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연대 10.29이태원참사 2026-03-12   13291

[청문회1일차_논평] 증인들의 책임 부정과 거짓 증언 반드시 규명돼야

경찰·소방·용산구청·행안부 누구도 시민안전에 대한 책임감 없었다
김광호 전 청장 끝까지 증인선서 거부, 후안무치한 행태 보여
증인 진술들은 결국 김광호 청장의 ‘경력 미배치 책임’ 가리켜
응급구조체계 전혀 작동하지 않았음에도 할 일 다했다는 소방

오늘(3/12)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청문회에서 경찰과 용산구청, 행정안전부, 소방청 등에 대한 주요 증인 진술이 있었다. 참사 3년 5개월만에 이뤄진 청문회에서 다시금 확인한 것은 주요 책임자인 경찰이나 용산구청, 행정안전부 등 기관의 공직자 누구도 재난대응에 대한 책임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시민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자 한 의지는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책임을 부정하고 거짓을 말하는 증인들로 이번 청문회가 진실이 온전히 드러나는 장이 되기를 바랬던 유가족들의 기대는 충족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유가족들과 피해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에서도 증인 선서를 끝까지 거부하며 참사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 김광호 전 서울청장에 대해서 특조위는 반드시 고발하는 것은 물론 혼잡경비 경력을 배치하지 않은 책임도 반드시 물어야 한다.

이번 청문회를 통해 국회 국정조사 당시 제대로 묻지 못한 질문들과, 1심 재판 내내 들어야 했던 변명에서 한 발 나아가 특조위가 확보한 자료와 증언을 통해 참사 당일 각 기관의 대응상황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의 진술거부를 시작으로 각 기관의 증인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바빴다. 증인들은 책임자로서 기본적으로 숙지해야 할 법령이나 매뉴얼조차 ‘몰랐다’로 일관했으며 사실관계에 대해서도 ‘기억나지 않는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참사 발생 3년이 훌쩍 넘었음에도 각 기관은 자체적으로 이태원 참사 대응에 대한 평가도 하지 않았으며 정리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인들의 발언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많은 증인들이 특조위가 제시하는 증거들을 확인한 후 오늘에서야 구체적인 사실을 알았다고 답변하는 촌극을 펼쳤다. 지난 3년 넘게 각 기관은 책임을 지고 참사 재발방지의 노력을 하기는커녕 어떻게 책임을 회피할 수 있을지만 생각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김진호 서울경찰청 공공안녕외사과장 및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자신들이 내린 전단지 수거 지시 관련해 문제가 생길까 통화하며 조율한 사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최성범 전 용산소방서장은 내부 보고서에 골든타임이 지나 소방이 대응했어도 참사를 막을 수 없었다고 적시했다는 사실이, 중앙재난안전상황실 서울상황센터는 센터의 역할 범위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며 책임을 축소한 일이 드러났다. 청문회 내내 유가족은 증인들이 증언을 번복하고, 위증을 난무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특조위는 이후 증인들의 위증을 세세하게 밝혀내어 응당한 처벌을 받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청문회 첫 날 각 세션에서 다뤄진 내용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세션1(11건의 신고에도 왜 출동하지 않았나?)에서는 11건의 112 신고가 왜 제대로 조치되지 않았는지에 대한 질의와 증인들의 진술이 있었다. 이태원파출소 순찰2팀장은 코드제로가 뜬 상황에 파출소 내 10명 가량의 인원이 있었음에도, 이태원 파출소에서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는 변명을 일관되게 진술했다. 인파관리와 같은 혼잡경비는 서울청 책임이고, 112 신고를 관할하는 서울청이 혼잡 상황을 다 알고 있었을 것이라 아무 조치도 하지 않은 자신들의 책임은 아니라는 말도 안되는 주장만 늘어놓았다. 파출서도, 용산서도, 서울청 조차도 반복되는 신고에도 상급청 또는 상급자에게 보고하거나 경력을 요청하지 않았다. 증인들의 답변들을 통해 확인된 것은 2022년 10월 29일 11건의 압사 위험 신고가 접수되는 동안 파출소는 출동하지 않았고, 기록은 허위로 남겨졌으며, 용산서 상황실은 지령을 내리지 않았고, 서울청 분석대응반은 보고 있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엄청난 인파가 몰리며 상황이 점차 심각해지는 과정을 알고도 경찰 어디도 제대로 된 활동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세션2(경찰 배치 및 운용은 왜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나?)에서는 참사 당일 경찰의 다중인파 관리에서 드러난 총체적 경비 공백의 실상이 확인되었다. 대통령실 이전 이후 용산구 일대 경찰 인력은 턱없이 부족했으나 실질적인 보충 조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경찰 지휘부는 핼러윈 인파 밀집으로 인한 안전사고 대비보다 대통령실 앞 집회·시위 관리를 업무 최우선에 두었음이 여러 증언을 통해 반복 확인되었다. 용산경찰서와 서울경찰청은 청문회 내내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은 진술을 거부했으나, 다른 증언들은 결국 서울경찰청의 책임을 가리켰다. 용산서 일부 경찰이 자체적으로 경비기동대 확보를 위해 서울청에 요청을 시도했으나, ‘집회로 인해 기동대 확보가 어렵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결국 정보관과 경비대 배치는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서울경찰청 경비 책임자들은 요청이 없었기 때문에 자체 계획을 수립할 수 없었다고 변명했으며, 다중운집행사 안전관리 매뉴얼을 숙지조차 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이임재 서장은 활용 가능한 별도의 경비 인력이 있었음에도 이를 몰랐다고 일관하다가 청문회 말미에야 이를 인정했다. 관내 기동대 역시 대통령실 경호 전담 부대로 지정되어 있어 활용할 수 없었다. 마약 단속 집중 기조 아래 경찰은 핼러윈 축제를 맞아 마약 단속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고, 안전사고 대비는 철저히 뒷전이었음이 드러났다. 경찰은 국정조사 당시부터 현장에 파견된 마약단속 형사들이 인파 관리를 수행할 수 있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청문회에서 현장 형사들은 인파 관리에 관한 어떠한 지시도 받지 못했고 필요한 장비도 지급받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경찰이 국정조사 때부터 반복해온 주장이 면피용 허위였음이 이번 청문회를 통해 명백히 드러났다. 경찰의 경비 공백이 발생한 원인들이 일부 드러났지만, 그 공백에 대해 각 책임자들에게 어떠한 책임이 있는지는 특정되지 않았다. 모두가 대통령실 이전으로 인해 인파밀집 대응이 후순위가 되었다고 하나, 서울경찰청 내부적으로 지휘부라인에서 경비대 미배치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는지, 이임재가 이를 인지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이 진술을 거부했으나, 증인들의 진술과 자료는 서울경찰청 지휘부를 향해 있다. 책임 소재를 규명하기 위한 추가 조사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희생자들의 유류품과 부검 과정에서 이루어진 마약 검사는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명백한 모욕이자 심각한 명예 훼손이며 심각한 2차 가해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이는 경찰의 임의적 판단에 따라, 유가족에게 아무런 고지도 없이, 의견도 구하지 않은 채 무분별하게 자행되었음이 청문회를 통해 확인되었다. 이에 대한 정부의 사과 및 재발방지 대책 마련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오후에 이어진 세션3(인파 위험 보고는 왜 이루어지지 못했나?)에서는 용산구청이 재난 초동 조치를 하지 못한 원인과 그 이후의 은폐 시도 의혹이 낱낱이 드러났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재판 내내 ‘참사를 예상할 수 없었다’고 일관해온 주장이 청문회에서 거짓으로 확인된 것이다. 코드제로 신고가 접수된 21시 01분경 행정실장과의 통화 내역에서 이미 이태원 일대 인파 밀집으로 인한 사고 발생 가능성을 예상했음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박희영은 대통령실에 잘 보이는데 급급했다. 박희영은 인파밀집으로 인한 참사 위험이 고조되고 있던 21시경 김진호 용산경찰서 공공안녕외사과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뒤, 당일 재난안전상황실 역할을 맡고 있던 당직실에 비서실장을 통해 전단지 제거 업무를 지시했다. 당직실은 전단지 제거 의무가 없음에도 비서실장을 통해 ‘구청장 지시’라는 연락을 받고 해당 업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재난 대응의 핵심 거점이 되어야 할 당직실이 참사가 벌어지는 한복판에서 불필요한 업무에 묶여 상황 파악과 대응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는 이후 당직실의 상황전파 지연 및 대처 지연으로 이어졌다. 박희영은 참사 직후인 22시 50분경에는 대통령 경호처 국민소통 추진단 단장 정재관에게 전단지 제거 완료 사진을 전송하며 자신의 활동을 보고하기에 여념이 없었음에도, 청문회 내내 당직실을 비롯한 용산구청 직원들의 보고가 이루어지지 않아 참사 상황을 몰랐다고 주장하며 책임을 일선 직원들에게 떠넘겼다. 참사 이후 관계자들 사이의 은폐와 진술 조율 시도 의혹도 확인되었다. 김재헌 비서실장과 김진호 과장은 참사 직후 새벽 여러 차례 통화를 통해 전단지 제거 건에 대한 진술을 사전에 맞추거나 참사 대응 지연의 책임을 희석하기 위한 논의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희영은 압수수색 직후와 피의자 신문조사 이후 대통령 경호처 국민소통 추진단 단장 정재관과 통화하며 수사 상황을 공유했다는 의혹에 대해 ‘사적인 대화’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으로 일관했다.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관계자들이 반복적으로 통화를 이어간 것이 진술 조율과 책임 회피를 위한 것이었다는 의심은 지울 수 없다. 대통령실 경호처가 참사 당일, 참사 이후 어떤 보고를 받고 정도로 개입했는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세션4(왜 제대로 지휘하지 못했나?)에서 확인된 것은 중앙재난안전상황실과 행안부 장관이 컨트롤타워 기능을 전혀 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중앙재난안전상황실은 22시 48분 압사 사고를 인지하고도 이상민 행안부 장관 보고는 23시 31분에야 이루어졌다는 것이었다. 43분간의 공백 동안 상황담당관은 실장을 기다렸고, 재난안전비서관은 카카오톡 메시지로 보고를 대신했다. 이 지연이 참사 대응에 미친 영향이 밝혀져야 한다. 중대본은 대통령 지시가 내려진 23시 20분 이후에도 구성되지 못했고, 실질적인 가동은 다음날 오전 9시 내지 10시에야 이루어졌다. 참사 발생 후 중대본 없이 경과한 시간이 3시간 42분, 실질적 운영까지 포함하면 10시간 이상이다. 이 공백 동안 150대의 구급대가 컨트롤타워 부재로 접근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행정 지연이 아니라 생명과 직결된 문제였다. 0시 30분 ‘중대본 가동’이 발표되었지만, 실제로는 설치 회의만 열렸을 뿐 운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민에게 중대본이 가동 중이라고 발표한 것이 사실에 부합하는지, 의도적인 축소 발표였는지를 반드시 따져야 한다. 이상민은 자신의 권한을 행사하는 대신 현장으로 향했고, 현장에서도 주관부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시간을 보냈다. 대통령 지시 전파가 지연된 이유가 행안부가 주관부서로 지정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증언까지 나왔다. 이상민의 이러한 미조치가 중대본 설치를 늦추고 전반적인 재난 대응 지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 책임 소재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대통령실은 위기관리 지침에서 재난 컨트롤타워 문구를 삭제하고 기능을 행안부로 이관했으나, 행안부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컨트롤타워 이관이 실질적인 역량 이전 없이 이루어진 경위, 그리고 그것이 참사 당일 지휘 공백으로 이어진 인과관계를 밝혀야 한다. 끝으로, 행안부가 참사 원인에 대한 재난원인조사를 실시하지 않기로 한 결정의 경위도 규명되어야 한다.

세션5(왜 더 살리지 못했나?)에서는 참사 당일 소방의 대응에서도 경찰·행안부와 마찬가지로 총체적 부실이 확인되었다. 119종합상황실은 22시 12분 숨이 막힌다는 최초 신고를 접수하고도 역걸기나 추가 확인 없이 넘겼고, 22시 15분 상황판에 ‘압사’와 ‘다수 부상자’라는 핵심 정보를 삭제한 채 단순 질서유지 상황으로 기재했다. 이로 인해 재난 상황이 아닌 단순 군중 통제 상황으로만 상황파악과 전파가 이루어졌다. 당시 상황2팀장은 112신고 등에 대해서는 전혀 관리를 못 했고 참사 이후에 대응에 대해서만 관리가 이루어졌다는 점을 자인하였다. 현장 지휘 책임자인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은 22시 29분 현장에 도착하고도 40분이 지난 23시 08분에서야 지휘권을 선언했다. 재난현장 표준작전 절차상 선착 지휘관은 도착 즉시 지휘권을 선언해야 한다. 이미 현장에서 의식을 잃은 사람들이 CCTV 상으로도 확인이 될 정도로 긴급한 상황임에도, 최성범은 무전 소통 불량과 음악 소리, 후면부 파악의 필요성을 이유로 지휘권 선언 지연을 변명했다. 그러나 인파 밀집 상황에서 무전 전파가 어렵다는 것은 재난 현장 책임자라면 당연히 인지했어야 할 사항이며, 후면부 접근이 어려울 것을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즉시 지휘권을 선언하는 대신 후면부로 이동하며 시간을 허비했다. 최성범은 참사 발생이 훨씬 지난 23:13경에서야 대응 2단계 발령을 지시했는데, 대응단계 발령도 늦어진 상황에서 이로부터 16분이 경과한 후에야 긴급구조통제단이 가동되었다. 소방의 대응이 지연되는 동안 구조 동선 확보, 역할 분담, 기관 협력 요청 등 현장 대응 체계의 기본이 작동하지 않았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과 「재난의료지원지침」은 다수 사상 재난이 발생한 경우 현장응급의료소를 설치하고 START 기준에 따라 중증도 분류를 실시하여 환자의 치료 우선순위를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장응급의료소는 현장 도착 의료진들이 협업하는 구심적 역할을 한다. 그러나, 당시 의료진이 식별할 수 있는 임시응급의료소는 제때 설치되지 못했다. 현장에 12시 03분경 출동한 최한조 現강동경희대병원 교수 참고인은 현장응급의료소를 찾지 못했고, 긴급구조통제단이 없어 도착 사실을 알리지 못했으며, 현장 지휘자를 확인조차 못했고, 구급조치하는 동안 어떠한 지시나 지원도 받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중증도분류는 긴급구조 상황에서 매우 중요한데, 중증도분류는커녕 응급환자가 구급조치를 받지 못하고 방치되고 있었으며, 사망자를 순천향병원으로 계속 이송하는 상황이 확인되는데도 이송중지가 이루어지지도 않았다. 결국 서울대 병원 재난 의료팀은 01시6분경에 현장의료소를 직접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자정에도 폴리스라인에도 불구하고, 현장통제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수많은 구급대와 사람이 모였음에도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이루어지지 않아 산소통 부족 등 구급조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참사 당시 병원 도착 후 자발순환이 회복되었으나 이후 사망한 희생자들이 있다는 점에서 희생자들이 더 빨리 분류되고 치료를 받았다면 생존 가능성이 달라졌을 수 있었을 것이다. 최성범에 대해서는 수사가 이루어졌지만, 기소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수본과 검찰의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 지휘권 선언 지연과 대응단계 승격 지연, 통제단 가동 공백, 현장의료소 미설치, 구급지휘 부재 등으로 이어진 일련의 대응 실패가 희생자들의 생존 가능성에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진상규명 청문회 이틀 중 하루가 끝났다. 내일 이어질 청문회에서는 참사 후 대응·수습 단계의 실패에 대해 다뤄질 예정이다. 부디 내일 출석할 증인들은 진실만을 말하고 책임있는 태도를 보여주기를 바란다. 더 이상 피해자들에게 인내심을 바라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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