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벗겨진 개인’ 통제사회 오나
[참여연대-한겨레 공동기획] 당신의 개인정보 안녕하십니까 ① 위기의 생체정보
해마다 수백만건의 휴대전화 번호가 유출되고, 공공기관들은 사람들의 주민등록 번호를 노출시키는 등 개인정보 관련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연예인 엑스파일’ 사건은 집적된 개인정보가 유출될 때 얼마나 빠른 속도로 전파되고 부작용을 일으키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유전자 정보를 비롯한 민감한 개인정보가 빠른 속도로 집적되면서 헌법에 보장된 사생활권이 침해당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참여연대와 공동으로 프라이버시권 침해 실태와 대책 등을 네차례에 짚어본다. 편집자

#장면 1=지난해 10월 발생한 경기도 화성 여대생 실종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2일 현재 기상천외한 ‘저인망식 과학수사’를 벌이고 있다. 용의자 4천명의 유전자를 채취해 유일한 수사 단서인 청바지의 정액 한 방울과 대조하고 있는 것이다. 사건 당일 피해자 노아무개(21)씨의 버스 승하차 지점, 주검 및 속옷 발견 장소 등 9개 지점에서 전화통화를 한 사실이 있는 18만명을 대상으로 1차 수사 대상을 선정한 뒤, 사건과 관련성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4천명을 용의자로 분류한 것이다. 경찰은 이들의 입안에 면봉을 집어넣어 어금니 아래쪽을 살짝 긁어낸 ‘시료’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보내 분석 중이다. 지금까지 2천명의 분석을 마쳤으나 범인은 없었다. 용의자 유전자 채취는 지금까지의 관행대로 ‘영장 없이’ 진행됐다.
범인 잡는다며…미아 찾는다며.. 무분별한 유전자 채취, 기업도 마케팅 활용 우려
#장면 2=회사원 구제군(28)씨는 지난해 4월 총선이 끝난 직후 경찰로부터 “선거법을 위반했으니 경찰서로 출석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총선 하루 전날인 14일 오전 구씨가 다니던 학교 게시판에 한나라당을 비방하는 컬러 선전물이 나붙었는데, 여기서 나온 수십명의 지문 가운데 재학시절 학생회장 경력이 있는 구씨가 작성자로 지목된 것이다. 전화를 건 경찰관은 “많은 지문 중에 (이런 행위를 할 사람은) 당신밖에 없다. 나는 당신이 범인임을 확신한다. 나오지 않으면 처벌받을 것이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결국 구씨는 ‘범인’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지만, 지문 하나만을 맹신한 경찰의 ‘과학수사’ 때문에 뜻밖의 고초를 겪어야 했다.
최근 무분별한 생체정보 이용이 새로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위의 두 장면은 수사기관이 생체인식 기술을 앞세워 어떻게 인권을 침해하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특히 과학기술 발전에 따라 인간의 온몸이 생체인식 기술의 대상이 되면서, 사생활 침해 및 불법 유출, 오남용 우려도 커지고 있다.
검찰이 추진하고 있는 ‘범죄자 유전자 은행’은 온국민의 유전자 정보를 지문처럼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의 첫단계로 인식되고 있다. 검찰과 경찰은 이미 수사과정에서 확보한 유전자 정보 자료를 기초자료 형태로 보관하고 있다.
경찰은 ‘미아찾기’를 명목으로 1만여명의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상태다.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들의 심정’을 외풍 삼아 법적 근거도 없이 진행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미아만이 아니라 정신지체인과 치매노인들의 유전자까지 채취한 것으로 최근 드러났다. 이와 함께 올해부터는 채취한 디엔에이를 본래 목적 밖의 다른 용도로 사용해도 좋은지 아닌지를 묻는 항목을 분류해 사용하고 있어 물의를 빚고 있다. 경찰은 또 지난 1월부터 전국의 운전면허학원에 ‘운전학원 학사관리 전산시스템’이라는 지문인식기를 설치하도록 의무화해 출석 확인에 사용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청과 소속 동사무소의 경우 지난해부터 지문인식기를 설치해 인감증명 발급 때 본인 확인에 사용하고 있다. 법적인 근거가 없다는 언론의 비판이 일자, 행정자치부는 올해 초 아예 인감증명법을 바꿔 지문인식기를 쓸 수 있도록 해줬다.
여기에 민간기업들마저 생체정보를 돈벌이에 활용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바야흐로 생체 정보의 범람 시대를 맞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생체정보를 내주는 순간, 우리는 그 정보를 갖고 있는 국가기관과 민간기업 앞에 발가벗겨진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한다. 특히 유전자 정보는 사람마다 고유하고 쉽게 변하지 않으며,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의 유전적 상태까지 알 수 있는 가장 민감한 정보여서, 유출될 경우 갖가지 사회적 차별을 당할 수 있다. 질병을 숨기는 ‘불량 고객’의 가입을 막으려는 보험회사나, 신약을 연구하고 판매하려는 제약회사, 건강식품 회사들로서는 마케팅 혁명을 가져올 만한 고급정보다. 문제는 사람들이 생체정보의 중요성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원석 참여연대 시민권리국장은 “생체정보와 같은 높은 수준의 개인 식별·인증 시스템은 이를 관장하는 기관의 개인들에 대한 힘의 우위를 확인하는 수단이 된다”며 “이는 곧 체제 또는 기업의 개인에 대한 감시와 통제의 강화를 야기한다”고 말했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사무국장은 “주민등록 번호제와 지문날인 제도를 전산화된 형태로 운영하고 있는 강력한 감시체계를 갖춘 나라에서 개인의 유전자 정보까지 국가가 소유하게 되면, 실로 가공할 국가 감시체제가 확립될 것”이라며 “주민등록 번호나 휴대전화 번호 유출 사고가 잇따르는 것처럼, 생체정보도 무단 유출과 오남용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 생체정보 유출 규제대책 시급
– 유전자검사 기업 수십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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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인간 유전자 검사를 하고 있는 바이오 벤처는 수십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들은 주로 친자 및 친족 확인 등 신원확인 서비스를 하고 있고, 검사 뒤 남은 잔여 디앤에이를 영구 보관해주기도 한다. 일부 기업은 가족의 유전자 패턴 사진을 액자나 목걸이에 넣어서 판매하고 있다. 개인식별 검사의 항목으로 ‘배우자의 외도가 의심되는 경우’를 명시해 빈축을 사고 있는 기업도 있다. ㈜핑거텍의 경우 최근까지 미아 방지를 명목으로 30만명의 어린이를 상대로 지문을 채취했다. 이 업체는 서울시내 구청 사회복지과와 파출소 등 공공기관과 백화점, 병원 등에 1천여대의 지문검색기를 무료로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지문 정보에는 어린이의 인적사항과 부모의 연락처 등이 함께 기록된다. 박원식 참여연대 시민권리국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미아뿐 아니라, 이산가족, 해외 입양아 등 신원확인 업체들의 시장이 큰 편인데, 특히 국가기관이 생체정보 수집에 앞장서고 있어 생체정보의 사회적 활용이 크게 늘어날 전망”이라며 “이에 따른 불법 유출과 오남용을 막을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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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발달과 함께 생체정보의 식별능력이 높아지면서 이른바 ‘바이오 벤처’들의 상업적 활동도 활발해지고 있다. 그러나 시민사회 진영에서는 민간기업들의 생체정보 이용은 상업적 속성상 외부유출과 오남용의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적극적인 규제를 촉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