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호] [권두언] ‘다시 대한민국을 묻는다는 것’: 새로운 시민민주공화국을 위한 성찰과 새 희망 만들기

자만의 50주년에서 자성의 60주년으로

2005년은 일제로부터 우리 ‘민족’이 해방된 지 꼭 60년째 되는 해이다. 그리고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50년째 되었던 1995년에서 10년이 지난 해이기도 하다. 동어반복 같고, 말장난이 될 수도 있는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1955년부터 10년마다 치르던 광복절기념 방식에는 대체로 상투화된 주제와 스타일이 있었다. 우선 해방되던 그날의 감격을 되새긴다(따라서 광복절은 무엇보다 자축의 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해방된 민족이 분단되었음을 아쉬워한다(따라서 광복절은 항상 애상어린 통분이 등장하는 애통의 날이기도 하다). 그리고 과거의 일제나 현재의 일본에 대한 분노를 되씹은 다음(따라서 광복절은 반일의 날로 치닫는다), 해방된 후 이 국가가 이룩한 발전을 일일이 헤아리면서 대단한 자기만족으로 대미를 장식한다(따라서 공식적인 장소나 매체에서 광복절은 대체로 자만의 분위기가 가득한 행사로 끝맺는다).

자축, 애통, 반일 그리고 자만이 10년주기형으로 순환하는 그런 스타일이 절정에 달했던 것이 아마 문민정부 시절이었던 1995년의 8·15행사였던 것 같다. 우리들의 기억으로는 그때 막 불황에서 벗어난 듯했던 풍요의 분위기 속에서 (당시 1995년 상반기 경제성장률이 9.4%였다) 한껏 위세가 높아졌던 김영삼 대통령은 마침 그 시기가 임기 반환점과 며칠 사이로 겹치면서 1995년 8·15를 명실상부하게 제2의 광복절로 재연하기 위해 건국 이래 중앙청이라 불려왔던 조선총독부 건물의 첨탑을 절개하는 이벤트를 벌였다. 박정희시대에 중건한 콘크리트 광화문 뒤에서 약간 어설프게 버티고 서 있던 중앙청은 이날 머리부터 잘리면서 전면적인 해체작업에 들어갔고 절단당한 첨탑은 며칠 뒤 독립기념관 안으로 안치되었다.

그런데 당시 자만의 분위기를 가장 크게 자축했던 것은 공식기구가 아니라 민간부문이었다. 이제는 누구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깊게 기억하고 있지 않지만 당시 8월 25일에는 잠실올림픽 주경기장에서 모 종교단체 주최로 제2회 세계문화체육대전이라는 명목 아래 163개국의 선남선녀가 참여한 36만쌍 국제합동결혼식이 거행되었다. 덕분에 당시 국내외 항공편은 일반승객들이 예상치도 못했던 항공권 때아닌 매진사태로 큰 혼란이 벌어졌다. 이때 세계 각국의 전·현직 국가수반들의 모임인 정상회의, 세계언론인회의, 여성지도자회의, 세계과학자-석학회의, 종교지도자회의 등 “각 나라의 지성과 경륜을 두루 갖춘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여 “인류의 평화와 가정의 도덕성 회복”을 놓고 진지한 토론과 합의를 도출한다는 모임을 같이 가졌다. 대한민국을 본국으로 모시는 이런 축제가 민간기구에 의해 주최되었다는 사실을 두고 관련자들은 정말 대한민국이 세계 모든 나라 위에 우뚝 섰다고 자축해 마지않았다.

이런 자축분위기는 우리나라 사람들만으로 띄워진 것은 아니었다. 당시 MIT 대학의 교수였던 앨리스 암스덴은 <아시아의 다음 거인: 한국과 후발산업화>라는 책으로 1992년 미국 정치학회가 주는 정치경제학에 관한 ‘최고의 책’ 상을 수상한 터였다. 이 책은 1990년 우리말로 즉각 번역되었는데, 암스덴은 산업연구원(KIET)이 서울 롯데호텔에서 광복 50주년 기념사업으로 가진 ‘한국산업의 정치경제학’이라는 주제의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해 자신과 반대입장이었던 폴 크루그먼과 해외 대결을 벌임으로써 광복 50주년의 한국번영담론을 풍성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과거에 대항해, 그리고 과거를 일거에 넘어선 것 같은 기세로 맘껏 과시된 이런 외향적 위풍당당함에도 불구하고 하마터면 나라 전체가 IMF 신탁통치체제로 고스란히 날아갈 뻔했던 외환외채위기가 터진 것은 그 2년 뒤 YS가 임기를 다해 가던 1997년 말이었다. 그리고 그 뒤 광복 60주년에 이르는 8년간의 세월은, 한마디로 대한민국이 20세기에 쌓아왔던 자존심이 처참하게 일그러지면서 닥치는 고통을 까무러칠 새도 없이 받아내야 했던, 두 국민으로 양극화가 진행되는 나날이 되었다. 보다 고차적인 차원에서 품위 있게 충족되었으면 했던 우리 대한민국의 정신적 자존심은 광복 60주년이 저물어가고 민주화 20년을 내다보는 2005년 12월,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를 뒤흔든 황우석파동으로 다시 한번 철저하게 구겨졌다.

만약 대한민국이 잘해 왔던 것, 그것이 우리의 삶을 만족시키고 존엄스럽게 하고 있다면 대한민국에다 대고 다시 물음을 제기하는 것과 같은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길거리에 나가 아무나 붙잡고 “우리나라에 만족하세요?” 하고 물어 보자. 설혹 대한민국을 위한 초광신적 애국자라 하더라도, 아니 바로 애국자일수록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무슨 말씀요. 더 잘해야지요”. 또 다른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폭력과 불의가 있었는데요.” 우리가 지금 다시 묻고 있는 대한민국은 바로 이것, 즉 건국 이래 폭력과 불의의 야만에 대한 기억을 잊지 말아야 하고, 정말 더 잘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있으며, 과연 더 잘할 수 있는지에 관해 우리 스스로가 확인해야 하는, 바로 그런 대한민국이다.

자만심으로는 자기 자신을 직시하지 못한다. 자존심을 가진 자일수록 자성력으로 자신을 투시한다. 대한민국이 광복 또는 민족해방 60주년을 맞았다고 했을 때 그것의 가장 큰 뜻은 자만에서 자성으로 자기를 보는 시각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원초적 폭력을 내장한 ‘건국’에 고착된 기억과 ‘부국’의 꿈에 흥분하던 추억으로 대한민국을 더 잘하게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 뒤틀린 건국의 기억과 부국의 추억 다음에 ‘강국’에의 소망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대한민국은 잘했던 것보다는 못했던 것, 아니 안 하고 넘어왔던 것이 여전히 미래를 더 많이 좌우한다. 바로 이렇게 ‘더 잘해야 하는 대한민국’을 위해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을 다시 묻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에 관해 도대체 무엇을 물어야 한단 말인가?

대한민국은 있다. <시민과 세계>의 편집위원회와 주제기획의 모든 필자들은 이것을 다시 확인했다. 그런데 바로 이런 60년 역사의 국가를 놓고 무엇을 물어 곰새겨야 한다는 말인가?

광복 당시 우리는 분명히 ‘민족’이 해방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해서 세워진 ‘국가’는 두 개였다. 이 지구상에서 게르만족이나 한족(漢族)처럼 한 민족이 여러 개 국가를 세운 경우가 여러 민족이 한 국가에 소속된 예―이런 다민족국가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보다 훨씬 적기는 하지만 아주 없지는 않다고 했을 때, 민족해방 이후 우리 민족도 그런 경우에 속한다. 그리고 그것은 보통 애통할 일로 간주된다. 이런 두 국가가 건국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대한민국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물음들이 연속적으로 제기될 수 있다.

ㆍ대한민국이 출발할 때 국가로서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는가? (출발조건의 충분성)

ㆍ만약 충분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이 국가로서 결여하고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 (결손조건)

ㆍ대한민국은 건국 이후 결여조건들을 1)보완하는데 실패했는가? 2)충분히 보완했는가? 3)보완하는 것 이상으로 발전했는가? (보완/발전조건)

ㆍ위의 어떤 경우이든, 21세기 초 대한민국은 국가로서 그 시민이 만족하여 자발적으로 애국할 만한 상태에 있는가? (시민의 애국조건)

ㆍ또한 21세기 초 대한민국은 다른 국가로부터 국가로서 그 주권성은 물론 그 존엄성을, 필요한 정도뿐만 아니라 충분할 만큼 인정받고 있는가? (인정조건)

ㆍ위의 물음들에서 확인된 21세기 초 현재 상태에서 대한민국이 적어도 21세기 내내 장기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할 국가적 지향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

위의 물음들을 아주 뭉뚱그려서 <시민과 세계> 편집위원회는 본 기획의 부제를 ‘(대한민국의) 역사와 좌표’라고 압축적으로 표현하였다.

모자란 것, 나아간 것, 더 나아가야 할 것

1945년 ‘민족’이 해방되고, 1948년 ‘국가’가 세워졌다. 대한민국이 국가로서 출발했을 때 국가로서 갖추어져 있었던 것은 사실 ‘국가가 세워졌다’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세워진 것이 한 ‘국가’였다는 것을 당시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남북한을 막론하고 엄연한 사실로 제대로 자각하지 못했다. 그것은 참으로 ‘모호한’ 시작이었다.(정용욱)

남북한 국가가 어쩌다 자기 국가의 국민으로 소속되어버린 사람들 각자에게 ‘너는 더도 덜도 말고 바로 이 나라의 국민이다’라는 의식을 심기 위해서는 그 우연한 국민들에게 호된 매질을 가하면서 후한 보상을 퍼부어 모호한 상태에 있는 남북한간의 경계를 사후적으로라도 의식에 박아주어야 했다. 따라서 남북한이 서로 상대방에 대한 의식을 말살 내지 억제하여 어떤 경우에도 자기 안에 서로가 있을 수 없다는 것(=결여)의 의식화가 우선 서로가 국가로서 출발하는 데 강요되었다. 따라서 북한과의 분단은 대한민국의 결여조건이면서도 그 필요조건이었으며, ‘체제경쟁’을 통해 억지로라도 자기 국가를 발전시키지 않으면 안 될 동역학이었고 적대적 공생의 동원체제의 근거였다. 문제는 이 체제경쟁과 대결이 남북한간에 너무나 비대칭적으로 전개되어 ‘북한문제’로까지 발전해버리는 사태를 야기하고 있다는 것인데,(박순성) 다행히도 문제로서의 북한이 없어서는 안 될 상대로서의 남한에게 ‘기회의 창’으로 구실할 수도 있는 역사적 호기에 지금 와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 호기를 주도적으로 이용할 순서와 그 역량은 우선적으로 남한, 즉 대한민국에 주어져 있다. 참으로 결과론적인 얘기이지만 분단이 계속 유동적으로 변화난측한 사태를 낳았던 것이 아니라 사실상 분리된 체제로서 고착화되어 왔다는 것을 감안하면, “남북한의 분단은 동아시아 냉전체제하에서 남북한이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의 대가”라는 측면도 있다.(최장집) 5년의 동요, 3년의 전쟁, 그리고 53년의 평화는 남북한이 선택한 체제의 역량을 원없이 발휘해볼 기회를 주었고, 그 성과는 각자 자기식 기준대로―그리고 아주 냉소적으로―대성공이었고, 그 결과는 객관적으로 항상 새로운 위기와 파탄의 가능성을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북한은 사회주의에서 주체사상으로 아무 간섭 없이 자기 임의대로 체제를 운영하여 일정기간 나름대로 작동하였으나 결국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사회가 될 수 없는 동질적으로 통합된 전체주의적 사회정치체제”를 가지게 되었다. 반면에 남한은 “타율적으로 외부로부터 만들어진 측면이 매우 큰 불안정한 조건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내부 역량의 성장과 더불어 거의 주체적으로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사회로의 잠재력과 공간을 발전”시켰다. 따라서 이제 “중요한 것은 통일보다 평화”이고, 외부의 타율적 조건보다 “내부체제의 성격”이라고 할 때, 남한 사회에서 우선 “민주화, 그리고 시장자본주의 질서의 인간화가 선행”하면서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에 충분히 발전된 민주주의를 가진 사회”를 구축함으로써, “낮은 수준의 경제발전 정도와 전체주의적 병영국가체제를 갖는 다른 사회”를 향도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그래야지 통일이 평화의 파괴를 동반한 혼란이 아니게 된다.(최장집) 그런데 남한, 우리 대한민국은 과연 이런 상태에 있는가?

대한민국 발전의 대차대조표

최근 조선시대 말기와 일제시대에 관한 성장제일주의 실증사학으로부터 일본 제국주의체제 아래서 한국의 식민지경제가 근대화됐을 뿐만 아니라 지속적 근대성장이 이루었다는 것이 실증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른바 식민지근대화론은 남북한 민족사학계에서 정설이 되어 있던 조선사회에서의 자본주의(또는 근대화) 맹아론과 식민지수탈론을 허구적 민족주관주의로 몰아갔다. 이들은 일제시대의 근대적 경제성장이 해방 이후 고도성장으로 연속되었다는 주장도 했다. 조선후기사회가 어느 정도 내적인 발전동력을 가졌으며, 식민지수탈의 수준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사실 좀더 정밀하게 연구되어야 한다. 그러나 내세우는 실증적 치밀성에 비해 개념적 엄밀성이나 주체적 역사의식이 부실하기 짝이 없는 식민지근대화론의 각종 주장을 비판적으로 역검증한 결과 명백해진 것은―적어도 물적인 측면에서 보자면―일제시대 발전의 결과물 ‘덕분에’ 탈식민지 국면의 대한민국이 ‘발전’했다는 증거는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허수열) 그러나 분단에 대한 일제 식민지배의 책임은 제쳐둔다 해도, 인적인 측면에서 대한민국에 물려준 식민지유산으로 보자면, “친일파, 부일협력자 규명 문제는 그들이 반공을 무기로 이후 지배층이 되면서 사실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완상태에 있는 핵심 과거청산 과제이다. …지금의 시점에서 그들에 의한 피해는 특정 사회구성원 개개인에 국한되지 않고 국가, 민족 전체에 관한 것이므로 단지 누가 어떤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반민주, 반인권적 일제의 파시즘적 지배정책에 부역했는지 그러한 행위의 내용을 철저하게 밝히고, 지난 60년 동안 한국역사에 어떤 해로운 결과가 나타났는지를 규명”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김동춘)

그렇다면 민족의 분단과 대한민국의 건국, 그리고 분단체제의 고착과 심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나는 미국이 대한민국 발전에 기여한 부분은 어느 정도일까? ‘일본제국’으로부터의 탈식민지화가 민족의 자주적 독립이나 하다못해 국가의 진정한 주권확보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미국 패권으로의 신종속’으로 귀착되면서 나타난 결과들을 간단하게 평가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한편으로 “미국이라는 나라는 선의를 가진 강대국이기에 약한 나라들의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도와주는 고마운 나라로 인식되어” 왔다. “또한 미국은 우리에게 있어서 혈맹적 우방을 넘어, 우리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이기조차 했다. 우리는 미국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으로서 세상을 바라보았고 이로써 미래가 보장된다고 확신했다. 미국 없이는 우리의 생존과 안위가 지켜질 수 없다는 생각은 냉전의 상식이었고, 그것은 식민지적 사고라고 지목되기 어려웠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미국은 오늘날 점차 “기본적으로 우리 민족의 통일과 경제적 자주, 그리고 동북아시아 평화체제의 수립을 가로막고 나서는 가장 막대한 장애로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가장 시급하게 요구되는 것은 “이러한 현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이를 위해 정치적 의지를 강력하게 관철할 새로운 민족 주체세력을 길러내는 것이다.” “미국의 부당한 요구와 식민지 관리체제의 강화에 맞서서 민족의 복리와 평화, 그리고 자존을 지켜내고, 세계사적 차원에서 우리 현실을 인식하는 가운데 인류적 가치에 봉사하려는 세력이 정치적 주도권을 갖도록 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새로운 정통성을 굳건히 하는 중대사이다.”(김민웅)

하지만 바로 이런 새로운 민족적·민중적 주체세력의 굳건한 기반이 될 대한민국 국가의 내부, 한국사회의 모습은 아직 그다지 이런 주체 역량을 뒷받침할 정도로 성숙한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대한민국 60년의 최대 업적이라고 하는 세계사상 유례없는 기적적 경제성장이 그 내적 구조에 있어서는 끊임없는 모순적 딜레마에 봉착하면서 진전되고 있다는 데서 가장 뼈아프게 드러난다. 그것은 “국가-사회-시장자본주의 간 ‘홉스적 협력’의 틀 속에서 한강의 기적을 낳게 한 동인들”을 분석해 보면 정확하게 포착된다. 그 첫번째 동인은 국가-은행-재벌의 연계 속에서 국가가 자본투자를 유도하고 금융을 통제하면서 비용과 위험을 사회적으로 부담시키면서 재벌에게 고부채와 아울러 고투자를 부추기는 것으로 작동을 시작한다. 이런 구조 안에서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재벌이라면 당연히 투자열에 불타게 되고 여기에 계층적 상향이동의 욕구에 불타는 노동자의 노동중독이 가세하여 거의 희생적으로 노동에 헌신한 결과 엄청난 초과이윤이 발생한다. 주목할 만한 것은 바로 이런 내부경제가 단순히 수입품을 대체하는 수준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 역량으로 세계시장을 겨냥한 수출우선주의로 나감으로써 ‘규모의 확장’과 아울러 ‘규율의 조정’도 받았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작동구조를 갖고 냉전 조건 아래서 동아시아 반공트라이앵글이라는 역내 시장을 확보하고 나감으로써 ‘한강의 기적’의 추동력이 형성되었다.(이병천)

문제는 이렇게 해서 확보한 경제성장이 사회성숙으로 이어지는 제도적·정책적·이념적·관습적 연결고리가 거의 확보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산업화는 민주화의 기반으로 되기에는 내부 장애가 심했고(독재 안의 반독재), 이익은 사회적으로 발생시키고 분배는 재벌에게만 돌아가는가 하면(이익과 분배의 딜레마), 재벌을 키운 국가가 오히려 재벌에 포박되는 딜레마가 계속 구조화된다(국가와 재벌의 세력 역전).(이병천) 결국 파이를 키워 성장만 하면 민주주의도 분배도 자동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박정희 이래 약속은 ‘정상국가’ 시대로 접어들고 절차적 민주화가 진행된 오늘날까지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국가주도 개발독재가 신자유주의의 자본독재로 바뀌면서 “비정규직노동자와 이주노동자의 모습”에서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동일성’을 향한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노동운동의 움직임은 후퇴하고 오히려 노동은 시장과 자본의 힘에 위계적으로 재편성되고 있다. 따라서 이들에게 시민권은 주어지지 않고 ‘하나의 국가 안에 두 국민이 존재하는 상황’이 한국사회에도 도래하였다.”(이광일)

국가기구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민주화가 진행되었다고 하는 것이 바로 이런 국가 내부의 사회역량의 허약함에 부딪쳐 ‘개혁의 병목현상’에 봉착하면서 마침 들이닥친 ‘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하는 데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되는 일이 이래서 일어난다. 자유주의적 민주정부하에서 정치사회적 개혁은 경제개혁의 진정한 힘을 창출하지 못하고 두 방향의 개혁은 일치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상부구조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민주개혁과 대중들의 실제적인 삶의 괴리가 더욱 커진다.” “정치사회적 차원에서 일정하게 개혁이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계급적 차원에서는―개혁에도 불구하고, 혹은 개혁을 통해서―더욱 악화된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그리고 참으로 역설적으로 “저항적 시민사회의 저항의 효과가 보수세력의 ‘자유’ 확대에도 ‘보편적으로’ 적용된다.” 그리고 이렇게 “상대적으로 민주적이고 투명한 신계급사회”로 그 윤곽이 잡혀가는 21세기 초 한국 사회에서 민주화는 지구화와 동시적으로 진행되면서 한국 민주개혁의 정책들이 친시장적인 범위 안에 국한되는 결과를 빚기에 이르렀다.(조희연)

지구화의 조건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작용을 하였는가 하는 것은 지구화의 시점과 시기를 어떻게 잡느냐에 좌우되지만, 지구화가 “(인간들의) 활동, 상호작용 및 권력행사가 현대 시기에 들어와 그 범위, 강도, 속도 및 영향에 있어서 전지구적 차원의 흐름과 연결망을 만들어내는 사회적 관계 및 사회적 교류가 공간적 조직방식에 큰 변화가 발생하였음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일련의 과정(들)”이라고 한다면, 한국에서 지구화는 아무리 늦게 잡아도 이미 조선 중기 조·일 및 조·청 전쟁 때부터 시작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전지구적’ 연결망이 우리 일상생활에서 실제로 체감되는 것은 그야말로 민족해방과 더불어 시작된 국제냉전체제 안에서이다. 냉전과 탈냉전의 국면에 걸쳐 건국, 전쟁, 교육성장, 경제성장, 정치성장을 거치면서 성장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은 지구구성체에서 생태계에 상당한 훼손을 가하면서, 통상대국으로 자리잡음과 아울러, 사회적으로는 급격히 도시화·다인종화되었으며, 정치적으로는 국제적으로 개방되고, 문화적으로 혼성화되면서, 개인의 활동반경이 세계화되는 그런 위상과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자성에서 부정적인 측면이 많이 부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945년 이래 한국은 지구화의 맥락에 능동적으로 접속함으로써 ‘일단 결과적으로는’ 부정적 폐해보다는 긍정적 성과를 많이 거둔 가운데 21세기를 맞고 있다. 중요한 것은 20세기 후반기 동안 진행되었던 지구화에서 대한민국이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 사회적 계급화의 진전 등과 같이 부정적 폐해를 적지 않게 받고 한국전쟁이나 외환외채동란 같은 치명적 위기국면을 여러 번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다행하게도 더 고차적인 발전동인을 얻어왔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한국형 발전은 ‘하나의 위기가 보다 고차적인 다음 발전의 계기가 되면서, 지금의 발전은 보다 심화된 다음 위기의 조건으로 끊임없이 전화되는’ 위기동반형 발전으로 요약된다.(홍윤기)

이때 위기요인은 지구화 맥락에서 외적으로 조성되는 반면, 발전역량은 지구화 조건을 보다 포괄적이고도 능동적으로 체질화시키면서 형성된다. 따라서 지구화는 한국에 끊임없는 위기요인을 던지면서 그것을 극복할 발전역량의 공급원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세기초에 맞는 지구화는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파격요인을 안고 있다. 그것은 세기초 지구화가 전세계적으로 미국일방주의에 의해 오염되면서 아메리카 권력의 전횡 아래 놓이게 되는 데서 찾아진다. 이때 문제는 그렇게 전세계의 운명을 장악한 미국 자체가 엄청난 모순덩어리로서 1) 미국 자체가 붕괴할 것이라는 예측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음과 동시에 2) 미국의 붕괴는 20세기 마지막 10년대의 소련 붕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동반 파탄을 지구상에 가져올 것이라는 카산드라 예언이 사방에서 확인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대한민국의 21세기 구상은 미국 이후의 시대를 대비한 것이 되지 않을 수 없다.(홍윤기)

21세기 대한민국: 새로운 시민민주공화국, 나아가 지구시민의 모국을 내다보는 희망

우리 국가는 ‘대한민국’이라는 팻말 하나만 세워놓고 남북한의 군인과 민간인뿐만 아니라 미국인, 중국인까지 포함해 수많은 외국인들의 핏덩어리로 국가의 위세를 새겨넣으면서 20세기 중반부터 존재하기 시작했다. 20세기 나머지 세월들은 ‘국가’로서 미처 갖추지 못했던 것을 아주 다급하게 채워넣으며 황급하게 지내온 세월이었다. 그래서 ‘나라’는 모양새를 갖추었지만 그 나라 안에서 꾸려지는 삶 하나하나는 미처 제대로 꾸려지지 않은 채 21세기로 바쁘게 굴러왔다. 이제는 삶의 모양새를 꾸려갈 때이다. 나라를 꾸려놓았으니 무엇을 바라보며 그 안에서 살아야 할지 이제 우리가 알아서 챙겨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 삶으로 우리가 어떤 것이 되어야 할지 생각부터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와 국가를 튼튼하게 살찌우는 데는 자기 자신의 이념적 정체성을 어느 한 쪽으로 획일화시킬 필요 없이 각기 자기 원칙과 자리에서 기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1) 민주주의는 대한민국 60년사를 단지 정치에서 뿐만 아니라 경제에서 사회, 문화 및 정신적인 모든 성취를 일관되게 관통하는 지향성이다. 그런데 정치에 있어서 해방 이후 지난 60년간 민주화 역사를 돌이켜보아도 한국 민주주의를 이끌어왔던 주요 축은 엘리트와 준(準)엘리트의 갈등이 아니라 국가와 시민사회의 대립이었다. 1960년 4월혁명, 1987년 6월민주항쟁, 2000년 낙천·낙선운동 그리고 2004년 탄핵사태와 촛불시위에 이르기까지 국가에 대한 시민사회의 저항은 한국 민주주의의 보루이자 주체로서의 역할을 담당해왔다. 그러나 ‘사회운동을 통한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이런 민주화 과정은 시민사회의 정치적 참여를 통해 해결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참여민주주의의 발전을 가져왔지만 한국 민주주의는 사회운동을 통해 제기된 정치적 이슈들이 정당정치의 저발전으로 인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제도화의 문제를 안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 공고화에 주요한 걸림돌의 하나가 되고 있다.(김호기) 21세기에는 이런 한국 민주주의가 모든 제도와 인륜과 문화에서 그 활력의 동맥이 되어야 할 작동방식을 창출할 과제를 안고 있다.

(2) 우리나라는 흔히 자유민주주의를 국가질서의 근본원칙이라고 하면서도 자유로운 개인의 발전에 관해서는 지레 겁을 먹어왔다. 그러나 자유주의의 지울 수 없는 원천이 “공포와 잔인함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했을 때 체제의 오류와 부정에 의한 희생자들의 목소리가 공명과 반향을 얻을 것이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인권으로써 체제의 압력과 질주에 한계를 설정”할 수 있다. 자유주의로부터 어떤 이상적인 공동체의 비전을 얻을 수는 없겠지만 “기존의 체제가 진실과 인권을 유린하는 상황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따라서 자유주의는 일차적으로 우리 사회의 취약한 민주주의에 대한 안전판”이면서,(정태욱) 보다 적극적으로는 ‘발전된 개인’을 추구하는 사회적 조건에 대한 최소한의 요구이다.

(3) 또한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을 국체로 한다고 하면서도 공화국의 이념에 대해서는 한번도 진지하게 성찰하지 못했다. “공화국의 이념은 그 시원에서 보자면 가정의 경계를 넘어서 추구되어야 할 자유로운 삶이 오직 나라를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으며, 그 자유가 국가를 구성하는 인민 모두에 의해 오직 공공적으로만 실현되고 지탱될 수 있다는 통찰에 뿌리박고 있다. 누구도 자기의 자유를 자기 혼자 지킬 수는 없다. 어렵게 말할 것 없이 나라를 외국의 침략에서 지키는 것부터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김상봉) 그러나 “우리의 전통 속에서 지배계급은 민중과 권력을 나누어가짐으로써 나라를 지키고 강하게 하기보다는 차라리 외세와 결탁하여 나라 안에서 자기들의 지위를 지키는 것을 선호했다.” “국가의 공공성이 정치적 전통으로 확립되지 못한 나라에서는 국가가 사적 이익 추구를 위한 싸움터로 전락한다.” “우리 시대의 절대적 자본주의 또는 경제지상주의가 인간의 사회⋅정치적 삶의 공공성 또는 공화국과 결코 양립할 수 없는 모순대립관계에 있다.” 중요한 것은 교육을 통해 바로 이런 공화국의 원칙을 삶의 뿌리에서부터 배양하고 체질화시키는 것이다. 우리 시대 진보가 나아가야 할 새 길이 여기에 놓여 있다.(김상봉)

(4) 보수주의로부터 어떤 정신적 지주도 기대할 수 없었다는 것은 대한민국 정치사의 최대 비극이다. 한국에서 보수주의는 반공의 그악함을 산업화의 기득권으로 옹호하면서 권위주의를 고수하려는 ‘수구적 보수주의’로 점철함으로써 민주주의 조건 아래서 정치적 역동성을 스스로 파괴해왔다.(정해구) 과연 한국의 보수주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온정적인 포용성 속에서 관용을 구사하는 서구적 보수주의의 장점을 취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보수주의로 정치를 하고자 하는 집단들이 그들을 따르는 기득권층을 얼마나 자기식의 기본 합리성으로 계몽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 시도가 성공한다면 그것은 한국 정치의 중요 세력 중 하나가 국가의 안정담지세력으로 전화한다는 아주 긍정적인 결과를 함축할 것이다.

(5) 우리 국가는 주로 안보와 경제의 영역에서 국가단위의 성장을 기획하는 데는 아주 익숙하고 능숙하다. 하지만 그런 ‘국가적’ 성장을 ‘사회적’ 풍요, 삶의 풍요와 성숙으로 연결시키는 데는 몹시 미숙하다. 그러나 이 점에서 사회민주주의는 의존할 수 있는 정책수단과 운동방식, 또 이를 뒷받침할 지적 자원이 잘 알려져 있어 너무 많은 시행착오와 낭만적 유토피아주의의 큰 위험을 감수할 필요 없이 구현을 시도할 수 있는 이념이다. 그리고 서구 사민주의 운동은 대체로 긍정적인 성과를 가져왔다. 또한 한국 사회는 사민주의 정치가 작동할 수 있는 첫 문턱을 이미 넘은 사회라 볼 수 있다. 세계 11위 정도를 차지하는 경제규모나 상당히 고도화된 산업구조, 그리고 늦긴 했지만 힘겹게 성취한 정치적 민주주의 등으로 볼 때 한국 사회는 제3세계보다는 ‘제1세계’적 특질을 한결 많이 가진 사회라 할 수 있다. 나아가 한국 사회의 현실은 사민주의적 개혁정책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경제대국, 무역대국의 이면에는 빈곤과 차별, 불평등과 양극화로 신음하는 수많은 서민대중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이념적으로 사민주의는 현재 한국의 다양한 개혁ㆍ진보적 사회운동세력이 보이고 있는 이념적 스펙트럼에서 대체로 중간적 위치에 놓여 다양한 이념조류들이 잠정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수준의 이념이다. 사민주의는 개혁적 자유주의자들이 추구하는 보다 투명하고 합리화된 자본주의 질서 형성에 힘을 보탤 수 있다. 또한 사민주의는 북한체제를 지지하는 극단적 노선과는 길을 같이 갈 수 없으나, 민족자주와 남북화해협력을 통한 평화통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광의의 민족주의 이념의 대의는 유보 없이 수용할 수 있다.(신정완)

(6) 페미니즘은 시민사회의 문화를 남성중심적, 수직적, 위계적 문화에서 성평등적, 수평적, 민주적 문화로 바꾸어 갔으며, 가족과 사회에 민주주의의 원리를 확장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페미니즘은 남녀간, 세대간, 부모자식, 사용자/노동자, 조직사회 내의 위계적 권위주의체제를 철폐하고 수평적·평등적 체제를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인권보장은 물론 폭력피해자, 장애인, 빈자, 동성애자 등 소수자 문제에 공감하면서 소수자 여성의 문제들을 이슈화시킴으로써 한국 사회에 소수자 문제를 중요한 문제로 위치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여성의 불평등 문제에 대한 관심을 제기하는 것은 그 자체뿐만 아니라 사회 약자와 소수자들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민주적 연관효과를 갖는다.(오장미경)

(7) 자기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가장 잘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은 바로 그 삶을 살아가는 자신이다. 풀뿌리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공헌은 대중과 엘리트의 능력이 다르지 않다는 점을 증명한 것이다. 충분한 시간과 정보가 주어진다면 대중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고 행동할 수 있고, 그런 과정을 통해 책임을 지게 된다. 설사 지식이나 이론적인 면에서 지금 당장 대중의 능력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파편화된 개인이 아니라 하나의 공동체 속에서 토론하고 투쟁하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대중은 자기계몽되고 그 시민적 능력은 성장한다. 풀뿌리민주주의는 남에게 자율성을 되찾아주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스스로 자율성을 회복하도록 돕는 노력이다. 그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의견을 세우는 일이다. 보통 의견이 없는 것은 무관심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표현할 방법을 몰라서이다. 현실을 주의 깊게 관찰해 보면 소통하는 방법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학습과 훈련, 정보공개, 그리고 토론과 심의가 아주 중요하다. 풀뿌리민주주의운동은 다양한 욕구를 가진 이질적인 행위자들이 우연적이고 능동적인 방식으로 자치를 실현하고 그 경계를 확장하는 과정이다.(하승우)

(8) 현단계에서 분단체제가 아직은 엄존하고 있으며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 자체가 매우 복합적이고 상호적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민족주의적 동력이나 민족주의적 담론과 실천적 실질성을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실상과 맞지 않을뿐더러 총체적인 진보 이념의 길에도 한계를 가져올 뿐이다. 한국민족주의가 초래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위험과 한계를 직시하면서 동시에 민족주의에 대한 성찰적 작업이 긴요하다. 21세기 한국에서의 민족주의는 민족적 감정과 정서, 민족제일의 가치를 절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통제하고 성찰할 상위의 가치로서 ‘평화’를 설정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여기서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를 뜻하는 소극적 의미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내면적으로나 실제 삶에 있어서 평화로움을 경험하는 적극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평화는 통일을 이루기 위한 전제조건이나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독립이나 자주보다도 더 우위에 있는 가치로 이해되어야 하며, 한국 민족주의가 분쟁을 조장할 경우 과감히 반민족주의를 주창할 수 있는 근거가 되어야 한다. 평화의 가치는 분단체제의 극복과 통일 과정에서 감성적 민족주의의 덫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주요한 준거이다. 이러한 평화민족주의는 한국민족주의를 한반도적 시각에서만 바라보지 않고 동아시아적 시각에서 이해하고 성찰할 것을 또한 요구한다.(박명규)

(9) 신자유주의가 90년대 중반 이후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 가장 지배적인 힘을 발휘해왔던 이념과 정책, 질서원리의 하나임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신자유주의를 지향하는 이념적 편향성이 뚜렷한 의제들도 마치 자명한 경제법칙 혹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인 양 가르쳐지고 토론된다. 그러나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미명 아래 법과 질서를 엄정히 지키면서 나라 전체를 경제발전의 ‘매뉴얼’에 맞추어 기업의 이익극대화를 위해 총동원하는 것이 국가와 사회의 나아갈 바라고 생각하는 점에서 어제의 개발독재 시절의 논리와 오늘의 신자유주의 신봉자들의 주장은 닮아 있다. 그러나 과연 국가를 이렇게 온통 경제제일주의 결사체로 편성하는 것이 정당한 삶의 방식인가?(홍기빈)

(10) 이런 가운데 그리 멀지 않을 미래를 염두에 둘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생태적 전환에 관한 전망을 정확히 세우는 일이다. 문명적으로 보아서 현대 공업사회의 퇴락은 필연적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석유의 고갈과 함께 급속히 진행될 것이다. 우리는 급격한 퇴락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또한 지금 여기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가능한 최선을 다해 생태적 전환을 추구해야 한다. 생태적 전환은 지금 여기서 시작되어야 하는 절박한 과제이다.(홍성태)

이상과 같이 각기 자기 입장과 자리에서 대한민국의 좌표를 내놓는 자유주의자, 공화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 여성주의자, 참여민주의의자, 그리고 민족주의자들은 때때로 부딪치면서도 각기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할 필요 없이 그 이념의 미덕이 가장 잘 발휘되는 지점에서 다른 이념을 추구하는 이들의 발전에 서로가 기초와 의존처가 되어줄 수 있도록 요청된다.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기반으로 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국가와 사회, 무엇보다 이땅의 구성원들이 문명적·반성적으로 진화하기 위해 제각기 노력하는 이런 이념적 운동들로부터 다양한 발전동력을 얻을 수 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건국, 분단, 전쟁, 독재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폭력과 야만 앞에 무고하게 또 분투하면서 스러져간 무수한 희생자들과 공화국의 정신적·정치적 영혼들을 애도하고 추모하자. 온갖 썩어빠진 잔재들을 다 털어내고 자본독재의 부르주아공화국과 전체주의적 인민공화국을 함께 넘어, 참여와 연대, 평화와 생태의 새로운 시민민주공화국의 새 희망을 세우자.

또한 우리는 21세기 지구구성체 안에서 대한민국의 국가적 위상을 보다 전향적으로 정립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21세기 대한민국은 지구적 생태위기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야 하는 ‘안전국가’로 재구축되어야 한다. 그리고 경제패권으로서 미국이 붕괴할 자리에 같이 빨려들어가지 않도록 외적으로는 한반도에서 활발한 운송과 교역이 이루어지는 ‘동아시아 시장권’을 견실하게 건설하면서 내부적으로 강고한 ‘사회적 시장경제’를 작동시켜 국가시민의 삶을 안전하게 보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우리의 공화국은 ‘민족평화체제’를 구축하고 아시아 인민을 필두로 하여 가능한 모든 지구 시민들이 자기실현과 삶의 건강성을 보장받을 정신적 자원과 물질적 매체로 가득 찬 ‘지구시민국가’의 면모를 단독으로라도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국가를 스스로 운영할 줄 아는 자치와 연대 능력이 높게 발달된 이 나라의 시민정신은 아마 ‘유라시아의 영혼’이라 불릴 정도로 학습력과 성찰력이 뛰어나 지구적 연대를 주도하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대한민국은 21세기 중반을 넘어서면서 아마 아메리카 권력이 주저앉은 자리에 가 ‘미국 구원하기 프로젝트’ (Saving America Project)까지 추진하면서 우리가 20세기 때 미국에 진 많은 빚을 갚을 날을 맞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병천ㆍ홍윤기/공동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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