게다가 정부가 최근에 들어서야 준비하고 있다는 안은 적용범위가 매우 한정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즉 소송 대상기업의 범위를 자산규모 2조원 이상의 기업으로 한정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산 2조원 이상이라는 기준은 그 당위성도 문제지만 분식회계, 내부자거래 등의 불법행위가 자산 2조원 이하의 기업에서 더 심하다는 사실 때문에 타당한 기준이 아닙니다. 미국의 경우에도 뉴욕증시에 상장된 대기업보다 나스닥의 중간규모 기업에 대해서 소송이 활발하다는 사실로 볼 때 규모로 소송대상을 제한하는 것은 부적절합니다.

대통령님, 시장은 투명함을 원하고 기업의 분식회계를 근절할 방안을 원합니다. 시장은 이름뿐인 증권집단소송법을 원하지 않습니다. 명실상부한 증권집단소송법을 제정하여 자본시장의 각종 불법행위를 일소하고 국내 자본시장의 격을 높이시기 바랍니다.

증권집단소송법은 국내 증권시장과 기업의 신뢰와 투명성을 제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분식회계를 근절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입니다. 대통령님, 경제개혁은 하늘이 이 정부에게 준 기회이자 의무입니다. 진정한 증권집단소송법의 제정은 증권시장 안정의 실천의 서막이며 다른 경제개혁의 기폭제로 작용할 것입니다. 시장은 개혁을 원하고 그 개혁은 무력한 우리 경제를 살려낼 것입니다.

김헌수(순천향대 교수,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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