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5-02-07   1376

<안국동窓>‘주식회사 한국‘의 함정과 새 희망의 조건

사회 협약에서 시민권 계약으로

경제는 양극화의 함정에 빠져 있고, 국민의 삶은 암담하다. 개발연대 이후 오늘처럼 삶이 불안하고 미래가 불투명하게 느껴진 때가 있었던가 싶다. 민주화 시대에 살고 있다지만 다분히 허울로 여겨진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와 ‘종속적 세계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분배와 복지라는 시민적 권리는 왜소해지고 초라해졌다. 그리하여 더 그런가? 새해가 밝으니 정부와 시민사회가 제각기 희망을 말한다.

국정 최고책임자는 신년 기자 회견에서 일자리 창출을 통한 복지 향상 등 서민 생활 대책을 강구하고, 양극화 해소와 동반 성장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선진경제와 선진한국에 대한 원대한 포부를 밝혔다. 우리는 어느 새 선진국 문턱에 바짝 다가서 있으며, 이대로 가면 2008년쯤에는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가 열리고 2010년에는 선진경제에 진입할 것이라고 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 회견이 재계와 보수 언론으로부터 큰 칭찬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집권 3년째가 되어 이제야 정신차리고 경제에 ‘올인’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고 해서 큰 점수를 얻었다.

경제올인전략에 맞선 시민사회의 2005 희망제안

하지만 중요한 것은 경제 ‘올인’의 내용이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대기업 정규직의 양보와 협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면서 오늘의 파행적 ‘주식회사 한국’ 상황에 대한 책임을 노조로 돌린 반면 재계를 자극할만한 어떤 언급도 하지 않은 채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고 했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에 화살을 겨냥하여 양보를 요구하고, 재계에 대해서는 사회적 책임과 이해당사자 책임을 면제해주는 것도 모자라 규제 완화와 유연화라는 선물까지 푸짐하게 안겨주었다. 부실 사회안전망과 공공 부문 재구축 요구는 외면하고 무조건 일자리 창출= 근로 빈민의 양산을 최대 복지로 간주하면서 선진경제와 선진 한국의 도래를 말하는 것, 바로 여기에서 집권 3년 참여정부 ‘경제 올인’의 신자유주의적 방향성과 그 안정화를 읽을 수 있다.

대통령의 ‘주식회사 시장 한국’으로서 선진 한국상의 제시가 있기 전에 시민사회는 일자리 만들기와 새 공동체 건설을 위한 ‘2005 희망 제안’을 제출했다. 이 제안은 진보, 보수를 함께 아우르는 사회 원로와 각계 대표가 서명했다는 점, 성명서의 내용에 참신성이 있다는 점, 나아가 구체적 행보까지 보이고 있는 점 등 에서 주목할 만하다.

‘희망 제안’에서는 사람중심의 경제 사회발전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여 지속가능하고 고용과 성장이 함께 가는 공동체를 만들 것, 대대적인 사회적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를 시행하여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는 계기를 만들 것,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고 상생의 공동체를 만드는 사회 협약을 만들 것 등 세 가지를 호소하고 있다.

그 실현을 위해 정부와 정치권에 대해 법, 제도, 정책 대안을 제시할 것, 기업에 대해 사람 덜어내기 경영방식을 지양하고 사람중심의 경영체제, 학습 체제를 통한 지식노동자 양성, 중소기업과 동반 상생 체제의 구축 등 인간적이며 생산적인 경영 패러다임을 구축할 것, 그리고 노동 조합에 대해 과도한 임금 인상 요구를 자제하고 기업과 함께 과로 해소 및 산재 예방, 일자리 나누기, 평생학습에 참여할 것 등을 촉구하고 있다.

나는 ‘2005 희망 제안’이 양극화의 해소와 사회 통합을 위해 상당히 전향적인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사람 덜어내기-비용절감-비정규직 양산방식에서 노동시간 단축-일자리 나누기 -학습 증진-생산성 향상 방식으로의 방향 전환은 정부의 신동원주의적 ‘주식회사 한국’ 프로젝트를 넘어설 뿐만 아니라 기왕의 제도권 시민사회 단체에서 추진해 온 경제 개혁 운동과도 성격을 달리한다. 소액주주운동을 비롯한 기왕의 경제개혁 운동은 기업의 책임성과 투명성 제고를 위해 긍정적 의의가 없진 않지만 주주 가치 자본주의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 아니었고, 사람 덜어내기 경영 방식을 방임하고 심지어 조장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반면에 이번의 ‘희망 제안’은 경제와 사회의 양극화 현상이 승자독식의 논리에 근거를 둔 신자유주의 정책에서 비롯되었으며, 현행 경제 운영의 패러다임이 경제의 구조적 문제와 사회 양극화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이는 1997년 위기 이후 구조조정이 가져 온 문제의 성격을 정확히 진단하고 있는 것이다.

시민적 권리와 책임을 바탕으로한 사회협약인가?

이런 의미에서 나는 ‘희망 제안’이 시민사회 사회경제 개혁운동의 새 방향을 보여주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몇 가지 우려되는 바가 있다.

첫째, 희망 만들기의 핵심은 기업 측의 ‘노동시간 단축-일자리 나누기-학습 근무 수용’과 노동 측의 ‘과도한 임금인상 자제 수용’을 교환하는 ‘사회협약 만들기’에 있다 할 수 있는데, 이 제안이 기업과 노동 측에 얼마나 수용될 수 있을지가 문제다. 무엇보다도 제안 참여자의 구성면에서 각계 대표가 참여했다고 하지만, 재계 대표는 들어가 있으면서 노동계 대표는 완전 배제되어 있는데, 이는 제안의 공평성과 신뢰성에 큰 손상을 주고 있다.

둘째, ‘희망 제안’은 기업인들에 대한 사회적 처우가 미흡하다고 하면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 하고, 기업에 대한 사회인식 전환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일부 기업에 대해서는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하며, 사회협약에의 동참을 끌어내기 위해 기업을 격려하고, 배려하는 발언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시민사회의 ‘희망 제안’에서 기업의 이해당사자 책임과 사회적 책임, 또는 시민적 책임이라는 말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면서 기업인에 대한 사회적 처우가 미흡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셋째, 유럽 강소국들이 사회협약을 추진하여 분열과 대립을 극복하고 번영을 이루었다고 하면서 스웨덴, 네덜란드, 아일랜드 등을 예로 들고 있다. 그러나 이들 나라를 같은 범주로 묶는 것은 잘못이다. 스웨덴, 네덜란드가 유럽식 이해당사자 자본주의유형에 속한다면 아일랜드는 영미식 주주 자본주의유형에 속하기 때문이다. 시민사회에서 자본주의의 기본적 차이에 둔감하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넷째, 이런 까닭에 ‘희망 제안’이 앞으로 한국식 시장경제 모형에 대한 합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과연 그 실체적 내용이 무엇이 될지 모호하고 불투명하다. 우리는 이런 저런 곳에서 한국은 영미형과 유럽형의 단점을 모두 극복하는 제 3의 길을 추구해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이 말은 유럽 사회적 복지경제의 경직성을 고려한다면 전혀 터무니없지는 않지만 동시에 양극화-저복지의 파행적 한국 상황을 호도하기도 한다. 우리의 생각으로 ?이해당사자 시민 한국?이냐 ?주식회사 시장 한국?이냐 하는 문제는 호도해서는 안되는, 한국 희망 만들기와 좌표 설정에서 우회할 수 없는 선택이다.

돌이켜 보면 참여 정부의 결정적 결함은 참여를 말하면서도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노선이후 그리고 97년 위기와 구조조정을 전환점으로 한 신자유주의 한국의 함정에 대한 발본적 반성이 결여되어 있다는데 있다. 이해당사자의 시민적 참여와 책임 경제의 비전을 세우고 이를 실현 가능케 하는 발전 모델을 모색하는 일은 이 정권의 의제에서 배제되었다. 전방위적 양극화 상황을 극복하고 사회통합을 이루는 길은 기업과 투기적 외자 세력의 너무 많은 권리와 너무 적은 책임, 그리고 국민 대중의 너무 많은 책임과 너무 적은 권리라고 하는 비대칭적 특권경제 상황을 타파하고 이해당사자의 권리와 책임이 상응하는 ‘시민 경제’의 수립과 이에 기반한 평등주의적 내수 확장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시민사회가 해야 할 과제는 지향점이 모호한 사회협약의 제안에 그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이해당사자 시민권 계약의 수립, 이를 위한 법과 제도의 제안에서 주도권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이 칼럼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만드는 참여사회> 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이병천 (강원대 교수, 참여사회연구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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