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복지학교 2026-09-08   2296

[청년복지학교 후기⑨] 주거권과 Housing First

2026 참여연대 청년복지학교 참가자 성동훈

학교를 졸업하고 현장에서 근무를 하다 보니 처음 사회복지를 공부했을 때 그 설렘이 어느덧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말로는 당사자를 위한다 외치며 근무를 하고 있으나 어느덧 공급자의 관점에서 사업을 계획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 뒤로 석사 진학을 결정했고 학기가 시작하기 전 참여연대 청년복지학교에 참가하게 되었다.

2026.8.27. 참여연대 느티나무홀, <주거권과 Housing First> 강의 중인 송아영 교수
2026.8.27. 참여연대 느티나무홀, <주거권과 Housing First> 강의 중인 송아영 교수(사진=참여연대)

모든 강의 내용들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주거복지 분야에 종사하는 내게 깔려 있던 지적 허영심을 송아영 교수님의 주거권 강의로 되돌아보게 되었고 그 시절 설렘이 다시 느껴졌다. 주거복지 분야에 종사하는 내가 주거권에 대해 너무 미시적으로 생각했다는 걸 알게 됐다. 앞으로 준비하고 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약자를 대하는 모습들에 대해 함께 고민했다. 노숙인. 더 넓은 의미로 홈리스에 대하여 국가가 대하는 방식이 그 나라의 수준을 보여준다는 교수님의 말씀이 내 마음을 울렸다. 누구나 사고를 당할 수 있고 불행이 닥칠 수 있으며 내 의지와 상관없이 영구적인 장애나 그에 준한 위기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보라. 공항 노숙인들을 내쫓았다는 기사에 달린 시민들의 댓글들을. 그리고 그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내보낼 수 있는 그 의사결정에 나는 한없이 부끄러움을 느낀다.

주거권은 간단하며 심플하다. 쫓겨나거나 이주에 대한 압박감 없이 점유할 수 있어야 하고, 기반시설 및 서비스 이용이 용이해야 하며, 부담 가능한 수준의 주거비를 납부해야 한다. 또한 내 신체에 맞게 적합한 주택에 거주할 수 있어야 하고 접근성이 좋아야 하며, 직장/학교 등과의 적절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 또한 지역사회에 어울리는 문화적 적정성까지. 헌법상 기본권이 그러하듯 천부인권이 그러하듯. 기본권적 주거권의 의미는 그 역시 궤를 같이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쾌적한, 쉼과 회복이 있는 즐거운 나의 집을 원하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전혀 큰 욕심이 아니다.

그러나 고개를 들어 보면 이 도시는 이윤에 빠져 죽어가고 있다. 어느 순간 실거주를 따지고 있고 집 없는 사람들이 몇 억이 넘는 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을 걱정하고 있다. 100호 이상의 임대사업을 하는 임대사업자들은 앓는 소리를 하며 수백, 수천 청년의 꿈을 앗아간 전세사기 피의자는 ‘빌라왕’이라는 이름으로 보도가 된다. 이 얼마나 부끄럽고 모순적인 세상인가.

지금까지 주거권에 대한, 넓게 말해 주거복지 정책에 대한, 더 넓게 말해 주거복지서비스 정책에 대해서 모두 쉬운 결정만을 하였다. 정치라는 것이, ‘한정된 자원을 권위적으로 나눈다는’ 그 정치라는 것이 우리 민초의 삶을 보호하지 못하였다. 모든 선출직 공무원들은 말로는 임대주택 몇 만 호를 공급한다고 한다. 선거철만 되면 쪽방촌에 방문하여 고개를 숙인다.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끝나지 않는 기다림이 찾아온다.

Housing First는 이런 전시행정과 기만적인 정책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집이 필요한 자에게 적절한 주택을,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고, 취약계층의 자활을 논해야 할 것이다. 청년복지학교를 통해 배운 가장 큰 것은 서울시나 국토부나 모두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입주자를 ‘선발’하는 과정에서 ‘의지’를 보는 것이 아닌, 적절한 주거를 공급하고 그 뒤에 자활을 논해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 오랜 시간이 지나고 알게 되었다.

특히, 입주 후 다음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공감하게 되었다. ‘공급’ 실적에 대한 압박과 추궁이 있을 뿐. 취약계층이 얼마나 재계약을 했고(특히 전세임대 유형), 퇴거하는 이들이 경제적인 자립을 얻어 나갔는지 전혀 측정하지 않는다. Housing First는 유지율을 보며 정책이 정책답게 나아갈 수 있는 현 상황의 유일한 대안일 것이다.

2026.8.27. 참여연대 느티나무홀, <주거권과 Housing First> 강의 모습(사진=참여연대)

마지막으로 10년 가까이 현장에 있는 근무자로서 부끄러움을 다시 느낀다. 촘촘해졌다고 생각했던 정책들은 역으로 취약계층 언저리에 있는 분들이 나아질 기회조차 없게 만들었다. 적어도 사회복지서비스라면, 적어도 이 주거복지 분야가 사회복지 서비스의 한 분야가 된다면 더 많은 이들을 포용하고 예방적 차원에서, 선제적 차원에서 적절한 주거복지 서비스가 행해져야 한다. 이 간단한 사실을 너무나 늦게 알게 되었다.

교수님의 한마디를 적으며 후기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유난히 우리 사회에서 홈리스를 보는 관점이 매우 부정적이다. 사실 다른 복지 당사자 유형과 다르지 않다. 홈리스는 그저 집이라는 욕구가 있을 뿐이지, 어떤 위협이 된다는 것은 그저 잘못된 사회의 인식일 뿐이다.’

그리고 함부로 그들의 역량과 미래를 재단하지 않는 사회가 오길 바라며 후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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