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1 2011-04-10   1526

[동향2] 의약품 분야에서 FTA 이행의 문제점

남희섭
변리사


  보통 자유무역협정(FTA)이라고 하면 상품의 관세를 낮추는 협정 정도로 이해한다. 그러나 한-미 FTA나 한-유럽연합 FTA는 이런 틀로는 이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들 FTA는 관세 이외에 한 나라의 거의 모든 경제활동을 다 포괄할 정도로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의약품만 하더라도 관세철폐는 물론 FTA를 통한 의료 서비스 개방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고, 건강보험 약가 제도 역시 비관세장벽이란 이름으로 FTA에서 다룬다. 또한 미국이나 유럽연합이 특별히 강조하는 지적재산권 문제도 의약품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협상 대상이다. 이 글에서는 비관세장벽과 지적재산권 문제를 중심으로 FTA가 의약품 분야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그 문제는 무엇인지 살펴본다.


  비관세장벽 – 건강보험 약가 제도


  FTA가 건강보험 제도 자체를 직접 공격하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 무력화할 수 있는 조항들이 많다. 한-미 FTA에서는 제도의 투명성 보장이란 명목으로 보험등재과정과 약가결정과정에 제약사의 개입을 허용하고 있다. 가령 한국 정부가 의약품의 가격산정과 급여에 대한 결정을 할 때 그 근거에 관한 의미 있고 상세한 서면 정보를 제약사에게 제공하여야 한다. 그리고 정부의 결정에 대해서는 별도의 독립된 기구를 통해 제약사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상세한 정보를 얻은 제약사는 정부가 결정한 약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 독립 기구를 통해 언제든지 다툴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된 셈이다. 문제는 독립 기구의 권한인데, 이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한국 정부는 의약품의 가격과 급여에 대한 정부의 결정을 독립 기구가 단순히 검토만 할 뿐 번복할 권한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협정문에는 독립 기구를 ‘independent review body’로 명시하고 있고, 여기서 ‘review’는 단순한 검토가 아닌 재심(再審)을 의미하기 때문에, 약가에 대한 정부의 결정을 번복하거나 파기할 권한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한-유럽연합 FTA는 한-미 FTA보다 제약사의 개입을 더 강화하여, 급격한 경제지표의 변화와 같은 특정 상황에서 정부가 의약품의 급여액을 직권 조정할 경우 제약사에게 미리 의견 제출 기회를 주도록 했다. 또한 한-유럽연합 FTA에서는 의약품에 관한 작업반을 설치하여 협정의 이행을 감독하는데, 이 의약품 작업반은 통상교섭본부장이 공동의장을 맡는 무역위원회 산하에 설치된다. 이처럼 통상관료들이 의약품 작업반이나 위원회를 장악하는 구조는 한-미 FTA도 비슷하다. 결국 FTA 이행을 감독한다는 명목으로 건강보험 약가 정책을 미국이나 유럽연합의 통상관료와 협의해야 하는 사안으로 만든 것이다.


  지적재산권을 통한 의약품의 시장독점 가격 보장


  미국이나 유럽연합의 FTA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의약품을 하나의 기준으로 구분한다. 바로 특허로 보호받는 의약품과 그렇지 않은 의약품이다. 특허 의약품은 약가를 산정할 때부터 특별대우를 받는다. 그래서 FTA 협정문에는 급여액을 결정할 때 특허 의약품의 가치를 적절하게 인정해야 한다는 규정을 둔다. 특허 의약품의 가치란 무엇일까? 특허권은 독점권을 의미하기 때문에 특허 의약품의 가치란 시장독점가격을 말한다. 위대한 발명을 해서 특허까지 받았는데 독점가격을 인정하는 것이 왜 문제냐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특허는 위대한 발명을 하지 않아도 받을 수 있다. 기존의 의약품과 뻔하지 않은 정도로만 차이가 난다면 특허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특허법의 태도이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하나의 의약품에 천 삼백 개의 특허가 출원된 경우도 있다. 이렇게 무분별한 특허가 존재하기 때문에 실제로 법정 분쟁까지 간 의약품 특허 중 무려 약 80%가 무효로 판정난다는 통계까지 있다.


  의약품의 지적재산권 보호는 비윤리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 자료독점권이란 제도가 대표적이다. 자료독점권 제도는 신약의 품목허가를 받기 위해 식약청에 제출하는 안전성과 유효성에 관한 자료를 신약 제약사가 일정 기간 독점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독점을 인정하는 방식이 묘하다. 동일한 성분이어서 안전하고 유효하다는 점을 알고 있더라도 복제 의약품은 품목 허가를 받으려면 임상시험을 반복한 다음 안전성과 유효성에 관한 자료를 새로 제출해야 한다. 이처럼 환자를 상대로 한 임상시험을 반복하게 만들기 때문에 미국 식약청조차 비윤리적이고 사회적 낭비라고 비판한다. 한국은 미국과 유럽연합의 통상압력으로 1990년대부터 자료독점권 제도를 편법으로 운영해 오고 있는데, 한-미 FTA는 이 자료독점권의 적용 범위를 더 확대하여, 미공개 자료뿐만 아니라 공개된 자료에 대해서도 독점권을 인정하고, 정확한 의미를 협상 당사자도 모르는 ‘유사 의약품’에까지 자료독점권이 적용되도록 하였다.


  유럽식 FTA에는 없지만 미국식 FTA에 들어있는 독소조항으로 의약품 허가와 특허를 연계하는 제도가 있다. 의약품 허가 절차에서 어느 의약품에 대해 타인의 특허권이 등록되어 있는 경우에는 그 의약품의 허가를 보류하는 제도이다. 특허권을 침해하는 의약품의 시판을 방지하겠다는 이 제도는 매우 비상식적이다. 특허권은 원래 사권(私權)이기 때문에 권리 침해를 적발하고 대응하는 것은 특허권자 개인의 몫이다. 특허권을 통해 얻는 이익이 오로지 특허권자 개인에게 돌아가는 것처럼 특허권 보호를 위한 비용도 특허권자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허가-특허 연계 제도는 특허권자 개인이 자기 비용과 시간을 들여서 해야 할 일을 세금으로 운영되는 식약청에서 대행하도록 만든다는 문제가 있다.


  전 세계에서 허가-특허 연계 제도를 자발적으로 운영하는 나라는 미국뿐이다. 다른 몇몇 나라들은 모두 미국과의 FTA를 통해 이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의 문제는 등록된 특허의 무효율이 매우 높기 때문에 의약품의 허가 절차와 특허를 연계하는 것 자체가 사회적 손실이라는 점에 있다. 앞에서 한국의 의약품 특허 무효율이 약 80%라고 했는데, 오랫동안 허가-특허 연계 제도를 운영해온 미국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의약품 특허 침해소송에서 특허권자가 패소하는 비율이 무려 73%나 된다고 한다. 특허 등록 여부를 처음부터 제대로 심사했다면 의약품 허가 절차와 연계될 수 없는 특허가 그만큼 많다는 말이다. 이로 인한 손해에 대해 특허권자는 배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 손해는 모두 약가 부담으로 돌아가 환자나 국민 전체가 져야 한다.


  허가-특허 연계 제도는 정부 스스로도 한-미 FTA로 인해 의약품 분야에 가장 큰 피해를 줄 것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값싼 의약품의 출시를 지연시키고 약가 부담을 높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허가-특허 연계 제도를 FTA에 포함시키려는 미국 행정부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았는데, 2007년 미국은 개도국과의 FTA에서는 이 제도를 강제하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한국에 대해서는 개도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FTA 협정문을 변경하지 않았다. 허가-특허 연계 제도가 도입되면 제약사는 연계할 특허를 많이 만들 강력한 동기가 생긴다. 하나의 의약품에 늘 특허가 살아있도록 하는 전략을 꾀하는데, 이런 일이 워낙 빈번하다보니 이를 지칭하는 용어(에버그리닝: ever-greening)까지 생겼다. 앞에서 하나의 의약품에 무려 천 삼백개의 특허출원이 있다는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래서 미국과의 FTA를 통해 허가-특허 연계 제도를 도입한 호주는 제도 악용을 막기 위한 처벌 제도 등을 두었지만, 한국 정부는 이행법안을 준비하면서 이런 점에는 소홀하기 짝이 없다.


  FTA는 새로운 형태의 재산권 제도인 지적재산권의 강화를 통해 의약품의 시장 독점을 제도화하고 필연적으로 약가 상승을 초래한다. 그리고 건강보험 약가 정책은 제약사의 개입과 통상관료의 감독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FTA에서 강조하는 ‘혁신에 대한 보장’이나 ‘의약품 지적재산권의 강화’는 한국 제약사들에게 신약의 개발 동기를 부여하거나, 한국 국민들의 치료접근권을 높이려는 것이 아니라, 신약 개발 능력이 세계 최고 수준인 다국적 제약사들의 독점이윤을 보장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참고문헌]
–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정책기획연구단 역음, ‘한미 FTA는 우리의 미래가 아닙니다’ 도서출판 강, 2007년.
– 특허청(주관연구기관: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제약분야의 에버그린 특허전략과 분쟁 사례 연구’, 2009년 8월.
– Federal Trade Commission, Generic Drug Entry: Prior to Patent Expiration, July 2002.


월간 <복지동향> 2011년 4월호(제1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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