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4-02-02   1248

<안국동 窓> 부안 주민투표는 민주적 변화의 씨앗!

부안은 지금 한국 최초로 주민들 스스로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하려는 거대한 실험이 진행중에 있습니다. 한국사회가 민주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관료와 정치인들이 주민들의 운명을 결정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이 결정권자이고, 주민들은 계몽의 대상 또는 언제든지 조종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오만에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결정권을 침해당한 주민들이 저항을 하면, 국가주의적 사고가 뿌리깊게 박힌 한국에서는 지역이기주의나 님비현상으로 매도당하기 일쑤였습니다. 지방자치를 한다고는 하지만 지방자치가 오히려 오염된 중앙정치의 볼모가 되어서, 지방자치단체장이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하는 경우들이 빈발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예산이 낭비되고, 지역의 환경이 파괴되어도, 주민들에게는 단지 선거 때에 어느 후보에게 투표할 것인 지의 결정권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마치 틀린 답만이 나열되어 있는 객관식 시험문제지를 든 학생처럼, 주민들은 그저 어느 하나를 찍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안 방폐장 문제는 이런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중앙정부의 비민주적이고 폐쇄적인 정책판단, 지방자치단체장의 독단적인 결정, 주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관료들의 오만함이 부안 방폐장 문제를 불러왔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잘못된 결정으로 인해 주민들은 반년이 넘는 동안 엄청난 고통을 당해 왔습니다.

이것은 반대하는 주민들뿐만 아니라 찬성하는 주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동네에서 형님, 아우로 지내던 사람들이 반목하고 있고, 친척들도 갈라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비극적인 지역공동체의 파괴를 가져온 사람들은 전혀 반성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산업자원부의 관료들, 한수원의 의사결정자들은 책상머리에 앉아서 아직도 부안주민들의 삶을 자신들의 펜대 위에서 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부안군수는 자신의 독단적인 결정이 지역주민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전혀 반성해 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간은 흘러가고, 주민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부도가 날 지경인 어민들,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하는 농민들은 더 이상 정부의 결정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민들이 주민투표를 요구했고, 시민사회, 종교계, 학계인사들로 구성된 주민투표관리위원회가 구성되어 주민투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협조가 없는 상태에서 전적으로 시민사회와 주민들의 힘으로 주민투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지금 부안에서는 눈물겨운 노력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아주머니 자원봉사자들이 아파트를 집집마다 방문하면서 거주자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전화번호부를 놓고, 또 고등학교 졸업앨범을 놓고, 일일이 전화를 해서 투표인 명부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하루종일 쉬지 않고 전화기를 붙들고 있는 주부들을 보면, 그리고 거동도 어려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2시간 동안 차가운 바닥에 앉아서 토론회를 경청하고 있는 것을 보면 한국 민주주의의 희망이 보입니다. 그러면서도 눈물이 나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노력들에 의해 한국 최초로 주민자치에 의한 주민투표를 성사시키려고 합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부안에 평화를 회복시키려고 합니다. 한국사회의 중앙집중적이고 관료주도적인 의사결정구조에 문제제기를 하려고 합니다.

지역주민들의 삶이 더 이상 독선적 의사결정자에 의해 파괴되지 않도록 하려고 합니다. 부안 주민들의 이런 노력은 한국사회를 아래에서부터 더 민주적이고 더 평화적으로 변화시키는 조그만 씨앗이 될 것입니다.

<편집자 주>

하승수 변호사는 ‘부안 방폐장 유치 찬반 주민투표 관리위원회’에서 사무처장을 맡아 2월 14일로 예정된 부안 주민투표를 준비하고 있다. 이 칼럼은 http://www.buanvote.or.kr/에도 실려있다. 극도로 어려운 상황에서 주민투표를 준비하면서도 하 변호사는 “힘들지만 한국사회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감동이다. 날마다 감격하면서 일하고 있다”는 소감과 “부안에서 진행되는 초유의 투표가 원만히 이뤄질 수 있도록 온 국민이 지지하고 후원해 주길 바란다”는 당부도 전했다. 부안 주민들은 주민투표에 필요한 3천만원 가량을 모으기 위해 각계각층의 후원을 부탁하고 있다. (후원계좌 : 하나은행 162-910082-68707 예금주 하승수)

하승수 (참여연대 협동처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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