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3-07-11   1044

<경제포커스>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는 기초 상식

물려받은 돈도 땀 흘려 번 돈만큼 공평하게 과세해야

이은숙 회계사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는 분명히 상식으로부터 출발합니다. 땀 흘려 번 돈에 대해서 꼬박꼬박 세금을 내도록 되어 있으니,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이 수천억 원에서 수조 원의 재산 역시 그에 상응하는 세금을 내야 한다는 상식 말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 도입을 공약한 것도 저는 평소 상식을 강조하는 후보다운 공약이었다고 봤습니다.

그런데 이 상식적인 문제가 헌법과 관련된 지리한 논쟁으로 이어지면서 일반인은 잘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복잡한(?) 문제로 바뀌어 가는 듯 합니다. 다행히 완전포괄주의 도입을 위해 상속세및증여세법 개정추진위원회가 꾸려져 오는 25일에는 새 법안을 놓고 공청회를 연다고 하니 일단 안심은 됩니다. 다만, 너무 오랫동안 논란이 되다 보니 완전포괄주의가 뭔가 어려운 논쟁거리라도 있다고 느낄까 봐 걱정이 돼, 그것이 왜 상식인지 짚어보려고 합니다.

뛰는 세법개정, 나는 변칙증여

현행 유형별 포괄주의는 변칙증여 따라잡지 못해

현재의 상속증여세법은 유형별 포괄주의라는 것을 채택하고 있어서 세법에서 예를 들고 있는 유형의 상속증여 및 그와 유사한 유형에 대해서만 과세를 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평범한 시민들이야 수천억 원을 물려받을 일도 없고, 또 대기업에 영향력을 미쳐서 이런저런 금융상품을 자신에게 싸게 넘기도록 할 일도 없으니, 세법에 세금 내는 항목을 나열식으로 만들어 놓아도 세금을 피하기 위한 변칙적인 방법이 없을까 고민할 일도 없지요.

하지만 재벌 2세며 3세처럼 물려받을 재산이 많은 사람들은 흔히 세금을 피하기 위해 계열사로 하여금 특이한 방식으로 증자를 하거나 파생상품을 발행하게 해 왔지요. 그런데 금융시장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다 보니 매년 세법에다 새로운 증여방식을 나열하는 것으로는 도저히 변칙증여로 세금을 회피하는 이들을 따라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형편은 지금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답니다. 금융공학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해가 갈수록 여러 복잡한 종류의 주식이며 회사채, 기타 파생상품이 개발되고 있는데 앞으로는 그런 문제가 더 심각해지겠지요.

여러분 중에 많은 분들이 이재용 씨에게 증여세를 과세하도록 하기 위해 국세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던 사람들을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99년 당시 일반인들은 삼성SDS 주식을 주당 5만 원이 넘는 가격으로 거래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이재용 씨와 그 형제들은 신주인수권부사채라는 금융상품을 이용해서 삼성SDS 주식을 주당 7150원에 인수할 수 있는 권리를 계열사 등을 통해 저가에 사 들이고는, 그로 인해 얻은 1650억 원 상당의 이익에 대해서는 전혀 세금을 내지 않았죠. 참여연대는 이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 국세청에 탈세제보를 했고, 실제로 과세처분이 내려지기까지 1년 가까이 되는 기간 동안 끈질기게 과세를 촉구했죠.

어떤 분들은 이렇게 해서 참여연대가 이재용 씨가 변칙으로 증여 받은 재산을 모두 다 과세하도록 한 줄 알겠지만 그게 아닙니다. 이재용 씨는 삼성SDS말고도 다른 삼성계열사가 발행한 여러 종류의 특이한 금융상품을 이용해서 수조 원의 재산을 물려받았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세금을 내지 않았습니다. 참여연대도 이재용 씨가 재산을 물려받은 시점에 세법에 그런 금융상품을 통한 증여에 관한 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과세를 하라고 주장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쥐꼬리 월급은 꼬박꼬박 과세, 수천·수조 원 증여재산은?

세금이라는 것은 모든 사회구성원에 대해 동일한 기준에 의해 부과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상속증여세가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 미만이므로 상속증여세에 완전포괄주의를 도입해서 변칙증여에 대해 공평하게 세금을 물린다고 해도 국가재정에 별 도움이 안 된다고 주장하더군요.

어찌나 황당하던지! 금액 비중으로 보면 그럴 지도 모르지만, 수천억 원에서 수조 원의 재산을 물려받고도 머리만 잘 쓰면 세금을 거의 내지 않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놓고 땀 흘려 일해 받은 월급에 대해서는 매월 꼬박꼬박 세금을 내라고 하면 봉급생활자들이 힘이 빠져서 살 수가 있겠어요? 어디 탈세할 방법 없나 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점점 늘어날 테고 조세저항은 점점 심해지겠지요. 그건 이 사회구성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거예요.

상속이나 증여를 많이 받는 사람을 보고 배가 아파서 그들을 혼내주려고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 도입을 주장하는 건 아닙니다. 그저 그들도 물려받는 재산에 대해, 물려받는 방식과 상관없이, 상속증여세가 정하는 세율에 따라 세금을 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건 미국이나 일본, 독일의 세법이 상속증여세에 대해 취하고 있는 입장이기도 하죠.

세법에 세상의 다양한 경제거래를 종류별로 일일이 다 열거할 수는 없잖아요. 실질과세의 원칙에 의거해서, 실제로 경제적인 이익이 무상으로 이전되었을 때는, 방법에 관계없이 상속세나 증여세가 과세되도록 하는 것은 변칙증여 과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입니다. 이미 우리나라 법인세법은 회사가 벌어들인 돈에 대해서는 명목이나 방법 여하에 상관없이 과세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상속증여세에도 같은 방법을 도입하는 것이 무리가 될 이유는 하나도 없지요. 따라서 완전포괄주의 추진위에 있는 전문가들이 조문을 잘 다듬어서 이런 상식적인 주장이 무리 없이 세법에 반영되도록 해 주시리라 거듭 믿고 기대해 봅니다.

비상장주식 평가방법 현실화해야

코스닥이나 증권거래소에 상장되지 않은 주식을 비상장주식이라고 하죠. 비상장주식의 경우 일반인들 사이에서 가격이 형성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세법에서는 비상장주식을 통해 상속이나 증여가 이루어질 경우 그 주식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해 규정을 따로 두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비상장회사 중에도 미래에 현금을 아주 잘 벌어들일 수 있는 회사들이 많은데, 세법은 이들 회사의 주식 가치를 평가할 때 과거의 실적을 기초로 평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겁니다.

사실 과거에 이익이 얼마 안 났더라도 미래에 현금을 굉장히 많이 벌어들일 수 있는 회사도 있을 수 있고, 반대로 과거에 이익이 많이 났더라도 미래에 수익을 못 올릴 회사도 많습니다. 그런데 과거 사례를 살펴보면 상속증여세를 적게 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회사 수익을 수년간 일정액 이하로 묶어두고 그 주식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 입법이 도입되는 이 시점에서 비상장주식에 대한 평가방법이 좀 더 현실에 가까워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이 때문입니다. 선진국처럼 비상장주식의 가치평가가 미래에 현금을 얼마나 창출하는지 그리고 같은 업종을 영위하고 있는 비슷한 규모의 다른 회사의 주가가 어느 정도 되는지 등을 감안해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재벌들이 비상장주식을 상속증여세 회피방법으로 이용한 과거 사례를 보면 장부상으로는 가치가 낮은 비상장주식을 자식에게 물려주고는 곧바로 해당 주식을 상장해서 수십 배의 양도차익을 내고도 세금 한 푼 안 낸 사례가 허다합니다. 비상장주식을 대량으로 물려받을 만큼 재력이 있는 사람들도 일반인과 같은 기준에 따라 상속증여세를 내도록 해야죠.

그러기 위해서 비상장주식도 장부에 따라서만 평가하지 말고 재무관리 이론을 실무에 도입해서 그 주식이 상장된다면 받을 수 있는 가격에 가깝게 평가해야 합니다. 미국 법원의 판례를 소개하면, 상장주식의 가치를 과거 실적 대신 미래에 벌어들일 현금흐름을 기준으로 평가해서 세금을 내라고 한 사례가 꽤 있습니다.

25일 상속세및증여세법 개정안 공청회에 상정되는 법 개정안이 보통 국민들의 상식을 적절하게 반영하고 있으면 합니다. 그 상식은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변칙증여 때문에 힘 빠지지 않게 만드는 상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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