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4-01-05   841

<경제프리즘> 검찰은 세발자전거를 달리게 해야 한다

증권집단소송제도 도입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소위 ‘세발자전거론’을 많이 이야기해왔다. 시장에서 벌어지는 기업 또는 작전세력의 불법행위에 대한 검찰의 ‘형사처벌’과 금융감독원의 ‘행정제재’라는 두 바퀴로 달리는 두발자전거는 불안하다. 정책적 또는 자의적인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있을 뿐만 아니라 범죄자와 국가기관 사이의 ‘거래’가능성 또한 상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해자와 가해자간에 문제를 시정하는 민사적 수단, 특히 민사적 손해배상제도라는 ‘세번째 바퀴’는 불법행위를 예방하거나 처벌하는 효과가 더 클 뿐만 아니라 당사자간의 자율적인 해결을 유도하므로 두발자전거의 결점을 보완하여 안정성을 갖추게 해준다는 것이 ‘세발자전거론’이다. 물론 ‘세발자전거론’은 현재 있는 민사적 손해배상제도라는 세 번째 바퀴를 더 튼튼하게 하자는 증권집단소송제의 필요성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며 모든 범죄에 적용된다.

하지만 세발자전거가 잘 굴러가게 해야 할 국가기관이 오히려 민사적 손해배상 수단이라는 바퀴의 바람을 ‘픽’하며 빼버리는 경우가 있어 문제이다. 즉 국가기관과 공공기관이 특정인과 집단의 불법행위를 적발했지만 행위자를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아서 피해자의 민사적 권리행사를 제한하는 경우가 있다. 금융감독원이 불법행위를 한 기업을 적발했음에도 ‘ㄱ’기업, ‘A’기업과 같이 기업체명을 알 수 없도록 한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제 이 세발자전거론을 현재 진행중인 검찰의 불법대선자금 수사에 적용해봐야 한다.

새해가 밝자 검찰은 재계 인사들을 순차적으로 공개소환할 것이라 했다. 죄질이 무거운 경우에는 처벌할 것이라는 말도 나왔으며, LG그룹이 한나라당 측에 제공한 자금은 구씨와 허씨 사돈 양쪽 집안의 수십명으로 구성되어있는 LG그룹의 대주주들이 갹출한 자금이라는 검찰발 보도도 나왔다. 그동안 삼성도, 현대자동차도 LG그룹처럼 대주주의 개인재산에서 제공된 돈이라고 주장해왔으니, 조만간 어떻게 결론날 지 주목된다.

정치권에 제공한 자금이 회사재산을 이런저런 방식으로 빼돌려 마련한 자금이었든, 정당하게 모은 개인재산이든 또는 계열사와 대주주간의 부당한 주식거래를 통해 조성된 자금이든 기본적으로 그 자금전달자와 자금조성자는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처벌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행 정치자금법 위반에 대한 처벌은 기업인들의 경우 ‘눈 한번 감고 견딜’만큼 가볍다. 정치자금법은 절차만을 정한 단순한 절차법에 불과해서 불법정치자금에 따른 사회적 피해에 비교했을 때 처벌형량이 극히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치인도 아닌 기업인들에게 실형이 선고될리는 거의 없어 보이고, 게다가 기업인들의 경우 정치자금법위반이라는 딱지가 기업활동에 하등의 장애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분식회계와 관련해 증권거래법위반혐의로 임원에서 해임된 사람도 6개월후에는 다시 경영진으로 복귀하는 현실이니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사람을 경영진에서 해임하라고 한다고 해임할 이사회가 우리나라에는 없다.

그래서 이왕 돈을 준 행위가 적발된 인사들은 이 수준에서 처벌받기를 원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수사협조와 처벌수위 또는 처벌의 근거가 되는 법률조항 적용을 두고 치열한 협상게임을 하고 있다는 추측이 나온다.

만약 기업인들이 정치권에 제공한 자금이 부당한 방법으로 조성된 회사재산이었거나 또는 회사와 개인 대주주간의 부당한 거래에 의해 조성된 자금이라는 점을 검찰이 파악했음에도 불구하고 덮어놓고 간다면, 이는 검찰이 자신의 공적을 세우기위해 ‘다른 사람들의 권리행사를 가로막는’ 것이다.

분식회계와 배임 등으로 유출된 회사재산, 그리고 부당한 거래를 통해 마련한 자금이었다면 이는 회사의 주주를 비롯한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침해한 행위에 해당한다. 따라서 주주나 법인격으로서의 회사는 그 피해를 회복하기위해 민사적인 방법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그런데 검찰이 정치권의 불법을 최대한 밝히려고 기업측의 협조를 얻기위해 기업인들에 대한 수사를 제한적으로 하거나 처벌 수위를 협상으로 처리하면서 그 진상을 샅샅이 밝히지 않는다면 민사적 권리행사가 불가능해진다. 시쳇말로 불법자금유출로 인해 피해를 입은 주주와 회사를 ‘두 번 죽이는 것’이 될 것이다. 검찰이 세발자전거의 한쪽 바퀴에 ‘펑크’를 내버리는 셈이다.

게다가 검찰이 증권거래법 위반혐의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확인하고도 이를 밝히지 않거나 정식으로 처벌하기위한 형사기소를 하지 않기로 결정, 즉 기소유예 처분을 내려버린다면 일반 국민 또는 직접 피해자들이 형사고발을 해도 검찰이 기소유예 처분을 번복할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또 국민들이 직접 법원에 형사처벌을 요구할 방법은 없다. 바로 검찰이 가지고 있는 ‘기소독점권’때문이다(물론 이를 보완하는 제도가 있으나 현실적으로 이용하기 거의 불가능하다). 이는 검찰이 세발자전거를 멈추게 하기에 앞서 두발자전거조차 비틀거리게 하는 꼴이다.

검찰은 형사처벌과 행정제제에 이은 민사손해배상이라는 세 바퀴의 세발자전거가 달리게 할 것인지 아니면 기업인들은 기소하지 않아 두발자전거 아니, 외발자전거를 달리게 할 것인지 1월 중에는 결판이 날 것이다.

박근용(참여연대 경제개혁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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