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과 2024년 헌정질서를 어지럽히고 민주주의를 부정한 두 명의 대통령을 탄핵하기까지, 집회의 자유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핵심적 기본권임을 거듭 확인하였습니다. 독재를 꿈꾸는 위정자들이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만들 때, 불의에 항의하고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언제든지 모일 수 있고 외칠 수 있도록 집회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행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은 여전히 집회를 억제하고 관리하는데 치중하고 있습니다. 헌법이 보장하는 평화적 집회를 집시법이 온전히 구현할 수 있도록 규제와 관리 위주의 집시법은 대폭 개정되어야 합니다. 이에 참여연대는 헌법적 요구에 부합하지 않으며 법개정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법원 판결들을 선정해 ‘집시법 특집 판결비평’을 진행합니다.
청년실업과 최저임금 문제를 소재로 퍼포먼스 형태의 플래시 몹을 하는 것은 예술행위가 아닌 걸까요? 삼성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노동자 추모식에서 영정 등을 들고 구호를 외치면 추모식이 아닌 것일까요? 플래시몹은 행위예술의 한 형태이고, 추모식은 관혼상제라 현행 집시법 제15조에 따르면 신고 대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법원의 판단의 근거는 무엇이고, 왜 문제인지 구본석 변호사가 법원의 판단의 실상과 문제에 대해 짚어 봅니다.
광장에 나온 판결 : 327번째 이야기
- 청년실업과 최저임금 문제를 소재로 플래시 몹을 명동에서 30분 가량 진행했다가 1, 2심에서 미신고집회로 벌금형을 선고받고 상고하였으나 대법원도 미신고집회로서 처벌 정당하다고 한 판결 : 대법원 대법관 이상훈(재판장) 신영철 김용덕 김소영(주심) 2013. 3. 28. 선고 2011도2393 [판결문 보기]
- 삼성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노동자의 영정 등을 들고 병원에서 회사 본관까지 이동하고 구호를 외쳤다가 1,2심에서 미신고집회로 벌금형 선고받고 상고하였으나 대법원이 미신고집회로서 처벌 정당하다고 한 판결 : 대법원 대법관 안대희(재판장) 김능환 이인복 박병대(주심) 2012. 4. 26.선고 2011도6294 [판결문 보기]

구본석 / 변호사,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운영위원
예술과 추모 행사도 형사처벌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다
헌법 제21조는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집회에 대한 허가제를 금지한다. 그러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의 사전신고 규정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법원이 표현행위의 외형과 내용 중 무엇을 ‘본질’로 볼 것인지 심사하고 그 결과에 형벌을 연결한다면 신고제는 허가제와 구별되는 헌법적 한계를 잃을 위험이 있다. 대법원 2013. 3. 28. 선고 2011도2393 판결(일명 ‘플래시 몹 사건’)과 대법원 2012. 4. 26. 선고 2011도6294 판결(일명 ‘추모 행진 사건’)은 바로 이 위험이 선명하게 드러난 대표적인 판례이다. 전자는 청년실업 문제를 표현한 플래시 몹을 집시법 제15조에 의하여 신고의무가 면제되는 ‘예술·오락 관련 집회’가 아닌 ‘신고대상 옥외집회’로 보았고, 후자는 노동자 사망을 추모하는 행사에서 이루어진 행진을 미신고 시위로 판단하였다. 정치적·사회적 의사표현이 포함되었다는 사정이 예술이나 추모라는 행위의 성격을 어떻게 바꾸는지에 관하여 두 판결은 공통의 질문을 던진다.
플래시몹 사건— 정치와 예술은 상호배타적인가
‘플래시 몹 사건’(2011도2393) 판결에서 참가자들은 명동에서 약 30분간 청년실업과 최저임금 문제를 소재로 퍼포먼스 형태의 플래시 몹을 벌였다. 피켓, 노래, 독서하는 모습, 상복, 졸업복 등은 사회 현실을 상징하는 표현 수단이었다. 대법원은 집회의 주된 목적·장소·방법·행위 태양 등을 종합하여 실질을 판단해야 한다고 설시한 뒤, 행위 예술의 한 형태인 퍼포먼스 형식으로 진행되기는 하였지만 이 사건 모임의 실질은 정치·사회적 구호를 대외적으로 알리는 데 있으므로 집시법 제15조의 예술·오락 등에 관한 집회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경찰의 사전 인지, 평화로운 진행, 주장 내용의 정당성은 신고의무를 면제하지 않는다고 하여 정당행위 및 법률의 착오 주장도 배척하였다.
이 판시에서 비판해야 할 지점은 집회의 성격을 실질적으로 살펴보았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법률상 적용 제외 사유의 남용을 막기 위해 행사 전체를 살피는 것은 필요할 수 있다. 문제는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목적’과 ‘예술적 표현행위’가 마치 상호 배타적인 범주인 것처럼 취급되는 논증이다. 예술은 종종 현실에 대한 비판을 통해 성립한다. 사회 문제를 전달하려고 연극을 하거나 노래를 부른다고 하여 그 표현이 예술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다. 표현의 내용이 정치적일수록 예술적 형식의 법적 의미가 축소된다면, 집시법 제15조의 적용 범위는 국가가 메시지의 성격을 평가하는 방식에 따라 흔들린다.
대법원은 집시법 제15조의 적용 제외 취지를 타인의 기본권이나 공공의 안녕질서 침해 위험이 매우 적다는 데서 찾았다. 그렇다면 그 취지에 충실한 심사는 정치적 목적의 유무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사 방식과 위험의 관계를 따져야 한다. 명동이라는 장소, 다수 시민의 통행, 피켓과 구호가 있었다는 사정은 신고제 적용의 논거로 작용하나, 그것이 곧 예술적 행위의 성격을 소멸시키거나 실질적인 위험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 판결에 대한 정확한 비판은 ‘예술이므로 무조건 신고가 필요 없다’는 주장이 아니라, 예술과 사회적 주장 사이의 양자택일을 강제하는 분류 방식의 정당화가 충분했는지 묻는 데 있다.
추모 행진 사건 – 추모의 정치성이 추모를 지우는가
‘추모 행진 사건’(2011도6294) 판결의 출발점은 더 신중하게 구별해야 한다. 대법원은 장례 관련 집회가 집시법 제15조의 적용 제외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전제로 하면서도, 노동자 사망을 추모하기 위한 행사에서 영정 등을 들고 병원에서 회사 본관까지 이동하고 구호를 외친 행위가 추모의 범위를 넘어 다른 공동의 목적을 위한 시위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그 결과 미신고 시위에 관한 원심의 유죄 판단은 유지하였다. 반면 미신고라는 이유만으로 내려진 해산명령에 불응한 부분에 관해서는, 집시법 제20조 제1항 제2호를 기계적으로 적용할 수 없고 타인의 법익이나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직접적 위험이 명백하게 초래되는지 등을 따져야 한다며 원심을 파기환송하였다.
따라서 이 판결 전체를 ‘추모 행진을 처벌한 판결’이라고만 요약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해산명령 부분에서 대법원은 집회의 자유를 고려한 제한 해석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미신고 시위 해당성 판단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이유가 된다. 해산 단계에서는 구체적 위험을 중시하면서, 신고대상 시위로의 분류 단계에서는 추모 행위가 다른 공동의 목적을 지녔는지에 비중을 두었기 때문이다. 헌법상 보호되는 추모의 표현이 어느 순간 집시법에 의하여 제한되는 시위로 전환되는지에 관한 기준은 더욱 엄밀해야 한다.
특히 노동자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노동조건이나 기업의 책임을 문제 삼는 것은 추모와 무관한 외부 목적이 추가된 것만은 아닐 수 있다. 죽음의 원인을 기억하고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행위는 추모의 의미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며, 나아가 그것이 곧 추모의 의미이자 목적이기도 하다. 영정과 만장, 구호, 이동이라는 요소가 함께 존재한다고 해서 추모의 의미가 곧바로 소거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추모를 이루는 또 다른 요소이기도 하다. 물론 판결문 상 행진은 병원에서 회사 본관으로 이어졌고, 참가자들은 사전에 신고하지 않았으며, 경찰의 해산명령에도 응하지 않았다. 이 구체적 행위가 시위의 법률상 정의에 해당하는지를 검토하는 일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 판단은 추모가 정치적 발언을 포함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표현 방식이 제3자의 법익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분명히 구분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집시법 제2조 제2호가 말하는 ‘시위’는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도로·광장·공원 등 일반인이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는 장소를 행진하거나 위력 또는 기세를 보여 불특정 다수인의 의견에 영향을 주거나 제압을 가하는 행위 등을 포괄한다. 이 정의에 비추어 행진을 시위로 분류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논거는 가볍지 않다. 그러나 추모행위의 사회적 의미를 지나치게 좁게 이해하여 정치적 요구가 나타나는 순간 법률상 보호의 성격을 바꾸는 접근은, 시민이 애도의 방식과 내용을 스스로 선택할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 이는 사법부의 판단에 따라 집시법을 도구로 헌법이 보호하는 집회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
두 판결이 남긴 과제 – 표현의 내용이 아니라 제한의 이유를 증명하라
두 판결의 결론은 분명하다. 집시법 제15조가 예술·관혼상제 등의 모든 행위에 대하여 집시법에서 요구하는 의무를 무조건 면제하는 규정은 아니며, 정치적 목적의 집회를 단지 공연이나 장례의 형식으로 포장하여 신고의무를 회피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사전신고는 집회 허가가 아니라 경찰이 충돌을 예방하고 다른 시민의 권리를 조정하기 위한 제도이기도 하다. 이 논거는 존중할 필요가 있다. 집회의 자유가 타인의 권리와 무관한 절대적 자유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 결론으로부터, 법원이 정치적 메시지의 존재를 행사 성격을 가르는 사실상의 결정적 징표로 사용해도 된다는 결론이 도출되지는 않는다. 표현의 정치성은 예술이나 추모의 외부에 붙은 불순물이 아니다. 오히려 권력과 사회를 향한 발언이기에 헌법 제21조의 보호 필요성이 커질 수 있다. 집회의 성격을 분류하는 법적 심사에서는 행사 전체의 구체적 행태와 법률의 문언을 면밀히 살피되, 그 표현이 무엇을 주장하는지를 이유로 적용 제외의 범위를 축소하는 일이 없는지 경계해야 한다.
국제인권규약상 평화적 집회의 권리를 보장하는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21조와 유엔 자유권위원회 일반논평 제37호(2020)는 평화적 집회에 대한 제한의 필요성과 비례성, 사전통지제의 운용에서 과도한 제재를 경계하는 방향을 제시한다. 이는 두 사건 당시의 국내 실정법 해석을 자동으로 대체하는 기준은 아니지만, 사후적으로 두 판결의 기본권 친화성을 점검할 유의미한 준거다. 신고가 공공질서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라면, 그 수단의 목적을 넘어서 표현의 형식과 내용을 국가가 재단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결국 사법부가 해야 할 일은 ‘이 행사는 진정한 예술인가’, ‘이 추모는 순수한 추모인가’를 묻는 데 그치지 않는다. 먼저 법률이 요구하는 행위 요건을 엄격하게 확인하고, 이어 그 해석과 형사제재가 헌법상 표현과 집회의 자유를 불필요하게 위축시키지 않는지 설명해야 한다. 정치적 메시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예술은 예술이 아니고 추모는 추모가 아니게 되는 법질서라면, 시민의 자유는 표현을 시작하기도 전에 국가의 분류를 의식하게 된다. 기본권의 최후 보루인 법원이야말로 그 위험을 가장 엄격하게 경계해야 한다.
또한 집시법 제15조에서 학문, 예술, 체육, 종교, 의식, 친목, 오락, 관혼상제 및 국경행사와 같은 집회에 대해서는 신고의무 등을 면제하는 조항을 삭제해 집시법의 신고제가 “정치적”이거나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 집회를 규제하기 위한 근거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 참여연대 집시법 입법청원안 보기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 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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