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구조의 변천으로 본 시민과학센터 5년
1. 출범 및 과도기(1997.11-1999.12)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는 1997년 11월 22일 “참여연대 과학기술 민주화를 위한 모임”(과민모)이라는 이름으로 공식 출범했다. 출범 당시 과민모는 대표, 총무, 간사(반상근) 외에 제도연구사업팀, 출판 및 시민교육사업팀, 국제협력사업팀, 기관지사업팀(다른과학편집위원회), 학생사업팀(“강한모임”)의 5개 팀으로 구성되었고, 제도연구사업팀은 다시 환경 및 생명공학분과, 정보 및 산업기술분과, STS교육분과의 3개 분과로 나뉘어 있었다. 이 중 기관지사업팀과 학생사업팀은 과민모 출범 이전부터 존재하던 모임이 출범과 동시에 합류한 것이었고, 나머지 기구들은 과민모 출범 때 새로 진용이 짜여졌다. 그리고 2주에 한번씩 열리는 운영위원회에서 대표, 총무, 간사와 각 사업팀·분과 대표들이 모여 운영과 관련된 주요 현안을 토의하고 결정했다.
과민모 초기에는 회비를 내는 회원 수가 30여명 내외로 매우 적었기 때문에 재정형편상 상근간사를 둘 처지가 못되었고, 따라서 구체적인 쟁점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활동력은 상당히 취약했다. 반면 초기에는 회원들의 행사 참여가 매우 활발했고, 회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세미나 및 월례토론회와 매 분기마다 열린 참여사회아카데미 과학기술시민강좌가 사실상 모임의 주요 활동축을 구성했다. 당시 “과학기술 민주화”라는 문제의식 자체가 한국사회에서 아직 생소했던 상황이었음을 감안해 본다면, 이는 어느 정도 불가피한 동시에 필요하기도 했던 활동방향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적어도 초기에는 과민모가 활동가(간사) 중심이 아니라 열성 회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중심축에 두고 운영되었다고 볼 수 있고, 당시 각 사업팀과 분과들로 구성된 조직구조 역시 이러한 전제 하에 짜여진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제는 출범 후 몇 개월이 지나면서부터 다양한 이유로 난관에 부딪쳤다. 상당수의 사업팀들은 안정적 모임을 가능케 할 정도의 분과회원 확보에 실패했고, 이러한 문제점은 초기의 참여 열기가 조금씩 식어 감에 따라 더욱 심각한 것이 되었다. 여타 시민단체들과 사업영역이 중복되었던 정보 및 산업기술분과나 마땅한 사람을 찾지 못했던 국제협력사업팀은 변변한 분과모임조차 가져보지 못한 채 이내 흐지부지되거나 아예 처음부터 구성되지 못했다. 그리고 1998년 하반기부터 생명공학감시운동이 본궤도에 올라 과민모 전체의 중심사업으로 점차 자리잡게 되면서 간사(1999년 초부터 상근화됨)의 고유영역이 점점 커졌고, 이는 연관 활동을 하던 분과모임(환경 및 생명공학 분과)을 사실상 대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와는 별개로, 원래부터 안정적인 모임틀을 확보하고 있던 기관지사업팀과 학생사업팀은 과민모 전체와 마찰을 빚어 탈퇴하거나(다른과학편집위원회), 성원들의 정체성 변화로 인해 점차 활동이 중지되었다(강한모임). 탈퇴한 기관지사업팀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1998년 10월부터 ≪시민과학≫이라는 소식지가 발간되기 시작했지만 소식지 발간 작업은 한두 사람의 노력에 전적으로 의존했고, 이는 2002년 초 편집위원회 진용이 정식으로 꾸려지기 전까지 계속 모임의 약한 고리 중 하나
로 남게 된다. 새로 생긴 사업팀 중에서는 STS교육분과와 출판 및 시민교육사업팀만이 제대로 사업을 꾸려나갔다. 이 중 전자는 현장교사와 대학원생 중심으로 중등교육에서의 STS교육을 실제 교육현장에서 풀어보고자 하는 목표 하에 가장 열정적이고 지속적인 분과활동을 전개했다. 반면 후자는 과학기술영역에서의 시민참여에 관한 책을 출판하고 시민강좌 등을 통해 문제의식을 전파하는 역할을 자임했지만, 초기에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출판 기획이 실패로 돌아가고 분과모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출범 2주년 행사를 위한 준비과정은 회원의 참여가 줄고 활동가의 역할이 커짐에 따라 나타난 이러한 변화들에 대해 공감대가 이루어졌던 자리였다.
2. 정착기(1999.12-2000.11)
1999년 말의 2주년 총회는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유명무실해진 조직구조를 대대적으로 개편하는 계기가 되었다. 2주년 총회에서 모임의 명칭 변경(시민과학센터)과 함께 제안되었던 조직구조 변경의 골자는, 활동이 거의 없는 분과와 사업팀을 폐지한 후 남은 분과들을 위원회 체계로 재편하고 활동가의 역할과 위상을 강화하자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제도연구사업팀 전체와 국제협력사업팀, 학생사업팀이 폐지되었고, 제도연구사업팀 소속이었던 STS교육분과는 별도의 위원회로 독립하게 되었다. 그리고 특정 분야의 과학기술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과학기술영역 일반에서의 시민참여 방안에 대한 연구·조사·발표·출판 사업을 맡을 제도연구위원회가 신설되었다. 시민참여에 관심을 가진 교수, 연구자, 학생 등이 참여해 2000년 1월부터 모임을 시작한 제도연구위원회는 이후 안정적인 멤버 구성과 지속적인 세미나 및 연구결과 발표 등으로 센터 활동의 주요 축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게 된다. 2주년 총회에서는 아울러 그 해의 핵심집중 사업을 담당할 간사 중심의 활동기구(시민활동위원회)가 만들어졌고 분과모임 지원업무나 센터
운영을 위한 기타 업무를 수행하는 사무국이 신설되었다. 2주년 총회에서 또하나 특기할 만한 것은, 그간 수 차례에 걸쳐 열렸던 시민강좌의 성과를 모아 {진보의 패러독스}라는 단행본을 발간하는 출판기념회와 나란히 열렸다는 점이었다.
2000년은 회원참여의 계기들이 현저히 줄어들고 시민과학센터의 중심축이 간사 쪽으로 본격적으로 옮겨가기 시작한 해였다. 2주에 1회 모이던 운영위원회는 1달에 1회로 간격이 넓어졌고, 크게 결실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생명공학 이외의 새로운 사업영역들(과학기술예산감시, 과학기술기본법 대응, 실험실안전 등)이 제안되어 간사 및 자원활동가 중심으로 활동이 진행되었다.
2000년 9월에는 과민모 출범 이래 처음으로 소속 간사의 수가 두 명으로 늘어나 업무간 역할분담이 가능해졌다. 반면 1999년까지 거의 매 분기마다 개최되었던 참여사회아카데미 강좌는 참가자의 수가 점차 줄고 아이템이 바닥나면서 2000년 봄 강좌를 마지막으로 열리지 않게 되었고, 역시 2000년 초까지 거의 매월 열리다시피 했던 월례토론회도 비슷한 이유로 열리지 않거나 센터의 다른 행사로 대체되는 경우가 잦아졌다. 출판 및 시민교육사업팀에서 이름이 바뀐 시민교육위원회가 2000년 말의 3주년 총회 때 폐지된 것은 이러한 변화를 반영한 결과였다.
2000년 11월의 3주년 총회는 이러한 경향에 눈에 띌 만한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았다. 제도연구위원회의 연구발표회와 나란히 열림으로써 그동안 커진 센터의 정책연구 역량을 보여주었고, 공익연구라는 전인미답의 새로운 사업영역을 제안했다는 것이 1년 전과 달라졌다면 달라진 점이었다. 한 가지 “작은” 변화는, 그간 조직표상에는 나와 있었으면서도 준비모임 한번 제대로 갖지 못했던 과학기술과 여성위원회(준)이 총회 장소에서의 즉석 발의에 의해 “준”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정식 기구로 발돋움했다는 것이었다. 여성위원회는 2001년 초부터 서울대 공대 여성위원회 성원들의 참여로 본격적인 세미나와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3. 안정기(2000.11-현재)
2001년은 반상근 간사의 교체로 사무국의 인적 구성에는 다소의 변화가 있었지만 센터의 운영방식이나 조직구조상에는 거의 아무런 변화도 없었던 한 해로 기록된다. 센터 전체의 사업방향은 여타 활동주체들이 포진하게 된 생명안전·GMO 분야로부터 벗어나 생명윤리·인권으로 독자적인 방향을 잡기 시작한 생명공학감시운동과 비판적 청년과학기술자 그룹과의 연대를 모색한 공익연구 운동으로 크게 양분되어 진행되었다. 이 해는 또한 각 분과위원회들이 그간 준비해온 성과들이 하나씩 외화되었던 해이기도 했다. STS교육위원회가 두 차례에 걸쳐 엮어 내었던 중등학교 현장을 위한 자료집 {가치를 꿈꾸는 과학} 1, 2권이 단행본으로 묶여 나왔으며, 제도연구위원회는 과학기술영역에 대한 시민참여의 모델을 소개하는 단행본 집필 작업을 여름 내내 진행했다(제도연구위원회의 단행본 {과학기술·환경·시민참여}는 2002년 6월이 되어서야
출간을 보았다).
2002년 1월에 다소 늦게 열린 4주년 총회는 직제 자체보다는 센터의 인적 구성에서 비교적 큰 변화가 있었던 자리였다. 근 4년 반만에 센터의 대표가 교체되면서 부대표제가 신설되는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또한 출범 이후 계속 존재했던 총무의 자리가 처음으로 공석이 되었다. 과민모 출범 초기에 총무의 주된 역할 중 하나가 새로운 회원을 모집하고 여러 회원참여 행사들의 기획과 진행에 관여하는 것이었음을 돌이켜본다면, 이는 2000년부터 지속되어 온 하나의 경향을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생명공학감시운동에서 센터의 역할 변화 모색의 한 축으로 시민생명공학정보자료실이 제안되어 새로이 기구표에 올라간 것도 한 가지 변화였다. 그리고 총회 때 확정되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간 1인 편집체제 하에서 명목상으로만 존재했던 시민과학 편집위원회가 실질적으로 구성되어 2002년 3월부터 활동을 시작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진전이었다.
이로부터 다시금 1년 가까이 흘러 출범 후 5주년을 맞은 시민과학센터는 이제 시민단체로서는 청·장년기에 들어섰다고 하겠다. 최근 2년간 조직구조상에 주목할 만한 별다른 변화는 보이지 않고 있고, 주요 활동 회원들의 면면이나 모임 회원의 수 역시 증가도 감소도 아닌 안정세를 나타내고 있다. 앞으로 최소한 단기적으로는 모임의 조직구조나 직제, 운영방식 등이 크게 변모하게 될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또한 내용적으로도 시민과학센터는 이제 그리 참신하지도 않으면서 썩 널리 알려져 있지도 않은 논의와 실천을 (역풍에 맞서면서) 지속적으로 해나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앞으로의 숙제는, 이와 같이 안정된 모임(과 분과모임)의 분위기가 침체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어떻게 다시금 새로움을 얻으면서 계속 나아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 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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