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재정개혁센터 조세정의 2026-02-09   19383

[논평] ‘부자 대탈출’ 프레임의 붕괴, 불평등 완화 위해 상속세 강화해야

대한상의 사태, 상속세 왜곡 담론의 취약한 근거 드러내
사실 아닌 프레임, 검증 없는 통계가 만든 ‘부자 대탈출’ 서사

최근(2/7) 대한상공회의소(이하 ‘대한상의’)는 상속세 관련 보도자료에 인용한 해외 민간 보고서의 근거가 부정확했다는 점을 인정하며 사과했다. 앞서 대한상의는 영국 이민 컨설팅 업체 Henley & Partners의 보고서를 근거로 국내 고액 자산가 2,400명이 해외로 이주했으며, 그 규모가 세계에서 네 번째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해당 보고서는 조사 방식과 데이터 생성 과정이 충분히 공개되지 않아 국제적으로도 통계적 신뢰성을 지적받아 왔다. 이를 검증 없이 상속세 논쟁의 근거로 활용한 이번 사태는 상속세를 둘러싼 왜곡된 담론이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동안 일부 언론은 상속세가 개인에게 부과되는 자산이전과세라는 기본적 성격을 외면하고 상속세를 기업 경영과 산업 경쟁력의 문제로 왜곡해 왔고, 정치권 역시 이러한 프레임에 기대 상속세 완화를 추진해 왔다. 참여연대는 ‘부자 대탈출’이라는 허구적 프레임에 기반한 상속세 완화 주장을 거두고, 정부와 국회가 불평등 완화와 상속세의 본래 목적에 맞도록 상속세 강화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상속세로 인한 ‘부자 대탈출’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은 국세청 자료를 통해 확인된다. 임광현 국세청장이 어제(2/8)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연평균 해외 이주 신고자는 2,904명이었고 이 가운데 자산 10억 원 이상 고액 자산가는 139명에 불과했다. 이는 대한상의가 인용한 ‘2,400명 탈한국’ 주장과 17배 이상 차이가 나는 수치다. 상속세가 없는 국가로 이주한 비율도 전체 평균(39%)보다 고액 자산가(25%)가 오히려 낮아, 상속세 회피를 이유로 한 대규모 이주가 확산되고 있다는 주장과는 부합하지 않는다.

이 같은 판단은 국제적으로도 이미 확인된 바 있다. 영국에 소재한 국제 NGO인 Tax Justice Network(조세정의 네트워크)는 2025년 6월 발표한 「The Millionaire Exodus Myth」 보고서를 통해 Henley & Partners의 주장을 한마디로 수준 이하로 평가했다. 보고서는 Henley & Partners가 ‘백만장자 탈출(millionaire exodus)’ 주장의 근거로 활용한 각종 자료의 조사 방식과 데이터 출처, 해석에 심각한 흠결이 있음을 요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우선 백만장자의 정의와 범위를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고 정해진 결론에 맞춰 통계를 왜곡하고 결론을 과장했다. 주장의 근거로 활용하는 데이터의 주된 출처는 ‘New World Wealth’라는 컨설팅 업체의 비공개 샘플 데이터인데, 해당 업체 데이터의 신뢰성을 검증할 수 없고 드러난 오류 역시 용인할 수 없는 수준이다.

예컨대, 링크드인이라는 비즈니스 포털을 통해 거주지를 확인했다는데, 거주지와 근무지 혼동 문제부터 해당 포털의 정보로 이민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나아가 보고서에 나오는 백만장자의 매우 구체적인 이민 숫자는 전수조사가 아니라 샘플로부터의 무리한 추정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도 영국과 유럽 등 해외 언론은 충분히 검증하지 않은 채 ‘millionaire exodus’ 서사를 확대·재생산하며 이를 상속세 논쟁과 직접 연결시켜 왔다는 것이다. 조세정의 네트워크는 이 같은 현상을 관측된 현실이 아니라 감세를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반복 소비된 프레임으로 평가했다. 국내에서 반복되어 온 상속세 공포 담론 역시 국제적으로 근거 부족이 확인된 주장으로, 이번 논란은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프레임의 문제임을 분명히 드러낸다.

이러한 왜곡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대한상의는 그간 상속세 완화를 주장하며 기업 계속성 저해와 이중과세 문제 등을 반복 제기해 왔다. 하지만 이는 상속세의 과세 구조를 혼동한 주장이다. 상속세는 기업이 아니라 상속을 통해 자산을 이전받는 개인에게 부과되는 세금으로, 상속세 납부를 위해 주식이 매각되더라도 이는 기업 존속이 아니라 지분 구조 변화의 문제다. 소득 형성 단계에 부과되는 소득세와 사망을 계기로 무상 이전되는 자산에 부과되는 상속세는 과세 대상과 시점이 다른 별개의 세금으로, 이를 이중과세로 규정하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

우리나라 상속세는 명목 최고세율만 부각될 뿐, 각종 공제와 감면을 고려하면 실효세율은 낮은 편이며 중소·중견기업은 가업상속공제를 통해 최대 600억 원까지 감면받는다. 그런데도 ‘상속세 때문에 기업이 무너진다’는 주장이 반복돼 온 것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상속세를 과장해 온 왜곡된 프레임의 결과다. 상속세는 소득세와 법인세만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자산 불평등을 조정하기 위한 보완적 과세 장치인 만큼, 이제는 상속세를 둘러싼 왜곡을 바로잡고 상속세 본래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한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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